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0화 (150/200)

그러고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어, 엄마! 그만 해요. 갑자기 왜 이래.”

“아니, 그동안 여자 친구 하나 없어서 엄마가 걱정이 많았단다. 혹시 우리 아들이 그쪽 취향은 아닐까 하고 말야.”

“그쪽 취향?”

“아무튼 이제 됐다. 됐어. 엄마는 너무 행복하다. 아들이 처음 소개한 여자 친구가 재벌가 딸이라니. 이게 진짜 무슨 일이니!”

“엄마 실망이네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지금 사람을 돈으로 판단하는 거예요? 단지 세연 씨가 재벌가 여식이라서 좋다니.”

“설마 그럴 리가 있겠니. 말하는 걸 보니 가정교육도 잘 받은 것 같고, 미모는 또 어떠니. 엄마는 저렇게 아름다운 아가씨를 TV에서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리고?”

“우리 아들이 골랐잖니. 그럼 됐다. 그거면 충분하지 뭘.”

“엄마…….”

* * *

북악 스카이웨이.

꼬불꼬불 굽이진 좁은 길과 급경사로 이뤄진 이곳은 서울의 대표적인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였다.

스카이웨이를 지나 팔각정에 도착한 우리는 한눈에 들어오는 평창동의 전경을 즐겼다.

“저기에 저희 집이랑 세진 씨 집이 보이네요.”

“그러네요. 여기서 보니까 엄청 작게 보이는데요. 갑자기 부모님이 찾아와서 놀랐죠? 불편하진 않았나요?”

“불편은요. 원래 제주도 부모님 집에 찾아가기로 했었던 거였잖아요? 오히려 익숙한 장소에서 인사를 드릴 수 있어서 편했어요.”

“좋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요. 저희 부모님 어땠나요?”

내 말에 강세연이 잠시 고민을 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저 세진 씨 어머니 마음에 든 거 같아요. 세진 씨 생각은 어때요?”

“하하.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아버지는 음. 솔직히 이야기하면 세진 씨랑 별로 닮지 않아서 놀랐어요. 경상도 사투리를 쓰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맞아요. 제 친부는 아니세요. 경상도 분 맞으시고요.”

“네? 친부가 아니라고요?”

“어머니가 재혼하셨거든요. 제 친아버지는 제가 어릴 적에 돌아가셨어요.”

“이런. 죄송해요. 저 그런 것도 모르고.”

“뭘요. 제가 말 안 하면 당연히 모르죠. 신경 쓰지 마세요.”

“고마워요. 두 분 모두 아주 행복해 보이시고 인상이 좋으셨어요. 저를 예뻐해 주시는 것 같았고요.”

“네, 우리 더운데 카페로 들어갈까요?”

나는 강세연과 함께 팔각정을 떠나 지하에 위치한 카페로 이동했다.

7월이라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는 등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그녀는 내가 건넨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기분 좋게 마시고는 물었다.

“신동석 본부장님은 어떠세요?”

“내부에서 무척 만족도가 높습니다. 능력 있고 인품도 뛰어나시고요.”

“다행이다. 제가 추천해 드린 분이라서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했거든요.”

그녀의 말처럼 신동석은 강세연의 추천으로 지원한 사람이었다.

Never의 디지털콘텐츠 사업을 총괄하던 그는 처음에는 오프라인의 채용 공고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그랬다.

‘그러다 강세연의 추천으로 마음을 바꾸었다고 그랬지. 확실히 디지털이나 플랫폼 쪽은 아직 Never보다 부족한 게 사실이야. 그의 합류는 큰 도움이 될 거야.’

나는 진심으로 강세연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덕분에 오프라인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영상뿐만 아니라 플랫폼 사업에서도 신동석 본부장님의 공헌이 큽니다.”

“네, Never에서도 다양한 부서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신 분이니까 인사이트가 많으실 거예요.”

“그런데 신동석 본부장은 어떻게 알게 되신 거예요? 세연 씨랑은 나이 차가 제법 있잖아요?”

신동석은 올해로 50살이 되었다.

강세연과는 21살이나 차이가 났다.

“제가 취미로 와인 동호회를 하고 있거든요. 거기서 만났어요.”

“와인 동호회요? 세연 씨 와인 좋아하세요?”

“네, 즐겨 마시는 편이에요.”

“그렇군요. 혹시 요즘도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어요?”

“음. 아뇨 요즘은 바빠서 못 나가고 있어요. 그런데 왜요? 혹시.”

강세연은 씩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짐짓 모르는 척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아뇨.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헤헤. 귀염둥이.”

“네?”

“귀엽다고요, 세진 씨.”

“흠흠. 저 스물여덟 먹은 성인입니다만.”

“왜요? 성인이면 귀여우면 안 되나요? 일로 와요.”

그녀는 갑자기 나를 꼭 껴안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머리에 닿아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이런 것도 딱히 나쁘진 않군.’

주변의 사람들이 부러운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신기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급히 강세연으로부터 몸을 빼서 전화를 받았다.

강세연이 아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세진입니다.”

-우 대표님!!!

최루리였다.

“아니, 최 지사장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거기 새벽 아니에요?”

-네. 지금 오전 8시고요 일어나자마자 전화 드리는 거예요.

“무슨 일 있어요?”

-물론이죠. 아주아주 많아요.

“무슨 일인데요?”

나는 긴장한 목소리로 최루리의 답을 기다렸다.

강세연도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한 듯 내 쪽으로 몸을 당겼다.

-저 너무 외로워요! 힝. 여긴 대표님도 없고 지혜도 없고 박 본부장님도 없고요. 아무도 없어서 너무 외로워요.

혹시라도 무슨 사고를 당한 건 아닌지 걱정했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휴. 전 또 뭐라고요.”

-네? 저는 진심으로 드리는 말이에요! 정말 너무 외로워서 미쳐 버릴 지경이에요.

“프랑스에 가신 지 보름도 안 되었는데요?”

-그러게요. 어쩌죠. 저 외국에서 사는 건 자신 있었는데 그런 체질이 아닌가 봐요.

최루리의 목소리에선 진심으로 걱정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어떡한다. 몸이 아프거나 무슨 사고가 있어서 불만족스러운 게 아니라 외로워서 견딜 수 없다는 건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내가 고민을 하며 허공을 응시하자 강세연이 갑자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네?”

“핸드폰 좀 줘 보세요. 회사 분이시죠?”

“아, 네. 최루리 지사장이라고 지금 프랑스 파리에 나가 계신 분이에요.”

“제가 이야기해 볼게요.”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내 손에서 스마트폰을 가지고 가더니 최루리와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최 지사장님. 저 그때 뵈었던 강세연이에요.”

-강 관장님? 지금 대표님하고 함께 계신 거예요? 어떡해! 두 분이서 데이트 중이셨는데 제가 방해했나 보네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본의 아니게 옆에서 살짝 듣게 되었는데요. 외로우시다고요?”

-맞아요. 힝. 저 너무 외로워요. 불어는 할 수 있으니까 사람들하고 말은 통하는데 저는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었나 봐요. 이들하고는 마음이 잘 통하지 않아요.

“이해해요. 저도 그랬거든요.”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도 대학원을 프랑스에서 나와서 파리에서는 2년 있었거든요. 그래서 지금 최 지사장님 심정을 잘 알고 있어요.”

-와. 파리 선배셨구나! 관장님은 이 외로움을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음. 거기 물랑루주라고 유명한 클럽이 하나 있거든요. 거기 가시면 외로울 틈이 없을 거예요.”

-클럽!! 와 거긴 생각도 못 했어요! 이왕 외국에 나온 거 즐겨야겠어요! 당장 알아봐야겠다. 우 대표님에게도 안부 전해 주세요~

최루리는 나와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곧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강세연을 쳐다보았다.

강세연이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왜요?”

“세연 씨 클럽 다녔어요?”

“가끔요.”

“와인 동호회에 클럽에. 보기와는 많이 다르시네요.”

“그래도 헤픈 사람은 아니었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에만 집중했어요.”

“그래요?”

내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노려보자 강세연이 내게 꼭 안기며 말했다.

“세진 씨 너무 귀여운 거 아녜요? 걱정 마요. 전 당신뿐이니까.”

# 6장 후보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는 8월의 어느 날.

해외에 새로운 지사를 설립하고 지사장들이 배치된 지도 1달이 지났다.

1달 동안의 성과에 대해 보고하는 자리가 마련된 가운데 회의실에서는 컨퍼런스콜이 진행되었다.

지역마다 현지 시각이 달랐기 때문에 컨퍼런스콜은 한국 시각으로 오후 9시에 개최되었다.

책상 가운데에 설치된 전화기에서 박창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 오랜만입니다.

-와! 박 지사장님! 오랜만이에요. 잘 계시죠?

-오. 최 지사장님이네요. 저는 잘 지냅니다. 프랑스 날씨는 어떻습니까? 독일은 엄청 덥네요.

-프랑스도 똑같아요. 원래 이런 동네가 아니라는데 올해는 기후 이상으로 폭염이 이어지네요. 지혜야, 넌 어때? 거긴 아침인가?

최루리가 홍지혜의 안부를 묻자 홍지혜가 웃으며 답했다.

-여긴 서울하고 비슷해요. 그래도 습도가 낮아서 훨씬 더 쾌적합니다.

-좋겠네. 그나저나 다들 고생이십니다. 한국은 지금 저녁 9시죠?

“네. 최 지사장님. 뉴욕 시각에 맞추다 보니 이때 말고는 시간이 없더군요.”

한국 시각으로 오후 9시면.

유럽은 한낮이었고, 베트남은 오후 7시.

그리고 뉴욕은 오전 8시였다.

전화기 너머 홍지혜가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다들 늦은 시간까지 고생이세요.

“뭘요. 덕분에 맛있는 저녁도 다 함께 먹고 들어왔습니다. 말 나온 김에 새로 부임하신 본부장님들하고 인사하시죠.”

나는 신임 본부장들과 해외 지사장들을 인사시켰다.

모두 간단히 자신을 소개하며 통성명을 했다.

“여러분들이 한국을 떠난 지도 벌서 1달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각자 준비하신 일들이 많으신 걸로 압니다. 그럼 우선 뉴욕부터 들어 볼까요?”

-네, 미국 지사는 현재 총 15명의 현지 인력을 채용하였고, AP통신과 제휴하여 통신 기사를 받고 있습니다.

“기사도 작성하고 계신 거죠?”

-네, 대표님. 현재 대략 하루에 20건 정도의 기사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기사량보다는 질이 중요하니까 심층 보도 기사에 무게를 두시고요. 센터 일보에서 온 100여 명의 인력이 데이터랩에 있으니 인터랙티브 기사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그쪽으로 연락해 주세요.”

각자 10여 분에 걸쳐 현재의 성과를 보고하는 자리가 이어졌다.

나는 문득 궁금증이 생겨 최루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최 지사장님은 요즘 어떠세요? 외로운 건 많이 해결되었나요?”

-하하. 물론이죠. 강 관장님 만세입니다! 매일매일 파리의 클럽 라이프를 즐기고 있어요.

“그거 다행이군요. 혹시 애인이라도 생기셨나요?”

-아직은 없지만, 조만간 생기지 않을까요? 번호 따 간 애들은 많은데 어째 연락이 없네요.

최루리의 말에 박창후가 흠칫 놀라며 물었다.

-헉! 최 지사장님! 클럽 다니세요?

-어머. 박 지사장님. 그건 왜요? 저 솔론데 클럽 다니면 안 되나요?

-아니, 나이도 생각하셔야죠. 40대이지 않으십니까?

-흥! 그렇게 나이 따지는 건 한국 사람들만 그렇거든요? 박 지사장님은 유럽에 가서도 그런 마인드면 정말 곤란합니다~

오랜만에 박창후와 최루리의 만담을 들으니 정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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