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0화 (180/200)

나는 스노든을 둘에게 소개했다.

그러나 둘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이덕오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뱉었다.

“이덕오입니다. 제가 영어를 못해서 그냥 한국어로 할게요. 괜찮죠?”

스노든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우리는 렌트한 차를 타고 구글 본사로 향했다.

운전은 스노든이 하고 조수석에는 마르코가.

그리고 나와 이덕오가 뒷좌석에 앉았다.

이덕오는 내 손을 잡고는 말했다.

“형님. 개발자가 필요하면 언제라도 편하게 이야기해 주세요. 당장에라도 짐 싸서 떠날 테니까요.”

“그럼 한국은 누가 지킵니까. 공식적인 자리에선 형님이라고 하지 말고 대표님이라고 불러 주세요.”

“네, 대표님. 그냥 제 속마음을 바로 말씀드릴게요. 저는 저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덕오가 누군가를 이렇게 싫어하는 경우는 처음 보았기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왜요? 그가 이 상무를 귀찮게 했습니까?”

“아뇨. 건방지게 형님한테 토론 배틀을 제안한 것도 마음에 안 들고, 형님을 지켜보겠다며 옆에 있는 것도 같잖습니다. 꼴불견이에요, 진짜.”

마르코도 한국 생활이 길어지면서 한국어를 배웠는지 우리 대화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뛰어난 사람입니다. 개발 실력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 정도 실력자는 많아요. 굳이 그를 형님 옆에 두지 않아도 괜찮다니까요.”

“그쯤하고. 구글에서 회의할 발표 자료는 잘 준비해 왔나요?”

“네, 요 며칠간 마르코랑 그거 준비만 했어요. 보여 드릴까요?”

이덕오는 자신 있는 표정을 짓더니.

오랫동안 준비한 게 느껴질 정도로 훌륭히 발표를 마무리하였다.

그러나.

“그런데 이 상무.”

“네.”

“지금 한국어로 준비한 건가요?”

“네, 구글 본사에서 한국어 통역을 실시간으로 제공해 준다고 하더라고요.”

“아니, 그래도 본인이 직접 영어로 하는 것하고는 다를 텐데.”

“그럴까요? 그럼 마르코가 발표하면요? 발표 내용은 그와 같이 만든 거라서 마르코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덕오에게 정색하며 말했다.

“이 상무. 지금 장난합니까?”

“아니, 저는 그냥.”

“구글 한국 지사도 아니고 구글 본사에서의 발표입니다. 영어로 준비해 와도 부족한 마당에 뭐요? 통역을 시키겠다고?”

“그게, 형님도 전에 미국에서 한국어로 발표하셨잖아요. 홍 지사장님이 옆에서 통역하고요.”

“그거랑 이거랑 같습니까? AI 개발 실무진들끼리 빠른 소통이 필요한 자리에서 한국어로 발표라니요. 내가 그렇게 영어 공부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영어가 체질이 아니라서.”

“휴…….”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덕오는 뛰어난 개발자였지만 어떤 면에서는 임원답지 못한 모습이 있었다.

‘어린 친구가 오랫동안 임원 자리에 있더니 오만해졌군.’

나는 스노든에게 차를 멈추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덕오가 가져온 발표 자료를 그에게 건네고는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발표 자료에는 한국어 버전은 물론 구글 직원들을 위해 영어로 작성된 버전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형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대표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저기 대표님. 그러니까 이게 무슨.”

이덕오와 마르코가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는 사이.

스노든이 15분 정도 발표 자료를 훑어보더니 말했다.

“어떤 내용인지는 대략 파악했습니다.”

“그런가요? 혹시 당신이 발표하라면 할 수 있겠습니까?”

“음, 조금 더 시간을 주신다면 완벽하게 연습해 보겠습니다.”

“좋습니다. 오늘 발표는 스노든 씨가 하는 거로 하죠. 혹시라도 질문에 완벽히 답하지 못하면 그건 마르코 씨가 답해 주시고요.”

“대표님. 지금 뭐라고 하시는 거예요? 한국어로도 알려 주세요.”

이덕오가 애처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발표는 스노든과 마르코가 하기로 했습니다. 이 상무님은 뒤로 빠지세요.”

“네?! 제가 이거 준비하려고 며칠을 날을 샜는데요!”

“그럼 영어로 준비를 해야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게 왜 한국어로 준비를 한 겁니까?”

“구글에서 한국어 통역을 붙여 주기로 했다니까요!”

“아뇨. 결정했습니다. 이번 발표는 스노든이 합니다. 더는 이에 대해 말하지 마세요.”

“형님!!”

이덕오는 울부짖었지만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글 본사까지 가는 차 안은 이후 정적만이 가득했다.

* * *

스노든은 전 세계적인 유명 인사였다.

처음부터 유명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최근 있었던 ‘프리즘’ 폭로를 비롯하여 나와 대결을 펼쳤던 토론 배틀로 인해.

그의 인지도는 오바마에 비견될 정도였던 것이었다.

특히나 IT 종사자들에게는 더욱 그랬다.

그가 발표를 마치자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스노든 씨! 당신은 오프라인 소속인가요?”

“직책이 뭐죠? CTO? 오프라인과 함께하는 이유가 뭡니까?”

“NSA의 기밀자료를 폭로한 것에 대해서 같은 개발자로서 응원을 보냅니다.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뛰어난 개발자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AI 쪽에 대해서도 무척 해박하시네요. 오늘 발표 잘 들었습니다. 혹시 이미지 인식에 관해서 뭐 하나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스노든은 쏟아지는 질문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선에서 거침없이 답했다.

반면 이덕오와 마르코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어 있었다.

둘의 표정은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엉망이었다.

나는 둘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이 상무, 마르코 잠깐 바람 좀 쐴까요?”

“네, 대표님.”

둘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구글 본사는 회사라기보다는 마치 대학 캠퍼스와 같은 분위기였다.

곳곳에 쉴 수 있는 공원과 조형물들이 배치되어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둘과 함께 따사로운 햇볕이 쏟아지는 잔디에 앉아 조용히 물었다.

“덕오야.”

“네, 형님.”

“내가 밉냐?”

“아닙니다.”

“스노든은 밉냐?”

“네.”

“발표 못 해서 짜증 나냐?”

“네, 진짜로. 엄청요.”

이덕오의 두 눈은 어느새 촉촉해져 있었다.

“한국 돌아가면 영어도 좀 배우고. 열심히 해.”

“진짜로 열심히 할 거예요. 다시는 저런 녀석한테 절대로 안 밀릴 겁니다. 다시는.”

“그래. 너라면 잘할 거야.”

나는 살며시 이덕오를 다독여 주었다.

그 커다란 덩치가.

뭐가 그리 서글픈지 들썩거렸다.

7월의 햇볕이 따가웠다.

# 2장 애플의 제안

이덕오와 마르코는 미국을 떠나기 전까지 약 일주일간 나와 스노든과 함께 철야 근무를 이어갔다.

오프라인 US 홈페이지에 웹소설과 웹툰 카테고리를 추가하기 위해서였다.

단순히 오프라인 홈페이지를 번역한 다음, 미국에도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게 그리 간단하진 않지.’

오프라인 US 홈페이지는 한국에 있는 오프라인 홈페이지와는 독립적인 홈페이지였다.

IA(Information Architecture, 정보 구조가 다르다 보니 시스템을 연동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두 천재 개발자.

그리고 스노든의 가세로 오프라인 US는 단기간에 웹툰과 웹소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고생들 하셨습니다.”

“휴. 스노든이 잘하긴 잘하네요.”

고생했다는 내 말에 이덕오가 스노든을 가리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마르코 역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같이 일해 보니까, 어떻습니까?”

“실력이 대단한 친구네요. 응용력도 좋고요. 어쩌다 보니 오프라인 홈페이지보다 오프라인 US 쪽 UI랑 UX가 더 좋아져 버렸어요. 곤란하게도 말이죠. 하하.”

“한국 쪽도 개편하면 되죠. 가능하죠?”

“가능이야 하죠. 프런트엔드랑 백엔드를 싹 다 갈아엎어야 하는 게 문제지만.”

“그래도 그게 더 좋은 거 아닙니까?”

“물론입니다, 대표님. 제가 스노든에 대해 오해를 한 것 같아요. 정말 뛰어난 개발자입니다. 여기서 계속 같이 일하고 싶을 정도로요.”

오프라인에는 이덕오 아래로 많은 개발자들이 있었다.

또한 DC소프트와 구글의 개발자들과 다양한 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이덕오가 다른 개발자를 칭찬한 경우는 딱 한 번뿐이었다.

‘마르코가 합류했을 때였지.’

이번 공동 개발을 계기로 셋은 부쩍 친해졌다.

아무래도 일정 수준 이상의 개발자끼리는 언어가 달라도 서로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연이은 야근에 피곤했던지 이덕오가 책상에 엎드리고는 말했다.

“그런데 대표님. 미국에서도 웹툰이랑 웹소설 서비스를 시작하면 한국에 있는 작품들을 번역하는 건 끝인가요?”

“응? 그게 무슨 말이죠?”

“아니 그러니까 여기 현지에도 수많은 작가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아닌가? 미국에는 웹소설이랑 웹툰이라는 개념이 없나요?”

분명 미국에 한국식 웹소설이나 웹툰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장르 소설 분야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을 가지고 있었다.

‘스티븐 킹 같은 인기 작가는 그 어떤 인기 가수보다 훨씬 더 많은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지.’

그렇기 때문에 이 분야를 빠르게 선점할 필요가 있었다.

아직 미국에 웹소설이나 웹툰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기 전에 말이다.

나는 옆에 있는 스노든에게 물었다.

“혹시 장르 소설 좋아합니까?”

“장르 소설이요? 해리포터나 트와일라잇 시리즈 같은 거 말인가요?”

“그렇죠.”

“즐겨 보는 건 아니지만 가끔 봅니다.”

“그런 작품을 우리 플랫폼에서 연재하려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네? J.K. 롤링이나 스테퍼니 마이어나와 같은 스타 작가를 이곳으로 끌어오겠다고요?”

스노든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돈을 어마어마하게 줘야 할 겁니다. 몸값이 장난 아닐 테니까요.”

“그럼 그렇게 유명한 이들이 아니라 재야에 묻혀 있는 신인 작가들을 모집한다면요?”

“신인이요? 플랫폼이 유명해진다면 자연스럽게 모여들지 않을까요?”

나는 스노든의 말에 공감하고는 번역 작업이 완료된 작품들부터 순차적으로 미국 시장에 연재를 시작했다.

또한 현지 작가들을 발굴하기 위해 한국식 도전 만화 시스템을 들여왔다.

반응은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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