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는 우 대표님이야말로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취재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그게 사정이 있어서.”
“그래요? 저는 이제 곧 대회가 시작하니 슬슬 현장으로 가려고 나왔죠.”
소세키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한참이나 살폈다.
“오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려고 왔지만 제 본업은 소설가입니다.”
“네?”
소세키의 뜬금없는 이야기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는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사람 관찰하는 게 일종의 직업병이랄까요. 사람들 표정이나 행동 하나하나를 보고 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사정에 처했는지 짐작해 보는 게 제 일이죠.”
“그렇군요.”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지금 우 대표님 표정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남성의 모습이라서요. 무슨 일입니까?”
과연 스타 작가.
사람 표정만 보고도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니 역시 소설이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대회에 뛰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들어 보시겠습니까?”
“어떤 이야기보따리를 푸느냐에 따라서요?”
소세키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 * *
나는 그에게 조금 전 있었던 이야기를 전했다.
소세키는 팔짱을 끼더니 내게 물었다.
“그러니까 뭔가 불안해 보이는 동유럽 젊은이 둘과 어깨를 부딪쳤는데 가방 안에 압력솥 폭탄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이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나도 안다.
아무런 증거도. 근거도 없이.
단지 추측이라는 걸.
그러나 소세키의 대답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알겠습니다. 우 대표님이 그들을 수상하게 봤다면 수상한 인물이 맞겠죠.”
“네? 저는 단지 추측일 뿐입니다만.”
“소설가의 감입니다. 오늘 뭔가 보스턴의 공기가 심상치 않았거든요. 인터뷰하러 나오기 전에도 면도날이 부러지질 않나.”
“면도날이요?”
“네. 꼭 뭔가 큰일이 터지려고 하면 면도날이 부러지지 뭡니까. 하하. 저한테는 일종의 불행의 바로미터이기도 합니다만.”
“신기한 현상이네요.”
“게다가 우 대표님이 허튼소리를 할 분도 아닌 것 같고. 그럼 어쩌겠습니까. 믿어야죠.”
“소설가의 감이라니. 기자의 감처럼 직감의 일종인가 보군요.”
“의외로 잘 맞습니다. 주변에서는 저한테 점을 봐 달라는 요청도 있을 정도죠.”
“그럼 작가님. 혹시 이 주변 지리는 잘 아시나요?”
“물론이죠.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벌써 다섯 번째 참석입니다.”
역시 마라톤 마니아다웠다.
우리는 벤치에 주저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회 시작 시각이 다가올수록 거리는 형형색색의 마라톤 복장을 한 이들로 가득 찼다.
소세키는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벤치에 앉아서 그들을 찾을 수 있는 겁니까?”
“30분 동안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들의 그림자도 찾지 못했습니다. 헛되이 체력을 낭비하느니 그들이 어디에 폭탄을 설치할지 생각하는 게 더 효율적이겠죠.”
“역시!”
소세키는 짧은 감탄사를 내뱉고는 내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우 대표님이라면. 그들이 폭탄을 언제. 그리고 어디에 설치할 것 같습니까?”
“가장 피해가 많을 것 같은 장소와 시간에 설치하지 않을까요?”
“그렇죠? 압렵솥 폭탄이라면 저도 전작에서 다룬 적이 있어서 작동 원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압력솥 안에 각종 살상물을 넣고 휴대전화기 등을 이용해 원격으로 터트릴 수 있는 무기죠. 작지만 위력이 무척 높고요.”
“네. 압력솥 자체가 높은 압력을 견딜 수 있다 보니 그 파괴력이 더 클 겁니다.”
“만약 제가 범인이라면. 결승선 주변에 설치하지 않을까 싶군요.”
“결승선 주변이요?”
소세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마라톤 구간은 전체 42.195km에 이를 정도로 방대합니다. 물론 어느 구간이나 선수들과 이를 구경하려는 이들로 붐비겠지만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는 곳은.”
“결승선이다?”
“그렇죠.”
일리가 있었다.
결승선 부근에는 선수들을 축하하려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테니까.
“그렇다면 장소는 결승선 부근으로 해서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3, 4시간 후인가요?”
“일반인들은 그렇겠지만 프로 선수라면 2시간 이후 결승점을 밟습니다. 아마도 2시간에서 3시간 사이가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시간이겠죠.”
“경찰과 대회 측에도 그 시간과 장소를 알려 주는 게 좋겠군요.”
“그렇겠죠. 저랑 우 대표가 이야기하면 그냥 흘려듣지는 못할 겁니다.”
이럴 때 옆에 세계적인 소설가가 있다는 게 이리도 든든할 줄이야.
나는 그와 함께 대회 운영본부를 찾아 폭탄 테러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 뒤 결승선 부근으로 이동했다.
소세키는 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질지도 모를 상황에서도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나저나 작가님.”
“네?”
“저와는 오늘 초면이신데 걱정되지도 않으신가요? 이 대회를 오랫동안 준비하셨을 텐데 제가 한 이야기가 다 공상에 불과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후후.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것도 다 좋은 경험이지 않겠습니까. 다음 작품의 소재가 될 수도 있고요.”
괴짜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쉬이 예측할 수 없는 자였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번 사건이 잘 마무리되면. 혹시 저희 오프라인에 정기적으로 기고를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오! 오프라인에 기고를! 좋군요, 좋아요. 내용은 어떤?”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님 소설도 좋지만 에세이를 더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아하. 그러니까 정기적으로 에세이를 기고했으면 좋겠다?”
“그렇습니다.”
“하하. 생각해 보지요. 이번 사건이 잘 마무리된다면 말입니다.”
오래지 않아 나와 소세키는 결승선이 있는 코플린 광장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회가 시작하기 전 결승선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11시 47분.
‘대회 시작 13분 전이군.’
주변을 잘 아는 소세키는 근처의 높은 빌딩으로 올라가 망을 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결승선 부근을 왕복하며 수상한 사람은 없는지 살폈다.
‘곧 대회가 시작할 테고. 범인은 1, 2시간 내로 이쪽에 접근할 거다. 절대 놓쳐선 안 돼.’
* * *
결승선에 온 지도 두어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소세키는 보스턴 공공 도서관과 만다린 호텔 등을 왕복하며 높은 곳에서 아래를 살펴보았으나 수상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며 허탈해했다.
나는 소세키에게 미안한 심정을 전했다.
“미안합니다. 작가님. 괜히 제 억지에 응해 주셨는데.”
“하하. 아닙니다. 정말 재미있습니다. 보스턴 마라톤을 뛰지 못한 건 조금 아쉽지만, 그 이상으로 재미난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아무래도 다음 작품은 추리물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기자가 악당을 쫓는. 하하.”
그와 그런 농담을 하는 사이.
누군가가 결승선 부근에 설치된 쓰레기통에 무거운 물체를 버리는 게 보였다.
오전에 나와 어깨를 부딪쳤던 남성이었다.
나는 그를 가리키며 나지막이 외쳤다.
“저자입니다! 저 사람이 바로 그 남성입니다.”
나와 소세키가 즉시 그쪽으로 뛰어가자 남성이 가방째로 쓰레기통에 버리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거기 서!!”
소세키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지만.
마라톤을 좋은 기록으로 완주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순식간에 나를 앞장서서 뛰쳐나가더니.
도망가는 젊은 남성을 뒤에서 덮쳤다.
“뭐야! 이거 안 놔!!”
그가 소리치는 사이 나 역시 그를 붙잡아 바닥에 눕혔다.
“당신들 뭐야! 미친 새끼들! 좋은 말로 할 때 이거 놔! 다 죽어!!”
“조용히 하고. 또 다른 일행은 어디 있어!”
“무슨!!”
우리가 그를 제압하자 곧 경찰이 들이닥쳤다.
나는 경찰관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쓰레기통을 조심하라고 알려 주었다.
경찰이 젊은 남성을 데려가는 사이.
나와 소세키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갑자기 전력 질주를 한 탓에 아직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댔다.
“헉헉. 잘 뛰시던데요?”
“그러는 우 대표님도 잘 뛰던데요? 역시 젊음이 최고죠. 하하.”
그때였다.
쉬유유융! 펑!
마치 초음속 비행기가 낮은 고도로 지나갈 때 나는 굉음이 연이어 들리더니.
지진이 난 듯 주변이 울리고 메케한 연기가 높이 피어올랐다.
나는 곧바로 바닥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조금 전 붙잡은 젊은 남성이 가방을 버렸던 쓰레기통과 함께.
그곳에서 200m 정도 떨어진 아래쪽 길가에서도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 * *
축제 현장이었던 보스턴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대회는 즉각 중지되었고, 보스턴 경찰은 시민들에게 외출 금지 조치를 내렸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두 차례의 폭발이 동시에 일어났지만.
아직 결승선에 다다른 선수가 아무도 없었기에.
부상자가 7명뿐이었다는 점이었다.
원래 사건에서는 사망자가 3명, 부상자가 180명이 넘었던 것에 비하면 큰 진전이었다.
“운이 좋았어요. 당시 쓰레기통을 지나는 이들이 거의 없었거든요. 우 대표님은 좀 괜찮으세요?”
“네, 저는 문제 없습니다. 그들은 좀 어떤가요?”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있어요. 손과 발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하던데 쇠 구슬이 박혔다고 그러는 것 같았어요.”
“나쁜 놈들! 압력솥 폭탄에 쇠 구슬을 넣어뒀군요. 처음부터 대량 살상을 목적으로 만든 게 틀림없어요!”
나는 소세키와 함께 그가 머무는 호텔로 와서 홍지혜의 브리핑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 취재를 위해 경찰서에 있다가 이쪽으로 와주었다.
“경찰에서는 범인을 두 사람으로 보고 있어요. 대표님과 작가님이 붙잡은 녀석이 조하르 차르나예프. 체첸인으로 미국 시민권자예요.”
“또 다른 한 명은요?”
“그는 조하르의 형으로 타메를란 차르나예프예요. 현재 미국 정부에서 그를 잡기 위해 대규모 수사 인력과 첨단 장비를 동원하고 있어요.”
“제 불찰입니다. 설마하니 동료가 잡혔는데 그 자리에서 곧바로 폭탄을 터트릴 줄이야.”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대표님 덕분에 범인이 한 명 잡혔고, 큰 피해가 나지 않았잖아요!”
홍지혜의 발언에 소세키가 말을 보탰다.
“지금 두 분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자책하시는 거라면 절대로 그러지 마세요. 우 대표님은 영웅입니다. 덕분에 큰 피해를 미연에 막을 수 있었죠.”
“작가님 말이 맞아요! 제발 혼자서 모든 걸 다 떠안으려고 하지 마세요. 아덴만에서도 죽을 뻔하셨잖아요! 제발요!”
“걱정 끼쳐서 미안합니다. 혼자 다 떠안지 않을 테니까 이 손은 좀 놓아주시겠어요?”
나는 내 손목을 꽉 잡고 있는 홍지혜의 손을 가리켰다.
그러자 홍지혜의 두 볼이 새빨개지면서 뒤로 물러섰다.
그녀가 얼마나 손목을 세게 잡았는지 해당 부위가 불그스름했다.
“죄, 죄송해요. 대표님. 저도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