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진짜 신의 한 수 아닙니까?
“뭐가?”
-AI 기사요! 어차피 백 회장님 당선이 유력한 상황에서 AI로 기사를 내보낸 건 정말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방송사들 보세요. 돈이랑 시간 엄청나게 들이부었을 텐데 시작하자마자 당선이 확정적이니 힘이 턱턱 빠질 겁니다. 하하. 우리는 이렇게 집에서 쉬는데 말이죠.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오류나 이상 증세는 없는지 잘 살펴봐.”
-물론입니다. 마르코랑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이덕오는 기분이 좋은지 평소보다 목소리 톤이 높아져 있는 상태였다.
나는 말을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리고 그에게 말했다.
“덕오야.”
-네, 형님.
“이번 대선 끝나면 너를 상무로 진급시킬 생각이다.”
-네? 사, 상무요?!
“그래. 네가 열심히 잘해 주고 있고, 또 회사에 큰 성과를 올렸으니까.”
-아니, 그래도 상무는 좀 갑작스러운데요?
“갑작은 무슨. 지금 회사에 내 밑으로 이사는 너 한 사람뿐이잖아. 너 상무 진급시키고, 다른 본부장들은 이사로 진급시키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회사에 인원도 많은데 임원이 너 혼자라는 건 좀 아닌 거 같거든.”
-하긴. 그렇겠네요. 지금 글로벌 지사까지 합치면 전 직원이 500명이 넘는데 임원이 저 혼자인 건 좀 이상하네요. 그런데 형님.
“응.”
-그럼 지금까지 형님이 혼자서 그 많은 인원을 다 이끈 겁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저는 기술 이사니까 사실 경영에 별 도움은 안 되었을 것이고, 형님 혼자서 오프라인을 이끌었다는 말이잖아요?
“별 이상한 소리를 다 한다. 너랑 다른 본부장 그리고 지사장들이 있었으니까 가능했던 거지. 헛소리 그만하고 이만 끊는다.”
* * *
대선 다음 날 오프라인은 온통 대선 이야기로 가득했다.
“어제 대선 너무 김빠지지 않았어? 출구조사에서 이미 백철웅 회장님이 압도적으로 유력하니까 개표 방송을 더 볼 생각이 안 들더라.”
“맞아. 나도 처음에 한 20분 보다가 채널 돌렸어. 그나저나 어제 AI 기사들 수준 높던걸? 긴장해야겠어.”
“그러게. 단순 분석 기사지만 마치 사람이 쓴 것처럼 느껴지더라고. 가만히 있으면 이제 기계한테 잡아먹힐지 모르겠어. 분발해야지!”
“그런데 백 회장님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는데 친정인 오프라인도 뭔가 혜택이 있지 않을까?”
“에이 설마. 우 대표님이 항상 공정을 강조하시잖아. 그건 아닐걸?”
“그런가? 그래도 백 회장님, 나중에 대통령 임기 끝나면 다시 오프라인으로 돌아오시겠지?”
“아닙니다.”
“아이고 깜짝이야!”
내가 모퉁이를 돌며 외치자 앞에서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던 직원들이 깜짝 놀라 뒷걸음쳤다.
“대, 대표님.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세요?”
“백 당선인은 나중에 대통령 임기가 끝나도 오프라인으로 절대 돌아오지 않으실 겁니다.”
“네?”
직원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을 껌뻑거렸다.
* * *
대선을 2주일 앞두고 방문한 백철웅 캠프.
그곳에서 나는 백철웅과 언론 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었다.
나는 우선 그에게 언론개혁이 무엇인지부터 물었다.
“후보자님이 생각하시는 언론 개혁이란 과연 무엇입니까?”
백철웅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답했다.
“한국의 언론 지형은 기울어진 운동장입니다. 이런 잘못된 지형을 바로잡는 게 바로 언론 개혁이라 생각합니다.”
“그 말은 지금까지 보수 언론이 더 힘이 세고 진보 언론은 힘이 약했다는 이야기로 해석해도 됩니까?”
“꼭 진보와 보수로 이분화시킬 필요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비슷하겠지요.”
“하지만 오프라인의 등장 이후 그런 말도 이제 옛말이 되었습니다. 오프라인은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념보다는 진실과 공정을 위해 최선을 다해 왔죠.”
“허허. 그렇지만 그런 곳은 오프라인 한 곳뿐이지 않습니까. 오프라인과 같이 정론직필하는 곳이 더 늘어나야겠죠.”
“저는 백 후보자님과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생각이 다르다고요?”
백철웅이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네, 분명 오프라인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한국 언론 지형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맞습니다. 그걸 부정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러면?”
“하지만 오프라인 설립 이후에는 많은 부분 달라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보수 언론이라고 예전만큼 더 영향력이 강대한 것도 아니고요.”
“이번에 보수 언론들이 안태민 후보의 나팔수를 자처하는 걸 우 대표도 직접 보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네?”
“각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념에 따라 해당 언론을 정론지라 여기지 않습니까. 그런 방식으로는 절대로 언론을 개혁할 수 없습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백철웅이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표현을 쓰실 만큼 언론을 이념이나 선악 구도에 따라 둘로 나누고 계십니다. 보수 언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찬가지라고요?”
“네, 자신이 밀어주는 후보에게 힘을 실어 준 것이죠. 결국 어느 쪽이든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는 주장입니다.”
“흐음.”
“게다가 저는 오프라인과 같은 매체가 더욱 늘어나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네? 그럼 한국 언론을 오프라인이 독점하겠다는 말입니까?!”
백철웅이 경악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뇨. 그동안 우리 사회가 군사독재를 벗어나기 위해 민주화에 몰입하였다면 앞으로의 과제는 그것과는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민주화가 과제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겁니까?”
“백 후보자님. 한국은 전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선진국입니다. 경제도, 문화도, 국력도 대단히 높죠. 우리 주변에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전 세계 최강국들이 몰려 있어서 우리 스스로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할 따름입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백철웅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방송사가 되었든 보수 매체가 되었든 과거처럼 자신들이 설정한 의제로 대중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어려워지겠죠. 이미 오프라인을 통해 백 후보자님 스스로도 느끼지 않으셨습니까.”
“그럼에도 방송사와 보수 매체의 영향력은 여전히 굳건합니다. 그들의 힘을 너무 낮춰 보는 거 아닙니까?”
“지금은 그렇죠.”
“지금은?”
“그러나 점점 달라질 겁니다. 이제 각 개인이 미디어가 되는 시대가 올 거예요. 유튜브와 SNS를 통해서 말입니다. 젊은 세대는 HBS나 고려 일보가 도대체 뭐 하는 회사인지 전혀 모를 정도가 될 겁니다.”
“하하. 농담이 심하십니다. 저 역시 앞으로 SNS를 통해 각 개인이 미디어가 되는 세상을 꿈꾸고 있지만 아직은 전통 매체의 힘이 굳건해요. 그들은 그림자 뒤에서 여론을 움직이고 있죠.”
백철웅은 원래 SNS의 힘을 믿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되고, 통일부 장관이 되고, 대통령 후보가 되면서 전통 매체의 영향력을 피부로 깨닫고는 마음이 달라진 듯 보였다.
기성세대일수록, 권력에 가까울수록 전통 매체의 힘은 강했으니까.
그러나 시대는 분명 뉴미디어로 나아가고 있었다.
‘올드미디어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그들이 변화를 거부하고 지금 이대로 과거에만 안주한다면 그들의 수명은 결코 길지 않을 것이다.’
오프라인의 대표로서 미디어 회사를 이끌면서 확실히 깨달은 부분이었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나는 두 손을 마주 잡고는 힘을 주어 말했다.
“오프라인이 언론을 독점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소수이더라도 자신의 취향과 관점을 다루는 그런 작은 매체들이 늘어나야 한다는 말이죠.”
“소수의 관점을 다루는 매체?”
“네, 그러니까 IT만을 전문으로 다루거나 IT 중에서도 제품 리뷰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그런 매체가 늘어나야 하겠죠. 벌써 그런 식으로 진행되고 있고요.”
“일부 동의합니다만 그런 방식의 영향력은 약하지 않습니까.”
백철웅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백 후보자님. 시대가 변하면서 이제 대중의 공통된 취향이나 관심사 같은 건 상상 속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각자가 자신의 취향과 관심에 따라 정보를 접하고 이야기를 나눌 겁니다. 그러니 모든 주제의 정보를 다 다루어서 영향력을 높이겠다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미션이죠.”
“흠. 알겠습니다. 그러나 오프라인은 그걸 해내지 않았습니까?”
“네, 하지만 제가 몇 번을 되새겨 보아도 오프라인은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좋은 분들을 만났고, 타이밍도 좋았고요.”
“하하. 그리고 미래를 읽을 수 있는 우 대표 같은 사람이 있었고?”
“흠흠. 저를 놀리는 건 그쯤 하시죠. 아무튼 저는 소수정예의 마이너 매체들이 훨씬 더 늘어나야 한다는 말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메이저 매체를 이념이나 선악에 따라 편을 나누는 것보다는요.”
“메이저 매체보다 마이너 매체가 늘어나야 한다라. 결국,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언론 개혁의 핵심이라는 말이로군요.”
“네, 정확합니다.”
백철웅은 한동안 말없이 조용히 생각하더니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조금 편협했던 것 같군요.”
“아닙니다. 백 후보자님처럼 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던 세대들에게는 민주화라는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다만.”
“다만?”
“시대가 바뀌었으니까요. 백 후보자님의 세대만이 아닌 모두를 아우르기 위해서는 시대가 바뀌었음을 인정해야겠죠.”
백철웅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 대표의 말이 백 번 천 번 맞습니다. 제가 아주 큰 우를 범했군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우는 뭘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백철웅은 내가 무엇을 물어볼지 궁금하다는 표정을 한 채 자신의 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언론인이 정계에 진출하는 것에 딱히 반감은 없습니다.”
“하하. 우 대표. 국회의원이 된 건 나 스스로였지만 통일부 장관이 된 건 우 대표 때문이 아니었소. 대선 후보도 그렇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저는 능력과 열정이 있는 사람이 정치인이 되는 게 옳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백 후보자님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언론인이 정계에 갔다가 나중에 다시 언론으로 돌아오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흠.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하는데, 정계와 지나치게 밀접해졌기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언론과 정치는 적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법입니다. 정언유착이 되면 언론이 정치를 견제하는 도구가 아닌 일종의 플레이어로 변질되지 않겠습니까.”
“이해합니다. 그래서 우 대표가 저한테 하고 싶은 말은 제가 나중에 정치인을 그만두더라도 오프라인으로 돌아와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철웅이 호탕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좋습니다. 내 약조하지요. 절대로 오프라인을 비롯한 언론으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혹시 불안하다면 서면으로라도 남길까요?”
“아니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하하. 이거 오프라인은 내가 만든 회사인데 이제 그곳으로는 다시 갈 수가 없게 생겼습니다. 괜히 서운한데요?”
“백 후보자님이 넓은 마음씨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오프라인 말고도 하실 일들이 많으실 테니까요.”
“농담입니다. 오늘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이지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 * *
백철웅은 62.25%라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 역대 최다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위는 소수 야당인 시민당의 추정란 후보가 21.78%의 득표율을 얻었고, 국일당의 안태민 후보는 10.03%의 득표율로 3위를 기록했다.
안태민은 대선 결과에 승복했지만, 오프라인을 상대로 낸 소송은 철회하지 않았다.
안태민이 제기한 대부분의 명예 훼손 소송은 법원에 의해 기각되었다.
그러나 그는 오프라인을 귀찮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소송을 걸었다.
때문에 법무팀은 매일 철야를 하는 등 격무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는 HBS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오프라인은 제가 간통을 저지르고 폭력을 일삼았다는 등 말도 안 되는 허위보도로 인해 제 명예를 크게 훼손시켰습니다. 이에 명예 훼손 관련 손해 배상 소송은 앞으로도 계속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 선동과 날조입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금 믿으시는 겁니까?!”
그의 이야기를 TV를 통해 바라보던 이덕오가 화를 내며 말했다.
“아니 저 녀석은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아직도 TV에 나와서 저런 근거 없는 이야기를 떠드는 거죠? 졌으면 조용히 찌그러져 있을 것이지!”
“찌그러져 있을 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범죄자라고요! 수사 기관은 도대체 뭘 하는 있는 거죠?”
이수빈이 TV 속 안태민을 가리키며 소리를 높이자 이철수가 쉽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안태민 일가의 후원을 입은 정치인이나 법조계 인사들이 많아서 저런 겁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나요? 증인 및 증거, 피해자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말이에요!”
“공소 시효가 지난 사건들이 많고, 피해자들의 국적이 바뀐 경우가 많아서 소송을 거는 걸 부담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이수빈의 질문에 이철수 대신 신동석이 답했다.
“피해자들은 과거 해외로 나가면서 한국 국적을 버리고 외국 국적을 취득한 상태입니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소송하려면 거주 문제도 그렇고, 절차 등에 있어서도 번거로운 게 사실이니까요.”
“정말 치밀하네요! 설마 그런 것까지 고려해서 피해자들을 외국에 보낸 걸까요?”
“그것까진 알 수 없지만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겠죠.”
일반적으로 대선에서 패한 후보자들은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패배의 아픔을 달래는 한편, 그동안 선거를 위해 매진하면서 지쳐 있던 심신에 여유를 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안태민은 패배한 다른 대선 후보들과는 다르게 계속해서 미디어에 얼굴을 비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