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6화 (176/200)

강세연은 뒷걸음질을 치더니 충격에 빠진 듯한 얼굴을 보였다.

나는 그녀의 두 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설마요. 저한테는 세연 씨뿐입니다. 홍 지사장하고는 회사 동료 사이일 뿐이고요. 아무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요.”

“흥! 뭐야 절 놀린 거예요!”

“세연 씨 표정을 보면 너무 귀여워서 어쩔 수가 없으니까요.”

황금빛 석양이 지고 땅거미가 내려오면서 맨해튼의 고층빌딩들이 서로 자기가 더 아름답다는 듯 불을 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세연이 내 귀에 속삭였다.

“세진 씨. 저 지금 세진 씨랑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어요.”

강세연은 내 손을 잡고는 맨해튼 중심거리에 있는 한 자동차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말발굽 모양의 입구가 인상적인.

프랑스의 고급 자동차 브랜드인 ‘부가티’였다.

넓은 공간에 비해 전시된 차들은 모두 2개에 불과했다.

하얀색과 검은색으로 모델은 동일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강세연에게 물었다.

“여긴?”

“세진 씨랑 꼭 와 보고 싶은 곳이요.”

“여기를요?”

“네.”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며 딜러에게 준비된 차를 보여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딜러가 우리를 일반 전시장이 아닌 매장 안쪽으로 이끄는 것이 아닌가.

복도를 따라 걸은 딜러가 앞에 있는 초록색 버튼을 누르자.

위잉~

셔터가 걷히면서 빨간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스포츠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가티 특유의 말발굽 그릴과 함께 부드러운 곡선의 차체는 날렵하기 짝이 없었다.

강세연은 차를 가리키며 내게 말했다.

“당신을 위해 준비한 제 작은 선물이에요. 사양 말고 받아 주세요.”

“이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 부가티 베이런 슈퍼 스포츠예요.”

“이게 제 선물이라고요?”

“물론이죠.”

그녀는 딜러에게서 차 키를 받아서는 내 손에 꼭 쥐여 주었다.

운전석 문을 열자 세련된 검은색 대시보드에 백금으로 도금된 핸들과 센터패시아가 화려함을 뽐냈다.

차 키를 꽂고 시동을 켜니 전시장이 폭발할 것 같은 엔진 소리에 절로 긴장감이 들었다.

‘속도계가 420㎞까지 있다니. 이게 가능한 속도인가.’

나는 창문을 열고 딜러에게 물었다.

“최고 속도가 몇 ㎞까지죠?”

“뭐라고요?”

“최고 속도가 얼마냐고요.”

그러나 딜러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엔진소리가 너무 커서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시동을 끄고는 다시 물었다.

“이 차 최고 속도가 몇 ㎞냐고요.”

“아. 최고 속도요. ㎞라. 잠시만요. 마일을 ㎞로 변환하면……. 음 415㎞/h까지 가능합니다.”

“415㎞요?!”

“네. 원래 430㎞/h까지 가능한데 속도 제한 장치가 걸려 있어서 415㎞/h가 최고 속도죠.”

“그런 속도로 달려도 괜찮은가요?”

“하하. 부가티의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차이니까요. 400㎞/h로 달려도 완전히 정차하는 데 10초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10초라고요?”

“네. 최첨단 스포일러가 작동하거든요.”

나는 차에서 내려 딜러가 설명하는 후방 스포일러를 살펴보았다.

딜러가 웃으며 말했다.

“마음에 드시나요?”

“이런 걸 선물로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여자 친구분이 정말 멋지시네요. 이 차 가격만 2.4 밀리언 달러랍니다. 후후. 너무 부럽습니다.”

1 밀리언 달러가 대략 10억 원이니.

2.4 밀리언 달러면 한화로 25억 원을 가볍게 넘는 금액이었다.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강세연을 바라보았다.

빌딩 한 채 가격이 아니던가.

그녀는 흐뭇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선물 괜찮죠?”

새삼 그녀가 재벌가의 외동딸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저녁이었다.

* * *

강세연이 미국을 떠나고 오래지 않아.

오프라인은 충격적인 소식을 전하며 미국의 언론 지형을 흔들었다.

<오프라인, 136년 전통의 워싱턴포스트를 2억 달러에 인수!>

<투자사에는 한국의 대기업 TP 그룹 참여 눈길…… 우세진 대표와 각별한 사이>

<오프라인 우세진 대표 “워싱턴포스트 인수 기뻐…… 세계 최고 미디어 그룹 될 것”>

나는 강세연이 떠나기 전 그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였다.

“세연 씨. 슈퍼카 너무 고마워요.”

“뭘요. 택시 타고 다니면 또 인종 차별당할지도 모르잖아요? 좋은 차 타고 다니는 게 세진 씨 안전에도 좋을 것 같아서 말이죠.”

“이런 선물까지 받고 또 이런 부탁을 하기가 좀 그렇긴 하지만.”

“뭔데요?! 어서 빨리 말해 봐요!”

강세연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돌아가면 강규현 회장님에게 이 말씀을 좀 전해 주시겠어요?”

“아버지에게요? 어떤?”

“미국의 언론사 하나를 인수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요즘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 있어서 네임밸류에 비해서는 무척 저렴한 곳이거든요.”

“거기가 어딘데요?”

“워싱턴포스트요.”

“네?!”

그녀는 깜짝 놀라며 손으로 입을 막았다.

“제가 곧바로 강 회장님에게 전화하는 것보다는 세연 씨가 슬쩍 운을 띄워 준 다음 제가 전화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음. 알겠어요. TP 그룹에서 투자하면 좋겠다는 뜻이죠?”

“맞아요.”

“그런데 목적이 있나요? 워싱턴포스트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언론사인 건 맞지만 지금 적자라고 그러셨잖아요? 아버지가 적자인 기업을 인수하는 건 탐탁지 않아 하실 것 같은데.”

“이유가 있어요.”

“이유요?”

나는 그녀에게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하려는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오프라인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인지도 면에 있어서는 한계가 있어요.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다고 하면 그들의 명성을 등에 업을 수 있겠죠.”

“음. 그리고요?”

“그로 인해 미국 내에서의 영향력도 커질 테고요. 특히 워싱턴은 미국의 수도잖아요? 미국의 정치를 좌우하는 워싱턴 내에서 워싱턴포스트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이해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워싱턴포스트에는 수많은 자료와 함께 능력 있는 기자들이 많아요. 그들이 우리 쪽에 합류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세울 수 있습니다.”

내 말에 강세연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세연이 아버지인 강규현에게 귀띔을 한 덕분인지 이후는 무척 빠르게 진행되었다.

TP 그룹은 이번 인수에 무려 1,500억 원을 통 크게 내놓았고, 오프라인은 나머지 500억 원을 보태 인수 자금인 2,000억 원을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었다.

미국의 매체들은 오프라인이 왜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하려 했는지 그 의도에 대한 다양한 기사를 내놓았다.

<오프라인의 야망…… 미국 제1 언론사 지위 노려>

<우세진은 구글에 맞서 번지수 잘못 찾은 워싱턴포스트를 딱하게 여긴 것이 분명>

<전통의 워싱턴포스트가 단돈 2억 달러…… 매력적인 아이템이었을 것>

틀린 말도 있고 맞는 말도 있었지만.

내가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가장 큰 까닭은.

‘내가 사지 않았어도 곧 아마존의 제프 베저스가 워싱턴포스트를 싼값에 인수했을 것이다. 좋은 매물을 경쟁자에게 놓칠 순 없지.’

그렇다.

아마존의 창업자인 제프 베저스는 2013년 8월, 워싱턴포스트와 워싱턴 지역지 6곳을 2억 5천만 달러에 인수하고는 적자에 허덕이던 매체를 디지털 회사로 변모시키며 언론계의 주목을 받았다.

실력 있는 기자들과 그들이 만든 콘텐츠가.

최첨단 정보 기술 및 빵빵한 재정 지원과 만나니 시너지 효과가 대단했던 것이었다.

게다가 워싱턴포스트는 수년간 적자에 허덕이면서 가치가 무척 떨어져 있었다.

‘워싱턴포스트가 잘나갈 때만 하더라도 2억 달러는 불가능한 숫자였겠지.’

오프라인이 보도 자료를 통해 워싱턴포스트의 인수 사실을 널리 알리자.

워싱턴포스트의 CEO인 도널드 우드워드 역시 즉각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언론사인 오프라인에 워싱턴포스트를 매각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랫동안 경영난에 허덕였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더 좋은 소유자를 만나 워싱턴포스트가 승승장구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그러나 경영권과 편집권이 명백하게 분리되어 있는 미국 언론답게 워싱턴포스트의 내부는 딱히 우리의 인수 발표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홈페이지에 이런 기사를 메인으로 실었다.

<이번 매각은 136년이라는 오랜 전통과 미국 내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워싱턴포스트에게는 무척이나 갑작스럽고 놀라운 일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런 매각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앞길에 신의 축복이 있기를.>

워싱턴포스트 인수 발표 다음 날.

나는 홍지혜와 함께 워싱턴 DC 중심에 위치한 워싱턴포스트 본사를 방문하였다.

고풍스러운 느낌의 본사 건물은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기자들이 모여 있는 편집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많은 기자가 우려 섞인 표정으로 나와 홍지혜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우세진입니다. 너무 그렇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러분들을 잡아먹으려고 인수한 게 아니니까요.”

“킥킥.”

내 말에 몇몇 기자가 웃음을 보였다.

“워싱턴포스트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하나 있죠. 맞습니다. 워터게이트입니다. 세계 제일의 권력자인 미국 대통령을 하야시킨 사건이니까요.”

내가 워터게이트라는 단어를 꺼내자 사람들의 눈빛이 번쩍였다.

워터게이트는 워싱턴포스트 사람들의 영광이자 자부심이었다.

“저희 오프라인이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이유는 오직 단 하나입니다. 디지털 퍼스트. 콘텐츠는 영원합니다. 다만 그 방식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었을 뿐이죠.”

내가 그 말을 마치기 무섭게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내가 그를 가리켜 손짓하자 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편집국의 조엘 메이슨 기자입니다. 신임 CEO에게 궁금한 게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조엘. 궁금한 게 무엇인가요?”

“워싱턴포스트는 오랫동안 신문사로서 아날로그를 고집하였습니다. 그 결과 심각한 경영난에 처한 것은 사실이나 우리는 우리의 방식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혹시 신문 사업을 접으실 계획이 있습니까?”

그의 물음에 모두가 나의 입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는 빙그레 웃고는 천천히 답했다.

“그럴 리가요. 신문 사업을 접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렇지만 디지털 퍼스트라는 말에는 아날로그 사업은 모두 접겠다는 의미로 들리는데요?”

“아뇨. 신문 사업은 지금처럼 유지하되 디지털에서도 통하는 기사를 작성하자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서 단순히 기자가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뭐가 좋을까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말을 이었다.

“애플에서 새로운 아이폰을 발표했다고 합시다. 보통 어떤 방식으로 기사를 쓰죠?”

“애플의 발표 자료를 참고해서 기사가 글을 씁니다. 사진도 첨부해서요.”

“그렇죠? 하지만 앞으로는 개발자와 디자이너 그리고 광고 담당자들과 함께 기사를 쓰게 될 겁니다.”

“네? 그게 무슨?”

“기사 작성에 앞서 어떤 인포그래픽을 추가할지 디자이너와 논의하고 어떤 광고를 붙일지 광고 담당자와 의논을 해야죠. 또한 어떤 디바이스에 어떤 형태의 기사를 쓰고, 어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할 것인지 개발자와 논의를 해야 합니다.”

“기사는 속보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 것들을 논의했다가는 기사를 내보낼 타이밍을 놓칠 겁니다!”

메이슨은 격앙된 태도로 내게 맞섰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뇨. 디지털 시대에 속도는 더 이상 언론의 미덕이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퀄리티와 기술이 승부수죠. 물론 좋은 글은 기본 전제입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정보가 넘치는 이 세상에서 다른 미디어와 경쟁을 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워싱턴포스트에는 그런 직책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디지털에 대한 노하우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 오프라인이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겁니다. 저희는 디지털 분야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라 자부하는 곳이니까요.”

내 말에 아무도 반론을 꺼내지 못했다.

그만큼 오프라인은 뉴미디어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전 세계 언론사 중 최고라는 인식이 언론인들에게도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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