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7화 (177/200)

그때 또 다른 이가 높이 손을 들었다.

도수가 높은 안경을 쓴.

인도계 여성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라자 쿠마르.

워싱턴포스트에 몇 안 되는 개발자 중 한 명이었다.

“개발 쪽을 강화하겠다는 말에 무척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저희 개발진의 실력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배우고 싶은 마음은 많지만, 지금까지의 환경은 그걸 제한하고 있었죠.”

그녀의 말에 주변 기자들의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다만 불안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혹시 저와 같은 사람들은 회사를 나가야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죠.”

이번에는 모두가 그녀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개를 젓고는 답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인수 조건에는 여러분의 고용 승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향후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여러분들이 먼저 나갈 의사가 없다면 저희가 여러분들을 해고할 이유는 전혀 없죠.”

“그 말이 정말인가요?”

“물론이죠. 제 말을 믿으세요, 라자.”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여기 오기 직전까지 제 자리의 짐을 정리하고 있었답니다. 곧바로 해고당할 줄 알았거든요.”

그녀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나 역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당신의 능력을 보여 주세요. 앞으로 워싱턴포스트의 주역에는 기자뿐 아니라 개발자 역시 당당히 자리하게 될 겁니다.”

“고맙습니다. 최선을 다할게요!”

* * *

나는 기자들과 만남에 이어 워싱턴포스트의 편집국장인 마틴 홀랜드와 독대했다.

그의 사무실은 검소한 그의 성격을 반영한 듯 단출하기 그지없었다.

“사무실이 무척 썰렁하군요.”

“기사를 쓰는 데 방해되는 요소는 모두 치웠으니까요.”

홀랜드의 말투는 지나치게 사무적이었다.

“이번 인수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라자의 말처럼 불안한 건 사실입니다. 오프라인은 뉴미디어. 워싱턴포스트는 전통의 올드미디어이니까요.”

“한국 속담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옛것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요?”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죠.”

“그렇다기에는 적자가 너무 오랫동안 이어지지 않았나요?”

“그게 저희가 잘못되었다는 걸 증명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홀랜드는 고집 센 사람이었다.

‘하긴 그런 고집이 있으니 편집국장을 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앞쪽으로 허리를 살짝 구부리고는 그에게 말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일 중요한 건 자신에 대한 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속 가능성이 없다면 생존할 수 없죠. 돈을 벌지 못하는 매체가 왜 생존해야 하나요?”

“저널리즘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명예와 소명 의식 없이는 기자를 할 수 없는 법이죠.”

그가 마음에 들었다.

CEO에게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게 밝히는 것은 물론.

그가 가지고 있는 언론에 대한 철학 또한 일부 동감하는 바였다.

‘그렇다고 여기서 얕보일 순 없지.’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는 밑 빠진 독에 돈을 붓기 위해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게 아닙니다. 앞으로는 수익을 내셔야 할 겁니다.”

“수익적인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뇨. 지금의 방법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디지털 퍼스트를 기조로 앞으로 워싱턴포스트는 디지털 매체로 거듭나야 합니다.”

“휴. 이런 말을 드리고 싶진 않았지만, 다른 사람을 알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저는 그런 일을 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닙니다.”

홀랜드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나는 탁상을 거세게 쳤다.

“마틴! 당신이 조금 전까지 이야기했던 소명 의식과 명예는 고작 그것밖에 안 되는 것이었나요?!”

“네?”

“당신이 정말로 저널리즘에 대한 열의가 있고 워싱턴포스트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당신은 워싱턴포스트의 편집국장이 아닙니까!”

“저는…….”

“나는 당신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틴. 우리에게 힘을 실어 주세요.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의 꿈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 말에 홀랜드가 고개를 저었다.

“오프라인은 세계 최고 언론사가 목표가 아닙니다.”

“그럼?”

“세계 최고 IT 플랫폼. 거기에는 기사는 물론이고 웹소설, 웹툰, 드라마, 영화 등 온갖 디지털 콘텐츠가 유통될 것입니다.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걸. 오프라인은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홀랜드의 동공이 커다랗게 확장되었다.

“그럼 워싱턴포스트는 거기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거죠?”

“당신들의 전통과 경험. 그리고 관록을 산 겁니다.”

“세계 최고의 IT 플랫폼이라.”

홀랜드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미난 이야기를 던져 주었다.

* * *

그는 자신의 책상에서 자료 뭉치를 꺼내더니 내게 건네주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무언가 복잡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게 뭐죠?”

“대표님은 자신이 그토록 바라는 디지털 세상이 사실은 국가로부터 사찰당하고 있다면 어떠실 것 같습니까?”

“사찰이요?”

나는 서류를 넘기며 되물었다.

서류는 일종의 감시 프로그램인 ‘프리즘’에 대한 내용으로 빼곡했다.

홀랜드는 한 손으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정보기관인 NSA의 내부 고발자로부터 비밀리에 받은 자료입니다. 우리의 자유가 국가로부터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이죠. 인터넷 방문 기록은 물론 누구와 통화를 했는지, 개인 카드의 비밀 번호조차 말이죠.”

“국가가 개인의 정보를 대량으로 수집한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고도화된 프로그램을 통해서 무엇이든 감시할 수 있죠. 일반인은 물론이고 타국의 수장까지 말입니다! 이건 정말 엄청나게 심각한 사건입니다. 워터게이트에 비견될 정도로 말입니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특히나 개인의 자유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서구 사회에 국가에서 운영하는 ‘프리즘’과 같은 감시 프로그램이 있다는 건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실제로 스노든이 이 사건을 밝히고 나서 몇 달간 이 문제로 전 세계가 시끄러웠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면서.’

나는 소파 깊숙이 몸을 눕히고는 물었다.

“이 정보를 준 사람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건 대표님이라도 함부로 밝힌 순 없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제보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으니까요.”

“런던에 있지 않나요?”

“아니 그걸 어떻게!”

홀랜드가 깜짝 놀라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나는 그에게 다시 자리에 앉으라는 제스처를 취하고는 말했다.

“설마 그가 워싱턴포스트에게만 이 정보를 넘겼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다른 곳에도 정보를 넘겼다는 말입니까?”

“지금 런던에 있으니, 가디언에도 정보를 넘겼을 겁니다. 가디언은 영국에서도 진보 성향의 매체니까요.”

“그럴 수가. 그나저나 도대체 그가 런던에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아신 겁니까?”

“제게 프리즘은 없지만 전 세계 곳곳에 네트워크가 있으니까요. 오프라인의 지사는 미국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휴. 대단하군요. 극비로 부친 사항이라 NSA와 CIA조차 속였다고 자신하고 있었는데.”

물론 농담이었다.

과거의 지식이 있기에 스노든이 현재 런던에 머물고 있음을 알았던 것일 뿐.

하지만 이를 알 리 없는 홀랜드는 오프라인의 정보력과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에 감탄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빠르겠군요. 저희는 이를 곧 기사로 내보낼 예정입니다.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미국 내 매체에서 이에 대해 알고 있는 곳은 없습니다. 영국의 가디언은 모르겠지만요.”

“네. 제 생각에도 워싱턴포스트와 가디언 이외에는 이에 대해 알고 있는 곳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대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기사를 발행하기 전에 디자이너와 개발자. 그리고 광고 담당자까지 함께 작업하면 되는 걸까요? 가능하면 보안 유지를 위해 최소 인원만으로 작업하면 좋겠습니다만.”

“아뇨. 이번만큼은 원래 하려던 대로 진행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응? 이유가 있나요?”

홀랜드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국장님 말처럼 보안 유지가 중요한 아이템이니까요. 저는 간섭하지 않을 테니까 국장님이 알아서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경영자이지 편집인은 아니니까요.”

“고맙습니다, 대표님.”

나는 그와 작별 인사를 마치고 홍지혜와 함께 오프라인의 뉴욕 지사 사무실로 돌아왔다.

워싱턴에서 뉴욕까지는 약 400㎞의 거리였지만 비행기를 타면 1시간 30분이면 도착했다.

미국은 땅덩어리가 워낙에 크니 이 정도 거리는 이제 근거리로 느껴질 정도였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불이 꺼진 채 아무도 없었다.

“오늘도 야근하는 이는 없군요.”

“벌써 시간이 10시입니다. 이 시간까지 있는 게 더 이상한 일이라고요.”

“하하. 맞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워낙에 늦은 시간까지 근무하는 이들이 많으니까요. 야간 당직도 있고. 그러는 홍 지사장님은 왜 퇴근 안 하십니까?”

“대표님이 사무실로 들어가시는 데 제가 어찌 퇴근하겠습니까.”

“홍 지사장님만 여전히 한국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계시네요.”

“나름 배려하는 거라 생각합니다만.”

“농담이에요. 그나저나 홍 지사장님은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안전 중 뭐가 더 중요한 것 같나요?”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안전이요?”

홍지혜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전통적으로 서구권 국가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그 무엇 보다 우선시되었죠. 미국은 그 정점에 있는 국가이고요.”

“맞아요. 자유롭지 못할 바에 죽음을 택하는 것이 미국 사람들이죠.”

“그런데 말이에요. 만약에.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전염병이 돈다고 하면. 그러니까 감염률이 무척 높아서 옆에서 숨만 쉬면 곧바로 감염되는 그런 무시무시한 병이 있다고 했을 때도 국가의 안전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택할 건가요?”

“음. 재난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 같군요. 물론 중세 시대도 아니고 너무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요.”

“기자는 항상 상상력이 풍부해야 합니다. 불가능하다고 단정 지으면 곤란하죠.”

나는 2020년에 있었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누가 지금 그런 사건이 실제로 일어날 거라 생각하겠는가.’

홍지혜는 재미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그야말로 혼돈이겠네요.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안전이라. 음. 저 같으면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국가의 안전을 택할 것 같아요.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다지만 전 세계적인 재앙 앞에서는 어느 정도의 제한이 필요할 테니까요.”

“그런가요? 사실은 저도 그렇습니다. 물론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겠지만요.”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요? 홀랜드 편집국장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셨어요?”

“하하. 네.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요? 그가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안전 중 하나를 택하라고 물어보던가요? 무슨 사상 검증도 아니고.”

“아뇨. 극비 사항이라 아직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워싱턴포스트에서 준비 중인 기사가 있거든요.”

“네? 미국 지사장인 저한테도 말 못 하는 아이템이 있어요?!”

홍지혜는 다소 실망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가 먼저 준비한 사안은 아니었으니까. 여기서는 홀랜드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그의 신뢰를 얻기에 좋겠지.’

며칠 뒤.

백악관은 워싱턴포스트에서 발표한 자료로 발칵 뒤집어졌다.

to be continued

# 1장 토론배틀

<당신의 핸드폰과 이메일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프리즘의 존재>

<국가 보안 감시 체계 프리즘은 무엇인가>

<에드워드 스노든 인터뷰 전문 공개 “인터넷은 미국 정부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사가 나가자마자 당사자인 NSA는 즉각 반발했다.

프리즘은 불법적으로 정보를 수집하지 않으며, 인터뷰이인 스노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스노든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이럴 경우를 대비하여 미리 워싱턴포스트와 가디언에 프리즘에 대한 기밀 자료 일부를 넘긴 상태였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스노든이 아니라 미 정부…… 증거 자료 공개>

<프리즘 살펴보니…… 민간인에서 유명인사까지 전방위적으로 사찰>

<프리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개인 전화기도 도청해>

기사가 나가자 여론은 순식간에 스노든의 편으로 돌아섰다.

‘애초에 개인의 자유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이다. 자신들을 감시하는 자료가 밝혀졌는데 이를 숨기려는 정부에 우호적일 리가 없지.’

그러나 미국 정부도 지지 않았다.

전대미문의 폭로였기에 어떻게든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미 당국은 스노든에게 간첩 혐의를 적용하는 한편, 언론이 간첩인 스노든의 이야기를 기사에 싣는다면 이들 역시 같은 혐의를 적용하겠다고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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