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습니다. 그나저나 경찰에서 우리를 찾지 않던가요?”
“아! 안 그래도 곧 연락을 주겠다고 했어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찾아온다더니.
홍지혜가 그 말을 하고 오래지 않아.
소세키의 호텔 방으로 FBI가 찾아왔다.
2m가 훌쩍 넘어 보이는 그는 자신을 미연방수사국 요원인 에드워드 스나이더라고 밝혔다.
“당신이 대회 운영본부에 테러범을 조심하라고 경고한 미스터 우입니까?”
“그렇습니다.”
“어떻게 테러범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는지 알려 줄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에게 오전에 있었던 일련의 상황에 대해 말해주었다.
스나이더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고작 그런 거로 그들이 테러범이라는 확신을 가졌다고요?”
“네. 문제가 있나요?”
“아뇨. 문제가 아니라. 그건 아주 고도로 훈련된 수사요원들이 범인을 잡을 때 쓰는 거라서 내심 놀랐습니다.”
“네?”
“수상한 사람을 특정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지요. 예를 들면 이상할 정도로 초조해하거나 근심 어린 표정을 짓는다거나, 더운 여름에 한겨울 파카를 입는 등 어색한 복장을 하거나 한 사람들 말이죠.”
“그렇군요.”
“둔탁한 물건에 부딪힌 다음 그들의 불안한 표정을 보고 그들을 테러범이라고 생각한 것은 물론 가방 속 물건을 압력솥 폭탄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정말이지 고도로 훈련된 수사요원들도 쉽지 않은 일이죠.”
“운이 좋았습니다.”
“오프라인 대표라고 하셨죠? 만약 미스터 우가 오프라인 대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당신 역시 테러범의 일행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네? 뭐라고요! 우리는 신고를 한 사람이에요!”
홍지혜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스나이더가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우리에게 거짓 정보를 흘려서 혼란을 주려고 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는 미국 시민권자도 아니고요.”
“이봐요! 지금 그의 활약으로 범인을 한 명 잡았다고요!”
“맞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폭탄이 터졌죠.”
“허! 이 사람이 진짜!”
“중요한 건 미스터 우가 기자라는 사실입니다. 수사요원은 아니더라도 사람과 사건을 관찰하고 추리하는데 능숙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납득했습니다. 그는 테러범과 일행이 아니라고요.”
“제가 테러범과 일행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말이죠.”
홍지혜는 사나운 눈빛으로 스나이더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스나이더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현재 사고 현장 부근의 CCTV 10개에서 총 500장의 화면을 확보했습니다. 혹시 이 중에 오전에 부딪혔다는 남성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더니 내게 수백 장의 정지 화면을 보여주었다.
“검거하신 동생 녀석은 현재 경찰에서 조사 중입니다. 녀석이 절대로 입을 열고 있지 않아서 다른 테러범을 잡는 데 애를 먹고 있죠.”
나는 오래지 않아 화면 속에서 형인 타메를란 차르나예프를 지목했다.
“이 사람입니다. 검정 모자에 검정 가방을 멘.”
“확실합니까?”
“네, 게다가 이걸 보세요. 그는 지금 엉뚱한 쪽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응? 그게 무슨 말이죠?”
스나이더가 흥미를 보이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CCTV 속 사람들은 모두 앞을 보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쓰레기통을 바라보고 있군요.”
“음. 정말이군요. 무언가 중요한 물건을 쓰레기통에 담은 것처럼 말이죠.”
그는 곧바로 상부에 이를 보고하더니 노트북을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내게 악수를 권하며 말했다.
“혹시라도 언론사를 그만두게 된다면 FBI에 지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는 언제나 인재를 환영하죠.”
“한국인이라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고려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려던 스나이더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보스턴 시민과 미국 국민을 대신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는 지금까지 불친절했던 태도와는 어울리지 않게 90도로 공손하게 인사를 하더니 사라졌다.
소세키가 그 모습을 보더니, 뒤에서 웃으며 중얼거렸다.
“으흠. 2m가 넘는 백인이 동양인에게 90도로 인사를 한다라. 좋은 아이템이로군.”
오프라인은 홈페이지에 보스턴 테러 특집 페이지를 개설하고는 광화문 물난리와 우면산 산사태에서 좋은 효과를 보였던 사용자 게시판을 설치하였다.
미국인들도 처음에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개인 계정에 관련 글을 올리다가 오프라인에서 게시판이 설치되자 이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편의점에 다녀왔는데 타메를란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두꺼운 옷을 입고 들어가는 걸 보았어!>
<나는 이 두 형제를 잘 알아. 우리 집 근처에 사는데 무서워죽겠어! 다행히 지금은 이쪽에 있지 않은 거 같아>
<오늘 낮에 웬 동양인 남자 둘이 범인 중 한 명을 잡는 걸 봤어. 얼마나 날쌘지 닌자가 따로 없더라. 엄청 멋있더라고!>
오프라인 게시판에 몰린 사람들의 제보 덕분이었을까.
타메를란 차르나예프가 검거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범행 다음 날 새벽.
ATM에서 돈을 빼다가 오프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제보를 보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붙잡혔다.
비록 그 과정에서 경찰관 한 명이 그가 쏜 총에 의해 부상을 입었지만, 큰 피해 없이 마지막 범인까지 검거할 수 있었다.
오프라인 미국의 홈페이지는 쏟아져 들어오는 사람들로 비명을 질렀다.
트래픽이 가파르게 상승했고, 이들 대부분은 오프라인에 고맙다는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 방문했다.
<오프라인 고맙습니다. 미국의 영웅!>
<오프라인과 미스터 우는 보스턴의 슈퍼히어로! 앞으로 저는 오프라인만 구독해 보겠습니다>
<사랑해요, 오프라인~♥ 당신들은 미국 주요 언론에서도 하지 못한 걸 직접 해냈어요!>
특히 나와 소세키가 범인을 쫓아 검거하는 모습을 찍은 영상은 미국의 주요 매체에서 계속해서 틀어 주는 바람에 호텔 밖을 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내게 악수를 청하고 사인을 요청하는 등 아는 체를 하였다.
소세키는 이런 인기가 싫지 않은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신작도 그렇고 다음 작품도 그렇고 미국에서 많이 팔리겠네요. 우세진 대표님 덕분에 책 홍보 한번 제대로 하고 갑니다. 하하.”
그는 에세이를 기고할 테니 꼭 연락을 달라고 말하고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소세키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작가다. 그의 에세이를 오프라인에 정기적으로 게재할 수 있다면 많은 이들이 우리 홈페이지에 방문해 그의 글을 읽게 되겠지.’
뿌듯한 마음으로 뉴욕으로 돌아와 모니터로 기사를 보고 있는데 유독 눈길이 가는 제목이 보였다.
<워싱턴포스트, 미디어 연합 구축해 구글에 압박 “뉴스 사용료 내야”>
워싱턴포스트는 중소형 매체 70여 곳과 연합 전선을 구축.
결국 플랫폼에 선전포고하였다.
그들은 자사의 홈페이지에 장문의 호소문을 작성.
자신들의 정당함을 알리는 한편 반대쪽에서는 날 선 비방글이 게시가 됐다.
<더 이상 공짜 뉴스는 안 돼…… 플랫폼은 협상에 나서야>
<민주주의 근간을 살리려면 플랫폼이 언론에 정당한 수익 제공해야>
<플랫폼이 말하지 않는 10가지>
연합은 물론 수많은 매체에서 그들의 주장을 기사로 실었다.
대중들은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기사가 쏟아지자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이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플랫폼이 언론사의 뉴스를 공짜로 사용하는 것은 사실이야. 그러니 당연히 대가를 지불해야지>
<야. 너 같으면 돈 주고 뉴스 보겠냐? 공짜니까 보는 거지. 언론사들이 오버하는 거야>
<기사에 자신이 있다면 유료화를 하라고 해. 정말 글이 좋다면 플랫폼이 아니라 그들의 홈페이지에서 돈을 내고 기사를 보겠지>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플랫폼은 요지부동.
아무런 말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합 이외의 매체에서는 이에 대해 기사로 다루지 않았고 연합을 떠나는 매체도 하나둘 늘었다.
홍지혜는 벌서 3곳이나 연합을 탈퇴했다면서 워싱턴포스트의 섣부름을 나무랐다.
“대표님 말씀처럼 충분히 준비하고 덤볐어야 했는데 워싱턴포스트의 좁은 시야가 아쉽네요.”
“그래도 나름의 역할을 해 줬네요.”
“나름의 역할이요?”
“네. 적어도 일반 대중들이 이 일에 대해서 인지는 했을 테니까요. 추후 준비를 잘해서 2차전을 했을 경우 여론이 플랫폼보다는 언론의 편을 들 가능성이 높아졌죠.”
“아하! 잘 모르는 사건에 관해서는 관심은 물론 관련 지식도 없으니까 아무런 의견도 표명하지 않겠지만, 이미 한 번 이슈화가 되었다는 의미일까요?”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러니 우리가 정말 잘 준비해서 플랫폼과 협상을 해야 합니다.”
“네. 대표님. 주요 매체와의 TF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요.”
구글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검색 플랫폼 서비스였다.
‘전 세계 검색의 90%가량이 구글에서 이뤄지고 있으니 말 다 했지.’
한국에서는 Never나 넥스트 등 토종 포털의 사용량이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그조차 젊은 세대들이 점차 구글을 선호하게 되며 큰 변화의 맞게 된다.
구글은 한국 포털과는 달리 맞춤형 정보는 적었지만 검색되는 데이터 양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구글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서비스의 입지가 달라질 것이다.’
어떻게 하면 최고 플랫폼인 구글과 협상을 유리하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사이.
백악관에서 연락이 왔다.
* * *
오바마가 미국 주요 언론사 7곳의 대표들을 백악관으로 불렀던 것.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USA투데이,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뉴욕포스트, 시카고트리뷴, 워싱턴포스트.
그리고 ‘오프라인’.
대통령과 주요 언론사 대표들의 만남은 연례행사 중 하나였는데, 미국에 본사를 두지 않은 언론사 대표를 초청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오바마는 나를 그의 왼쪽에 그리고 오른쪽에는 뉴욕타임스 대표를 앉혔다.
‘매체의 영향력 순으로 대통령과 가까이 앉는다고 하더니.’
옆자리에 앉은 오바마가 나를 보고 씩 웃으며 말했다.
“오프라인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매체 중 하나이니 특별히 모시게 되었습니다.”
“불러 주셔서 영광입니다.”
“미국에 오셔서 많은 사건을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맨해튼 식당에서 겪은 인종 차별은 미국 국민을 대신해서 사과를 드립니다.”
“아닙니다. 대통령님. 이미 TV를 통해 공개적으로 사과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일로 대통령께서 직접 TV에 나와 말씀하시고, 미국의 위대함을 느꼈습니다.”
“뭘요.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지 않습니까?”
“네?”
“얼마 전 있었던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닌자처럼 하늘을 날아 테러범을 잡으셨다고요.”
“과찬이십니다. 무라카미 소세키 작가의 공이 큽니다.”
“테러범에 대해 제일 처음 경고를 한 것도 미스터 우라고 들었습니다. 정말이지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나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 사건에 대한 감사는 이미 당시 현장에서 지나칠 정도로 많이 받았습니다.”
“역시 듣던 대로 겸손하시군요. 오늘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는 왼손으로 와인잔을 들고는 건배를 제의했다.
“오늘 이렇게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미국의 민주주의가 굳건히 지켜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기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치어스!”
“치어스!”
모두가 잔을 높게 올리며 건배했다.
언론의 미래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오가며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던 순간.
보좌관이 오바마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전했다.
오바마는 웃음을 보이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 여러분 몰래 모신 손님이 있습니다. 차가 많이 막혀서 이제야 도착했다고 하더군요.”
“손님이요?”
모두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오바마를 바라보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늘 만찬에 부른 이들은 이들이 전부일 텐데.’
궁금증이 놀라움으로 바뀌는 것은 순간이었다.
곧 보좌관과 함께 백발의 중년 남성이 만찬장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래리!”
언론사 대표들이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반겼다.
바로 구글의 공동 창업자이자 현재 구글의 CEO인.
래리 페이지였다.
그는 비어 있던 내 오른쪽 자리에 앉고는 내게 눈인사를 건넸다.
‘내 옆자리가 비어 있어서 의아했는데 백악관의 의도였구나.’
오바마가 래리 페이지를 짧게 소개하고는 그를 이 자리에 부른 이유에 대해 말했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에서 연합을 결성하여 플랫폼, 구글을 공격한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특별히 이 자리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그에게 하실 말씀이 많다고 들었습니다만 사실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