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곧 경찰과 119 구급대원들이 들이닥쳤다.
경찰은 케코아를.
구급대는 김희철을 싣고는 망가진 로비를 떠났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 * *
종로 경찰서 앞.
케코아가 유치장에 갇혀 있는 가운데 경찰서 앞은 수많은 취재진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고 있었다.
제주 해군 기지 건설과 관련된 대법원 판결이 얼마 전에 있었고, 그와 관련된 환경 운동가가 국내 최고의 언론사인 오프라인에 불만을 품고 회사에 돌진하여 사람이 다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사건은 꽤 많은 주목을 받고 있었다.
리포터들은 카메라를 바라본 채 다들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오늘 오전 11시, 종로에 위치한 종로센터 1층에 미국의 환경 운동가 케코아 씨가 흰색 승용차를 몰고 돌진. 1층 로비 유리가 파손되고 카페 주인이 크게 다쳐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입니다. 경찰은 케코아 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조사 중이며 그가 술을 마신 상태는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케코아 씨는 경찰 조사에서 ‘평화의 섬 제주와 강정마을이 파괴되고 있는데 믿었던 오프라인이 이런 사실을 부각해 주지 않아 화가 나서 범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결코 고의는 아니었으며 브레이크가 들지 않았다’고 진술하였습니다.”
오프라인 역시 같은 취지로 홍지혜가 카메라 앞에 서서 그와 같은 멘트를 내보냈다.
그러나 카메라 옆에 서서 멍하니 홍지혜를 바라보고 있던 나는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브레이크가 들지 않았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김희철의 사고로 나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케코아가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일차적인 이유가 바로 내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희철 형님에게 무슨 일이 난다면 그건 곧 내 잘못이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홍지혜가 리포팅을 끝내고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위로의 말을 건넸다.
“대표님. 괜찮으세요?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이세요. 여기는 제가 지휘할 테니까 대표님은 사무실로 들어가 계세요.”
“아닙니다. 케코아 그 자식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제가 꼭 알아야겠습니다.”
“경찰에서 이야기 나오면 저희가 바로 연락드릴게요.”
나는 고개를 젓고는 경찰서 현관을 노려보았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굳게 잠긴 문은 열릴 기미가 없었다.
박창후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김희철 사장님으로부터는 연락 없습니까?”
“네, 아직 없네요.”
“걱정이네요. 기절하신 것 같던데. 혹시 병원에는 누가?”
“카페 알바 하던 친구 하나가 따라갔습니다. 그 친구한테는 무슨 일 있으면 저한테 바로 연락하라고 연락처를 준 상태고요.”
“네, 사장님도 너무 걱정 마십시오. 큰일 아닐 겁니다.”
“네, 부디 그래야죠.”
“그나저나 진짜 미친놈 아닙니까? 아니 우리는 강정마을을 도와줬는데 도대체 왜 저런 미친 짓을!”
박창후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거리며 성을 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주 해군 기지와 관련하여 오프라인이 내보낸 기사가 환경오염에 중점을 두지는 않았지만, 강정마을과 환경 운동가들한테는 최고의 결과였다.
우리가 나선 덕에 대법원에서도 제주 해군 기지 건설 사업이 위법이라는 판결이 나오지 않았던가.
‘단순히 우리가 기사에서 환경오염을 주요하게 다루지 않았다고 저런 짓을 벌인 것 같지는 않은데.’
여론은 케코아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했다.
<와 진짜 인성 보소. 오프라인은 지들을 도와줬구먼, 은혜를 원수로 갚네. 역시 천조국 클라쓰!>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하나 있는데 환경 운동가나 환경 운동 단체의 전투력은 상상을 초월함! 오죽하면 전투 종족이라는 말까지 있을까>
<고의가 아니긴 개뿔. 유튜브에 올라온 돌진 영상 보니까 완전 사람 죽이려고 들이박더니만>
<나도 영상 봤음. 완전 미친놈이던데? 살인 미수 혐의로 평생 콩밥 먹여야 함. 미국놈이라고 절대 봐주거나 그럼 안 됨!>
나는 홍지혜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경찰 쪽에서는 아까 그 이야기만 전해 주고는 별다른 말이 없는 상태인가요?”
“네, 케코아도 초기 조사에 응답하고는 현재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가 케코아를 만나 볼 순 없겠습니까?”
“케코아를요?!”
홍지혜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는 피의자인 케코아나 피해자인 김희철 사장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은 아니니까 참고인이나 증인 등으로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
“그래요? 그럼 경찰 측에 연락해서 내가 좀 봤으면 한다고 알려 주세요. 경살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싶다고요.”
“알겠습니다. 연락해 볼게요.”
그녀가 경찰에게 전화한 지 오래지 않아.
굳건히 닫혀 있던 경찰서 문이 빼꼼 열리더니.
곰처럼 생긴 남자가 나와서는 나와 홍지혜를 안쪽으로 불렀다.
“안녕하세요, 김광호 반장님! 바로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 부탁인데요.”
그는 무섭게 생긴 겉모습과는 다르게 순박한 웃음을 보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홍지혜를 바라보는 그의 두 볼이 새색시처럼 붉어졌다.
그는 한참을 홍지혜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불현듯 내 쪽을 살폈다.
그러고는 급하게 옷매무새를 다듬고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우세진 대표님. 이번 사건을 맡게 된 김광호 경감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경감님. 케코아는?”
“그는 유치장에서 얌전히 있습니다.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으니 미국인이라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외국으로 바로 줄행랑칠 수는 없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뇨. 그런 걱정으로 드린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혹시 그와 제가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을까요?”
“그와요?”
김광호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오프라인의 보도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단순히 보도에 불만을 품고 이런 일을 벌였다기에는 뭔가 꺼림칙한 게 있어서요.”
“꺼림칙하다고요?”
“네. 오프라인의 보도는 강정마을과 환경 운동가 입장에서는 손을 들고 환영할 내용이었지 불만을 가질 만한 건 아니었습니다.”
“네. 저희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가 아까 조사에서 이야기한 건 환경오염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다뤄주지 않았다는 거였으니까요. 그게 가장 큰 불만이었고요.”
“그것도 이상한 게 저희 쪽에서 환경오염이나 자연 파괴에 대한 기사를 전혀 다루지 않았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가요?”
“게다가 그는 브레이크가 들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게 조금 수상합니다.”
“뭐 스스로도 부끄러우니까 아무 말이나 지어낸 거 아니겠습니까. 그가 탄 차 안에서는 ‘오프라인에 실망했다!’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도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부하 직원을 시켜 A4 용지에 검은색 매직으로 삐뚤삐뚤하게 글씨가 적힌 종이를 내게 건넸다.
<오프라인에 실망했다! I was disappointed with Offline!>
나는 그 종이를 한참 살펴보다가 무언가 떠올라 김광호에게 물었다.
“저기 경감님. 혹시 그가 몬 차량은 렌터카입니까?”
“흰색 승용차요? 도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대포차던데요. 미국에서 온 진성 환경 운동가라 그런지 여간내기가 아닙니다.”
김광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요? 그럼 혹시 그에게 차를 빌려준 사람을 찾을 수 있습니까?”
“차요? 찾으려면 찾을 순 있겠지만 대포차 특성상 빨리는 어려울 겁니다. 그런데 그건 왜요? 범인이 현행범으로 잡혔으니 그런 건 부차적일 것 같긴 한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케코아와 이야기 나누는 건은 어떻게 좀 안 되겠습니까?”
“흠.”
김광호는 턱수염을 쓰다듬고는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어이! 거기 남는 의자 하나 이쪽으로 가지고 와 봐.”
오래지 않아 젊은 경찰 한 명이 헤져서 여기저기 구멍이 난 낡은 의자 하나를 이쪽으로 가져왔다.
김광호는 그 의자를 유치장 쪽으로 끌고 가더니 나를 불렀다.
“뭐 합니까. 우리 바빠요.”
* * *
유치장 안에 갇힌 케코아는 그 짧은 사이 수십 년은 더 늙어 버린 느낌이었다.
제주도에서 만났을 당시 활기차던 모습은 오간 데 없고, 웬 노인이 앉아 있나 싶을 정도로.
“케코아 씨. 저 알죠? 오프라인 대표 우세진입니다.”
“우세진?”
한동안 바닥에서 눈을 떼지 않던 그가 내 이름을 듣고서는 그제야 이쪽을 돌아보았다.
쇠창살 안에 갇힌 그의 두 눈은 무척이나 슬퍼 보였다.
“지금 본인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알고 있습니까?”
“내가……. 무슨 짓을.”
“차로 사람을 쳤어요! 네?”
“내, 내가 사람을!”
“그렇습니다. 건물도 부쉈고요. 기억나요? 차로 들이박았잖아요?”
“아니 나는 그럴 의도가…….”
“그럴 의도가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오프라인에 실망했다고 쓴 이 종이. 당신이 쓴 거 아닙니까?”
나는 조금 전 경찰에게 건네받은 종이를 케코아 쪽을 향해 보여 주었다.
케코아는 맞다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돌연 화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난 결코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 이봐. 변호사를 불러 주시오. 나는 그런 게 아니었다고!”
“당신은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습니다.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지만, 그 전에 저한테 진실을 이야기하는 게 신상에 좋을 겁니다.”
“여기 영어 되는 사람은 없나요? 저기요! Help me!”
“케코아 씨! 나는 당신을 도와주러 여기 온 겁니다. 헛소리 그만하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봐요! 당장!”
내가 케코아를 다그치자 내 뒤에 있던 김광호가 혀를 차며 홍지혜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거 참. 누가 형사고 누가 참고인인지.”
* * *
한남동에 위치한 한 대학병원.
“어이쿠. 양손이 무척 무거워 보이는구먼.”
전신에 깁스를 한 채 병원 침상 위에 누워 있던 김희철이 병실로 들어오는 내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두 손 가득 들고 온 과일 바구니와 음료수 박스를 그의 침상 옆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농담할 기력이 있는 거 보니까 몸은 괜찮나 보네요.”
“우 대표 눈에는 이게 괜찮아 보여? 왼쪽 다리는 골절에 목이랑 허리는 디스크 판정 났구먼.”
“고생이 많습니다.”
“고생은 뭘. 나 쓰러졌을 때 맨 처음 달려와서 챙겨줬다며. 고맙네.”
그는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그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다만.
‘전치 6주 이상의 진단을 받았을 만큼 중상을 당했어. 후유증이 없어야 할 텐데.’
내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자 부담감을 느낀 김희철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괜찮아, 괜찮아. 재활하면 다 멀쩡해진대. 의사도 내 뼈가 어지간히 통뼈라서 금방 낫는다고 그러네.”
“형님 나이도 생각하셔야죠. 20대도 아니고.”
“누가 들으면 내가 50대 넘은 아저씨인 줄 알겠네. 그나저나 여기 1인 병실도 우 대표가 잡아 줬다며. 비쌀 텐데, 항상 신세만 지네.”
“뭘요. 당연한 도리죠. 병원비랑 카페 수리비는 저희 측에서 낼 테니까 부담 갖지 마세요.”
“무슨 소리. 그걸 왜 오프라인에서 내? 가해자한테 받아야지!”
“그쪽은 땡전 한 푼 없답니다.”
“뭐? 땡전 한 푼 없다고!”
그는 황당했는지 침상에서 벌떡 일어서려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아이고야. 무슨 돈도 없는 놈의 시키가 대낮에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그런 행패를 다 부렸대? 어이가 없네.”
“한국 사람 아니에요. 미국 사람이지.”
“뭐? 미국인이라고?! 그런데 갑자기 왜?”
나는 일련의 사정을 그에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그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참 나. 어처구니가 없구먼그래. 고작 환경오염에 대해 제대로 안 다뤄 줬다고 차로 건물에 돌진해? 이상한 녀석일세.”
“형님도 이상한 것 같죠?”
“응, 무슨 철천지원수도 아니고 그런 짓을 저지른다는 게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안 가잖아? 그쪽에 유리하게 기사를 써 준 게 오프라인인데 말이야.”
“네. 그래서 뭔가 배후가 있는 거 같아요. 지금 경찰에서 조사 중입니다.”
“그렇군. 아무튼 알바생들이 이번 일로 많이 놀랐겠어. 다들 그만둔다고 하면 어쩌지.”
김희철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형님은 지금 남들 걱정할 때에요? 자기 몸이나 잘 관리하세요.”
“힘들게 뽑은 친구들이니까 그러지. 다들 실력도 좋은데.”
“형님 나으시는 동안 임금은 저희 쪽에서 대신 낸다고 이야기했어요. 나간다는 사람도 아무도 없고요.”
“정말로?! 아이고야. 나 죽네.”
흥분한 김희철은 몸 곳곳이 쑤시는지 고통을 호소했다.
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힘주어 말했다.
“진정하시고 형님은 재활에만 신경 쓰세요. 오프는 제가 책임지고 관리할 테니까.”
“고맙네. 우 대표만 믿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