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5화 (175/200)

정선호가 입이 찢어져라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를 격하게 포옹했다.

나는 래리 페이지와 나눴던 대화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저희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입니다. 오랜 동맹인 오프라인은 물론 세계 최고의 IT 회사인 구글과의 협업이라니!”

“그동안 저희가 AI 개발에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였기에 그들도 우리를 파트너로 선정하지 않았겠습니까. DC 소프트 분들이 열심히 해 주신 덕분이죠.”

“래리 페이지가 얼마 전에 방한했을 때 만나 보려고 시도를 했는데 저 정도는 낄 수도 없더군요. 단번에 차였습니다. 하하.”

“그가 한국에 왔었나요?”

“아. 대표님은 미국에 계셔서 모르셨나요? 나름 이쪽 업계에서는 화제였답니다. 성삼 그룹도 만나고 Never 측과도 만났다고 하더군요.”

“그랬군요. 어쩐지 한국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한동안 AI에 대해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게임으로 화제를 돌렸다.

“요즘 사업은 어떠십니까? 게임이야말로 콘텐츠의 끝판왕. 종합 예술이지 않습니까.”

“나쁘진 않습니다. 매출도 좋고, 게임이야 워낙에 영업 이익률이 높은 편이니까요.”

“DC 소프트는 유독 내수 시장에 집중하더군요. 해외 시장도 노려봄 직한데 말이죠.”

일반적으로 게임사들은 국내 매출보다 해외 매출이 더 높은 편이었다.

‘사용자가 국내 유저보다는 해외 유저가 더 많은 탓이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그런데 유독 DC 소프트는 해외 매출이 다른 경쟁사에 비해 무척 낮아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팬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와 성원을 바탕으로 국내 게임사 매출 1위를 찍고 있는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하하. 이상하게 한국 시장이 좋아서 말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는 차츰 해외로 눈길을 돌려야겠죠. 아 참. 혹시 이 웹소설 알고 계십니까?”

“웹소설이요?”

그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오프라인 앱을 켜더니 웹소설 카테고리로 이동하여 한 웹소설을 보여주었다.

전세호 작가의 데뷔작.

<전지적 기자 시점>이었다.

회귀한 기자가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의 일류 국가로 만든다는 내용으로 오프라인은 물론.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 모든 웹소설 플랫폼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니, 갑자기 이 웹소설은 왜요?”

“반응이 엄청납니다. 주변에서도 다들 재미있다고 추천하더군요. 웹툰화는 물론 드라마화도 진행 중이라고 하고요.”

“맞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웹툰과 드라마를 함께 진행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역시. 이미 알고 계셨군요?”

“전세호 작가랑은 개인적으로도 연락하고 지내고 있으니까요. 제가 발굴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말이 빠르겠군요. 대표님. 이걸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갑자기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낸 정선호가 키보드를 두드렸다.

# 6장 서프라이즈

흡사 게임 ‘문명’을 보는 것 같았다.

턴제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주인공인 ‘미스터 김’을 플레이하며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의 국가로 부흥시키는 게 주 내용인.

“미스터 김은 회귀한 기자잖아요? 일반인들과는 다른 특수한 능력이 있나요?”

나의 물음에 정선호가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물론이죠. 언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이미 알고 있어서 사건에 대한 대응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그는 빠른 스킵을 통해 날짜를 2001년 9월 11일 오전으로 돌리더니.

세계 무역 센터와 펜타곤이 항공기에 부딪혀 불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아시겠지만 이날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하죠. 이 정보를 알고 있으니 주인공은 미리 사건을 막을 수 있는 거죠.”

“어떻게 말이죠?”

그는 다시 시간을 2001년 9월 11일 오전 6시로 되돌리더니.

“테러범들이 타는 항공기 4편을 띄우지 않도록 특별 미션이 부여됩니다. 주인공은 직원들과 함께 테러범들이 항공기에 타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어떻게요?”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할 수도 있고, 아니면 FBI와 협력해서 테러범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런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응? 그게 뭐죠?”

“이렇게 기사를 작성해서 경고하는 거죠. 테러범들이 항공기를 이용하여 테러한다는 제보가 있으니 각 국가의 보안을 강화해야 한다거나요.”

“으흠. 그럴싸하군요. 그런데 단지 기사만으로 그게 가능할까요?”

“일단 설정으로는 대한민국 최고의 언론사이니까요. 다른 국가에서도 그냥 무시할 수는 없다는 느낌이랄까요?”

“그렇군요.”

“하하. 뭐 어디까지나 게임이니까요. 실제로는 어렵겠지만 아무튼 이런 방식으로 세계를 구하고 각 국가 및 중요 단체의 호감을 얻어서 대한민국을 일류 국가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나는 그의 도움을 받아서 약 1시간가량 직접 플레이를 해 보았다.

‘단순 시뮬레이션 스토리 게임인 줄 알았더니 문명보다 그래픽이나 설정 등이 훨씬 더 치밀하군.’

한참 즐겁게 게임에 빠져 있는데.

2001년 12월 31일이 되자.

게임이 강제로 종료되었다.

“앗? 이게 뭐죠.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는데요?”

“하하. 아쉽지만 아직은 베타 버전이라서 2000년부터 2001년까지만 플레이가 가능합니다. 아직 모든 기능이 다 구현된 건 아니고요.”

“아쉽네요. 게임성이 무척 뛰어나던데.”

“우 대표님이 게임을 무척 잘하셔서 저는 그저 옆에서 지켜보는 게 다였네요. 게임 좋아하신다고 하더니 진짜였네요.”

“네, 어릴 때부터 게임을 많이 즐겼으니까요. 시드 마이어의 문명도 무척 좋아하는 게임이었는데 그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네요.”

“오! 역시! 문명도 아시는군요?”

“물론이죠. 처음에는 문명의 카피 버전인가 싶었는데, 그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습니다.”

“문명을 많이 참고한 건 사실입니다만 문명의 아류라는 이야기를 들을 순 없으니까요.”

나는 그와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궁금증을 물었다.

“그런데 이건 한국에서만 발매되나요?”

“아뇨, 전 세계 론칭을 계획하고 만들고 있습니다만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주인공이 한국인이잖아요? 플레이어가 한국 사람이고 세력도 대한민국뿐이라서 해외 사람들이 플레이하기에는 조금 몰입감이 떨어지지 않을까 해서요.”

“이야. 그런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 써 주시다니. 역시 대표님에게 오늘 이 게임을 보여 드린 게 신의 한 수였습니다. 물론 내부에서도 그런 부분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그럼?”

“코에이의 ‘삼국지’나 ‘신장의 야망’ 시리즈는 중국과 일본이 배경이지만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죠. 대표님도 플레이해 보지 않으셨나요?”

코에이의 ‘삼국지’나 ‘신장의 야망’은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많은 팬을 보유한 게임이었다.

‘내 또래 중 삼국지를 안 해 본 이들은 거의 없지.’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답했다.

“그렇지만 그건 여러 명의 영웅 중 한 명을 고를 수 있거나 가상의 인물을 만들 수 있지 않습니까? 이 게임은 주인공이 단 한 명뿐이고요.”

“맞습니다. 그렇지만 조금 전에 보셨다시피 9·11 테러 등 세계적인 사건이 함께 나오니까요. 그런 부분에서 아마도 몰입감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유명한 사건들을 노출해서 현실감을 높이겠다는 뜻이로군요.”

“네, 인트로 영상도 영화처럼 멋있게 만들어서 상황에 대한 정보도 전달하고요.”

“좋네요. 텍스트보다는 영상이 아무래도 이해도가 높겠죠.”

“그렇죠. 그리고 주인공이 누가 되었든. 어떤 국가가 되었든. 유저가 자신이 플레이하는 세력을 1등으로 만들겠다는 건 어떤 게임이든 동일합니다. 중요한 건 유저가 게임에 몰입해서 자신의 세력을 성장을 시킨다는 데 있으니까요.”

“이해했습니다.”

게임의 아쉬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던 나는 언제 개발이 완료되는지 물었다.

“그럼 이걸 언제 론칭할 예정입니까?”

“현재 진행 수준으로는 내년 초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내년 초면. 웹소설은 완결이 날 테고. 웹툰이나 드라마가 진행 중이겠군요.”

“아마도요? 동시에 론칭이 되는 것보다는 순차적으로 오픈이 되어서 흥행을 잇는 게 좋겠죠. 그래서 말인데 혹시 저희가 이 IP를 가지고 게임을 개발해도 괜찮겠습니까?”

“네? 그럼 IP 논의도 하지 않고 게임을 이 정도로 만드셨다는 건가요?!”

나는 깜짝 놀라 정선호에게 되물었다.

전세호 작가가 쓰고 있는 <전지적 기자 시점>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건 작가 본인이었다.

다만 2차적 저작물의 작성권은 오프라인이 보유하고 있는 상황.

따라서 오프라인과의 논의 없이는 <전지적 기자 시점>의 IP로 외부에서 다른 콘텐츠를 만드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선호는 씩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대표님께서 허락해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고 프로젝트를 제 독단으로 진행했습니다. 더 늦어지면 타이밍이 나빠질 것 같아서 말이죠.”

“타이밍이요?”

“웹소설은 아마 올해 완결이 나겠죠. 웹툰이나 드라마는 올해 중 나올 테고요. IP 협의가 늦어지면 개발 기간을 고려해서 2, 3년 뒤에나 게임이 나올 텐데 그럼 너무 늦어질까 봐 우려되었습니다. 차는 떠났는데 뒤늦게 손을 흔들까 봐 말이죠.”

그의 말처럼 이왕이면 인기가 있을 때 게임이 나오는 게 좋았다.

‘아무리 과거에 흥행했던 IP라고 하더라도 너무 시점이 늦어지면 독자들의 관심에서 떠날 가능성이 높으니까. 특히나 웹소설은 한 해에도 엄청나게 많은 작품이 나오고 있다. 늦어질수록 손해인 건 맞아.’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특히나 웹소설 원작 게임 중 지금까지 흥행에 성공한 게임이 없기도 했고요.”

“네. 그래서 저희는 조금 빠르게 움직여 봤어요. IP가 확보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미리 움직인 점은 사과드립니다만 대표님이라면 저희와 협업해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요.”

“거참. 제가 만약 거절하면 어쩌시려고 그랬습니까.”

“어쩌긴요. 프로젝트 팀을 해체했겠죠. 지금까지 만들어 둔 결과물은 모두 허공으로 날아가고요.”

“휴. 못 말리겠군요, 정말. 이 일에 대해서는 제가 웹소설 팀과 전세호 작가에게 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꼭 미리 말씀 주셨으면 좋겠군요.”

“대표님을 놀라게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말이지 엄청난 퀄리티의 게임이었다.

장담할 순 없지만 적어도 문명 이상의 돌풍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 * *

미국에 온 지도 한 달하고 절반이 지났다.

5월의 뉴욕은 한국의 가을 날씨와 비슷했다.

약간 쌀쌀한 느낌이 드는 가운데 밖을 돌아다니기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나는 무료로 운영되는 스테이튼 아일랜드 페리를 타고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층 건물 뒤로 넘어가는 태양이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너무 아름답네요. 제주도에서 본 석양도 예뻤지만 지금 석양도 너무 황홀해요.”

“늘 보는 석양이지만 옆에 세연 씨가 있으니까 더 아름답게 느껴지네요.”

“치. 못 보는 사이 접대 멘트가 많이 늘었는데요?”

강세연이 내 볼을 살짝 꼬집으며 웃었다.

“갑자기 연락도 없이 방문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부모님에게는 말씀드리고 온 거죠?”

“제가 무슨 한두 살 어린애도 아니고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올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도 한집에 살잖아요? 설마 이야기 안 하고 온 건가요?”

“헤헤. 설마요. 다 말씀드리고 왔죠.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시던데요? 우 서방 잘 챙겨 달라고.”

“우, 우 서방이요?!”

“왜요? 우리 약혼도 안 사인데. 우 서방 맞죠.”

나는 땀을 흘리며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아직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우 서방이라니.

‘아무튼 세연 씨도 그렇고 정선호 회장도 그렇고. 뭘 그렇게 나한테 서프라이즈를 하고 싶어서 안달인지.’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는 사이.

멀리서 자유의 여신상이 보였다.

“와! 자유의 여신상이다! 세진 씨 저기 봐요! 자유의 여신상이에요!”

강세연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세연 씨 뉴욕 와 봤다고 하지 않았어요?”

“물론 여러 번 와 봤죠.”

“그럼 자유의 여신상은 이미 본 거 아니에요?”

“지금은 옆에 세진 씨가 있잖아요? 예전에 본 거랑 느낌이 많이 다른데요?”

강세연의 사랑스러운 표정에 나는 석양을 뒤로한 채 깊은 입맞춤을 나눴다.

“사랑해요, 세진 씨.”

“저도요. 갑자기 와서 놀랐지만 고마워요. 너무 보고 싶었어요.”

“일은 괜찮아요? 저번에 보니까 폭탄 테러범도 잡고 오바마도 만나고. 엄청난 사건들이 많았던데.”

“네, 보다시피 저는 멀쩡해요. 미국에서의 일도 잘 진행되고 있고요.”

“혹시…….”

“혹시?”

갑자기 강세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불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홍지혜 기자랑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홍 지사장이랑요?”

“네, 그게. 젊은 남녀가 같이 붙어 있으면…….”

“하하. 뭐에요. 지금 저 의심하는 거예요?”

“아뇨. 그건 아닌데, 그래도 주변에서 말들이 많아서요.”

“뭐라고요?”

“홍 기자가 세진 씨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어쩌려고 혼자 미국에 보냈냐고 타박하기도 하고요.”

나는 그녀가 너무 귀여워서 꽉 안아 주고 싶었지만, 일부러 팔짱을 끼고는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웃 오브 사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라는 말도 있는데 말이죠.”

“서, 설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