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8화 (178/200)

NSA의 국장은 청문회에서 이런 연설을 하였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아마 저와 같은 결정을 내리리라 믿습니다. 9·11 테러가 일어나길 내버려 두겠습니까, 아니면 이를 사전에 막겠습니까. 우리는 전 세계적인 테러 위협에 맞서 프리즘을 통해 최소 100건 이상의 테러를 사전에 막아내었습니다. 프리즘은 악이 아닙니다!”

그의 발표 이후.

여론은 미국의 국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쪽과 개인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는 쪽으로 양분되었다.

<스노든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다! 누구도 몰랐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몸을 던져 밝혀낸 것이 아닌가>

<애국자는 무슨. 그는 미국의 국익에 반한 반동분자야! 이를 다른 국가에 알려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고!>

<난 다른 건 모르겠고 기사가 나온 게 워싱턴포스트라는 게 눈길이 간다. 거기 이번에 오프라인에서 먹지 않았음? 그 뒤에 오프라인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워싱턴포스트의 편집국장인 마틴 홀랜드는 내게 전화를 걸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대표님. 미 정부에서 스노든이나 프리즘과 관련된 기사를 쓰면 간첩 혐의를 적용하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국장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이는 심각하게 언론의 자유 및 국민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어떤?

“사실의 적시는 미 정부의 경고처럼 리스크가 큽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의견의 개진은 괜찮지 않겠습니까?”

-오피니언(사설)을 내자는 건가요?

“그렇죠. 이 사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의 생각은 어떠한지, 기자 개인이나 글쓴이 개인의 생각은 어떠한지 개진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만.”

-괜찮은 아이디어입니다. 개인의 의견까지 막을 순 없을 테니까요!

그는 좋은 생각이라며 고마움을 표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워싱턴포스트가 사설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에 대해 의견을 내자 오바마가 소속된 민주당 정치인들이 워싱턴포스트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스노든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배신자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의 정치와 정책에 관여하려는 걸 멈춰야만 한다>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한다. 워싱턴포스트가 적절히 처신하리라 믿는다>

그들은 워싱턴포스트를 새롭게 인수한 내가 장문의 사설을 기고하고 나서야 워싱턴포스트에 대한 공격을 멈췄다.

<건국의 아버지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런 말을 하였다. 약간의 안전을 얻기 위해 약간의 자유를 포기하는 사회는 그럴 자격이 없으며, 결국 둘 다 잃어버릴 것이라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인터넷이 없었던 예전에는 말이다. 지금은 너무나 많은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다. 우리는 무엇이 맞는 말인지. 무엇이 틀린 말인지 판단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중략) 자유를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개인의 안전이. 특히나 국가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는 때때로 개인의 자유를 양보를 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스노든을 간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소명에 따라 움직였다. 미국은 그를 보호해야 한다. 다만 NSA 국장의 말처럼 프리즘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절대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내 사설이 워싱턴포스트에 실리고 오래지 않아.

미 정부는 스노든의 간첩 혐의는 물론 입국 금지 명령을 철회했다.

물론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 * *

한동안 공식적인 자리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던 스노든은.

뜬금없이 내게 토론 배틀을 제안했다.

그가 내게 보낸 메일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당신의 글은 잘 보았습니다. 저를 옹호해 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저는 당신의 의견에 큰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하여 당신에게 온라인 토론 배틀을 제안합니다. 부디 수락해 주시길 간청드립니다.>

갑작스럽게 밑도 끝도 없는 제안이었다.

홍지혜를 비롯한 모두가 코웃음을 치며 무시하라는 말을 하였다.

“대표님.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건네는 이야기 따위는 그냥 무시해 버리세요. 우리에게 득 될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맞습니다. 대표님이 쓰신 사설로 그의 간첩 혐의는 물론 입국 금지 명령도 철회되었는데 그는 어디에 있는지 코빼기도 비추지 않고 있어요.”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안전은 오랫동안 끝나지 않은 논쟁거리였다.

‘어차피 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적인 유명세를 쌓은 스노든과 온라인에서 토론 배틀을 하게 된다면 오프라인의 인지도 역시 단번에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곧바로 그에게 토론 배틀에 참여하겠다는 회신을 하였다.

개발자답게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사이트로 나를 초대하고는.

이를 유튜브 및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실시간 중계하였다.

토론 당일.

웹캠을 통해 모니터에 비친 나의 모습을 점검하고 있는데 옆에서 홍지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괜찮을까요? 오픈된 사이트도 아니고 그가 만든 사이트라서 걱정이 되네요.”

“괜찮을 겁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유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렇다면 그냥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중계를 하면 되었을 텐데, 이 정체불명의 사이트는 뭘까요?”

“아무리 그에 대한 간첩 혐의가 풀렸다고는 하지만 그는 미 정보 당국의 주요 타깃 중 하나일 겁니다. 자신이 현재 어디에서 접속하고 있는지에 대해 숨길 필요가 있겠죠.”

접속 대기 상태로 한 15분 정도가 흘렀을까?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미스터 우? 들리십니까?”

“네. 잘 들립니다. 혹시 에드워드 스노든?”

“맞습니다. 제가 스노든입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을 텐데 흔쾌히 승낙해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야말로 난세의 영웅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 난세의 영웅은 뭘요. 현재 이 방송은 유튜브 등 SNS 채널을 통해 생중계 중에 있습니다. 알고 계시죠?”

“네. 오프라인을 통해서도 중계하고 있으니까요.”

곧 목소리만 나오던 모니터 화면에서 그의 얼굴이 등장하였다.

동시 접속자 수가 무섭게 폭등하기 시작했다.

네모난 반무테 안경에 어설프게 수염을 기른 그의 모습은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여전히 망명 중인가. 미국에 돌아왔다면 힘들게 몸을 숨기고 다니지 않아도 될 터인데.’

내가 그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이.

그는 이번 토론 배틀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하고는 내게 고마움을 표했다.

“우선 저의 간첩 혐의를 벗겨 주신 미스터 우에게는 진심을 다하여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도 계속 미국 정부에 쫓기는 신세였겠죠.”

“지금도 쫓기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하하. 뭐 그렇긴 합니다만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합법적인 미국 시민권자이니까요.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요?”

“그러시죠.”

그는 내가 기고했던 워싱턴포스트의 사설을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이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가 안전을 위해 자유를 포기한 순간. 자유는 영원히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살았던 시대와 지금 시대는 천지 차이입니다. 그거 아십니까?”

“어떤?”

“과거 2000년 동안 인류가 축적한 정보량의 10배 이상의 자료가. 겨우 근 5년 안에 디지털 데이터로 생성되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것은 정보의 양에 따른 문제가 아닙니다. 철학과 이념의 문제죠.”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저도 물론 개인의 자유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특수한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내 말에 스노든이 호기심을 보였다.

“예를 든다면요?”

“9·11 테러가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을 것 같군요. 9·11 테러와 같은 중대 범죄에 대해서는 조기에 발견할 필요가 있겠죠. 이에 따라서는 개인 정보에 대한 조사는 필수입니다.”

“우리가 개인의 정보를 제한하지 않고서도 테러를 사전에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말이죠?”

“전 세계적인 협력을 통해서 말이죠. 우리는 정보를 요청하고 이를 투명하게 온라인에 공개하여 감시 및 사찰이 아니더라도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지나치게 이상적입니다. 과연 테러범이나 테러 국가에서 이러한 정보를 제공할까요? 오히려 역으로 혼란을 가중시키기 위한 미끼 정보만 제공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모든 노력과 비용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은 어떨까요? 전 세계적으로 치명적인 감염률을 가진 전염병이 돈다고 합시다. 이래도 개인의 자유가 우선인가요?”

“물론입니다. 자유는 언제나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요소입니다.”

“예를 들어서 그 전염병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필수로 써야 한다고 합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이 개인의 자유를 침범한다면서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돌아다닌다면. 그들을 처벌해야 할까요?”

“마스크를 쓰는 행위 자체가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의미 아닙니까? 너무 위험한 것 같습니다. 범죄자도 아니고 말이죠.”

“그만큼 감염률이 심각하다면 말입니다.”

“과연 그런 상황이 있을지는 의문입니다만 그럼에도 우리는 개인의 자유와 의지를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모두가 전염병에 걸려 죽는다고 하더라도?!”

스노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준비해 두었던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일본 문화를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를 아십니까?”

“물론이죠! 갑자기 그건 왜?”

스노든의 두 눈이 반짝였다.

나는 깍지 낀 두 손에 턱을 올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 영화의 부제가 뭔지 아십니까?”

“‘살아라’ 아닙니까?”

“맞습니다.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왜 그런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을까요?”

내 물음에 스노든은 곰곰이 생각하는 것처럼 팔짱을 끼더니 이내 대답했다.

“힘들겠지만. 서로 함께 살아가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서로 상처를 입혀가고 분노가 쌓이더라도. 그래도 살아가라는 것.”

“그렇습니다. 인간은 살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겠지만 그럼에도 서로 더 나은 관계로 발전해나가라는 의미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상당한 내공이신데,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을 좋아하시나 보군요?”

“네. 그리고 혹시 신세기 에반게리온도 보셨습니까?”

“물론이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그는 조금 흥분한 듯 양손으로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스노든 씨께서는 에반게리온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어떤 생각이라 하심은?”

“그러니까 감독이 작품을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으셨나요?”

“어떤 말이라. 분명 포스터에는 모두 죽어 버리라는 말이 있긴 했지만.”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천천히 말했다.

“분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라는 메시지였던 것 같군요. 세상은 살만하다, 밖으로 나와라. 이런 느낌도 들었고요.”

“네. 저도 비슷했습니다. 특히나 당시 일본은 아무런 사회 활동도 하지 않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사는 히키코모리 문제로 골치를 썩던 때이니까요. 그들에게 던진 메시지라는 게 중론이죠.”

“그런데 갑자기 일본의 두 애니메이션에 관해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뭔가요?”

나는 잠시 댓글 창을 살펴보았다.

<미스터 우는 왜 갑자기 일본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꺼낸 거야? 일본 덕후인가?>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안전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왜 일본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군>

<아. 이미 게임 끝났어. 그는 그냥 아무 말이나 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젠장. 괜한 기대를 했군>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두 작품을 꺼낸 이유를 말했다.

“두 작품은 공통으로 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괴롭고 힘들더라도 말이죠.”

“그렇게 볼 수 있겠군요. 그런데 그건 왜?”

“제가 아까 전염률이 무척 높은 전염병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결국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분명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많은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말이죠.”

“허. 그래서 지금 안전을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해도 괜찮다는 말입니까? 살기 위해서?”

“네.”

“완전한 억지입니다! 전혀 상황에 맞지 않아요!”

“왜죠? 우리가 살아남지 못한다면 그 어떠한 것들도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아닌가요? 살아남아야만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스노든!”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저는 분명 특수 상황에 한해서 개인의 자유보다는 국가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9·11 테러나 전 세계적인 감염병과 같은 상황에서 말이죠.”

“그건.”

“저는 당신이 프리즘의 존재에 대해 밝힌 것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프리즘이 잘못되었다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종의 필요악이죠.”

“필요악이라니.”

“특수한 상황에 한해서. 우리는 삶과 생존을 위해 우리의 자유를 일시적으로 국가에 양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인권과 생명 중 저는 생명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죽고 나면 정작 그가 누릴 인권 따위는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요.”

스노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이.

그리고 댓글 창의 분위기에서.

이번 토론 배틀의 승자는 바로 나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 * *

토론 배틀이 끝난 지 오래지 않아.

곳곳에서 내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

<미스터 우의 의견에 동감합니다. 우리는 때로는 선택의 순간에 놓이곤 하죠.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특수한 상황에 한해서 제한될 수 있다는 건 동의해>

<어려운 문제였어. 답이 있는 것 같진 않고. 다만 이번 토론 배틀의 승자가 미스터 우라는 건 변함이 없지!>

댓글 이외에 전 세계의 거물급 정치인들 또한 내게 연락을 많이 주었다.

백철웅 역시 그중 한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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