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이에요.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해 두었으니 가시죠.”
우리는 택시를 타고 곧장 허드슨강이 내려다보이는 브루클린의 고급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창밖으로 맨해튼의 고층빌딩들과 허드슨강.
그리고 브루클린 다리가 한눈에 보였다.
“멋진 곳이네요.”
“대표님 오신다길래 어떤 곳이 좋을지 추천의 추천을 받았죠.”
“미국 생활은 좀 어때요? 할 만해요?”
“저야 뭐. 학창 시절도 미국에서 지냈으니까, 익숙해요.”
“다행이네요. 새로 뽑은 직원들은 어때요?”
“다들 똑똑하고, 정열적이에요. 저널리즘과 뉴미디어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죠.”
“홍 지사장님이 모셨으니 좋은 분들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첫 음식이 나왔다.
하몽 한 조각이 올라간 접시였다.
“하하. 예쁘긴 한데 양이 무척 적네요.”
“아뮈즈부슈라고 셰프가 무료로 주는 전채 요리예요. 가볍게 드시면 돼요.”
“아뮈즈부슈요?”
“네. 불어인데 한국어로 번역하면 아마 입을 즐겁게 하는 음식? 정도의 뜻이 될 거예요.”
“그렇군요.”
나는 하몽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었다.
“소식 들으셨겠지만 홍 지사장님을 포함해서 해외 지사장들을 모두 내부 직급을 상무로 승진시켰습니다.”
“네, 메일 받았습니다. 해외 지사장 자리도 과분한데 상무라니.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제가 감사하죠. 그런데 일주일 뒤 3시에 잡혀 있는 이 일정은 뭐죠?”
나는 그녀가 건넨 스케줄을 보며 빨간색으로 표시된 일정에 관해 물었다.
“아! 우 대표님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국의 주요 매체에서 우 대표님을 뵙고 싶다는 연락이 많았어요. 그래서 아예 날을 따로 잡았습니다.”
“날을 잡았다고요?”
“네, 뉴욕타임스부터 워싱턴포스트까지. 미국 주요 일간지 일곱 군데 대표들과의 회담이에요.”
“미국 주요 일간지 일곱 군데 대표들과의 회담이요?”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놀라 포크를 아래로 내린 채 홍지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뭐 그런 걸 가지고 놀라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대표님이라면 분명 좋아하실 거라 생각했는데 제가 오버한 걸까요?”
“아뇨. 싫은 건 아닌데 일정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우 대표님 스스로 미국에 오시면 정신없이 일만 하실 거라 말씀하셔서 잡아 보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일정이 너무 촉박한 것 같다면 말씀 주세요. 조정해 볼게요.”
“아닙니다. 홍 지사장님이 마련한 자리이니 나가 봐야죠.”
“고맙습니다. 대표님. 이해해 주실 거라 믿었어요.”
홍지혜가 싱긋 웃었다.
그녀는 한국에 있을 때도 추진력이 뛰어났지만, 어째서인지 미국에 와서는 폭주하는 기관차가 된 것처럼 보였다.
‘역시 미국 지사장 자리는 홍지혜가 제격이로군.’
이어서 다양한 에피타이저들이 차례로 식탁을 장식했다.
다만 재료가 이상할 정도로 신선해 보이지 않았다.
‘미쉐린 가이드에 나온 음식점 치고는 수준이 별로인 거 같은데. 비행기에서 먹었던 음식들보다도 수준이 떨어져.’
나는 입안으로 음식 몇 조각을 넣고는 다 먹지 않고 남겼다.
홍지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며 포크를 식탁에 놓았다.
“이상하네요. 이런 곳이 아닌데.”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죠? 오히려 처음에 무료로 나왔던 하몽이 가장 괜찮았습니다.”
“흠. 저도 몇 번 왔던 곳인데 이전에는 이렇지 않았거든요. 잠시만요. 곧 메인디쉬가 나오니까 기다려보시죠. 그건 괜찮을 거예요.”
그녀의 말대로 오래지 않아 메인디쉬가 나왔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한눈에 보더라도 그다지 품질이 좋아 보이지 않는 스테이크가 등장한 것이었다.
나는 고기를 썰어 입안에 넣었다가 고개를 돌리고는 무릎에 놓인 냅킨을 들어 뱉어냈다.
질기고 기름진 건 둘째 치고 맛이 형편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스테이크를 이렇게까지 맛없게 요리할 수가 있지?’
나를 지켜보던 홍지혜도 고기를 한입 베어 물고는 냅킨에 고기를 뱉었다.
그녀는 화가 많이 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셰프를 불렀다.
“셰프! 이 요리 도대체 뭐죠?!”
곧 흰색 셰프복을 입은 백인 남성 한 명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의 표정에는 불만이 상당히 가득해 보였다.
“무슨 일이신가요? 손님. 그렇게 격앙된 목소리로요.”
“지금 이게 저희에게 먹으라고 내 논 음식이 맞나요? 이런 질 나쁜 부위를 도대체 누가 먹으라는 거죠? 뒷골목 식당도 아니고 바로 이곳에서 말이에요!”
다행히 업무가 끝나면 틈틈이 영어 공부를 했던 덕분인지 둘의 대화가 귀에 쏙쏙 들려 왔다.
백인 셰프는 오히려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저를 모욕하시는 겁니까? 저희 가게는 미쉐린 3 스타를 받은 식당이고 저는 이곳의 메인 셰프입니다!”
“그러니까 더욱 열이 받는 거죠! 지금 제 앞에 놓인 음식을 보고도 그런 이야기를 하실 수 있나요?”
그는 우리 테이블의 음식을 실눈을 뜨고 슬쩍 내려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시아 사람들은 이쪽 부위를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아니었나 보군요.”
그 말에 홍지혜가 거세게 항의했다.
“뭐라고요? 지금 인종 차별하신 건가요? 아시아 사람들은 이렇게 질 나쁜 부위의 고기를 먹어도 상관없다고 말이에요?!”
“워워. 진정하세요. 이 부위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면 다른 부위로 바꿔 드리죠.”
“네? 사과가 먼저 아닌가요?”
“흠. 손님. 저희 요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다음부터는 오지 않으시면 됩니다. 저희도 가능하다면 손님처럼 격식도 모르는 시끄러운 아시아인이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그는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는 우리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명백한 인종 차별 행위.
가관이었던 것은 주변에 있던 백인 손님들 대다수가 이 장면을 제지하기는커녕.
자기들과 관계없다는 듯 무표정하게 쳐다보거나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홍지혜는 두 손으로 식탁을 강하게 내리치더니 외쳤다.
“가시죠, 우 대표님. 제가 정말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이곳이 이런 곳인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홍지혜와 함께 가게를 나왔다.
그녀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내게 이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저는 급히 써야 할 기사가 생겨서요. 내일 사무실에서 뵙겠습니다!”
* * *
<브루클린 고급 레스토랑의 민낯…… 아시아인에게는 맛없는 부위 내놔>
홍지혜는 조금 전 식당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장문의 기사를 작성.
오프라인 미국 지사 홈페이지 메인에 해당 기사를 걸었다.
오프라인은 아직 미국의 주요 일간지에 비할 정도의 트래픽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꾸준히 깊이 있는 탐사 보도를 내며 인지도를 쌓아 올리던 중이었다.
게다가 만연되어 있다곤 하지만 인종 차별은 미국 내에서 민감한 정치적 이슈였다.
그녀가 쓴 기사는 이내 각종 커뮤니티를 비롯하여 미국의 주요 일간지에서도 주요하게 다뤄지며 이슈화되었다.
<나 거기 어딘지 알아. 나도 전에 지혜와 똑같은 일을 겪었어. 정말 밥맛인 곳이야>
<거기 경치 좋기로 유명한 곳이잖아? 이런 곳인지 전혀 몰랐군>
<아시아인들이 겪는 설움과 차별은 생각보다 커. 아메리카는 백인들만의 땅이 아냐. 이건 정말 문제가 많아!>
사건이 터지고 삼 일 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예정에 없던 TV 생중계 연설에 나섰다.
별도의 방 없이 직원들과 같은 공간에 자리 잡은 나는 TV에 오바마가 등장하자 그쪽으로 이동했다.
‘갑자기 오바마가 무슨 일이지? 예정에 없던 방송인 것 같은데.’
어느덧 TV 앞에는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미국이 인종의 용광로라는 사실이 새삼 실감 났다.
오바마는 링컨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스테이트 다이닝룸의 벽난로 앞에 굳은 표정으로 서서는 카메라를 응시했다.
“며칠 전 끔찍한 뉴스를 접했습니다. 저 또한 흑인 대통령으로서 큰 슬픔을 느꼈습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인종 차별이 없는 아름다운 국가를 만들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저의 책임입니다. 오프라인의 홍지혜 미국 지사장과 우세진 대표에게 대신 사과를 드립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대통령의 사과와 내 이름이 TV에 나오는 것을 접하고는 충격에 빠졌다.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이 일로 미국 대통령이 직접 사과를 한다고?’
미국이 괜히 선진국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사이.
TV 앞에 선 직원들이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역시 오바마!”
“지사장님 나이스! 제대로 한 방 먹여 줬군요!”
“그것참 쌤통이군! 어디 함부로 인종 차별을 해!”
나는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홍지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뿌듯한 표정을 하고는 손가락으로 브이를 펼쳤다.
과연 오바마가 인정한 기자였다.
* * *
미국에 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오후가 되자 미디어의 스타들이 오프라인으로 총출동했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USA투데이,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뉴욕포스트, 시카고트리뷴, 워싱턴포스트.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매체의 사장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것이었다.
홍지혜는 염려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통역을 해 드리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어요?”
“네, 나름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어요. 불편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매체 사장들과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고는 단상에 섰다.
“바쁘신 와중에 이곳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프라인의 우세진입니다.”
내가 세련된 영어 발음으로 자기소개를 하자 홍지혜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박수를 쳤다.
“미국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며칠 전 오바마 대통령이 저와 홍 지사장에게 사과하더군요. 과연 미국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말에 각 매체 사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한 여성이 손을 들고 물었다.
내가 그녀를 가리키자 그녀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안녕하세요. 뉴욕포스트의 사라 젠슨입니다. 정말이지 유감스러운 사건이었습니다. 혹시 식당에서는 따로 사과받으셨나요?”
“많은 분이 해당 사건에 주목해 주시고, 우려의 기사를 써 주신 덕분에 일이 잘 해결되었습니다. 다만 해당 셰프에게 따로 사과를 받진 못했습니다.”
“저런. 아주 못된 사람이로군요! 유감입니다.”
“다행히 여러분들이 방문하시기 조금 전에 이런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궁금하다는 듯 내 입을 주시했다.
“식당 직원들이 해당 셰프를 뉴욕 연방법원에 고소했다고 하더군요. 그가 평소에도 아시안인들을 대상으로 맛없고 질 나쁜 부위를 대접하라는 주문을 했다면서요.”
“와우. 판타스틱한 소식이로군요!”
잠시 인종 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 후.
나는 그들이 내게서 듣고 싶어 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뉴미디어와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나와 오프라인의 경험 말이다.
예상했던 바와 같이 그들의 가장 큰 걱정은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이었다.
내가 말을 마치자 한 중년 남성이 손을 들었다.
“워싱턴포스트 CEO 도널드 우드워드입니다. 우리는 지금 심각한 경영난에 처해 있습니다. 종이 신문은 위기에 빠져 있죠. 그래서 말입니다만, 혹시 우리와 같이 연합군을 결성할 생각은 없습니까?”
“연합군이요?”
이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 * *
워터게이트 사건.
미국 역사상 대통령이 임기 도중 탄핵을 받아 물러난 유일무이한 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다.
내용은 이러하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당시.
미국 정부는 제37대 미국 대통령인 닉슨이 지휘하고 있었는데, 베트남전을 반대하던 이들을 막기 위해 불법으로 민주당을 도청하고 이를 은폐하려다가 발각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밝혀낸 장본인이 바로 워싱턴포스트였다.
미국의 대표적인 일간지이자 저널리즘의 상징인 이곳은 그러나 현재 심각한 경영난에 처해 있었다.
‘아마존의 창업자인 제프 베저스에게 헐값에 인수되었던 기억이 나는데 아직 그 전인가 보군.’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워싱턴포스트의 CEO인 도널드 우드워드에게 연합군의 의미에 관해 물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연합군이며, 연합군에는 누가 있다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