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7화 (147/200)

“대충 상황은 짐작이 갑니다. 그래도 총괄님이 부임하면서 디지털 인력들을 꽤 많이 뽑지 않았나요?”

“네, 그래서 고민입니다.”

“고민이라 하심은?”

“제 손으로 뽑은 친구들인데. 수장인 저 혼자 살려고 도망치는 것처럼 느껴져서요. 여기에 지원하면서도 수만 번을 고민하였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럼에도 더 이상의 희망은 없다는 판단하에 지원하신 거군요.”

“네, 대표님. 지금도 마음이 편치는 않습니다.”

“이해합니다.”

우두머리라는 존재는 자기 밑에 딸린 아랫사람들까지 돌봐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막내와 보스의 차이가 없을 테니까.’

나는 그와 약속된 면접 시간인 1시간을 풀로 채워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역시 이철수구나. 생각하는 방향이나 가치관이 전통 언론사와는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야.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인재다.’

나는 조만간 연락하겠다는 말과 함께 그를 돌려보냈다.

이어서 조갑환의 면접이 진행되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뭘요. 그나저나 면접을 1시간 동안이나 볼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가요? 저희는 대부분 1시간 이상의 시간을 두고 면접을 진행합니다만.”

“엄청 오래 보시는군요?”

“그 정도는 해야 상대를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하긴 30분 이하의 면접으로 사람을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그럼에도 때로는 너무 바쁘니까 10분 만에 끝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짧게 보고 넘기기에는 저희의 시간도. 그리고 면접에 와 주신 지원자분들의 시간도 허비하는 것일 테니까요.”

“정말 멋진 생각이십니다.”

“자. 그 이야기는 그쯤하고. 조 이사님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먼저 드려야겠네요. 왜 저한테 따로 연락하지 않고 입사 지원 시스템을 통해 지원하셨나요?”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나요?”

“물론이죠. 가능하다면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은 솔직하게 부탁드립니다만.”

“제가 다른 경로를 통해 연락을 드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죠?”

“오프라인이니까요.”

“네?”

“공정과 철칙을 강조하는 곳 아닙니까. 그러니 정해진 스텝을 밟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군요.”

솔직한 답변이었다.

나는 그에게 다음 질문을 던졌다.

“왜 저희 회사에 지원하셨는지 궁금합니다. TP 텔레콤은 업계에서 잘나가는 대기업인 데에다 분야도 전혀 다르니까요. 게다가 이사님은 홍보가 전문이신데, 이번에 저희가 채용하는 분야에는 홍보가 따로 없습니다. 물론 저희 내부에 홍보팀이 있기는 하지만요.”

“이런 말씀 드리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저는 홍보와 기자 일이라는 게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죠?”

“홍보 업무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 보도 자료 작성입니다. 글을 쓰고 정보를 알리는 일이죠. 기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군요. 또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정보를 모아야 하죠. 일종의 취재입니다. 또한 외부 부서와의 협업이 중요합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죠. 글쓰기와 취재.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저는 이것들이 기자와 홍보의 본질이 같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흠. 그럴듯하군요. 하지만 기자는 취재를 통해 숨겨진 사실을 밝혀내는 데 중점을 두고 홍보는 자기에게 불리한 정보를 숨기는 데 중점을 두지 않나요?”

“하하.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그저 역할의 차이로 생각합니다.”

“역할의 차이요?”

“공격수와 수비수의 차이죠. 그렇지만 같이 게임을 하고 공을 찬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공격수가 수비할 때도 있고, 수비수가 오버래핑을 통해 공격에 가담할 때도 있으니까요.”

“축구에 비유를 하셨군요?”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말이죠.”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겁니다만.”

“말씀하시죠.”

조갑환은 궁금하다는 듯 두 눈을 반짝였다.

“혹시나 오프라인에 지원한 사실을 그룹에서도 알고 있나요?”

“흠. 그건.”

조갑환은 잠시 고민하더니 책상 위에 손을 올리고는 느릿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강규현 회장도 이 일을 알고 있다고 봐도 될까요?”

“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시는군요.”

“알고 있다는 말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그럼 질문을 바꾸죠. 강규현 회장의 지시로 여기에 지원하신 겁니까?”

“허허.”

그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팔짱을 끼고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왜죠? 감시역인가요?”

“그럴 리가요. 회장님께서는 대표님을 도와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어떻게 도와주신다는 말이죠?”

“강세연 관장님과 대표님께서 연인 관계라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만약에 두 분이 결혼을 하시게 된다면. 물론 만약입니다만, TP 그룹은 실질적으로 우 대표님이 소유하게 되실 겁니다.”

“그런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대표님이 그런 생각이 없으시더라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겠죠. 아시겠지만 회장님은 따님 한 분이 전부니까요.”

나는 더욱더 깊이 의자에 몸을 기댔다.

TP 그룹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었지만, TP 그룹을 물려받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오프라인을 키우는 데에도 정신이 없는 마당에 어느 세월에 TP 그룹까지 관리한단 말인가.

“그래서요?”

“제가 TP 그룹과 오프라인의 연결점이 될 겁니다. 그래서 필요한 일이 있다면 저를 통해서 TP 그룹을 관리하게 되실 거고요.”

“불편한 이야기로군요.”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연락책은 뒷단의 이야기일 뿐 제 능력은 온전히 오프라인을 위해서만 쓰일 테니까요.”

“홍보 이외에 어떤 역할을 하실 수 있죠?”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홍보와 언론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중간 관리자 역할이라면 그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고요. 자화자찬 같습니다만 괜히 대기업 임원이 된 건 아니니까요.”

“대기업은 실력보다 라인 아닌가요?”

“하하. 라인을 잘 타는 게 실력이죠.”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홍보란 기본적으로 기자를 상대하는 일이었다.

‘실력은 물론이고 인간관계가 좋지 않으면 절대로 대기업 홍보 임원을 할 수 없겠지.’

“좋습니다. 면접은 이만하면 될 것 같군요.”

“응? 아직 20분이 채 되지 않았는데요?”

“조 이사님과는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아까는 대체로 1시간 이상 면접을 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일반적인 경우에는요. 조 이사님은 이미 저와 같이 일을 해 본 적도 있고 처음이 아니잖아요.”

“그럼 저는 합격입니까?”

“합격 여부를 면접 자리에서 곧바로 물어보는 지원자는 처음이군요.”

“무엇을 하든 상대방의 기억에 남기 위해서는 처음이어야 하는 법이죠. 홍보할 때도 맨 처음이 중요하지, 두 번째, 세 번째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요.”

그의 말처럼 홍보 아이템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처음이었다.

첫 진출, 첫 사례, 첫 선정 등.

사람들은 처음이라는 단어에 가장 많은 의미를 부여하니까.

“알겠습니다. 조만간 연락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결과 기대하겠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을 향해 걸어가다가 돌연 나를 홱 돌아보고 말했다.

“아 맞다. 이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깜빡했습니다.”

“어떤?”

“강규현 회장님이 찾으십니다.”

“강 회장님이요?”

“네, 둘이 사귀고 있으면서 왜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느냐며 성화십니다.”

“휴. 조만간 찾아갈 생각이었습니다.”

내 말에 조갑환이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이번에 찾으시는 분 중에 강 회장님만 계신 건 아닙니다.”

“그럼?”

“인수천 성삼 전자 부회장님하고 같이 보자고 하시더군요.”

“네?”

* * *

성삼 전자 강남 사옥.

강남역 바로 옆에 위치한 이 건물은 성삼 전자뿐 아니라 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이 밀집해 있는 성삼 그룹의 심장이었다.

총 4개의 40층짜리 건물이 마주 보고 서 있는 구조로, 강남역을 나오면 바로 외관이 보임으로써 강남의 랜드마크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그중 가장 안쪽에 위치한 D동의 꼭대기 층인 40층에는 인준영 성삼그룹 총수를 비롯하여 성삼의 주요 임원들의 집무실이 있었다.

“이렇게 금방 또 뵐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동생 일로 강 회장님에게는 사과도 할 겸, 같이 뵙자고 하였습니다. 강 회장님이랑도 남남이 아니신 것 같아서 말이죠.”

인수천은 어디서 이야기를 들었는지 나와 강세연이 사귄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기사가 나간 적은 없었는데 그만큼 성삼 그룹의 정보망이 넓다는 이야기로군.’

나보다 먼저 도착하여 소파에 앉아 있던 강규현이 불만 섞인 목소리로 툭 뱉었다.

“그래서 동생 일은 어떻게 사과를 하겠다는 겁니까?”

“네, 회장님. 법적인 처벌은 재판에서 가려질 예정입니다. 그것과 별개로 그룹 차원에서 사과를 드려야겠지요.”

“그룹 차원의 사과라. 예를 든다면?”

“이번에 콩고 코발트 광산 건은 저희가 TP에 양보하겠습니다.”

“응? 그걸 양보하겠다고?”

“네, 이미 아버님하고도 이야기가 끝난 문제입니다.”

“콩고 광산은 양보하겠다라. 나쁘지 않군요.”

강규현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코발트는 전기차 배터리의 주요 원자재로 전 세계 매장량 대부분이 콩고에 집중되어 있었다.

따라서 전기차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콩고의 코발트 광산을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최근 성삼 그룹과 TP 그룹이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지정하고 치열하게 경쟁 중이었던 거로 알고 있는데, 콩고 코발트 광산을 TP에 양보하겠다는 건 성삼은 배터리 사업에서 빠지겠다는 의미인가?’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인수천이 입을 열었다.

“대신 저희가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포기하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저희 성삼도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미래의 주요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으니까요.”

“그럼 어떻게 하겠단 말입니까?”

“다른 광산을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또한 TP 그룹에서는 해당 코발트 광산을 소유하되 저희에게는 다른 곳보다 저렴한 금액으로 코발트를 판매해 주면 좋겠군요. 시가의 80% 정도 가격으로 말이죠.”

“하하. 그렇게 팔아서 남는 게 있을까요?”

“설마요. 80%에 팔아도 이익은 충분할 겁니다.”

“으흠. 그건 내부적으로 검토해 보겠소. 그건 그렇고. 당사자에게 직접 사과를 하는 게 도리 아니겠소?”

“사과라 하심은?”

“인수강 사장이 우리 세연이에게 말이오.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아무런 잘못도 없는 내 딸이 괜히 언론의 기사에 등장하여 피해를 보지 않았소.”

강규현은 팔짱을 끼고는 인수천을 노려보았다.

인수천은 상대의 태도를 예상치 못한 듯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회장님. 콩고 광산 건만으로도 저희 성삼 그룹은 충분히 양보하였습니다.”

“그건 그룹 차원의 이야기고, 개인에게도 사과해야 한다는 말이오.”

“하지만 수강이 녀석은 현재 구치소에 있습니다. 구치소에 있는 녀석에게 사과를 받겠단 말입니까?”

“잘못했으면 사과를 하는 게 맞는 겁니다.”

강규현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만큼 하나뿐인 딸을 사랑한다는 의미일 터이다.

인수천은 책상에 앉아 깍지 낀 두 손에 머리를 기댔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대신 사과를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부회장이요?”

“네, 어찌 보면 동생의 잘못은 형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제가 녀석을 잘못 가르친 탓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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