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순 없지만 몇몇 대형 신문사들과 논의 중입니다. 연합의 목적은 대형 플랫폼이 그동안 무단으로 사용해 온 뉴스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정당한 보상이요?”
나의 물음에 우드워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아시겠지만, 플랫폼은 우리 언론사들이 공들여 만든 뉴스에 아무런 보상도 지불하지 않은 채 사용자들을 끌어모으는 것은 물론 거기에서 막대한 광고 수익까지 얻고 있습니다! 이건 불공평한 일이죠.”
우드워드는 분개하며 말을 이었다.
“그것뿐입니까? 그들은 그들 자신조차 논리와 수식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알고리즘이라는 기술을 들먹이며, 자기들 멋대로 기사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편집권을 행사하는 것이며, 이로 인해 워싱턴포스트와 같은 거대 일간지의 기사가 발행인이 누군지도 모를 1인 블로거의 글보다 아래에 배치될 때도 많습니다.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흠. 취지는 동감하나, 그렇다고 1인 블로그가 대형 매체보다 기사가 나쁘다는 말씀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뭐라고요?”
“정보의 시대입니다. 누구나 인터넷 등을 통해 취재를 할 수 있고, 양질의 기사를 쓸 수 있죠. 꼭 메이저 매체 기자라고 더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그들은 기자로서 전문적인 훈련을 거친 경험이 없습니다! 데스크도 없고 팩트 체크도 어렵죠.”
“그런 만큼 더 심혈을 기울여 자료 조사에 몰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딱히 마감도 없고 검열도 없으니까요.”
나와 우드워드의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자 뉴욕포스트의 사장인 사라 젠슨이 입을 열었다.
“저도 미스터 우의 의견에 한 표 던집니다. 우리와 같은 거대 미디어가 1인 미디어에 비해 더 우월하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훈련된 기자들만이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나갔죠.”
“흥. 그런 식으로 전통적인 방식을 외면하다가는 금세 뉴미디어에 잡아먹히고 말 겁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러니 우리도 이렇게 뉴미디어를 대표하는 오프라인에 한 수 가르침을 청하고자 이 자리에 모인 것 아닌가요?”
그녀의 말에 우드워드가 고개를 저었다.
“세를 불려야 합니다. 가만히 있다가는 구글과 같은 곳에게 모두 빼앗기고 말 겁니다. 오프라인이 우리를 도와준다면 IT 기업에 빼앗긴 영광을 다시 찾아올 수 있겠죠.”
“IT 기업에 빼앗긴 영광이라. 우드워드 CEO께 묻겠습니다. 오프라인은 언론사입니까?”
나의 물음에 우드워드가 당황했다.
“아니, 그럼 언론사가 아니란 말씀입니까?”
“물론 언론사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지향하는 바는 그저 언론사가 아닙니다.”
“그럼?”
“우린 구글과 같은 IT 플랫폼이 되길 희망합니다.”
“뭐라고요? 그게 무슨!”
“디지털 시대에는 디지털 시대에 맞는 화법과 운영이 필요하죠.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 언론계를 배신하겠다는 말입니까?!”
“어감이 이상하군요. 제가 알기로는 워싱턴포스트가 만년 적자인 이유도 사양 산업인 신문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기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문이야말로 언론 사업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전통과 과거를 부정할 생각이 없습니다!”
우드워드가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그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부정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그에 따라 언론사의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종이 신문은 명백히 사양 사업입니다. 우리는 디지털을 강화할 필요가 있죠.”
“디지털도 중요하지만, 종이 신문 또한 중요합니다. 어떻게 본질을 버리고 허상을 좇겠습니까!”
“그런 이분법적 구분은 이제 무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있는 곳이 바로 진짜죠. 그리고 그곳이 바로 디지털이고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드워드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더니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흥. 내가 도대체 뭘 기대하고 여기에 왔는지.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는 주변인들의 뜨거운 눈총을 받으며 회의실에서 빠져나갔다.
‘워싱턴포스트가 괜히 헐값에 인수당한 게 아니었구나. 저런 사고방식으로는 생존이 어렵다. 고려 일보의 서동탁과 별다를 게 없군.’
* * *
워싱턴포스트는 빠졌지만 남은 매체들과는 즐거운 시간이 이어졌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디지털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뉴미디어 콘텐츠는 어떤 식으로 만들면 좋을지에 대해 장장 3시간에 걸쳐 뜨거운 토론을 벌였다.
“저희 뉴욕타임스는 미스터 우의 말처럼 디지털 인력을 채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내부에서도 이들을 우대하고,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아주 좋습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언론사에서 디지털 인력을 잘 뽑을지, 그들에게 적절한 동기 부여를 줄 수 있을지가 성패를 가르게 될 것입니다.”
“동감합니다. 글을 쓰는 기자도 중요하지만, 개발자와 디자이너의 역량이 필요하다는 것 역시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한참 열띤 토론이 진행되는 가운데.
미국의 일간지 중에서는 유일하게 전국을 대상으로 발행하는 USA투데이의 사장 데니스 로웬이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미스터 우. 우드워드가 갑자기 이곳을 떠났지만, 그가 꺼낸 이야기 중 논의가 필요한 부분은 있습니다.”
“네, 로웬. 말씀하세요.”
“플랫폼이 우리 언론사가 공들여 쓴 기사를 통해 광고 수익을 올리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사실 몇 달 전 그가 제게 전화를 걸어서 연합군에 동참해 달라고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로웬은 주변의 인물들을 잠시 둘러보고는 조심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여기 있는 대부분 사장님이 저와 비슷한 대답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은 시기상조라고요.”
“아직은 이라는 말은 언젠가는 연합군을 결성할 필요가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내 말에 로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쓴 기사로 수익이 발생하고 있다면 그것을 정당한 비율로 나눌 필요가 있죠. 다만 플랫폼을 통해 우리 홈페이지로 넘어오는 트래픽이 적지 않으니 일단은 지켜보고 있는 겁니다.”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었다.
그의 말처럼 분명 재주는 곰이 넘는데 돈은 되놈이 버는 상황이었다.
그런 한편, 사람들이 플랫폼 기사를 보고 언론사 홈페이지에 넘어오는 것도 사실이었으니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도 애매한 면이 있었다.
‘트래픽은 높이고 싶고, 광고 수익도 나누고 싶은데 그러자니 지나친 요구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거지.’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연합군은 필요합니다.”
“네? 아까는?”
“그건 우드워드가 1인 미디어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기는 했지만, 뉴스 사용료를 요구하는 것 자체는 동의합니다. 이를 위해 언론사가 연합해야 한다는 말도 맞고요.”
“이런. 우드워드가 성급했군요.”
“다만 대형 플랫폼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우리 쪽에서도 정교한 논리를 짜야 할 겁니다. 증거를 모으고, 어떤 식으로 광고 수익을 나누는 게 맞을지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죠.”
내 말에 모두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저희도 이에 대한 TF를 마련하고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떻습니까?”
갑작스러운 제안에도 모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좋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로군요. 저희는 동참하겠습니다.”
“시카고트리뷴도 함께하겠습니다.”
“그런데 워싱턴포스트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거긴 고민을 좀 해 보겠습니다. 전통적인 방식에 집착하는 것 같아서 우리와 함께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의견을 모아 보시죠.”
“알겠습니다. 미국에 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정신없으실 텐데 오늘 저희의 어리광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뭘요.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미국 방문 일주일 만에.
주요 일간지 여섯 곳과의 협업을 일궈냈다.
‘시작이 좋은데.’
* * *
주요 일간지 대표와의 미팅이 끝나고.
나는 홍지혜와 함께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함께 저녁으로 커피와 도넛을 먹었다.
“사무실에서 커피와 도넛이라. 진짜 미국에 온 기분이 드네요.”
“다른 직원들도 남았으면 피자를 시킬까 했는데, 오늘은 모두 칼퇴를 했네요.”
“여기도 야근 개념이 있나요?”
“회사마다 달라서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다만 한국과는 달리 상사가 늦게까지 남아 있다고 억지로 자리를 지키는 케이스는 없죠.”
“그건 나름 합리적이네요.”
“네, 저희 사무실 직원들도 바쁘면 다들 알아서 늦게까지 일을 하곤 해요. 오늘은 다행히 업무가 그렇게 많지 않았고요.”
나는 홍지혜가 가져온 도넛을 한입 베어 물었다.
생긴 건 한국에서 파는 도넛과 똑같았는데.
묘하게 향이 더 진하고 신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진짜로 맛이 더 있는 건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사대주의에 빠진 건지.’
내가 맛있게 도넛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홍지혜가 문득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대표님.”
“네.”
“저희가 미국의 주요 일간지 여섯 곳과 TF를 구축하는 것과는 별개로 워싱턴포스트에서도 자체적으로 연합군을 구성하지 않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겠죠. 오늘 우드워드의 모습을 보니 플랫폼과 IT 기업에 대한 억울한 마음이 한가득하더군요.”
“그래서 조금 걱정도 듭니다. 언론계가 파벌로 나뉘어서 서로 반목할까 봐요.”
“설마요. 우리는 단지 TF이고 저쪽은 확고한 반 플랫폼 세력을 구축하는 거잖아요? 반목까지 갈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그런데 취지가 비슷하다면 왜 우드워드의 제안을 거절하셨어요?”
홍지혜가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몇 가지 이유요?”
“회의 때도 이야기했지만 대형 플랫폼과 맞서려면 정교한 논리가 필요해요. 지금은 너무 막연하잖아요? 너희들이 우리 기사로 광고수익 내고 있으니 우리한테도 돈을 내놔라가 다이니.”
“그건 그렇죠.”
“대표적인 구글은 전 세계 IT 플랫폼의 정점에 있는 회사예요. 엄청난 내부 데이터가 있고, 데이터 분석가들과 공학자들이 있을 텐데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역공을 받겠죠.”
“네. 동감해요.”
“두 번째는 이와 비슷한 사례가 한국에서는 이미 있었으니까요.”
“네? 한국에서 이미 있었던 일이라고요?”
홍지혜의 두 눈이 솔방울처럼 커졌다.
# 5장 보스턴 마라톤 대회
Never는 자사의 포털에 ‘뉴스팩토리’를 운영하고 있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매체를 선정한 후 이들의 기사를 뉴스팩토리에 배치하면.
사용자가 기사 제목을 클릭하고 언론사 홈페이지로 이동하여 기사를 읽는 구조였다.
이때 Never에 기사를 제공한 언론사는 그 대가로 전재료를 받는 것은 물론 막대한 트래픽도 달성할 수 있었다.
사용자가 뉴스를 Never가 아닌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읽었기 때문이었다.
홍지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하지만 전재료와 광고 수익은 개념이 다르지 않나요?”
“물론 다르죠. 전재료는 콘텐츠 제공에 대한 대가로 고정 금액을 주는 거고, 광고 수익은 해당 뉴스를 통해 발생하는 광고 비용을 나누겠다는 거니까요.”
“그럼 구글에 광고 수익을 요구하는 것과 Never의 전재료를 비교할 순 없잖아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건 포털이 언론사에 수익을 배분한다는 겁니다. 그게 문제죠.”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게 왜 문제인지 잘 이해가 안 되네요.”
나는 의자를 그녀 쪽으로 돌리고는 말했다.
“콘텐츠에 대한 정당한 대가. 물론 좋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포털에 대한 의존도가 점차 높아지지 않겠어요? 사람들은 언론사 홈페이지가 아니라 포털에 몰리는데, 누가 자기 홈페이지에 신경 쓰겠어요. 포털에 기사를 내보내는 게 우선시 되겠죠.”
“음. 그런 부작용이 있겠네요.”
“네, 그렇게 되면 포털에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 위주로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요. 실제로 한국이 그렇고요. 무엇보다도 그로 인해 뉴스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가 떨어지니 그게 가장 큰 문제죠.”
홍지혜가 팔짱을 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지만 대표님도 뉴스 사용료를 받아야 한다며 TF 제안을 하셨잖아요? 뭔가 말이 앞뒤가 안 맞는 기분이에요.”
“장기적으로는 포털로부터 뉴스 사용료를 받는 게 맞아요. 포털에서 뉴스를 공짜로 사용하고 있는 건 맞으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단기적인 목적으로 포털에 뉴스 사용료를 받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한국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란 말이죠. 한국은 전 세계 언론의 좋은 표본입니다. 한국에서 누가 인터넷 주소창에 언론사 홈페이지 주소를 쳐서 기사를 보나요. 포털에 올라온 걸 보지. 언론사는 단순히 포털에 기사를 제공하는 콘텐츠 제공자에 불과합니다. 이게 맞는 방향일까요?”
“그건 아니죠.”
“네, 그러니 TF를 통해 차근차근 이쪽의 논리를 명확히 세우고 포털과 협상하는 게 중요하죠. 언론사 홈페이지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뉴스 사용료는 그 이후의 문제예요.”
“조금 알 것 같아요. 정당한 대가를 받는 건 맞지만, 아직은 이르다는 이야기죠? 포털에 종속되는 등의 부작용이 있으니?”
“맞습니다.”
나는 방긋 웃으며 남은 커피를 마셨다.
언론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이었지만.
탄탄한 IT 인프라 덕분에 적어도 인터넷과 연관된 분야에서는 최첨단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 탓에 언론은 포털에 종속되어 제구실을 못 하고 있지만.’
홍지혜는 이해되었다면서 내게 말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움직일까요? 지금까지 공짜로 쓰던 뉴스들에 돈을 주느니, 포털에서 아예 뉴스를 빼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건 어려울 겁니다.”
“왜요?”
“인간은 생존을 위해 외부의 정보를 어떻게든 취득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어요. 뉴스는 그 정보의 끝판왕이죠.”
“끝판왕이요?”
“네, 아주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고. 적절한 분량에 적절한 정보를 잘 녹여내었으니까요.”
“그래도 댓글을 보면 그 뉴스조차 제대로 읽지 않은 채 제목만으로 댓글을 달고들 하잖아요?”
“그래서 부제목이나 리드문을 통해 주요 정보를 상단에 배치하는 거죠. 그것조차 보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지만요. 아무튼 뉴스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아주 중요한 소스입니다. 포털 입장에서는 미끼 역할을 하고요.”
“음. 사람들이 뉴스를 보다가 다른 정보로 이동한다는 의미일까요?”
“맞아요. 게다가 뉴스가 없으면 포털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포털의 신뢰도 역시 떨어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