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유튜브에 신규 채널을 개설하고 개인 방송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내용은 오프라인에 대한 비난과 피해자에 대한 조롱이었다.
“오프라인에서 얼마를 받고 그런 기자 회견을 자처했는지 모르지만 여러분. 아시죠? 저거 다 쇼예요, 쇼. 저런 걸 기획하고 섭외하고, 자료를 뿌리는 세력이 따로 있다니까요. 피해자요? 제가 바로 피해자입니다!!”
대선으로 인지도를 높인 안태민은 수려한 외모와 자극적인 언변을 바탕으로 빠른 속도로 구독자 수를 늘렸다.
기본적으로 그를 욕하는 댓글이 많았지만 반대로 그를 지지하거나 응원하는 댓글도 만만치 않았다.
<안태민 님!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오프라인의 공작에 희생당하신 겁니다!>
<잘 생각해 봐. 오프라인 창업자인 백철웅은 무명의 기자였는데, 갑자기 종로에서 국회의원이 되더니 통일부 장관이 되고 심지어 대통령이 되었어!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야? 음모가 있는 듯>
<대선 불복해야 합니다! 대선도 조작된 게 분명해요! 60%가 넘는 국민이 백철웅을 뽑았다고? 제 주변의 아무도 백철웅을 뽑지 않았는데?>
<백철웅과 우세진은 북한의 스파이가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이렇게 두각을 드러낼 수 없지. 안태민 후보님! 우리에게 정의를 보여 주십쇼! 응원합니다!>
이철수는 그러한 댓글이 가득 적혀 있는 문서를 가져와 내게 건넸다.
그는 다소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이런 의견도 있습니다. 오히려 점점 세가 불어나고 있고요.”
“그냥 둬서는 안 되겠군요. 거짓이 거짓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의 고발 기사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역으로 저희에게 소송을 걸고 유튜브 방송을 통해 공격을 하고 있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빨리 대응할 방법을 찾아야겠죠.”
“우리나라에 저런 미친 사이코가 존재한다는 게 참 놀랍습니다. 아니 며칠 전까지는 한 나라의 대선 후보였는데 말입니다!”
“그 정도로 미쳐 있으니 대선 후보까지 간 게 아니었겠습니까. 아무튼 빨리 수를 찾으세요. 이대로 있다가는 단순히 오프라인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 전체가 저 거짓말쟁이 한 명 때문에 사달이 나겠습니다.”
그러나 안태민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이를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하던 중.
의외의 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 2장 반격
안태민의 계속된 소송과 근거 없는 비방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무렵.
똑똑.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난 오후 9시 45분경.
누군가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홍보본부장 조갑환이었다.
나는 그에게 편히 앉으라 말한 뒤 늦은 시각에 나를 찾은 이유를 물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입니까?”
“미꾸라지 한 마리 때문에 고민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휴. 그렇습니다. 뭐 이런 거머리 같은 녀석이 다 있나 싶네요. 한때 여당의 대선 후보였다는 자가 지금 하는 짓을 보면 망나니가 따로 없습니다.”
“동감합니다. 오프라인을 박살 내겠다는 신념 하나로 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한테 할 말이 있나요?”
“네, 안태민과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안태민과 관련되어 할 말이 있다는 말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갑환이 앉아 있던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뭐 좋은 의견이라도 있습니까?”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분명 도움이 되실 겁니다.”
조갑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 안에서 금속 USB를 하나 꺼내 내게 건넸다.
“이건?”
“TP 그룹 안에도 안태민 일가가 후원한 세력이 꽤 많습니다.”
“안태민 일가는 의료계나 법조계 쪽만 후원하던 게 아니었나요?”
“아뇨. 전국에서 머리는 뛰어난데 집안이 가난한 이들만 골라서 집중적으로 후원하더군요. 그 선정 과정과 후원 제도가 아주 치밀하다고 들었습니다.”
“가난하지만 우수한 인재들을 후원하겠다는 모습은 참 좋은데 왠지 좋은 의도는 아니었을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자신들의 가문을 지키기 위한 수호견으로 키운 거죠.”
수호견이라니.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수호견을 키운단 말인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그 똑똑한 친구들이 그들의 속내를 알고도 이용당하는 겁니까?”
“후원 시스템이 어찌나 치밀한지 사람들이 세뇌를 당한다고 하더군요. 안태민 일가는 신이다, 우리는 안태민 일가를 수호해야 한다, 뭐 이런 식으로요.”
“마치 종교 단체 같군요.”
“맞습니다. 저희 쪽에서 파악한 정보에 의하면 사이비 종교 단체에서 활동한 전문가들을 대거 모집해서 교육을 전담시켰다고 합니다.”
“무서울 정도입니다.”
“네, 그러니 저렇게 미친 짓을 하는 거겠죠. 자기는 절대 건드릴 수 없다는 자신감이 없다면 누구도 저런 짓을 할 수 없을 겁니다.”
나는 조갑환이 건넨 USB를 가만히 들여다보고는 물었다.
“그래서 여기에는 뭐가 담겨 있는 겁니까?”
“저희 고위 임원 중 한 사람이 안태민 일가의 후원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걸 용케 찾았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자가 고위 임원이 될 때까지 몰랐던 것을 지적해야 하나요?”
나의 물음에 조갑환이 난처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아무리 세세하게 검증을 한다고 하더라도 뒤에 있는 후원 세력까지 파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기업이다 보니 임직원 수도 많고요.”
“그래서요. 그자가 무슨 문제라도 저질렀습니까?”
“네, 인품도 좋고 퍼포먼스가 정말 뛰어나서 회장님께서는 그자를 차기 그룹 CEO로 염두에 두실 정도의 엘리트였습니다.”
“그런데요?”
“그자가 최근 수상한 세력과 연관이 있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수상한 세력이요?”
조갑환은 내게 다시 USB를 달라고 말한 뒤 빔프로젝터 하단에 USB를 끼우고는 전원을 켰다.
잠시 파란 화면이 뜨더니 이어서 일련의 파워포인트 화면이 등장했다.
화면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이 쓰여 있었다.
<[극비사항] TP 그룹 내부 감찰 보고서 - 천용형 전무 비리 혐의>
“천용형 전무가 안태민 일가의 후원을 받았다는 자입니까?”
“맞습니다. 저희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안태민 일가에게 후원을 받은 1세대 수혜자입니다.”
조갑환은 화면에 띄운 보고서를 토대로 나에게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안태민이 국일당의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된 이후 천용형 전무의 수상한 움직임이 관측되었습니다.”
“수상한 움직임이요?”
“네, 원래 사무실 밖으로 잘 안 나오던 사람인데 이상하게 외부 출장이 잦았습니다. 전화 통화 및 문자 메시지도 많았고요.”
“전화 통화와 문자가 많다는 건 어떻게 안 거죠?”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조갑환이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하하. 그룹 내 통신사가 있다 보니…….”
“그래도 앞으로는 조심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잘못하면 특정인의 사찰로 이야기가 엇나갈 수 있습니다.”
“네, 대표님.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천 전무가 특정 누군가와 자주 통화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특정 누군가요?”
“네, 그걸 말씀드리기 전에 또 다른 이야기를 먼저 알려 드리는 게 순서인 것 같네요.”
“또 다른 이야기요?”
조갑환은 내 쪽으로 몸을 바짝 당기고는 속삭이듯 말했다.
“네, 최근 TP 텔레콤이 30%의 지분율을 가지고 있던 자회사, TP 스프레드의 주식을 특정 업체에서 계속 사들이고 있었습니다.”
“주식요? 그런 건 상장 회사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지 않습니까?”
“그게 무려 TP 텔레콤의 지분율인 30%에 육박하는 수치입니다. 게다가.”
“게다가?”
“TP 스프레드는 조만간 오랫동안 투자를 해 왔던 최점단 기술이 상용화된다는 발표를 할 예정이었습니다.”
“호재성 뉴스로 주가가 오를 예정이다?”
“맞습니다. 내부 관계자가 말을 흘린 게 아니라면 굳이 지금 주식을 이렇게 대량으로 구매할 이유가 없습니다. 극비 사항이기도 하고요.”
나는 한 손으로 턱을 받친 뒤 빔프로젝터가 쏘아낸 화면을 주시했다.
‘1대 주주인 TP 텔레콤만큼의 지분을 사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을 노린 거지?’
그러나 화면에는 지분율 그래프만 나올 뿐 그에 대한 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정보를 흘린 자가 천용형 전무라는 사실은 어떻게 추측한 겁니까?”
“주식을 대량 매입한 업체의 대표가 천 전무의 육촌 되는 친척입니다.”
“충분히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이 있겠군요.”
“게다가 천 전무와 자주 소통했다는 사람이 바로 그 대표입니다.”
이쯤 되면 확실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런데 전무쯤 되는 사람이라면 회사에서 자신의 통화 내역을 살펴볼 수 있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요?”
“과연. 예리하신 지적입니다.”
조갑환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는 자신이 사찰당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왜죠?”
“그는 TP 그룹 내 최고 레벨의 임원 중 한 명입니다. 그리고 계약을 할 때 최고 레벨인 10레벨의 경우 임원 프라이버시를 위해 휴대폰 및 컴퓨터 모니터링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들어 있죠.”
“그만큼 믿는다는 뜻인가요?”
“맞습니다.”
“그런데 천 전무는 왜?”
“회장님의 특별 지시였습니다.”
“강규현 회장이요?”
“네, 회장님이 천 전무만 콕 짚어서는 계속 예의주시하라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유가 있나요?”
“무언가 수상쩍은 냄새를 맡으신 게 아니겠습니까. 이래 봬도 대한민국 최고 그룹인 TP 그룹을 이끌고 계신 분입니다. 녹록지 않은 분이시죠.”
그러고 보니 강규현은 여자 친구인 강세연이 아니었다면 쉽게 만나 볼 수 없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사람 보는 눈이 남다르다는 건가.’
그럼에도 내게는 잔소리 많은 딸바보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이 강했다.
“그래서 그 주식을 대량으로 매입했다는 업체에 대해서는 알아보셨습니까?”
“네. 그 업체의 대표 역시 안태민 일가의 수혜자였습니다. 아주 유명한 기업사냥꾼이더군요.”
“안태민 일가의 손이 안 뻗치는 곳이 없군요. 안태민 일가에서 후원하기 위해 만든 단체의 이름이 따로 있습니까?”
“호랑 재단입니다.”
“호랑 재단이라. TP 그룹 내부에서는 그들이 왜 TP 스프레드의 주식을 샀다고 보고 계십니까?”
“둘 중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조갑환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하나는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차익 실현. 그리고 또 하나는 기업 인수를 위한 포석. 저희는 그중 후자에 조금 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기업 인수요?”
“네, TP 스프레드는 향후 TP 그룹의 앞날을 책임질 미래먹거리 사업을 주도하는 회사입니다. 이곳의 경영권을 노리고 사채를 끌어모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미 기업사냥꾼으로서의 전적이 있고요.”
“TP 그룹은 대기업입니다. 그들의 행위는 쉽게 발각될 가능성이 높은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그것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다만.”
“다만?”
“그들이 TP 스프레드의 주식을 대거 매입한 시점이 주전영 기자가 안태민 일가에 대한 고발 기사를 내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그럼 차익 실현의 목적보다는 오프라인에 대한 공격의 일환으로?”
“대표님과 강세연 관장님의 사이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니까요.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우 대표님의 아군인 TP 그룹을 흔들어서 오프라인을 공격하겠다는 거죠.”
“아니, 오프라인을 직접 공격하는 것도 모자라 제삼자인 TP 그룹을 공격하는 심리를 모르겠군요.”
“오프라인은 비상장 회사이지 않습니까. 소송이나 비방은 가능해도 자본으로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대표님의 우군이라 판단한 TP 그룹을 흔들어서 우회 공격을 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뒤 창가로 이동했다.
늦은 시각에도 불구하고 종로의 밤은 화려했다.
“TP 그룹은 이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생각입니까?”
“이미 회장님 보고는 올라갔습니다. 천용형 전무는 조만간 회사에서 내쳐지겠죠.”
“주식은요?”
“그룹 재무팀이 나서서 지분율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호랑 재단의 비호를 받아 저희 주식을 산 업체에 대해서도 금감원에 신고한 상태입니다. 조만간 결과가 나오겠죠.”
* * *
그러나 조갑환의 기대와는 다르게 금감원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문의하면 그저 검토 중이라는 형식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금감원 내부에도 호랑 재단의 영향력이 있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음모론에 관심은 없지만 이쯤 되면 호랑 재단이 대한민국을 뒤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TP 그룹의 천용형은 전무 자리를 박탈당하고 옷을 벗었지만, 안태민은 그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자주 개인 방송을 올리며 오프라인에 대한 비난에 박차를 가했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법적 대응을 시사했다.
“안태민 개인 방송이든 소송이든 오프라인과 관련하여 근거 없는 비난이 보이면 모조리 소송을 제기하세요!”
법무팀에 맞고소를 지시한 한편 홈페이지 한 코너에 ‘팩트체크’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안태민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반박하는 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안태민 TV의 12월 29일 자 방송에 대한 사실관계를 설명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