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말의 기대를 안고 청와대에 들어온 타사 기자들은 내게 들으라는 듯 푸념을 늘어놓았다.
“또 오프라인이군. 뭐 어쩔 수 없지.”
“그러게. 오프라인이면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하니까. 부장도 이거 가지고 뭐라곤 못할 거야.”
“에이씨. 퇴사하고 오프라인에 이력서 넣어야 하나. 번번이 물을 먹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응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청와대 응접실에는 나와 백철웅.
그리고 오프라인 촬영 스태프들이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나와 백철웅을 주시했다.
“우선 취임 축하드립니다.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오늘 취임식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싸이가 개사한 강남스타일도 멋졌고, 무엇보다 대선 라이벌이었던 안태민 씨의 갑작스러운 등장도 무척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네, 저희도 안태민 씨를 취임식에 등장시킬지 말지 내부에서 무척 고민이 많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기획을 하게 되셨는지, 국민들에게 한 말씀 해주실 수 있을까요?”
나를 비롯하여 촬영 스태프 모두가 숨을 죽이며 백철웅의 입을 바라보았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문을 열었다.
“저는 취임사로 도덕적인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를 위한 첫 번째 발판입니다.”
“첫 번째 발판이요?”
“네, 안태민 일가가 저지른 죄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그런 자들이 법의 심판도 없이 갑자기 한국을 떠나 해외로 도주하였다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사건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극비리에 그를 찾아낸 다음 한국으로 송환, 설득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설득이요?”
백철웅이 빙그레 미소를 보였다.
“네, 전 국민 앞에서 당신 일가가 저지른 죄를 고하라고. 그리고 사과하라고. 그것만이 올바른 대한민국을 세울 수 있는 초석이라고 말입니다.”
“올바른 대한민국이라. 일리가 있습니다만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떤 의구심 말입니까?”
백철웅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 과정에서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쳤는지. 과연 대통령 취임식 자리에서 안태민과 같은 범죄자가 나와서 사과를 하는 게 맞는지. 저는 개인적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모두 올바른 법적 절차를 거쳤습니다. 물론 대표님 말씀처럼 과연 그 자리에 안태민이 나서는 게 맞느냐는 의문이 있을 순 있겠죠. 그러나 저는 도덕적인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그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리라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그와 30여 분에 걸쳐 앞으로 어떻게 국정을 수행할 것이며 주요 과제는 무엇인지, 취임 소감은 무엇인지 등에 관해 물었다.
예정된 인터뷰가 끝나고.
나는 둘만의 자리로 옮겨 백철웅과 사적인 대화를 나눴다.
나는 따지듯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뭐가 말입니까?”
“안태민 말입니다. 저희에게는 일언반구 이야기가 없지 않았습니까!”
“극비 사항이었습니다. 미리 언론에 정보를 풀기 어려웠죠.”
“휴. 안태민을 코너에 몬 건 바로 저희 오프라인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언질을 주셨으면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겁니다. 도대체 그는 언제 체포한 겁니까?”
내 물음에 백철웅이 미소를 띠며 답했다.
“취임 일주일 전입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아직 대통령이 되시기 전이지 않습니까? 공권력을 움직일 명분은 없을 텐데요.”
“이국대 대통령과 담판을 지었죠.”
“이국대와요?”
백철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뭐로 말입니까?”
“새 정부는 그가 체결한 남북정상회담의 정신과 과업을 이어나가는 것으로 말입니다.”
“이전 정부가 수립한 회담 내용을 성실히 수행하겠다?”
“그렇습니다. 좋아하더군요.”
“이국대가 그런 걸 승낙할 줄은 몰랐군요.”
“퇴임 전 대통령이란 예민할 수밖에 없는 자리죠. 자신이 쌓아 올린 과업이 후임을 통해 무너지지는 않을지 항상 노심초사하게 되니까요.”
“정말이지 노련해지셨군요.”
나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질문을 이었다.
“그런데 안태민은 어떻게 설득한 겁니까? 절대로 그런 자리에서 자신의 죄를 밝힐 사람은 아닌데.”
“후후. 그와도 담판을 지었죠.”
“담판을 지어요?”
백철웅은 목이 말랐는지 잠시 생수를 한입 들이켜고는 답했다.
“전 국민 앞에서 안태민 일가가 벌인 죄를 소상하게 밝히고 사과를 구하면 죄를 경감해 주겠다고요.”
“네?!”
“물론 아시겠지만, 그들 일가가 벌인 죗값이 너무 무거워 경감의 의미는 그다지 없습니다. 아마 평생 감옥에서 나올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뭘 경감해 줬다는 거죠? 답변하기에 따라서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님!”
“너무 그렇게 무서운 표정으로 노려보지 마세요. 선을 지켰으니. 안태민이 가지고 있는 서울 집, 중 하나에 대해서는 몰수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서울 집 가운데 하나요?”
“네, 현재 이혼한 처와 자식들이 사는 집입니다. 시가 1억. 서울 외곽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죠. 안태민 이름으로 되어 있어서 원래대로라면 그 집도 몰수 대상입니다.”
“그가 거기 동의했습니까?”
“네, 평소 남편 노릇. 아빠 노릇을 못 했다면서 동의하더군요.”
안태민 같은 악마 역시 제 자식들은 눈에 밟혔다는 의미일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의외입니다. 겨우 그런 거로 자신들의 죄를 밝힐 생각을 하다니.”
“어차피 체포되었을 때 모든 걸 포기한 상황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제안을 하자 수락한 거죠. 어차피 갈 데까지 간 상황 아니겠습니까. 명예 회복도 하고 처자식에게도 보탬이 되고. 손해 볼 것 없는 장사죠.”
“그런 게 명예 회복이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만.”
“평생 전 국민에게 비난받으며 감옥에서 썩을래 아니면 형식적으로나마 사과를 구하고 썩을래의 차이죠. 아주 소소한 덤과 함께요.”
정말 사람이라는 건 알다가도 모를 존재다.
나는 짧은 한숨을 뱉고는 남은 궁금증을 물었다.
“그나저나 안태민을 취임식에 등장시키겠다는 건 도대체 누구 아이디어입니까?”
“그게 중요합니까?”
“적어도 백 대통령님 머리에서 이런 기획이 나온 건 아닌 것 같아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그런가요? 우 대표 말대로 제가 처음 기획한 건은 아닙니다.”
“그럼 누굽니까?”
“그건 말씀드리기 곤란하군요. 아무튼 최종적으로 승인한 사람은 바로 저입니다. 괜찮지 않았습니까? 안태민과 같은 적폐를 잡아내 전 국민 앞에서 사과를 시킨 것은.”
“그렇지만 그 방식이 거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죠.”
백철웅은 궁금하다는 듯 내 쪽으로 몸을 기댔다.
“포퓰리즘. 일종의 정치쇼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하. 그런 면이 적잖이 있었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대통령님!!”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백철웅이 목소리를 낮추라는 듯 손을 저었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많은 고민하였습니다. 이번 안태민 건이 다소 과한 점이 있었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러나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저는 제가 맞다고 생각하는 길을 굳건히 걸어 나갈 것입니다. 그러려고 대통령이 되었으니까요.”
백철웅의 표정은 확고했다.
‘저것이 대통령이 되기로 한 자의 각오인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응원하겠습니다. 다만 수라의 길을 걷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듣기 싫으시더라도 가끔 쓴소리하겠습니다. 직접 이렇게 찾아뵙기도 할 것이고, 오프라인 기사를 통해서도 잘못된 것이 있다면 과감히 지적할 겁니다.”
“물론이죠. 언론이 대통령에 대해 비판하지 않으면 누가 비판하겠습니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디 좋은 위정자가 되시길.”
나는 그와 굳게 악수를 하고는 청와대를 떠났다.
* * *
백철웅 당선 일주일 후.
여론조사 기관에서 수행한 그의 지지율은 무려 90%를 넘어 92%를 기록하였다.
그동안 취임 1년 차 대통령이 기록한 가장 높은 지지율이 60%였던 것을 고려한다면 이례적으로 높은 수치였다.
‘그가 잘하는 건 맞지만 포퓰리즘 성격이 있다. 적절한 견제가 필요하겠어.’
나는 사설로 현 정부에 바라는 점.
그리고 주의가 필요한 점에 대해 장문의 글을 써 오프라인에 게재하였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우세진 말이 맞아. 지금은 백 대통령 인기가 너무 높아서 다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심할 필요가 있어>
<맞아 이 지지율이 그가 퇴임할 때까지 이어지려면 주의가 필요하지>
<역시 믿고 보는 오프라인! 창업자한테도 쓴소리하는 건 확실하네>
청와대에서는 내 사설을 보고 서운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어쩌겠는가.
‘언론은 절대로 정치와 같은 배를 타서는 안 된다. 잘한 것은 잘한 대로 칭찬하고, 못한 것은 못한 대로 비판해야 맞다. 권력을 견제하지 않는 언론은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다. 그 대상이 비록 전직 창업자라도 말이다.’
청와대에 비판적인 사설을 싣고 오래지 않아.
나는 이덕오를 상무로.
그리고 본부장들은 이사로 승진시키는 대규모 인사를 단행하고는 그들을 한 자리로 모았다.
내가 글로벌 진출을 위해 한국을 떠나 있을 사이.
한국 본사를 이끌 부사장을 선임하기 위해서였다.
“승진 축하드립니다, 상무님.”
“하하. 승진 축하드립니다. 모두 한 단계씩 올라갔네요.”
이덕오는 기쁨을 숨기지 못한 채 사람들과 축하 인사를 건네받았다.
백철웅이 회사를 나간 뒤 오프라인에서 나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직급의 이덕오였다.
천성이 부지런한 까닭에 그는 자만하지 않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했다.
따로 이야기한 적이 없었음에도 스스로 늦게까지 남아 업무를 처리하였고, 후배들의 멘토 역할을 자처하는 것은 물론 다른 기업과의 기술 협력 MOU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등 자신의 책무에 소홀하지 않았다.
나는 흐뭇한 얼굴로 그를 쳐다본 다음 주위를 집중시켰다.
“승진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제가 2주 후면 미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제 역할을 대신할 분을 뽑을 예정입니다.”
“네? 우 대표님의 역할을 대신할 분이요?”
모두들 금시초문이라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제가 외국으로 떠나면 국내에 신경을 쓰기가 어려울 테니까요. 그래서 새로 부사장 자리를 신설하고 그분에게 국내 운영의 전권을 드릴 생각입니다.”
“부사장이요?”
이덕오가 어색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직급으로 따지면 이 상무님보다 위의 단계입니다. 괜찮으시죠?”
“아. 네네, 저야 뭐. 하하.”
이덕오는 어색하게 웃었다.
‘오프라인 넘버투 자리를 빼앗기기는 건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겠지.’
나는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이 상무님은 기술담당 임원이라 경영을 맞기기에는 결이 맞지 않았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라고, 부사장으로 오실 분은 여러분도 잘 아시는 분입니다.”
“저희가 아는 분이라고요?”
“유명인사인가요?”
“어떤 분일지 궁금하군요.”
모두가 새로 올 부사장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나는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네, 현재 평양 지사장으로 있는 안재영 지사장을 한국으로 귀환시키고 그를 부사장에 임명할 예정입니다.”
“안재영 지사장을! 역시. 그렇다면 안심이죠.”
“맞습니다. 그라면 저희도 믿고 따를 수 있습니다.”
“재영이 형이면. 하하. 뭐 저도 좋습니다.”
안재영이라는 말에 이덕오도 기분이 풀렸는지 웃음을 보였다.
안재영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많은 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오프라인에 오기 전부터 고려 일보의 차세대 에이스로 불리는 등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평양 지사장으로서 자신의 업무를 200% 이상 소화하고 있다. 녀석이라면 한국을 맡길 수 있어.’
내가 잠시 안재영에 대해 생각을 하는 사이.
이수빈이 번쩍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런데 그럼 평양 지사장은 공석으로 두는 건가요? 엄청 중요한 자리일 텐데요.”
“아뇨. 거긴 새로 사람을 보낼 겁니다.”
“혹시 생각해 두신 인물이 있으신가요?”
“네, 주전영 기자를 평양 지사장으로 보낼 생각입니다.”
“아!”
모두 짧은 감탄사를 뱉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전영이 오프라인에 합류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는 기사로 자신의 능력을 여러 차례 증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