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1화 (141/200)

* * *

병원을 나온 나는 곧장 종로경찰서 인근 찻집으로 향했다.

찻집으로 들어서자 인상이 험악하게 생긴 남자가 내 쪽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김광호였다.

“우 대표님! 여깁니다.”

“네, 경감님. 사건은 어떻습니까?”

“역시 우 대표님 말이 맞았습니다. 조사하면 할수록 구린 구석이 많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케코아의 말에 따르면 그는 원래 종로센터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려고 했었다고 했다.

평화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자동차로 정문을 가볍게 들이받는 퍼포먼스를 보이면 훨씬 더 효과가 좋을 것 같다며 그에게 차를 빌려주었다고 그랬다.

“케코아가 사용한 대포차를 판매한 일당을 잡았는데, 녀석들이 도통 입을 열고 있지 않아요.”

“입을 열지 않는다고요?”

“네, 자신들은 때려 죽어도 말할 수 없다며 배를 째라고 그러네요. 허허.”

“지금 저를 만나서 한다는 이야기가 고작 그런 겁니까?!”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김광호가 주변 눈치를 살피며 나를 진정시켰다.

“워워. 진정하세요. 대표님. 드릴 말씀이 있어서 만나자고 한 겁니다.”

“뭐죠?”

“이건 순전히 제 감입니다만 배후에 어마어마한 녀석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마어마한?”

“네, 제가 강력계 짬밥만 20년이 넘었습니다. 이건 절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에요. 뒤에 뭔가 거대한 세력이 있습니다.”

“거대한 세력이라.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조직폭력배가 얽혀 있을 수도 있고 그 이상일 수도 있고요.”

“그게 무슨 말이죠?”

“조직폭력배에게 의뢰할 정도로 돈과 권력이 있는 집단이 있을 수도 있다, 이 말씀입니다.”

“흠.”

나는 팔짱을 끼고는 소파에 몸을 기댔다.

이날까지 남에게 피해를 준 적 없이 살아왔지만, 오프라인은 대한민국 최고의 언론사였다.

‘우리를 미워할 만한 세력이야 차고 넘치지. 정치권이거나 재계 또는 다른 언론사일 수도 있고.’

언론사를 생각하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고려 일보의 사장 서동탁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이런 짓을 벌이기에는 너무 유치해 보였다.

‘기사로 싸우면 모를까 이런 짓을 할 사람은 아닐 텐데.’

내가 배후 세력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사이.

김광호가 허리를 내 쪽으로 당기더니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내게 건넸다.

“이건?”

“케코아에게 차를 타고 돌진하라고 권한 사람입니다.”

나는 그가 건넨 종이를 자세히 살폈다.

거기에는 40대 중반의 한 남성에 대한 프로필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이름: 박권우. 나이: 45세. 직업: 무직. 소재지: 안양. 특징: 독신으로 별다른 활동이 없다가 대법원 판결 이후 갑자기 제주에 내려가 제주 해군 기지 반대 시위대에 참가. (중략) 케코아에게 종로센터 앞에 세워진 자동차 키를 건네고는 돌연 잠적.>

아무리 봐도 수상한 사람이었다.

나는 프로필을 다시 한번 살피며 김광호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찾았습니까?”

“지금 백방으로 찾고 있는 중입니다.”

“설명에 의하면 종로센터 앞에 차를 가져다 놓은 사람은 이 사람일 가능성이 높군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또 다른 제삼자가 있을 수도 있죠.”

“CCTV에선 별다른 단서가 없었습니까?”

“네, 교묘하게 CCTV가 비추지 않는 사각에 차를 주차했습니다. 차가 들어온 모습은 있는데, 거기서 내린 사람은 찍혀 있지 않습니다.”

“단순한 우연일까요?”

“그렇다고 보긴 어렵겠죠. 철저하게 계획된. 아 맞다! 한 가지 더 드릴 말이 있습니다.”

“어떤?”

“케코아가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 같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자동차를 점검해 보니 정말로 브레이크가 고장 났었습니다.”

“네? 브레이크가 고장 났었다고요? 아니, 그런데 그런 차를 어떻게 가져온 거죠? 설마.”

“네. 차를 주차한 뒤에 브레이크를 강제로 훼손시킨 거죠. 브레이크 호스를 잘라서요. 차에 대해 잘 아는 녀석의 소행입니다.”

* * *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홍지혜를 내 방으로 소환했다.

그녀는 이번 사건은 자신의 기사로부터 시작된 만큼 책임지고 범인을 찾고 싶다며 의욕적으로 나섰다.

“방금 김광호 경감을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뭐라던가요? 단서를 찾았나요?”

“단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더 복잡해진 것 같긴 합니다만 아무튼 단순 사건이 아닌 듯합니다.”

“단순 사건이 아니라 하심은.”

“배후가 있습니다. 거대한 세력이요.”

거대한 세력이라는 말에 홍지혜가 놀란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 저희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적이 있나요? 거대한 배후 세력이라니. 머리가 따라가질 못하겠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케코아에게 브레이크 호스를 절단한 차량을 건네 준 자가 있고 그는 현재 행방불명입니다. 해당 차량을 판매한 일당은 입을 다물고 있고요.”

“그럼 간단한 거 아닌가요?”

“네?”

“기다려 보세요. 김광호 경감님 그렇게 안 봤는데 안 되겠네요. 이건 제가 해결해 볼게요. 잠시만요.”

홍지혜가 어디론가 급하게 전화를 걸더니 목소리를 상냥하게 바꿨다.

“안녕하세요. 반장님. 네. 오프라인 홍지혜입니다. 네네. 저기 대포 차량 판매 일당을 잡으셨다면서요. 네네. 아니 그런데 왜 녀석들이 입을 열지 않을까요? 설마 반장님이 너무 살살 다루시는 건 아니죠? 그렇죠? 그럴 리가요. 호랑이 반장님이라고 소문이 자자하신데 설마 그럴 리가 없겠죠. 네네. 그럼 기대하고 있을게요~”

홍지혜는 때로는 세 살 아이를 다루듯.

그리고 때로는 애교와 아양을 떨더니 때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상대를 어루만지며 통화를 진행했다.

‘기자 생활 2년 하더니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려는 찰나.

그녀가 전화를 끊더니 밝은 미소로 말했다.

“김광호 경감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배후를 밝혀내겠답니다. 이번 사건에 취재 인력도 풀로 가동하고 있으니 곧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거예요!”

* * *

홍지혜의 말처럼 오프라인은 이번 사건을 조사하는 데 취재본부 인력의 절반 이상을 가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전국을 돌며 경찰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내부 인트라넷에 자신들이 수집한 정보 보고를 올렸다.

<박권우는 경남 밀양의 한 모텔에서 밖에 나오지 않은 채 장기 투숙 중일 가능성이 높음>

<대포차 판매 일당은 한국인이 아닌 전원 태국인으로 이뤄졌으며, 평소에는 태국인들에게 대포차를 공급하며 부당 이득을 취하는 등 불법을 저지르는 업체임>

<대포차 판매 일당에게 중고차를 공급한 딜러가 따로 있으며 이들은 경기도 수원에서 활동 중. 수원 지역 거대 조직폭력배와도 친분이 두터움>

박창후가 속속들이 올라오는 정보 보고를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이거 무슨 CIA도 아니고 올라오는 속도가 거의 실시간인데요.”

“경찰한테 들은 소식에 의하면 저희 쪽이 경찰보다 더 빠르게 정보를 모으고 있어요. 신뢰도도 더 높고요.”

“저희 언론사 말고 부업으로 정보기관 하나 운영하면 대박이겠네요. 이름은 온라인이 적당할 것 같고요.”

“박 본부장님도 농담은 그만하시고, 좋은 정보 있으면 좀 입력해 주세요.”

“네네. 홍 본부장님 무서워서 안 그래도 여기저기 정보원들에게 무릎 꿇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제발 저 좀 살려 달라고요.”

아이패드로 정보 보고를 살피던 나는 잠시 아이패드를 탁자에 내려놓고 턱을 쓰다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요. 누군가 배후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의 장난을 통해 이득을 볼 세력은 누구고 우리가 피해를 보는 건 뭐죠?”

“피해요? 로비 1층이 아작이 나고 김희철 사장님이 크게 다치셨잖아요!”

박창후가 탁자를 때리며 말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종로센터는 저희가 세든 건물이지 저희 사옥은 아니잖아요? 김희철 사장님도 오프라인 임직원은 아니고요. 타깃이 불명확합니다.”

“흠. 듣고 보니 그러네요. 도대체 뭘 노리고 한 거지?”

“케코아는 단지 미끼일 뿐이고 사건의 복잡도에 비해 그 피해는 미약합니다. 수지타산이 안 맞는 일을 왜 이렇게 꾸몄을까.”

“뭐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배후를 밝히는 게 우선이겠죠. 녀석들이 뭘 노리고 뭘 얻고자 했는지는 잡아서 족치면 나올 테고요.”

홍지혜도 박창후의 말에 동의했다.

“박 본부장님 말이 맞아요. 지금은 범인을 잡는 데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녀석들의 의도를 파악하는 건 그다음에도 충분하니까요.”

오프라인 기자들이 전국구에 레이더망을 펼친 까닭이었을까.

아니면 홍지혜가 김광호를 어르고 달랜 까닭이었을까.

배후 세력의 꼬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대포 차량 전달 용의자……. 경남 밀양에서 긴급 체포>

<수원 지역 상습 폭력 일삼은 조폭 123명 검거>

<알고 보니 대포 차량 판매 일당과 검거된 조폭은 공생 관계>

<종로센터 돌진남은 미끼였나……. 배후 세력에 주목>

우리가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경찰은 조사에 착수.

빠른 속도로 연관된 조직을 잡아내는 등 수사에 속도를 냈다.

국민적 관심도가 높아진 만큼 오프라인뿐 아니라 많은 매체에서 관련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이 사건은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고 사람들은 직장에서, 학교에서, 집에서.

그리고 퇴근길 술집에서 이 얘기를 집중적으로 나눴다.

“야 니들 그 얘기 들었어? 우리 회사 미래전략실장 있잖아? 그 양반 돌연 사표를 냈다던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번 종로센터 돌진남이랑 엮여 있나 봐?”

“진짜? 미래전략실이라면 우리 성삼 그룹의 중추 조직 아냐? 브레인 집단인.”

“그렇지. 거기가 회장님 둘째 아들인 인수강 사장님네 조직인데 실장이 정말로 이 사건과 얽혀 있다면 일이 복잡하게 되었어.”

“그러네. 후계자 싸움에서 인 사장님은 장남인 인수천 부회장님에게 밀리게 생겼어.”

“야 너 최근에 인수강 사장님 라인 탔잖아. 이제 어쩌냐.”

“어쩌긴 뭘 어째. 빨리 부회장님 쪽으로 갈아타거나 이직해야지. 젠장. 어쩐지 요새 일이 너무 잘 풀린다더니. 너 부회장님 쪽 임원들하고 친하지? 알면 동기 하나 살린다고 생각하고 소개 좀 해 주라. 오늘 술은 내가 살게!”

성삼 전자 본사가 위치한 강남역 인근의 한 고급 일식집.

방처럼 보이지만 여닫이문이 없어 근처에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죄다 들려왔다.

홍지혜와 박창후가 방에 들어가려다 말고 나지막이 말했다.

“어쩌죠? 자리를 옮길까요?”

“네. 그게 좋겠네요.”

우리는 종업원에게 이야기해서 여닫이문이 있는 안쪽 독채로 자리를 옮겼다.

박창후는 들어오자마자 문을 닫고는 벽에 귀를 대더니 다시 나가서 문을 닫았다.

“홍 본부장님. 뭐라도 좋으니까 우 대표님이랑 아무 말이나 해 봐요.”

“네.”

홍지혜는 내게 미국 지사가 설립될 예정인 뉴욕에 집을 한 채 구했다면서 그 과정에서 자신의 친구가 큰 도움을 주었다는 말을 건넸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다시 방 안으로 들어온 박창후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밖에서 방 안에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아요. 안에서도 마찬가지고요.”

“다행이군요.”

“그나저나 뜻밖의 수확이네요. 성삼 그룹이 이번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심증은 있었지만, 회사 직원들이 저리 말할 정도면 진짜인가 봅니다.”

“아직은 여전히 심증일 뿐입니다. 결정적인 단서가 없으니까요.”

“김광호 경감 쪽에서도 정훈명 전 미래전략실장을 주시하고 있으니까 조만간 연관성을 밝혀낼 겁니다.”

박창후와 마찬가지로 홍지혜 역시 이번 사건의 배후로 성삼 그룹의 인수강 사장을 지목하고 있었다.

그는 국내 최고의 대기업인 성삼 그룹 인준영 회장의 둘째 아들로, 큰아들인 인수천 부회장과 권력을 놓고 살벌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박창후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인준영 회장의 큰아들인 인수천 성삼 전자 부회장은 올해 55살이고 둘째 아들인 인수강 성삼 자동차 사장은 올해 38살인데.”

“어머. 둘이 나이 차이가 제법 크네요?”

“엄마가 다르거든요. 인수천 부회장은 첫 부인의 자식인데, 첫째 부인은 인수천 부회장을 낳고 바로 죽었으니까요.”

“저런. 그럼 인수강 사장은 두 번째 부인의?”

“그게 좀 복잡해요. 둘째 부인은 몸에 문제가 있어서 자녀가 없거든요. 인수강 사장은 셋째 부인의 큰아들이에요.”

“재벌가는 집안 문제도 복잡하네요.”

“아무튼, 둘이 나이 차이가 많지만 조용한 성품인 인수천과 다르게 인수강은 저돌적이고 공격적이라서 그룹 내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내부 후계자 다툼이 치열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 사건이 성삼 그룹에게도 아주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아요.”

박창후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곧 우리가 주문한 사시미 정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박창후가 고급스러운 접시에 담긴 말랑말랑한 계란찜을 숟가락으로 떠먹으며 물었다.

“그런데 안재영 본부장은 언제 온답니까? 벌써 음식 나왔는데. 늦네요.”

그런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방문이 활짝 열리더니 안재영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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