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대한민국의 대중가요 중 최초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싸이의 ‘강남스타일’이었다.
강남스타일은 유튜브에서 2달 만에 2억 뷰를 돌파하는 등 인기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안재영은 신나게 말춤을 추고는 어디론가 마이크를 건넸다.
그러자 늘씬한 미녀가 마이크를 받더니 후렴구를 이어 부르는 게 아닌가.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
이슬아였다.
그리고 내 옆에는.
강세연이 바짝 붙어 앉아서는 흥겹게 박수를 보냈다.
나는 그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갑작스러운 부탁이었는데 어울려줘서 고마워요.”
“뭘요. 이런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들어줘야죠. 저야말로 영광인데요? 북한 최고지도자와 함께 노래방이라니!”
강세연이 아름다운 미소를 보였다.
김설송은 노래방에 들어오자 나와 안재영에게 각자 여자 친구를 부르라며 억지를 부렸다.
나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안재영은 곧바로 이슬아에게 전화를 걸더니 그녀를 노래방으로 불러냈다.
김설송은 물론이고.
안재영과 이슬아까지 부탁하니 나 역시 강세연을 노래방으로 불러내야만 했다.
김설송은 기분이 좋은 듯 큰소리로 외쳤다.
“하하. 아주 즐겁습네다. 두 분 여자 친구가 이렇게나 미인일 줄이야! 남남북녀라는 말도 예전 말인가 봅네다. 고럼 이번에는 내래 한 곡조 뽑아 보갔습네다.”
그녀가 노래를 입력하자 이내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였다.
‘김정일 위원장의 애창곡이란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남한 노래가 북한에서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은 몰랐군.’
나는 혀를 내두르며 김설송이 부르는 노래를 끝까지 들었다.
김설송은 노래를 잘 부르는 편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창법을 살려 맛깔나게 노래를 불렀다.
1시간여 동안 즐거운 시간이 이어졌다.
노래방의 기계는 이제 5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아쉬웠지만 김설송은 내일 북한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이었다.
우리는 따로 연장을 신청하지 않은 채 마지막으로 백철웅의 노래를 감상했다.
백철웅이 노래를 끝내자 기계는 정확히 1분을 가리켰다.
백철웅이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쯤하고 일어날까요?”
“아닙네다. 아직 안 부른 사람이 있지 않습네까.”
김설송을 고개를 젓고는 김금철을 가리켰다.
김금철은 시종일관 무게를 잡으며 입구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도대체 자신이 왜 이런 곳에 와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채.
김설송의 지적에 김금철의 송충이 같은 눈썹이 움찔거렸다.
“일 없습네다.”
“남조선에 왔으면 남조선의 법칙을 따라야 하는 법입네다. 시간 없으니 얼른 선곡하시라우!”
김설송의 재촉에 김금철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서둘러 노래방 책을 뒤적이더니.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의외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안재욱의 ‘친구’였다.
* * *
김설송은 거듭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북측 사절단과 함께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이국대와 함께 남북 협력을 위한 수많은 초석을 다졌다.
오죽했으면 곧 통일이 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
그러나 안태민의 공격은 날로 더해졌다.
<안태민 후보 “북한 실태 알아야……. 김설송 방한은 정치쇼”>
<정부와 각 세우는 국일당……. “친북은 우리 색깔 아냐”>
<남북정상회담 브레이크 걸리나..국일당 반대 목소리>
나는 주전영을 집무실로 불렀다.
“주 기자. 안 지사장에게는 이야기 들었죠?”
“네, 대표님. 안태민 후보와 관련해서 열심히 조사 중입니다.”
“뭣 좀 알아낸 게 있나요?”
“알아낸 건 많은데…….”
주전영은 곤란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더니 뒷머리를 긁었다.
“무슨 일이 있나요?”
“소문만 있고 실체적인 증거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여자 문제도 복잡하고 폭력, 위압, 사기 등 소문은 화려한데요.”
“그런데요?”
“막상 당사자를 찾으려니 다들 한국에 없어요.”
“한국에 없다는 말은 외국으로 떠났다는 뜻인가요?”
내 말에 주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다수가 갑자기 한국을 훌쩍 떠났어요. 연락도 안 되고요.”
“이상하네요. 그게 가능합니까?”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도 이상해서 계속 알아보는 중인데, 오히려 정보원들이 곤란해하고 있어요.”
“네?”
“그 이야기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고 합니다.”
“어떻게요?”
“뭣 때문에 이런 걸 묻느냐면서 화를 낸다거나 자기는 잘 모른다고 연락을 끊거나, 어느 언론사 기자가 물어보냐면서 추궁한다더군요.”
수상했다.
나는 가만히 턱을 쓰다듬고는 물었다.
“우리의 정체를 밝히지는 않았죠?”
“물론입니다. 다 믿을 만한 정보원들에게만 연락하고 있고요. 제가 오프라인 기자라는 건 절대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안태민이 오프라인을 보이콧하고 있는 이상 우리를 계속 주시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네, 대표님. 그런데 민주통일당에서는 위정동 위원이 대선 후보로 결정되었던데, 백철웅 장관님과의 단일화 이야기는 뭐 없나요?”
민주통일당은 김설송 방한 바로 다음 날 결선 투표를 통해 대선 후보를 확정하였다.
학자 출신의 위정동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김설송이 워낙 파격 행보를 보인 탓에 위정동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위정동 측에서 단일화를 꺼린다고 하더군요.”
“네? 지금 추세라면 필패일 텐데요?”
“치열한 경선 끝에 대선 후보가 되었으니 그 자리를 곧바로 양보하기에는 아쉬움이 크겠죠.”
“바보 같은 짓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백 장관님하고 단일화를 해서 세를 모아야죠. 까닥 잘못했다가는 안태민이 다음 대통령이 될지도 몰라요!”
주전영이 절규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안태민이 대통령이 될 바에는 이국대가 한 번 더 대통령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나는 머리를 감싸 쥐고 있는 주전영을 향해 새로운 카드를 내밀었다.
“주 기자님. 혹시 미국에 갔다 올 생각은 없습니까?”
“미국이요?”
* * *
11월.
마당에 심은 감나무는 잎이 모두 떨어졌고 까치밥으로 남겨 둔 몇몇 감들만이 주황색을 넘어 벌겋게 익어가고 있었다.
내가 멍하니 감들을 쳐다보고 있는 사이.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꼭 껴안았다.
강세연이었다.
“아침부터 뭘 그렇게 보고 있어요?”
“일어났어요? 마당에 심은 감나무요. 어릴 때 심었는데 벌써 저렇게 나이가 들었네요.”
“직접 심은 거예요?”
“네, 아빠랑 엄마랑 셋이 같이.”
“세진 씨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가만히 생각을 하고는 답했다.
“좋은 사람이었기도, 나쁜 사람이었기도.”
“선문답도 아니고 아리송한 대답이네요.”
“실제로 그러니까요. 좋은 사람이었지만 죽기 전에는 별로였거든요.”
“아버지한테 서운한 게 많았나 보죠?”
“서운하다기보다는 싫었죠. 엄마를 때렸으니까.”
“싫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면 미안해요.”
“아녜요.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저 나는 절대로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죠.”
강세연은 내 가슴을 더욱 힘주어 안았다.
“세진 씨는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을 거예요.”
나는 뒤로 돌아 그녀에게 키스했다.
그러고는.
“어멋! 뭐 하는 거예욧!”
나는 그녀를 공주님 안듯 양팔로 번쩍 들어서 집 안 소파로 이동했다.
강세연이 싫지 않은 듯 입을 다물고는 얼굴을 붉혔다.
그녀를 소파 위에 내려놓고 다시 키스하려는 사이.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스마트폰이 눈치도 없이 울렸다.
강세연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스마트폰을 흘깃 쳐다보았다.
국제본부장인 제임스 리였다.
“이 시간에 무슨 일입니까?”
-네, 대표님. 이른 아침 죄송합니다. 미국 대선 관련해서 아무래도 오바마가 재선할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무언가 변화가 있나요?”
-네, 지금 데이터랩에서 분석한 자료와 외신들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오바마의 승리를 점치는 곳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밤새 모니터링한다고 고생이 많습니다. 조금 이따 뵙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는 강세연의 옆에 앉았다.
강세연이 내게 얼굴을 기대고는 물었다.
“오바마가 당선된대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별일 없으면 오바마가 될 겁니다.”
“왜요? 지지율은 오바마와 롬니가 둘 다 박빙이었잖아요?”
“감이에요.”
“후훗. 감나무를 직접 심었다더니 감도 남다른가 보죠?”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녀를 꼭 껴안았다.
* * *
그날 오후 1시.
오프라인은 국내는 물론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그 어떤 언론사보다 가장 빠르게 오바마의 승리를 선언했다.
유튜브로 미국 대통령 선거를 중계하던 홍지혜는 밝은 표정으로 힘을 주어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이제 그는 4년 더 백악관의 주인으로 있게 되었습니다.”
데이터랩의 실시간 분석과 AI 기술이 더해져 오바마의 재선을 빠르게 예측한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백악관과 미국 언론들도.
차츰 시간이 지나자.
오프라인의 보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대표 텔레비전 방송사인 CNN도 오프라인의 보도를 인용하며 오바마의 승리를 밝혔다.
이덕오가 뿌듯한 표정을 보이며 득의만만하게 말했다.
“하하. 보셨죠? CNN이 오프라인 보도를 인용하네요. 무려 15분이나 빠른 예측입니다.”
“기술이라는 게 대단하군요. 저는 아직도 원리를 모르겠습니다.”
홍보본부장인 조갑환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혀를 내두르자 이덕오가 손가락으로 브이를 펼쳤다.
“앞으로 AI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 무궁무진합니다. 오프라인은 그 어떤 언론사, 아니 기업들보다 앞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요. 대표님 말씀처럼 세계 정복도 무리가 아녜요!”
“이 이사님. 저는 한 번도 세계 정복이라는 말을 써 본 적이 없습니다만.”
“세계 최고 IT 플랫폼 회사라는 말이나 세계 정복이나 같은 말이죠, 뭐.”
“조용히! 오바마가 지지자들 앞에서 재선 소감을 밝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