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대표님은 1인 미디어나 블로그가 언론 못지않게 좋은 기사를 생성할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일부죠. 대다수는 부정확한 소스를 바탕으로 만들었거나 자신의 의견일 뿐입니다. 나름의 의미는 있겠지만 훈련된 기자가 생성하는 언론 기사만큼은 아니니까요.”
홍지혜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휴. 잘 모르겠어요. 대표님 말은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 하는 느낌이 있거든요.”
“제 말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어느 한쪽이 더 우월하다는 말이 아니고요. 전통 매체에서는 만들 수 없는 기사를 1인 미디어가 만들 수도 있고, 각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공존하고 서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죠.”
“공자 말 같지만, 대표님이 하는 이야기니까 그냥 흘려듣기는 어렵네요. 알겠습니다.”
홍지혜가 배시시 웃으며 남은 도넛을 먹어 치웠다.
커피 한 잔에 뉴욕의 밤이 깊어갔다.
* * *
무라카미 소세키.
일본의 소설가로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갖춘 스타 작가였다.
지금 나는 보스턴의 한 호텔 로비에서 그와의 단독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마라톤 마니아로 알고 있는데 글쓰기와 마라톤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나의 질문에 소세키가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글쓰기는 결국 엉덩이 힘입니다. 책상에 오래 앉아 있어야 글이 나오니까요. 그 말인즉 글을 쓰기 위해서 체력은 필수란 말입니다. 체력 단련에 마라톤만 한 것이 없죠.”
“체력 단련에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텐데 마라톤과 처음 인연을 맺은 사유가 궁금합니다.”
“시작은 별 게 아니었습니다. 동네를 가볍게 뛰는 것에서 시작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순간 마라톤에 빠져들어 있었죠.”
“오늘 참여하시는 보스턴 마라톤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대회입니다. 단순히 취미 생활로 참가하셨다기에는 참가 자격이 만만치 않은데요.”
“하하. 맞습니다. 최소 3시간 25분 이내 기록이 필요하니까요.”
“그 정도면 프로 마라토너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실력이 아닌가요?”
“프로는 아니지만, 마라톤을 정말 좋아하니까요. 우 대표님도 만약 취미 생활이 없다면 마라톤은 멋진 취미가 될 겁니다.”
나는 그와 마라톤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화제를 돌렸다.
“작가님이 쓰신 신간이 얼마 전 발매되었습니다.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를 주인공으로 했다는 점에서 반응이 폭발적이었는데요. 주인공을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로 한 이유가 있을까요?”
소세키는 올해 초 자신의 13번째 장편 소설인 <붉은 꽃>을 세상에 선보였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일본인 작가가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썼다는 게 장안의 화제였다.
특히 한국과 일본 내부에서는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역시 소세키라는 반응이 압도적이었던 반면.
일본에서는 일본인의 수치라거나 관종이라는 모멸 섞인 시선도 적지 않았던 것이었다.
소세키는 잠시 창밖을 내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위안부 문제는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사자들도 이제 나이가 많아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죠. 그 전에 대대적인 조사가 있어야 합니다만.”
“작가님 말씀은 그러니까 더 늦기 전에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조사해야 된다?”
“그렇습니다. 일본 내부에서도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전 세계가 힘을 합쳐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한국인으로서 작가님의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이걸 꼭 한국과 일본이라는 국가적인 시각에서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의 측면에서 봐주셨으면 합니다.”
“이제 약속된 인터뷰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오늘 마라톤 완주 자신 있으신가요?”
“하하. 최선을 다해 봐야겠죠. 날이 덥네요. 마라톤 전에 오프라인과 인터뷰까지 했으니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오늘 바쁘실 텐데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오프라인은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신뢰하는 매체입니다. 오프라인과 인터뷰를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나는 그와의 인터뷰를 끝내고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는 손을 흔들며 호텔 위로 사라졌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유리잔으로 목을 축이자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홍지혜가 말을 건넸다.
“인터뷰 고생 많으셨어요, 대표님.”
“뭘요. 소세키 같은 스타 작가를 인터뷰할 수 있어 기분 좋네요. 그가 이 행사에 참여한다는 건 어떻게 알게 된 건가요?”
“그쪽에서 먼저 저희에게 연락이 왔어요.”
“소세키로부터요?”
“네. 오늘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데 혹시 인터뷰할 생각 없냐고요.”
“오프라인이 일본에서도 신뢰하는 매체 1위를 찍더니 소세키에게도 좋은 이미지를 줬나 보군요.”
나는 감탄하며 남은 물을 마저 마셨다.
소세키가 쓴 <붉은 꽃>은 한국에서 거대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일본인 스타 작가가 쓴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 매체와는 단 한 건의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와 인터뷰를 하고 싶었던 매체들이 부지기수였지만 그는 책으로만 판단해 줬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혹시 소세키도 우 대표님을 만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저를요?”
“그게 아니고서야 수많은 구애를 단칼에 뿌리치던 양반이 갑자기 먼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건 이상하니까요.”
“일본에서 오프라인의 이미지가 좋으니까 그랬겠죠.”
“단순히 회사 이미지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워요. 제가 알기로는 소세키는 매체 브랜드보다는 인터뷰어를 더 중요시한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요? 홍 지사장님 말이 맞다면 영광이군요. 그나저나 오늘 대회 시작이 정각이라고요?”
“네. 12시 정각입니다. 시간이 남았는데 어쩌시겠어요? 여기서 아침이라도 드실래요?”
“아뇨. 배는 안 고프네요. 저랑 근처 산책이라도 하실래요? 마라톤 대회 현장 사진도 필요하니 산책도 하는 겸 틈틈이 사진도 찍고요.”
“네. 좋아요!”
홍지혜가 밝은 표정으로 답했다.
* * *
보스턴은 뉴욕에서 차량으로 4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로 북대서양과 맞닿은 항구 도시였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주도이기도 한 보스턴은 미국에서도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였다.
“보스턴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죠?”
“네. 영국의 청교도들이 바다를 건너 정착한 곳이죠. 교육으로도 유명해요. 하버드, MIT, 버클리 음대 등 세계 유수의 대학들이 밀집해 있죠.”
“마라톤 대회도 유명하잖아요?”
“맞아요. 뉴욕, 런던, 로테르담과 함께 세계 4대 마라톤 대회로 불리니까요. 한국과도 인연이 깊어요. 이봉주 선수가 2001년 우승을 했고, 1950년 대회에서는 1위에서 3위까지를 모두 한국인이 싹쓸이했으니까요.”
“대단하군요. 관련해서 기사도 신경 써서 써 주세요. 제가 미국에 와서 발생한 가장 큰 이벤트이기도 하니까요.”
“걱정 마세요. 뉴욕에서 글 잘 쓰는 친구들로 다섯 명이나 데려왔으니까요.”
나는 홍지혜와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세계적인 대회라더니 대회가 열리기 전부터 열기가 대단했다.
참가자들은 물론 관중들로 보스턴은 축제 분위기로 가득했다.
그때 무거운 가방을 든 젊은 남성 둘이 나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텅!
가방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둔탁한 철제소리가 났다.
마치 둔기에 맞은 듯 어깨가 고통으로 아렸다.
내가 어깨를 어루만지며 그들을 돌아보자.
놀랍게도 그들은 나에게 사과는커녕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욕설을 뱉었다.
“X발. 한눈팔고 어디를 싸돌아다니는 거야! 중국인 새끼가 죽으려고 환장했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잘못을 한 건 내가 아니라 저들 아니던가.
내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사이.
홍지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뭐예요! 부딪힌 건 그쪽이면서 이렇게 무례한 경우가 어디 있어요!!”
“뭐라고? 어디서 중국인 계집이 함부로 입을 놀려!!”
“이거 말로 해서는 안 되겠네. 당신들 경찰에 신고할 거야. 콩밥 좀 먹어 봐야지 무얼 잘못했는지 좀 깨닫겠지.”
홍지혜가 화를 내자 사람들이 이쪽을 쳐다보며 관심을 보였다.
그러자 젊은 남성 둘은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퉤!”
그들은 험상궂은 얼굴로 우리를 노려보고는 바닥에 침을 뱉고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아이 진짜! 뉴욕의 식당에서도 그렇고 왜들 저렇게 못돼먹은 사람들이 많죠! 그리고 중국 사람 아니고 한국 사람이거든요!”
홍지혜가 멀어져가는 둘에게 소리쳤으나 공허한 울림으로 그쳤다.
확실히 그녀의 말처럼 이번 미국행에서는 그다지 좋은 경험을 하지 못했다.
‘인종 차별이 심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로 일상인 줄은 몰랐군.’
한참 동안 화를 내던 홍지혜가 나를 돌아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대표님, 어깨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대체 가방 안에 뭐가 든 거죠? 큰 쇳소리가 났어요. 엄청 아팠을 거 같은데…….”
“아픈 건 괜찮아요. 쇳덩어리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군요.”
“대회 당일이라 경찰의 방범 태세가 강화되었을 텐데 하필 주변에 경찰이 없네요. 어휴, 진짜!”
“쓸데없이 지체했네요. 이동하시죠.”
나는 멈추었던 발걸음을 움직여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찝찝했다.
홍지혜가 내 표정을 보고는 기분 풀라며 말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저런 찌질이들 하나하나 신경 쓰면 미국 생활 못 해요. 그냥 개가 짖는구나 하고 넘어가야 해요.”
“아뇨. 뭔가 이상해서요. 아까 두 사람 얼굴 기억나요? 동유럽인처럼 보였는데?”
“음. 모자를 쓰고 있어서 자세히는 못 봤지만 라틴족이나 게르만족처럼 보이지는 않았어요. 검정 머리에 눈도 갈색이었던 것 같고 슬라브족에 가까운 느낌?”
보스턴의 분위기는 대회를 앞두고 축제에 가까웠다.
그러나 조금 전 둘의 얼굴에서는.
불안감과 걱정.
그리고 알 수 없는 희열감으로 복잡다단한 표정이었다.
‘보스턴 마라톤 대회라. 참가한 적도 없는데 이상할 정도로 익숙한 이름이야.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내가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대해 기억을 되살리는 사이.
갑자기 무언가 툭 하고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옆에 있는 홍지혜를 붙잡고 소리쳤다.
“잠깐만요. 지금이 2013년 맞죠?”
“네? 네. 2013년 맞죠. 갑자기 왜요?”
“젠장! 홍 지사장님은 당장 경찰에 연락해 주세요. 테러범이 있다고요! 저는 저들을 쫓을 테니까 전화로 연락 주세요!”
“네? 테러요?!”
나는 즉시 사라진 젊은 남성의 뒤를 쫓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9.11 이래 최악의 테러가 바로 오늘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 * *
나는 나와 부딪힌 젊은 남성들을 쫓았으나 거리 어디에서도 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회 당일이라 그런지 인파가 많았고,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 나간 탓이 컸다.
시내 곳곳을 30여 분 정도 둘러보았을까.
홍지혜로부터 전화가 왔다.
“신고했나요?”
-네. 대표님. 그런데 경찰에서는 뭘 근거로 테러범이라고 확신하는지 묻는데 뭐라고 할까요?
“가방 안에 있던 쇳덩어리. 분명 압력솥 폭탄이 분명합니다.”
-압력솥 폭탄이요? 그게 뭐죠?
“설명하려면 기니까 그냥 압력솥 폭탄이라고 이야기하면 그들은 이해할 거예요.”
-대표님은 어쩌시려고요?
“나는 혼자서 계속 찾아볼게요. 홍 지사장님은 위험하니까 기자들과 함께 현장에 있지 말고 숙소에서 대기해주세요.”
-네? 아니 그럼 취재는 어떻게 하고…….
“저는 이만 끊겠습니다. 절대로 밖에 나오지 마세요. 두말 안 합니다!”
전화를 끊은 나는 잠시 벤치에 걸터앉아 숨을 돌렸다.
‘오래 전 사건이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분명 2013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났었다. 많은 사람이 죽고 큰 부상을 당해서 9.11 이래 최악의 테러로 기록된.’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정확한 사건 발생 시간이나 장소.
범인에 대해서는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기사로 다루었던 건 분명하지만 해외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던 만큼 관심이 덜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증거도 없이 대회 측에 무턱대고 곧 테러가 일어날 테니 대회를 중지해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어쩌지.’
그때였다.
누군가가 내 쪽으로 다가오며 아는 체를 했다.
조금 전 인터뷰를 하였던 소세키였다.
40대의 소세키는 원래 마른 체격이었는데 마라톤 복장을 하고 있으니 더더욱 앙상해 보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악수하였다.
“아니, 여긴 어쩐 일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