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0화 (160/200)

<우세진 대표 입장문>

<최근 안태민 전 대선 후보의 오프라인 비난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가만히 있으면 지나가리라 생각했던 폭우가 그치지 않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었다.

이수빈이 다소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판을 키우는 게 아닐까요? 해당 이슈에 관심이 없던 자들까지 기사를 보게 될 테니까요.”

“아닙니다!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대중들은 오해를 할 수가 있어요. 안태민의 말이 맞다고 말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적극적인 대처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조 본부장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팩트체크라는 카테고리를 신설하여 안태민 측에 반박하는 건 무척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건 바로잡아야죠.”

본부장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주전영이 가만히 손을 들었다.

그는 본부장은 아니었지만 고발 기사를 낸 당사자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였던 것이다.

“네, 주 기자님. 할 말이 있으면 이야기해 보세요.”

“고맙습니다. 대표님. 그리고 본부장님들. 제가 쓴 고발 기사로 인해 회사에 피해를 준 게 아닌가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혀 아닙니다.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맞아요, 주 기자. 주 기자는 큰일 했죠. 저쪽이 나쁜 겁니다.”

주전영은 고맙다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양선영 씨를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양선영 씨라면 안태민에게 피해를 봤다는 안재영 지사장의 대학 선배 이야기하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그녀가 아직도 한국에 있나요?”

“네, 다행히 아직 한국의 부모님 집에 있습니다.”

양선영은 안태민의 아이를 지운 이후 도피하다시피 미국으로 떠났다고 들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는 연락을 두절했을 텐데. 역시 혈연이란 쉽사리 끊을 수 없는 건가 보군.’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주전영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녀를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거죠? 기자 회견만으로도 무척 부담스러웠을 텐데요.”

“그녀와는 지속해서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안태민의 최근 행동에 대해서 불만이 무척 많습니다.”

“불만이 많다는 건?”

“네, 그가 반성은커녕 오히려 자신들과 오프라인을 욕보이는 것에 대해 화가 많이 나 있었습니다.”

“그랬군요. 당사자로서 당연히 그럴 것 같습니다.”

“대표님 지시로 오프라인 홈페이지에 ‘팩트체크’라는 코너도 만들었으니 거기에 양선영 씨의 인터뷰가 들어가면 어떨까요?”

“양선영 씨의 인터뷰요?”

“네, 그녀가 어떻게 안태민에게 당했는지에 대해 소상히 인터뷰를 하여 소개한다면 안태민도 반박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주전영의 말에 제임스 리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증거 자료도 마땅치 않지 않습니까. 피해 여성들의 기자 회견에 대해 안태민 측에서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고요.”

“그때는 개개인이 당한 자세한 피해 사실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요.”

“흠. 양선영 씨가 인터뷰에 응할까요? 아무리 안태민에 대한 분노가 많더라도 그렇게 되면 양선영 씨는 더 이상 한국 사회에서는 얼굴을 들고 살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임스 리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아무리 기자 회견을 통해 안태민에게 당한 사실을 공표하였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추상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게 된다면 감춰 두었던 개인의 치부를 대중에게 모두 공개하게 된다.

조갑환은 커다란 자신의 코를 어루만지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녀는 이미 한국을 떠난 몸입니다. 젊었을 적 한국을 떠났으니 한국에서 그녀를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거고요. 설득만 잘한다면 가능성 있어 보입니다.”

나는 주전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습니다. 주 기자님. 저랑 같이 양선영 씨를 만나 보시죠.”

* * *

2012년의 마지막 날.

사람들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다.

거리 곳곳에서 연말연시를 맞아 들뜬 분위기가 느껴졌다.

나는 주전영과 함께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양선영을 만났다.

그녀는 20대가 지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볼 만큼 미인이었다.

그녀는 주문한 차를 한 입 마시더니 담담히 말했다.

“제가 인터뷰를 했으면 한다고 들었습니다.”

“네, 선영 님. 아시다시피 안태민의 거짓이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뿐 아니라 양선영 씨와 같은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모두 거짓으로 치부하고 있죠.”

“네, 그 사람의 유튜브 방송은 매일 챙겨 보고 있습니다.”

“매일 챙겨 본다고요?”

의외였다.

대선 때만 하더라도 그가 수많은 매체에 등장하여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유가 있을까요?”

“도대체 사람이 어디까지 거짓말을 늘어놓을 수 있는지. 다른 사람을 짓밟고도 태연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요.”

주전영이 슬픈 얼굴로 답했다.

“그런 걸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악마보다 더한 사람이에요!”

“알고 있어요. 재미있는 건 그에게 동조하거나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거예요.”

“댓글을 보셨군요?”

“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구나. 사실 관계에 대해 제대로 따져 보기보다는 그저 자기 듣기 좋은 말만 골라서 듣는구나 싶어요.”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일부일 뿐입니다.”

“일부라기에는 많은 것 같은데요? 그것도 계속 늘어나고 있고요.”

양선영의 표정은 담담해 보였지만 그녀의 말투에서는 알 수 없는 한기가 느껴졌다.

나는 앞에 있는 커피잔을 옆으로 잠시 치웠다.

“그래서 선영 님의 인터뷰가 필요합니다.”

“제가 인터뷰를 한다고 해서 그의 폭주를 멈출 수 있을까요?”

“막강한 대선 후보였던 그가 몰락하게 되었던 원동력도 선영 님을 비롯한 용기 있는 분들이 기자 회견에 나서주신 덕분입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네, 그때만 하더라도 안태민이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감방에 갈 줄 알았죠.”

양선영의 얼굴은 무척이나 시니컬해 보였다.

‘안태민이 법의 심판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인가 보군.’

“잘 아시겠지만 그의 집안은 여간내기가 아닙니다. 그들이 지원하는 호랑 재단의 수혜를 받은 이들이 대한민국 곳곳에 침투해 있으니까요.”

“정말 오만 정이 다 떨어지는 국가예요.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양선영이 씁쓸한 표정을 짓자 주전영이 나섰다.

“너무 그렇게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거든요.”

“어떻게요? 제가 보기에는 계속 당하고만 계신 것 같던데.”

“증거 자료를 계속해서 모으고 있습니다. 호랑 재단의 수혜를 받은 이들의 일부는 아주 악질적인 기업사냥꾼으로 활동을 하고 있거든요.”

“기업사냥꾼이요?”

“네, 무자본으로 사채를 통해 우량 기업을 인수한 뒤 자금을 횡령하고 부도를 내는 거죠. 아주 악질적인 녀석들입니다.”

“그런다고 해결이 될까요? 그들 일가의 수혜를 받은 자들이 권력의 중심에 많다고 들었어요. 의사, 변호사, 국회의원 등.”

“대통령이 바뀌었잖아요. 더 이상 그들의 횡포를 마냥 방치하진 않을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양선영의 표정이 순간 조금 밝아졌다.

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힘을 주어 말했다.

“선영 님만 도와주신다면 오프라인이 어떻게든 안태민 일가의 죄를 밝혀내겠습니다. 그들이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요.”

“법의 심판이라…….”

양선영이 묘한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응시했다.

* * *

해가 바뀌고.

지상파의 아날로그 방송이 모두 종료되고,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가 열렸다.

2013년 1월 1일.

새해 첫날부터 오프라인의 스튜디오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스튜디오 중앙에는 곱게 단장한 양선영이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양복을 입은 나는 그녀에게 생수병을 건네며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평소처럼 편하게 하시면 됩니다.”

“편하게 하라곤 하지만 너무 낯선 환경이네요.”

양선영이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그녀는 나와 주전영의 설득 끝에 어제 카페에서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오늘이 출국일이라서 시간은 오늘 오전밖에 없다고 했지.’

당연히 사전 리허설은 물론이고 준비가 부족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괜찮다며 자신이 알고 있는 안태민의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준비된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자리에 앉고는 넥타이를 고쳐 맸다.

“스탠바이 큐!”

신호가 울리자 나는 카메라를 향해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2013년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어젯밤 긴급하게 예고해 드린 것처럼 안태민 전 후보에게 피해를 입은 양선영 씨의 인터뷰를 생방송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오랜만에 내가 진행하는 생방송 인터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새해의 첫 공휴일 덕분이었을까.

아니.

그것보다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안태민과 오프라인 사이의 치열한 공방전으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이번 인터뷰를 보기 위해 유튜브로 몰렸다.

<오! 여자 엄청 예쁘다!!>

<으이구. 피해자한테 한다는 이야기가 예쁘다는 게 다냐. 부끄러운 시키. 그래도 예쁜 건 인정>

<드디어 오프라인이 반격에 나선 건가요? 오프라인 파이팅! 안태민의 추악한 가면을 벗겨 주세요!>

많은 이들이 인터뷰가 시작도 하기 전에 댓글을 남기며 관심을 보였다.

나는 이번 인터뷰를 왜 하게 되었는지 간단히 설명한 다음 양선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안녕하세요. 선영 씨. 선영 씨를 모르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 잠시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저는 당시 유부남이었던 안태민에게 속아 그의 아이를 배고, 그것도 모자라 아이를 지우라는 강요받은 뒤, 억지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양선영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쓰지 않는 이름이지만요.”

“그럼 현재 이름은 무엇입니까?”

“에리카입니다. 현재 미국 시민권자이고요.”

“네, 앞서 기자 회견에서 밝히신 것처럼 안태민의 만행을 폭로하기 위해 한국에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계속해서 체류하실 예정인가요?”

“아니오. 이 인터뷰가 끝나면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집을 너무 오래 비웠거든요.”

“그렇군요. 그런 와중에도 오늘 저희 오프라인을 방문하고 인터뷰에 응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그럼 선영 씨를 위해 빠르게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이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안태민 전 후보를 처음 만났을 때가 정확히 언제인가요?”

“네, 제가 21살이었을 무렵. 그러니까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을 때입니다.”

“그럼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이 맞을까요?”

“네, 맞습니다.”

“어쩌다가 만나게 되셨나요? 안태민 전 후보가 올해 43살이니 9년 전이라고 하더라도 34살이었을 텐데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하하.”

갑자기 양선영이 실소를 내뱉고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학 근처의 한 술집에서 만났어요. 이런 말 하고 싶진 않지만 그는 동안에 잘생겼거든요. 친구랑 둘이서 술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저쪽에서 웬 잘생긴 남자 둘이 접근해왔어요.”

“안태민이었나요?”

“네, 그와 그의 친구였죠. 얼핏 보기에는 같은 또래로 보였어요. 서른 중반의 남성이 대학가에서 대학생들이 입는 옷을 입고 돌아다니진 않을 테니까요.”

“그랬군요. 당시에도 그는 처자식이 있는 몸이었는데, 그런 사실을 이야기하진 않던가요?”

“맞아요. 그는 자신이 24살이며 저와 같은 대학에 다니는 선배라고 주장했어요. 당연히 솔로라고 이야기했고요. 그걸 믿은 제가 병신이지만…….”

양선영의 표정은 무척이나 씁쓸해 보였다.

얼마나 자기 자신을 학대하고 실망감을 느꼈던 걸까.

그녀가 느꼈을 슬픔과 자괴감의 바닥을 감히 짐작하기 어려웠다.

나는 그녀를 위로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나요?”

“우리는 차츰 가까워졌어요. 결국 그가 고백을 해서 사귀게 되었고 그의 아이까지 임신하게 되었죠.”

“그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니 뭐라고 하던가요?”

“갑자기 표정이 돌변하더니 지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선영 씨는요?”

“절대 안 된다고 그랬죠. 아이도 하나의 생명이라고요.”

“그럼에도 지우라고 하던가요?”

“네, 자기가 잘 아는 병원이 있으니 그쪽으로 같이 가자며 강제로 저를 차에 태우고는 병원에 갔어요.”

양선영이 울 것 같은 표정을 짓자 댓글창이 폭발했다.

<와! 저게 진짜라면 안태민 그 새끼는 진짜 양아치가 따로 없구나. 완전 X새낀데?>

<선영 씨 울지 마요. 아 진짜 예쁜 얼굴에 주름 봐! 내가 다 속상하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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