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회장님. 강세연 관장님은 저희 우 대표님의 여자 친구분이십니다. 그러니 호스트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죠.”
“네? 아니 그럼 그 소문이 사실이었던 겁니까?”
원화성이 나를 바라보며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회장님.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런. 이거 경사로군요! 오프라인과 TP 그룹의 만남이라니! 아니, 재능 넘치는 두 젊은이의 만남이라 의미가 큽니다, 커요!”
원화성과 백철웅은 축하의 말을 건네며 자리에 앉았다.
나는 두 사람에게 술을 따르고는 백철웅에게 물었다.
“백 회장님. 통일부 장관 일은 어떠신가요? 얼굴을 보니 무척 바빠 보이십니다.”
“말도 마세요. 하루가 겨우 24시간인 게 원망스러울 정도입니다.”
“그게 다 백 회장님이 능력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전임 장관인 박고선은 월급 루팡이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출퇴근 시간을 칼같이 지켰다는데 말이죠.”
“부럽기도 합디다. 한량 같은 분이었으니까요. 그나저나 오늘 여기 멤버 중 대다수가 곧 해외로 떠나실 분들?”
백철웅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최루리가 슬픈 표정을 지으며 술잔을 들이켰다.
“네. 회장님. 한때는 해외에서 사는 게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막상 가려니까 또 서운하고 걱정되고 그러네요.”
“최 본부장은 언어가 되니까 문제없을 겁니다. 직원들은 현지에서 채용할 예정인가요?”
“네. 해외 기사를 쓰려면 아무래도 현지에서 나고 자란 분들을 뽑는 게 좋을 테니까요.”
“맞습니다. 베트남 지사만 보더라도 그분들이 자국에 대한 이해가 있으니까 좋은 기사를 많이 쓰잖아요? 해외 지사는 현지 채용 위주로 가는 게 맞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이 자리가 우 대표님 집들이 겸 저희 환송회 자리이기도 하네요.”
최루리의 말에 모두가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화성이 한쪽 눈을 찡긋 감으며 한마디를 보탰다.
“거기에 우 대표와 강 관장이 공식적으로 연애를 선포한 자리이기도 하고요.”
“어머머! 정말이네요! 이거 아주 의미 있는 자리인데요?”
“그러게. 그런 것 치고는 술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우 대표님?”
어느덧 내가 가지고 온 와인 3병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날 밤 평창동에서는.
그동안 선물로 받아서 모아 두었던 총 20병의 와인이 모두 사라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 * *
2012년 7월.
오프라인은 총 5개의 해외 지사를 운영하게 되었다.
우선 동남아를 관장하는 베트남 지사가 첫 번째.
그리고 홍지혜가 지사장으로 간 뉴욕의 미국 지사와 박창후의 독일 지사, 최루리의 프랑스 지사.
그리고 단향 신문에서 이직한 이채선이 영국 지사장으로 가면서 총 다섯 개의 지사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지사별로 10~30여 명의 인력을 새로 뽑게 되면서 조직의 규모도 이전보다 훨씬 더 커지게 되었다.
하지만 오프라인의 주요 직책을 맡고 있던 이들이 외부로 빠지자 공백이 발생했다.
팀장급들이 본부장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으나 그들과 같은 역량을 기대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대표님. 본부장급 채용은 언제 마무리가 되나요?”
“아래에서 다들 난리예요. 데스크가 부족하니 프로세스가 느려진다고요.”
이수빈과 민정희는 빨리 사람을 뽑아 달라며 아우성이었다.
“네. 지금 열심히 뽑는 중입니다. 아시겠지만 본부장급 인사다 보니 채용에 신중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지원자가 엄청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중에서 괜찮은 사람들이 없는 건가요?”
“아뇨. 다들 엄청난 커리어와 역량을 보유하신 분들입니다. 다만.”
“다만?”
“그중 최고를 뽑아야 하니까요.”
“휴.”
내 말에 민정희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야 도중에 들어온 사람이라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아무튼 기자들 불만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빨리 새로운 본부장들을 안 뽑으면 자기들한테 본부장 시켜 달라고 할 기세예요.”
“저희는 젊은 조직입니다. 20대가 압도적으로 많죠. 그러니 본부장급은 적어도 40대 이상의 연륜 있는 분들이 하셔야 해요. 그래야 균형이 맞죠.”
“그건 그렇지만요.”
나라고 왜 걱정이 없겠는가.
지원자는 엄청났고 면접 또한 수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딱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이 적었다.
‘새삼 박창후와 홍지혜. 그리고 최루리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군.’
하긴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해 오늘날의 오프라인을 만든 이들이었다.
그들의 자리가 그렇게 쉽게 대체될 리 없었다.
지원자 서류를 살피던 나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2명을 발견하고는 이력서를 확인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뭐 이철수라고!!’
이철수.
센터 일보 기자 출신으로 회사를 그만둔 뒤 IT 회사인 ‘커피’에 입사하여 대표 이사의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센터 일보의 디지털을 담당하는 디지털 총괄로 재입사.
미디어 업계에서는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이었다.
‘센터 일보에 들어간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았는데 왜 나온다는 거지?’
무엇보다도 이 정도 되는 인물이 지인을 거치지 않고 오프라인의 공식적인 입사 지원 시스템에 서류를 올렸다는 사실이 가장 놀라웠다.
다른 한 명 역시 예상외의 지원자였다.
TP 텔레콤의 홍보 임원인 조갑환 이사가 이철수와 마찬가지로 입사 지원 시스템을 통해 이직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와는 광고를 찍으면서 안면을 튼 사이.
‘한두 번 본 사이도 아니고 광고 문의로 여러 번 만나서 함께 일도 하지 않았던가. 이직 의사가 있으면 직접 나에게 전화를 하면 될 것을 왜.’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두 인물의 지원에 당황했다.
서둘러 두 사람의 면접 날짜를 정하고 같은 날 둘을 사무실로 불렀다.
* * *
집무실 옆 회의실.
중년의 두 남성이 어색하게 서로를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나는 직접 회의실로 가서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조갑환 이사님. 면접 시간은 1시간 뒤인데 빨리 오셨군요?”
“아. 그게 버릇입니다.”
“버릇이요?”
“네, 기자님들을 상대하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약속 시간보다 늘 일찍 도착하는 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1시간이나 일찍 오실 필요는.”
“아닙니다. 중요한 자리인걸요. 게다가 이철수 총괄님도 뵙고, 빨리 온 보람이 있네요.”
“두 분 서로 아시는 사이인가요?”
“물론이죠. 이 총괄님이 센터 일보 꼬꼬마 기자셨을 때부터 서로 친하게 지냈습니다. 저는 홍보로, 이 총괄님은 기자로. 서로 많이 부딪치면서 친해졌죠.”
“그러셨군요. 그럼 우선 이철수 총괄님부터 면접을 진행하겠습니다.”
나는 이철수를 데리고 집무실로 이동했다.
다부진 체격의 그는 다소 네모난 얼굴에 주근깨가 많은 게 특징이었다.
나는 그를 자리에 앉힌 뒤 곧바로 궁금한 내용을 물었다.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얼마든지요.”
“왜 입사 지원 시스템을 통해 지원하셨습니까? 이 총괄님 정도 되는 분이라면 주변에 아는 사람을 통해서 지원하셨어도 됐을 텐데요.”
경력직은 회사의 입사 지원 시스템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대부분 헤드헌터를 통해 연락을 취하거나 아는 사람 등을 통해 서류 면접을 통과하고 면접부터 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그는 일반적인 시니어가 아니었다.
IT 업계 선두를 달리는 ‘커피’의 대표 이사를 지낸 것은 물론.
‘현재는 메이저 언론인 센터 일보의 디지털 총괄을 맡고 있는 자다. 이런 자가 왜.’
나는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는 이미 예상했던 질문이라는 듯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건 공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정이요?”
“저 또한 한 사람의 지원자일 뿐입니다. 제 지위나 경력을 이용해서 지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셨군요. 정말 놀랐습니다. 지원자 목록에 이철수 총괄님이 보여서요.”
“하하. 제가 뭐라고요.”
“커피에서 센터 일보로 다시 돌아오신다는 기사를 봤을 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잘나가는 IT 회사에서 언론사로 돌아오는 경우는 잘 없으니까요.”
“나름의 금의환향이었죠. 센터 일보는 제 친정이기도 하고요.”
“보통은 IT 회사가 복지나 처우, 미래 성장 가능성이 더 높으니까요.”
“왜요? 오프라인 같은 언론사도 있지 않습니까?”
“오프라인은 좀 독특한 곳이잖아요?”
“하하하하. 그래서 제가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이철수는 쾌활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센터 일보에 들어가신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으신 이 총괄님이 저희 오프라인에 지원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철수가 내 쪽으로 몸을 바짝 당기고는 두 눈을 번쩍였다.
# 5장 새로운 인물들
“전통 언론사에는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래가 없다고요?”
“그렇습니다. 이건 제가 센터 일보에 들어가서 6개월 동안 내부를 살피며 내린 결론입니다.”
“6개월이라는 시간은 그런 결론을 내리기에는 너무 짧지 않은가요?”
나의 물음에 이철수는 확신에 차서 대답했다.
“아뇨. 충분합니다.”
“그런가요? 미래가 없다라. 그럼 오프라인에는 미래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오프라인은 전통 언론사가 아닙니다. 이미 대표님과 오프라인 임직원들이 보여 준 2년 동안의 퍼포먼스가 이를 증명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요?”
“단순히 SNS를 통해 기사를 공유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번역 작업을 통해 국내뿐 아니라 세계를 대상으로 기사를 배포하였고, 요즘 누가 TV로 뉴스를 보나요. 모두 오프라인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보고 있죠. 김일성 인터뷰는 어떻고요. 오프라인이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일들이 일반적이지 않나요? 전통 언론사들도 모두 다 하고 있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그 퀄리티나 작업 속도, 방향성, 철학. 그 모든 것들에서 전통 언론사는 오프라인의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하하. 총괄님이 그렇게 이야기해 주시니 어쩐지 더 신뢰가 가네요.”
“네, 저는 IT 기업뿐 아니라 전통 언론사도 경험한 사람이니까요. 기실 오프라인은 이제 언론사의 범주를 넘어섰다고 봅니다.”
“어떤 식으로 말이죠?”
“이제는 IT 기업. 그러니까 플랫폼이라는 말을 써도 무방할 것 같군요.”
나는 가만히 이철수의 얼굴을 살폈다.
나의 호감을 사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이 보이진 않았다.
“맞습니다. 저희가 지향하는 바는 단순히 언론사가 아니라 IT 플랫폼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네, 밖에서 보기에도 그렇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 총괄님.”
“네.”
“왜 전통 언론사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신 걸까요? 저는 그게 궁금합니다.”
이철수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우선 펜 기자 중심의 조직이라 개발자나 디자이너, 그밖에 펜 기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배타적인 문화가 큽니다. 펜 기자가 왕인 곳이죠.”
“동의합니다. 또 뭐가 있을까요?”
“그렇다 보니 개발자들과의 협업이 어렵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게 개발의 영역일 텐데 이에 대해서 너무 무지해요. 아는 건 없으면서 군림하려고만 하죠.”
“그렇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은 기자이지 않나요?”
“설마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아닐 거라 믿습니다. 콘텐츠라는 게 단순히 텍스트가 전부는 아니니까요. 멀티미디어 요소를 넣고 인터랙티브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발자의 역량이 필수입니다.”
그의 말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정답이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 개발자 없이 좋은 콘텐츠를 만든다는 건.
총 없이 전투에 나가겠다는 말과 같았다.
나아가 플랫폼을 만든다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전통 언론사가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히 콘텐츠 제공자로 전락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개발자를 비롯하여 펜 기자 이외의 직군에 대해 우대하지 않았던 시대착오적인 조직 문화가 컸다.
“6개월 동안 많이 힘드셨나 보군요.”
“힘들었다기보다는 여긴 더 이상 가망이 없는 곳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도 디지털 총괄은 디지털에 대한 전권이 있는 자리 아닙니까? 지위도 사장급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지위만 사장급일 뿐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내부 펜 기자들을 설득하려고 해도 다들 모르쇠로 일관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