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가더니 크게 한 건 했군요!
“한 건이 아니라 여러 건입니다.”
-하하. 맞습니다. 이번 토론 배틀을 보고 하는 말입니다.
“별일 없으시죠? 대통령님?”
-네, 임기 첫해라서 정신없습니다. 우 대표가 옆에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하고 늘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미국 생활은 좀 어떻습니까?
“지낼 만합니다. 홍 지사장님도 옆에서 많이 도와주고요.”
-다행입니다. 아 맞다. 혹시 메르켈 총리가 연락하지 않던가요?
백철웅이 독일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나는 곧바로 수긍했다.
“네. 어제 전화 왔습니다.”
-뭐라던가요?
“자신은 개인의 자유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사람이지만, 이번 토론을 보고는 제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더군요.”
-흠. 그런 이야기를 하던가요? 도청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고요?
“도청이요?”
-네, 미국에서 프리즘을 이용해 메르켈 총리의 개인 전화기를 도청한 건 유명한 사건입니다만. 제가 알기로는 독일도 백악관 등 미국의 주요 기관과 기업들을 도청했다고 하더군요.
“아. 기사 봤습니다. 국가 간 도청은 서로 밝히지만 않을 뿐 일상적으로 있는 일이지요.”
-아무튼 토론 배틀 잘 보았습니다. 요즘 즐거운 일이 하나도 없었는데 정말로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즐기셨다니 다행이군요.”
-그럼 또 연락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대통령님도요.”
대한민국 대통령의 전화를 끊고 나니.
이번에는 미국 대통령의 전화가 걸려왔다.
오바마였다.
“안녕하세요, 대통령님.”
-안녕하세요. 어제 스노든과의 토론 배틀은 정말 잘 보았습니다. 흥미진진하더군요!
“별말씀을요. 갑자기 어떤 일로 연락을 주셨을까요?”
-좋은 말씀을 해 주신 덕분에 다행히 여론이 프리즘에 대해 긍정적으로 돌아섰습니다. 이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괜찮습니다. 백악관을 위해 했던 건 아니니까요.”
-사실은 스노든이 저의 지지자였다고 들었습니다. 저 역시 개인의 자유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미스터 우의 말씀처럼 특수한 상황에서는 제한이 필요한 경우도 있으니까요. 이에 대해 미 정부가 나서서 하지 못했던 말을 미스터 우께서 정말 잘해 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정치적인 이유로 토론 배틀에 나섰던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개인의 신념에 따라 움직였고요.”
-네.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감사의 인사를 꼭 전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조만간 언론사 대표와의 연례 만찬에서 뵙겠습니다.
오바마가 끝이 아니었다.
그 뒤로도 미 의회 상원 위원장을 비롯하여 국방부 장관, 프랑스 대통령 등.
평소 같았으면 얼굴 한번 보기 힘든 이들이 연이어 전화를 해 대는 통에 온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있어야만 했다.
* * *
모니터에서 보던 얼굴이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말이다.
에드워드 스노든.
그자가 바로 지금 내 앞에 있었다.
걱정 반 기대 반의 표정으로 말이다.
“결국 미국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셨군요?”
“네. 대표님과의 토론 배틀 이후 혼자서 고민을 많이 해 보았습니다. 모노노케 히메와 신세기 에반게리온도 몇 번씩 다시 돌려보았고요.”
“그러셨군요. 그래서 어떤 결론을 내리셨습니까?”
“아쉽게도 제 내면에서는 어떠한 결론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유가 중요하다는 제 믿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다만?”
“그걸 고집하다가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대처하지 못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네.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제가 여기서 근무할 수 있을까요?”
“네? 오프라인에서요?”
스노든은 한 손으로 안경을 스윽 올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표님 옆에서 대표님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저를 지켜본다고요?”
“원칙을 지키되 예외를 허용해야 한다면. 그 예외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느냐가 대표님 말씀의 핵심인 것 같았습니다.”
“그렇겠죠.”
“그렇다면 제게 그런 이야기를 한 대표님이라면. 어떤 식으로 예외를 두고 어떻게 진행하는지 곁에서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그의 표정은 너무나 진지해서 30실이 넘은 성인이라기보다는 마치 어린아이와 같았다.
자신이 너무 궁금해하는 장난감을 앞에 둔 아이처럼.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개발자이시죠?”
“네. 그렇습니다. 나름 그린베레 출신에 CIA와 NSA에서 개발자로 일했습니다.”
“네. 경력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업무는 개발자로 정해서 우선 6개월간 인턴으로 근무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 정도 기간이라면 제 옆에서 저를 관찰할 기회는 충분할 것 같은데.”
“6개월 인턴이라. 좋습니다. 일자리도 구할 수 있고 대표님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면 저는 대만족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앞으로 어디로 출근하면 되는 거죠?”
그러고 보니 뉴욕 사무실에는 개발자가 없었다.
‘그렇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보내거나 한국으로 보낼 수도 없고 어쩐다.’
내가 그를 어디에 배치할지 고민하는 사이.
홍지혜가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제안했다.
“대표님을 옆에서 보고 싶다고 하니 대표님 직속 개발자라고 하면 어떨까요?”
“제 직속 개발자요?”
“네. 대표님 개인 명령을 수행하는 개발자인 거죠. 예를 들면 빠른 개발이 필요할 때 팀에 부탁하지 않고 스노든 개인에게 미션을 주는 것처럼요. 그는 능력 있는 개발자이니 말이죠.”
“개인 미션을 준다라. 그거 나쁘지 않군요. 안 그래도 최근에 고민하던 게 하나 있었는데.”
내 말에 스노든이 두 주먹을 꽉 쥐고는 물었다.
“그게 뭔가요?! 말씀만 주세요.”
“다소 엉뚱한 요구일지는 모르겠지만, 페이스북 등을 통해 MBTI 성격 유형 검사를 수행하는 겁니다.”
“MBTI요?”
“네. 젊은 세대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가 강합니다.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거죠.”
“언론사에서 왜 MBTI를 제공해야 되는 거죠?”
스노든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일종의 미끼 상품이죠.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사람들을 우리 홈페이지로 끌어모을 수 있는.”
“그게 저널리즘에 도움이 되는 행위인가요?”
“물론이죠. MBTI를 통해 정보를 제공하는 것 또한 일종의 뉴스입니다. 뉴스가 꼭 폭력 사건만 다루는 건 아니니까요. 게다가 MBTI를 확인하려고 우리 홈페이지에 방문한 사용자들이 다른 기사를 볼 수 있다면 충분히 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습니다. 정보도 중요하지만 흥미 있는 그림이나 그래픽도 있으면 좋을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그 부분은 한국에 있는 디자인팀 등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죠.”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작업해 보겠습니다. 저는 어디에 앉으면 될까요?”
스노든이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홍지혜가 웃으며 답했다.
“아무 데나 앉으면 돼요. 저희는 지정석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이때는 몰랐다.
스노든의 합류로 인해.
개발자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게 될 줄은.
스노든은 기본적으로 영리한 사람이었다.
사정이 있어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였지만, 고졸임에도 불구하고 CIA와 NSA에 근무할 정도의 수재.
그는 내가 주문한 MBTI 성격 유형 검사를 빠르게 개발하더니.
더는 개편할 게 없다고 생각했던 오프라인의 CMS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은 물론, 각종 유용한 도구를 개발하여 기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했다.
처음에는 그를 멀리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서로 같이 일을 하자고 메일을 보낼 정도였다.
자연스레 개발조직의 수장인 이덕오가 그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형님. 스노든이라는 녀석 어때요? 왠지 성격이 이상할 것 같은데.
“응? 아니. 착실하고 꼼꼼한 사람이야. 일도 잘하고.”
-그래요? 건방지게 형님을 관찰하려고 들어왔다면서요? 감히 오프라인이 어디라고 말이에요.
“하하. 괜한 곳에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네 할 일에 집중해. 구글과 AI 개발은 어떻게 되고 있어?”
-역시 구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협업 안 했으면 한 10년은 뒤처져 있겠단 생각이 드네요.
“그것 참 다행이네. 스노든도 AI 쪽에 함께하면 좋을 것 같은데.”
-네? 녀석을요?
이덕오가 역정을 냈다.
-마르코가 녀석을 조심하라고 난리예요. NSA 출신들은 죄다 성격이 더럽다면서.
“지금 그를 경계하는 거야?”
-네? 제가 왜요? 참 형님도. 그냥 걱정돼서 하는 소리예요.
“됐고. 조만간 구글 CEO랑 AI 관련해서 약속 잡을 테니까 너도 마르코랑 준비 잘해 둬. 부를 수도 있으니까.”
-물론이죠. 불러만 주시면 바로 튀어갈게요!
“그래. 건강하고.”
나는 그와의 전화를 끊고 이수빈이 오전에 내게 보낸 메시지를 다시 열어보았다.
<대표님. 요즘 개발자들이 스노든을 경계하는 것 같아요. 평소에도 그의 흉을 많이 보고 있고요. 알아두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메시지 드립니다>
이수빈은 때때로 내게 회사 생활 전반에 대한 것들을 조용히 알리곤 했다.
‘따로 시킨 적도 없는데, 고급 정보를 잘 준단 말이지.’
얌전한 것 같으면서도 조직 생활을 참 잘하는 사람이었다.
아무튼 개발자들이 스노든을 경계하는 건 우려되는 사항이었다.
‘그가 내 직속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경계하는 건가? 같은 개발자인데도 처우가 다르니.’
나는 이 문제에 대해 홍지혜를 불러 상담했다.
“대표님. 부르셨어요? 사무실에서 이야기하시지 여기로 오라고 한 이유가 있으세요?”
“네. 구성원들과 관련된 이야기라서요.”
“어차피 위에 있는 친구들 중에 한국어가 가능한 사람은 없는데 신중하시네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내 말에 홍지혜가 배시시 웃었다.
“뭐 그런 게 대표님 매력이지만요. 그래서 어떤 일인가요? 제게 비밀스럽게 공유하고자 하는 일이.”
“이덕오 상무를 비롯해서 한국에 있는 개발자들이 스노든을 경계하는 모습입니다.”
“스노든을요? 왜요? 그가 너무 잘해서?”
“뭐 그런 것도 있고, 그가 제 직속으로 되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군요. 미국 사무실에 저와 같이 있는 유일한 개발자이니까요.”
“음. 이 상무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좀스럽다는 생각은 드네요.”
“사람은 이성이 아닌 감정의 동물이니까요.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쌓여서 폭발할 수도 있으니 잘 컨트롤해야죠.”
“맞아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렇다고 한국에 있는 개발 조직을 미국으로 옮길 수도 없고요.”
“앞으로는 미국에서도 개발자를 뽑아서 조직을 키워야 하는 건 맞지만 한국에 있는 개발자들이 이쪽으로 올 필요까진 없죠.”
“음. 그럼 이건 어떠세요?”
“어떻게요?”
나는 손에 든 커피잔을 흔들며 물었다.
“스노든이 지금은 대표님 직속이잖아요? 그걸 이덕오 상무님 밑으로 옮기는 거죠. 어찌 되었건 그는 개발자이고, 개발 조직 수장의 명령을 들어야 하는 게 조직 구조상 맞으니까요.”
“그렇긴 한데 스노든이 납득할까요?”
“납득해야지 어쩌겠어요. 우리가 먼저 뽑은 것도 아니고 자신이 지원한 건데.”
“그가 마음에 상처를 받을까 걱정입니다.”
“스노든이 어지간히 대표님 마음에 들었나 보네요. 그럼 조직 구조만 이덕오 상무님 밑으로 하되 실제 명령은 대표님만 내리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건 어떠세요?”
“명령은 내가 내린다?”
“네. 어차피 지역적인 한계도 있잖아요. 대표님이 필요해서 뽑은 사람이고, 대표님 일을 하는 건 맞으니까요.”
“그게 좋겠군요. 역시 홍 지사장님과 상의한 게 답이었네요.”
“도와드릴 수 있어서 기쁘네요.”
이렇게 잠잠해질 것 같았던 논란은, 이덕오와 마르코가 구글 방문을 위해 미국에 도착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 * *
나는 구글과의 회의를 위해 스노든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이동했다.
회의 장소가 구글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였기 때문이었다.
이덕오는 마르코와 함께 한국에서 곧바로 샌프란시스코로 이동.
우리와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