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4화 (164/200)

“세진 씨…….”

“하하. 사실 이 말 분위기 좋은 곳에서 하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해장국집에서 하게 되었네요. 해장국집 아들은 어쩔 수 없나 봐요.”

“뭐야. 치. 그게.”

“그런데 저보다는 세연 씨가 걱정인걸요.”

“제가 왜요?”

“아니 주변에서 또 인수강 같은 녀석들이 집적거릴까 봐 늘 걱정할 테니까요.”

“그럼. 한국에 자주 와요! 아님 2년이 아니라 1년 만에 미션 완수하시든가요.”

“1년 만에요? 난이도가 너무 높은데요?”

“그 정도도 못 하면 제 남편으로 절대 인정 못 해요. 반드시 1년 만에 해결해야만 결혼해 줄 거예요.”

“음. 이건 생각도 못 했는데. 1년 반은 어때요?”

“안 돼요. 절대로, 네버! 무조건 1년 안에 완수해야 해요.”

“잠도 못 자겠는데요.”

“흥. 제가 옆에 없는데 잠이 와요? 내가 자는지 안 자는지 계속 확인할 거야.”

“휴. 왜 그 많은 남자가 세연 씨 눈에 안 찼는지 이제 좀 알 것 같네요.”

내가 한숨을 내쉬자 그제야 강세연이 내 손을 장난스럽게 꼬집으며 웃음을 보였다.

* * *

다음날.

나는 하루 휴가를 내고 강세연과 함께 예술의 전당을 방문했다.

이전부터 꼭 보고 싶었던 퓰리처상 사진전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연 씨 기분도 풀어 줘야 하니까.’

강세연은 평소보다 더 꽉 내 손을 잡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도 나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나는 티켓팅을 위해 잠시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표를 샀다.

강세연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표를 건네며 물었다.

“혹시 이전에 퓰리처상 사진전 본 적 있어요?”

“음. 네. 몇 번 본 것 같아요. 프랑스에서도 봤고, 한국에서도 봤고요.”

“그랬군요. 하긴 사진전은 전시가 쉬우니까요.”

“전시가 쉽다고요?”

“네, 작품이 하나밖에 없는 미술전과는 다르게 사진전은 원본 필름을 인쇄하면 그만이니까요.”

“아하. 그러네요. 그 생각은 미처 못 해 봤어요. 명색이 갤러리 관장인데 부끄럽네요.”

“뭘요. 들어갑시다.”

나는 그녀와 꼭 손을 잡고 전시관 안으로 들어갔다.

평일인데도 전시관 안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퓰리처상이라는 네임밸류가 크게 작용한 까닭이다.

전시관 입구에는 퓰리처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된 문구가 적혀 있었다.

<퓰리처상은 저널리즘과 문학 그리고 음악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을 세운 이에게 주는 상으로 미국의 언론인인 조지프 퓰리처의 유산을 기금으로 1917년 만들어졌다.>

나는 강세연과 함께 천천히 이동하며 사진전을 관람했다.

이내 한 사진 작품 앞에서 우리는 걸음을 멈추었다.

케빈 카터가 1933년 수단에서 찍은 ‘수단의 굶주린 소녀’란 작품이었다.

뼈가 드러날 만큼 앙상한 아이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가운데 뒤에서 독수리 한 마리가 아이를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강세연은 슬픈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 사진. 너무 참혹하네요.”

“네, 이 사진을 찍을 당시 수단은 기아가 아주 극심했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 혹시 언론의 보도 윤리와 관련해서 엄청 유명한 사진 아닌가요?”

“맞아요. 보도 윤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꼭 등장하는 작품이죠.”

“저도 언젠가 온라인에서 관련 기사를 본 거 같아요. 취재가 중요한가 아니면 생명이 중요한가 하고요.”

강세연이 팔짱을 끼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고는 말했다.

“그런데 그거 좀 오해가 있어요.”

“오해요?”

강세연이 놀란 듯 반응했다.

“네, 세간에 알려지기로는 독수리에게 아이를 구하는 게 우선일 텐데 아이를 내버려 두고 촬영을 했다며 작가를 비판하는 말이 많죠. 보도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생명이 우선이라고요.”

“그게 팩트 아닌가요?”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사진을 찍던 도중에 우연히 독수리 한 마리가 지상에 내려앉았어요. 그는 독수리가 날갯짓을 하면 더 멋진 그림이 나올 거라 생각하고 한동안 기다렸다고 하더군요.”

“날갯짓이요?”

“네, 그러면 훨씬 더 위압적인 모습이 연출될 테니까요.”

“그런데요?”

“아쉽게도 독수리는 그저 멍하게 앉아 있었고, 사진의 소녀는 다시 일어나 급식소로 이동했습니다.”

“그럼 아이는 괜찮은 건가요?!”

강세연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게도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그 누구도 모릅니다. 다만 사진을 찍을 당시에 아이가 위험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이 중론이죠.”

“그랬구나. 작가 입장에서는 무척 억울하겠네요.”

“얼마 뒤 뉴욕타임스에 이 사진이 실렸어요. 반향은 엄청났죠. 전 세계에 이 사진이 퍼져나가면서 아프리카의 식량난을 널리 알리게 되었죠.”

“그랬을 것 같아요.”

“이듬해에 이 사진으로 케빈 카터는 퓰리처상을 수상하게 되었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았죠.”

“아이를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는?”

“맞아요. 결국 카터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죠.”

“저런. 사람들의 비난을 견디지 못한 거군요!”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일정 부분 역할을 했겠죠.”

“슬픈 사연이네요.”

강세연은 자신이 케빈 카터가 된 것처럼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꼭 감싸 주었다.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케빈 카터가 이 사진을 남겼기 때문에 아프리카의 현실을. 굶어가는 수많은 아이들의 비참한 모습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슬프네요. 훌륭한 작품을 남기고도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다니요.”

“네, 제가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도 그것과 같아요. 겉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잖아요. 사람들은 복잡한 진실보다는 단순하고 자극적인 내용에 더 길들어져 있어요. 케빈 카터는 이 사진을 찍기 전부터 오랫동안 아프리카의 내전과 기아를 취재해 온 사진 기자였어요. 결코 유명해지고 싶어서 억지로 이 사진을 찍은 게 아닌데, 마치 개인의 명성을 위해서 인간의 도리를 내팽개친 악당으로 묘사되곤 하죠.”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인 탓인지 주변 사람들이 흘깃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지나갔다.

나는 진정하고 목소리를 조금 낮추고 말했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이 사진과 케빈 카터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어요. 판사도, 교수도, 학교 선생님도. 심지어 기자들까지 이 내용을 왜곡해서 말하고 있죠. 저는 미디어에서 더는 이런 오해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네, 세진 씨. 당신이라면 꼭 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다시 한번 눈앞에 있는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보도 윤리를 논하기 이전에.

사실을 왜곡하고 오해하는 일들이 더 이상 없어지기를 바라면서.

* * *

오프라인의 한 회의실 안에는.

10명의 젊은이가 어색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동일하게 계약서가 놓여 있었다.

혹자는 계약서를 자세히 살펴보았고 혹자는 주변의 눈치를 살폈으며 혹자는 불안한 듯 책상 아래를 바라보며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자자. 다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작가님들. 오프라인과 계약하는 첫 작가님들인 만큼 여러분들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오프라인은 웹소설과 웹툰을 전문으로 하는 한 중견 에이전시를 인수하고는 재야에 묻혀 있는 실력 있는 작가들을 찾으라 지시했다.

그 결과가 바로 오늘이었다.

웹툰 작가 5명.

그리고 웹소설 작가 5명.

나이는 모두 30살을 넘지 않았다.

그중 두꺼운 검정 테를 두른 안경을 쓴 남성이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 물었다.

“저기, 대표님.”

“네, 작가님.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게. 저 오프라인은 언론사 아닌가요?”

“언론사이면서 IT 플랫폼이기도 하죠.”

“다톡 말씀하시는 거죠?”

“맞습니다.”

“그렇지만 오프라인에서 웹툰과 웹소설도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서요. 이거 정말로 저희 작품이 오프라인에 나가는 게 맞나요?”

그는 나와 두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하나 고민하듯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나는 웃으며 답했다.

“올해부터 오프라인에 웹툰과 웹소설 카테고리를 추가하고 여러분들의 작품을 노출하려고 합니다.”

“별도의 홈페이지가 아니라 오프라인에요?”

“네, 오프라인은 방문자가 많으니 기사를 보러 온 유저들이 여러분들의 작품을 읽을 가능성도 더 높겠죠.”

“아니, 물론 저희도 오프라인에 저희 작품이 올라간다면 정말 엄청나게 영광일 것 같긴 한데요.”

“그런데요?”

“오프라인은 기사를 보는 언론사라는 느낌이 강해서 거부감이 들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도 들어서요.”

그러자 내 옆에 있던 신동석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아닙니다. 사실 기성 언론들도 자사의 홈페이지에 만화를 걸어 둔 경우가 많습니다.”

“만화요?”

“네, 많은 언론사 닷컴에서 만화 카테고리를 운영해서 독자들을 끌어모으고 있으니까요. 심지어 홈페이지 내에서 가장 많은 트래픽을 보이는 게 만화 섹션이기도 할 정도입니다. 언론사에서 기사만 올린다는 건 편견이죠.”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신문 만화는 굉장히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4컷 만화나 성인극화를 신문의 주요 코너로 싣는 곳이 많았다.

신문뿐 아니었다.

온라인에서도 주요 매체들은 만화나 웹툰을 기사와 연결하여 높은 트래픽을 올리고 있었다.

언론사의 주 구독자인 중장년 남성들이 뉴스를 보러 홈페이지에 들어왔다가 남는 시간에 만화를 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경 쓴 남성은 궁금증이 많은 사내였다.

“그렇지만 저희는 기성 작가가 아닌데요? 저만 해도 블로그랑 커뮤니티에 제 그림을 올린 것 말고는 따로 연재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네?”

나는 안경 쓴 남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여러분들을 찾아낸 에이전시를 인수하자마자 그분들에게 내린 지시가 있습니다.”

“지시요?”

“네, 지금까지 그 어디에도 없던 작가분들을 찾아 달라고요. 웹툰에서 다섯 분, 웹소설에서 다섯 분을요.”

“그게 저희라는 말씀인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습니다. 그리고 이런 조건을 덧붙였죠.”

“조건이요?”

“첫째, 기성 작가가 아닐 것. 둘째, 재능이 뛰어날 것. 셋째, 기존에 있던 작품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이나 그림체 또는 필력을 가진 분일 것.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그 자리에 모인 10명의 작가가 웅성거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게 아니냐는 것처럼.

그러나 그들은 모를 것이다.

특히 어색한 미소를 보이며 웃고 있는 안경남은.

곧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과 중국 그리고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에서.

압도적인 조회 수를 바탕으로 모든 IT 회사에서 지식재산권 확보가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는 걸 일깨워 줄.

<나 혼자 킹왕짱>를 그린 전세호 작가 본인이라는 걸.

나는 오프라인이 그려나갈 웹툰과 웹소설의 미래에 대해 간단히 발표하고 난 다음 사인식을 진행했다.

Never에서 디지털콘텐츠 사업본부장을 역임했던 신동석 영상본부장의 도움이 컸다.

그는 Never에서 다양한 부서를 경험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Never 웹툰이었다.

‘본인은 해당 부서에서 오래 있지 않아 잘 모른다고 말했지만, 계약서 작성이나 에이전시 섭외, 작가 추천 등 모든 것이 빈틈이 없다.’

에이전시에서 추천해 올린 수많은 작가 중에서 옥석을 골라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덕이었다.

‘그가 추천한 작가 중 절반 이상이 나 역시 어디선가 이름을 들어 보았던 이들이다. 작가를 보는 안목이 무척 뛰어난데 이참에 그를 영상본부장이 아닌 웹툰과 웹소설 담당 부서장으로 인사이동을 시키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어.’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신동석은 작가들이 물어보는 다양한 질문에 답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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