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4화 (154/200)

모든 매체가 이를 주요 뉴스로 다루며 이에 대한 분석으로 분주했다.

댓글 역시 폭발적이었다.

<북한 대빵이 남침설 인정했네. 보통 여장부가 아닌 듯. 자기 안방도 아니고 적의 심장부에서>

<당연한 사실을 참 늦게야 인정한다. 그게 뭐 대수라고 이 난리냐>

<나 오늘부터 설송 누나 팬 될 듯. 걸크러시 쩐다! ♥♥♥>

김설송의 6.25 전쟁 남침설 인정과 UN 기념공원 및 현충원 참배는 엄청난 이슈였다.

이날 현충원 참배를 마치고 이어진 남북정상회담에서도 여러 가지 중요한 이야기가 나왔으나 이 이슈에 묻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모두가 김설송의 발언을 반긴 것은 아니었다.

자기네들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한 안태민은 고려 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거친 언사로 이를 비난했다.

“일종의 쇼에 불과합니다. 남침 인정은 당연한 사실에 대한 뒤늦은 인정일 뿐이고, 참배한다고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나요? 정말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사과한다면 세습하면서 체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북한 주민들에게 목을 내놔야겠죠. 이런 범죄자를 서울로 받아들인 정부와 백철웅 장관은 국민들에게 당장 사과해야 합니다. 감히 현충원에 적의 수장을 들여요? 어이가 없습니다.”

* * *

김설송의 방한 3일째.

나는 김설송의 초청으로 그녀가 머무는 홍은동의 그랜드 힐튼 호텔에 안재영과 함께 방문했다.

“안 지사장님. 저녁을 함께 먹자는 제안이었죠? 혹시 다른 이야기 들은 거 있습니까?”

“아뇨. 그냥 식사 자리입니다. 특별히 외부에서 요리사를 초대했다더군요.”

“외부에서요?”

“하하. 모르셨어요? 을지로에 있는 유명한 평양냉면집 주방장을 초청했다던데.”

안재영의 말처럼 호텔에 도착하자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서울식 평양냉면이었다.

나와 안재영이 평소 즐겨 먹던 을지로의 오래된 평양냉면 말이다.

김설송이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남조선의 평양냉면은 무슨 맛일지 궁금해서 내 한번 불러봤습네다.”

“이 집은 누구한테 듣고 추천을 받으셨습니까?”

“백철웅 장관한테 들었습네다. 강력 추천을 하더군요.”

우리는 앞에 놓인 평양냉면을 시식하기 시작했다.

슴슴한 맛이 일품이었다.

김설송은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는 육수를 음미했다.

“호호. 서울의 평양냉면은 맛이 많이 다릅네다? 면은 툭툭 끊어지고, 육수는 맛이 약한 것 같으면서도 진하구만요.”

“네, 위원장님. 옥류관에서 먹는 평양냉면은 동치미 맛이 강하고 면발은 질기더군요.”

“그러게나 말입네다. 이렇게나 다른 맛일 줄은 상상도 못 했습네다.”

옆에서 안재영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북한에서는 남한보다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우니까 말이죠. 고기나 메밀 성분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그것참 슬픈 이야깁네다. 물자가 없어서 원조가 원조답지 못하다니.”

김설송은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다소 슬픈 얼굴을 보였다.

나는 그녀를 위로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 경제 교류를 가속할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조만간 북한의 상황도 좋아질 것입니다. 모두 김 위원장님의 노력 덕분에 말이죠.”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네다. 그런데 남조선에서는 백철웅 장관이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지요?”

“네, 맞습니다. 함께 일을 해 보시니 어떻습니까?”

“전임인 양반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입네다. 과연 오프라인의 창업자구나, 싶었디요.”

“좋은 분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분이고요.”

“그런데 안태민이라는 작자는 도대체 뭐 하는 놈입네까? 입이 아주 걸죽하더만.”

김설송이 안태민을 입에 올리더니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도 그럴 게 안태민의 발언은 시간이 지날수록 거칠어졌다.

나는 그녀를 진정시키고 말했다.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왜 그런 사람이 여당의 대선 후보가 되었는지 남한에서도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죠.”

“흥! 일부에선 그를 추종하는 자들도 많다고 들었습네다.”

“어디든 극에 치우친 자들은 있게 마련이니까요.”

“설마하니 그런 작자가 남조선의 대통령이 되지는 않겠습네다만 아주 불쾌합네다. 저를 손님이 아니라 무슨 도적놈 정도로 이야기를 하던데.”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세요.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입니다. 혹시라도 김 위원장님이 거기에 대꾸한다면 더 신이 나서 공격을 할 겁니다.”

“나더러 그런 개소리를 듣고는 그냥 지나치란 말입네까?!”

“네. 대응하면 오히려 안태민에게 더 도움을 주시게 됩니다. 그걸 바라고 저렇게 발악하는 거고요.”

내 말에 김설송은 한쪽 손으로 이마를 어루만졌다.

“남조선 사회는 알다가도 모르겠습네다. 아주 발달한 것 같으면서도 또 어떤 점은 아주 퇴행적이고 말입네다.”

“그게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민주주의 사회일 테니까요.”

“하아. 모르겠습네다. 모르갔서. 민주주의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갔단 말입네다.”

우리는 남은 평양냉면을 모두 해치우고는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나는 안재영과 함께 호텔을 나오면서 그에게 조용히 물었다.

“모레 떠나?”

“응? 사적인 질문?”

“사적이기도 하고 공적이기도 하고.”

“아무튼 먼저 말 놓았으니 나도 놓는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말을 낮췄다.

“김설송 떠날 때 같이 평양에 올라가. 공식적으로는 북측 사절단 소속이니까.”

“그렇구나. 그럼 안태민에 대해 조사를 하려면 시간이 그리 많진 않겠네?”

“왜? 안태민 파 보려고?”

“네가 이야기한 대학 선배 건도 그렇고 뭔가 구린 구석이 많은 것 같아서.”

“많지. 그런데 세진아.”

“응?”

“그렇게 문제가 많은데도 여당의 대선 후보로까지 오른 사람이야. 무슨 뜻인지 알지?”

“보통 놈이 아니다?”

“그렇지. 집안에서 무슨 장학재단을 운영하는데 거기 도움을 받은 학생들이 커서는 국회의원이고 변호사고 의사고 특권 계층에 많다더라.”

“너 이번에 평양에는 좀 늦게 가면 안 되냐?”

“북측 사절단이라서 안 된다니까.”

“사건 파헤치는 데는 네가 제일인데.”

“하하. 그걸 이제 알았냐? 그런 인재를 북한에 보내놓고 이제 후회하는 거냐?”

“됐고. 너 가고 나면 누가 그걸 맡는 게 좋을까?”

내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안재영이 한 사람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to be continued

# 1장 후보

서울에서의 공식 일정을 모두 마친 김설송은 난데없이 남한 사람들의 일상을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남조선에서의 마지막 밤입네다. 청와대와 호텔 말고 진짜 서울의 밤거리를 보고 싶습네다.”

예정에 없던 김설송의 갑작스러운 요청은 많은 이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갑작스러운 것도 갑작스러운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신변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웠다.

여당 대선 후보인 안태민은 연일 김설송 때리기에 여념이 없었고, 이에 동조한 일부 극우 세력들은 김설송을 암살하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할 정도였다.

“김 위원장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건 어렵습니다.”

“아니, 백 장관님. 남조선은 전 세계에서 가장 치안이 좋은 안전한 국가 아니였습네까? 왜 안 된다는 겝네까?”

“북한 지도자의 첫 서울 방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김 위원장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개중에는 나쁜 마음을 먹고 있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걸 막고 저를 보호하는 게 백 장관님의 임무 아닙네까?”

“그러니까 안전하게 호텔에 계시라는 말입니다.”

백철웅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김설송은 나를 보고는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

“우세진 동무도 가만히 있지만 말고 뭐라도 말 좀 하라우. 내가 단독 인터뷰도 해 줬는데 그렇게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기만 할 겁네까?”

나는 곤란한 얼굴을 하고는 웃었다.

“단독 인터뷰는 무척 감사합니다만 백 장관님 말이 맞습니다. 내일이면 북으로 돌아가실 텐데 조심하시는 게 좋겠죠.”

“흥. 남조선 사내들을 모두 계집아이처럼 겁이 많구만요. 내래 아무 생각 없이 서울의 밤거리를 보겠다는 게 아닙네다!”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김설송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속에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위성으로 한반도의 밤을 찍으면 어떤 사진이 나오는지 알고들 계십네까?”

“네? 그게 무슨?”

김설송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무엇인가를 검색하더니 내게 보여 주었다.

그녀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한반도의 야간 위성사진이 보였다.

남한과 중국의 만주 지방이 환하게 빛나는 가운데 북한 지역은 마치 중국과 남한 사이에 바다라도 놓여 있는 것처럼.

암흑천지였다.

평양만이 아주 작은 별처럼 미약한 빛을 내뿜고 있을 뿐.

“그게 지금 북조선의 현실입네다.”

“그렇군요. 그런데 이게 왜?”

“내 이 두 눈으로 남조선의 밤거리를 보고 싶었습네다! 그래야 우리 북조선 주민들에게도 남조선의 밤을 알려 줄 수 있지 않겠습네까. 이들은 이렇게 잘 지낸다고. 이렇게 산다고 말입네다.”

김설송이 말을 마치자 장내는 절로 숙연해졌다.

백철웅은 이마를 어루만지더니 돌연 고개를 저었다.

“알겠습니다.”

“네? 장관님. 위험합니다.”

나와 안재영이 동시에 소리쳤다.

하지만 백철웅은 이미 마음을 굳힌 듯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는 심각한 얼굴로 몇 분의 통화를 하더니 전화를 끊고 웃음을 보였다.

“VIP께서도 승인하셨습니다. 가시죠.”

* * *

명동의 밤거리.

수많은 이들이 형형색색의 네온사인 아래를 지나며 북적거렸다.

보안을 위해 선글라스에 모자를 깊게 눌러쓴 김설송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야. 여기가 밤인지 낮인지 모르겠습네다. 사람들은 또 왜 이리 많습네까?”

김설송의 외침에 보디가드로 따라나선 김금철이 뒤를 돌아보더니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을 입에다 가져다 댔다.

백철웅은 경호원이 많이 붙을 경우 오히려 경호가 더 어렵다고 판단.

나와 백철웅 그리고 김설송과 안재영 이렇게 넷이 같이 걸어가는 가운데.

바로 앞에는 북측 요원으로 김금철을.

그리고 남측 요원 수십 명을 우리와 떨어진 채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따르도록 시켰다.

“진짜 신세계가 따로 없구만요. 놀랍습네다. 놀라워.”

“어렸을 적 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하. 자그마한 섬나라 몰타였습네다. 서울과는 비교하기 어렵습네다.”

명동거리를 두루 살펴본 우리는 을지로입구역을 지나 청계천으로 이동했다.

마침 청계천에는 더위를 피해 물가로 모여든 시민들이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김설송은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두 손을 마주 잡고 청계천을 걷는 젊은 커플을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아름답습네다. 청춘이구만요.”

“김 위원장께서는 연애 결혼하셨습니까?”

“저요? 하하. 아닙네다. 아버지가 이어 주신 인연입네다. 연애는 무슨.”

“그렇군요. 북한은 연애 결혼이 드문가요?”

“연애 따로, 결혼 따로 하는 편이디요. 연애는 자본주의의 퇴폐문화라고 해서 중매 결혼을 많이 합네다. 요즘에는 연애 결혼이 늘어나는 추세이기는 합네다만.”

김설송은 한동안 커플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안재영을 향해 물었다.

“그런디 안재영 기자는 서울에 여자 친구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네까?”

“네, 서울에 있습니다.”

“고저 외롭겠습네다. 자주 봐야 결혼도 할 텐데.”

“하하. 괜찮습니다. 배려해 주신 덕분에 영상통화도 자주 할 수 있으니까요. 아 맞다. 저희 우 대표님도 최근 여자 친구가 생기셨습니다.”

“이크! 우세진 동무. 고거이 사실입네까?”

김설송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다들 청춘입네다, 청춘. 그러고 보니 남조선의 젊은이들은 화면반주음악실을 자주 간다면디요?”

“화면반주음악실이요? 아…… 노래방?”

“맞습네다. 남조선에서는 노래방이라고 하디요? 이 근처에도 노래방이 있습네까?”

“네. 위원장님. 노래방이야 어디를 가든 흔하게 있습니다.”

“그래요? 저기 장관님. 내래 하나만 더 부탁해도 되겠습네까?”

“말씀하시죠.”

* * *

휘황찬란한 조명이 번쩍거리는 가운데.

안재영이 말춤을 추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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