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1화 (181/200)

* * *

미국의 만화 시장은 기본적으로 DC와 마블이 꽉 잡고 있었다.

특히나 이곳에서 만드는 작품들은 대다수가 ‘히어로물’이었다.

아이언맨이나 스파이더맨, 슈퍼맨, 배트맨 등.

영웅들이 악당에 맞서 세계를 구한다는 내용.

히어로물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특정 장르. 그러니까 히어로물에만 너무 치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재미있고 대중적인 장르라 하더라도 특정 장르만 유통되다 보니 독자들은 새로운 장르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그것을 오프라인에서 해결해 주니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독자들의 반응만 좋았던 게 아니었다.

미국 만화 시장에서 작품은 작가 개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할리우드 영화판에서처럼 수많은 이들이 협업해서 만들고 있었다.

메인 디렉터, 스토리 작가, 그림 작가, 채색 작가, 편집 작가 등등.

그러다 보니 작가는 작품에 대한 저작권이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었다.

작품은 회사의 소유였고, 작가는 스토리에 따라 교체되는 부품에 불과했다.

그런데 한국식 시스템을 도입해서 신인들을 모집하다 보니.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이덕오가 폭주하는 트래픽을 확인하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반응이 엄청납니다! 다들 오프라인에 연재하려고 몰려들고 있어요!”

“그동안 미국 시장은 개인 작가가 아니라 회사만 빛을 보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을 통해 작가 개인의 이름을 드러낼 수 있으니 반응이 좋은 거죠.”

“네. 게다가 히어로물뿐 아니라 판타지, 드라마, 로맨스 등 여러 가지 장르가 나오면서 독자 반응도 좋아요. 다양한 장르를 볼 수 있다면서요.”

“작가 대우를 잘해 줘야죠. 그래서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이쪽에서 계속 연재를 할 수 있도록요.”

우리는 도전 만화에서 좋은 반응을 보이는 작품들과 즉각 계약을 맺었다.

한국보다 작가 개인이 가져가는 수익을 훨씬 더 많이 챙겨 주니 작가 커뮤니티에서는 오프라인이 자신들의 구세주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실제로 웹소설과 웹툰을 오프라인 US에 부착하고 나니.

오래지 않아 오프라인은 뉴스만 보기 위해 접속하는 곳이 아니라.

웹툰과 웹소설.

그리고 뉴스를 보기 위해 방문하는 멀티 플랫폼으로서 인식되기 시작했다.

* * *

이덕오와 마르코가 미국을 떠나기 하루 전날.

나와 홍지혜, 그리고 스노든은 이들과의 작별을 달래기 위해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으로 이동하여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홍지혜는 밝은 미소를 보이며 이덕오와 마르코를 칭찬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두 분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프라인 US가 너무 좋아져서 미국 지사장으로서 기분이 좋네요.”

“뭘요. 홍 지사장님 덕분에 오프라인이 이렇게 미국에서도 선전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타지에서 고생이 많으세요.”

우리가 한국어로 떠들자 스노든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세 분. 같은 한국인이라고 저만 따돌리시는 건 아니죠?”

“그럴 리가요. CTO님이 스노든 씨 실력이 너무 뛰어나다고 칭찬이 자자하네요.”

“아뇨. 수준 높은 개발자들과 함께해서 저야말로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우 대표님.”

“네.”

“웹툰도 좋지만, 오프라인은 언론사 아닙니까? 이게 오프라인에 도움이 될까요?”

스노든은 이번 오프라인 US 홈페이지에 웹소설과 웹툰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이 중 하나였다.

일 역시 너무 즐겁게 했던 그가 이런 말을 한 것은 무척이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나는 놀랍다는 표정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홈페이지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야 기사도 더 많이 보지 않겠습니까. 그뿐 아닙니다. 뉴스도 결국 하나의 콘텐츠이니까요. 웹소설도, 웹툰도, 오프라인에는 뉴스와 같은 콘텐츠일 뿐이죠.”

“흐음. 뉴스가 하나의 콘텐츠일 뿐이라니. 제가 아는 언론사의 높은 분들과는 많이 다르군요. 보통 뉴스는 콘텐츠가 아니라 더 고차원적인 무언가로 보던데요.”

“그런 시각이 현재 언론사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생각합니다. 뉴스라고 차원이 더 높고, 웹툰이라고 더 낮은. 그런 차이는 전혀 없으니까요.”

내 말에 스노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이지 오프라인에 합류하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대표님은 제게 늘 신선한 자극을 주세요.”

“하하. 제가 많이 배웁니다. 앞으로도 계속 힘 좀 써주세요.”

나는 환하게 웃으며 건배를 제의했다.

“뛰어난 개발자 세 분과 오프라인의 성공을 위하여!”

“위하여!!”

즐거운 식사 자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멀리서 나를 응시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내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애플의 미녀 홍보직원.

엠마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쪽으로 성큼 걸어갔다.

그녀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와 짧은 포옹을 하였다.

여전히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아니, 엠마! 여긴 어쩐 일이에요?”

“어쩐 일은요. 부모님 집이 뉴욕이라 함께 식사하러 왔죠. 앞에 계신 두 분이 제 부모님이세요.”

그녀는 자신의 아빠와 엄마를 내게 소개해줬다.

엠마와 마찬가지로 붉은색 머리를 한 그녀의 엄마 역시 빠지지 않는 미모였다.

‘엠마가 엄마를 닮은 거였구나.’

그녀는 궁금한 게 있다면서 내게 물었다.

“전에는 영어 잘 못 하지 않으셨어요?”

“아. 답답해서 배웠습니다. 항상 통역을 데리고 다닐 순 없잖아요?”

“와우! 엄청 빨리 배우셨네요. 발음이 정말 좋으세요.”

“감사합니다. 별일 없으시죠?”

“네, 회사는 전임 CEO인 잡스가 떠나고 나서 더 바빠졌어요. 팀 쿡은 잡스와는 많이 다른 사람이거든요.”

“그렇군요. 아무튼 뉴욕에서 당신을 보니 무척 반갑네요.”

우리는 약간의 수다를 나누다 작별 인사를 나눴다.

내가 테이블을 떠나려는 순간.

엠마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안 그래도 미스터 우에게는 연락하려고 했습니다. 드릴 말씀이 있으니 전화를 꼭 받아 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이덕오가 물었다.

“저분은 누구세요? 엄청난 미녀이신데요?”

“아. 예전에 인연이 있던 애플 홍보직원입니다. 예쁘죠?”

“네, 살면서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은 본 적이 없습니다.”

이덕오가 미련이 남은 듯 계속해서 엠마 쪽을 바라보자 홍지혜가 헛기침을 했다.

“흠흠. 그녀가 여긴 무슨 일이래요? 애플 본사는 캘리포니아에 있잖아요?”

“부모님 집이 여기래요. 그런데 홍 지사장님. 혹시 애플 쪽에서 저희에게 연락 온 적이 있었나요?”

“애플에서요? 아뇨 따로 연락 온 적은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세요?”

“연락한다고 그래서. 아닙니다. 드시죠.”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엠마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 * *

다음날 오전.

엠마는 곧장 오프라인의 뉴욕 사무실을 방문했다.

사무실 직원들 모두가 엠마의 미모에 넋이 나가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가 그녀를 안쪽 자리로 안내하자 사람들의 시선 역시 따라서 이동했다.

“전화를 준다고 해서 안부를 묻는 거 줄 알았는데. 직접 오셨네요.”

“네, 사실 뉴욕에 온 목적이 미스터 우 때문이었거든요.”

“네? 부모님을 뵈러 온 게 아니고요?”

“하하. 부모님 때문에는 사실 1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해요. 미스터 우 덕분에 한 달 만에 다시 뉴욕에 들렀네요.”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중요한 일인가요? 전화나 메일로 연락해 줬어도 됐을 텐데.”

“그럼 실례죠. 상당히 중요한 이야기를 드리려고 하거든요.”

옆에 있던 홍지혜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끼어들었다.

“오랜만이에요. 엠마. 그 중요한 일이 뭔지 저도 좀 알 수 있을까요?”

“오! 미스 홍! 오랜만이에요. 여기 계셨던 거예요?”

“네, 오프라인 US의 지사장을 맡고 있거든요. 그리고 어제 그 레스토랑에도 있었고요.”

“저런. 죄송해요. 미스터 우만 알아봤어요. 제 불찰입니다.”

홍지혜는 괜찮다고 말하며 그녀가 이곳을 방문한 목적에 대해 다시 물었다.

그러자 엠마가 아름다운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곧 저희가 새 스마트폰을 출시하거든요.”

“루머로만 돌던 아이폰 5S요?”

“맞아요. 잡스가 설계한 마지막 아이폰이죠.”

“와! 그의 유작이군요?”

“네. 저희가 최근 가장 공들인 작품이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오늘 오신 건 그 발표회장에 저희를 초대하시기 위해서?”

홍지혜의 말에 엠마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엠마는 얼굴에 가득 웃음을 띠고는 말했다.

“그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요.”

“그럼요?”

“미스터 우에 대해 찾다 보니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을 알 수 있었어요.”

“재미난 사실이요?”

나와 홍지혜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엠마가 웃으며 말했다.

“이동통신사의 광고를 찍으셨더라고요? 한국어라서 자세한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이건 정말 멋졌어요. 포로 포지로 포에버!”

엠마가 나의 흑역사를 들춰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당황하며 썩소를 짓자 그녀가 나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너무 그렇게 싫은 표정 하지 마세요. 오늘은 광고 건으로 직접 찾아뵈었어요.”

“광고요?”

“네. 미스터 우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미스터 우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상이 나쁘지 않거든요.”

“그런가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에이. 김정일 북한 위원장을 직접 인터뷰한다고 평양에 가시기도 하였고, 최근에는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범을 직접 잡으시기도 하셨잖아요? 인종 차별과 관련해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사과를 하기도 했고요. 나름 인지도가 무척 높으세요.”

“저는 언론사 대표이지 연예인은 아닙니다.”

내 말에 엠마가 손가락을 저었다.

“저희는 연예인에게만 광고를 의뢰하진 않아요. 유명한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경우도 많죠.”

“그래서 지금 저에게 애플 새 스마트폰의 광고 모델을 제안하는 겁니까?”

“정확해요. 미스터 우에게는 똑똑하고 야심 찬 이미지가 있어요. 게다가 날쌔고 용감한 이미지도 있죠. 불의에 저항하고 악에 맞서는 영웅과도 같달까요.”

“과찬입니다.”

“아뇨. 저희 내부는 물론이고 컨설팅 회사에서도 이번 광고 모델로 미스터 우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었습니다. 오늘 제가 여기 온 이유는 바로 이거였어요. 미스터 우에게 저희 스마트폰의 광고 모델이 되어 달라는 부탁을 드리려고요.”

잡스의 유작이기도 한 아이폰5S는 최고의 스마트폰 중 하나였다.

‘Touch ID’를 통한 지문 인식이 가능했고, 카메라를 포함한 하드웨어의 성능 또한 크게 향상됐다.

‘회귀 전 내가 가장 오랫동안 사용했던 핸드폰도 아이폰5S였지. 참 좋은 기계였어.’

나는 아이폰5S의 뛰어난 성능을 떠올리며 잠시 회상에 잠겼다.

애플의 광고 모델.

그것도 잡스의 마지막 유작의 광고 모델.

결코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그렇지만 또 흑역사를 남기고 싶진 않은걸.’

내 고민을 이해했는지 엠마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한국에서 찍은 광고처럼 연기를 많이 하실 필요는 없거든요.”

“이미 시놉시스가 짜여 있는 건가요?”

“네. 미스터 우만 승낙해 주시면 됩니다.”

“어떤 내용인지 미리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음. 원래 승낙하시기 전에 공개하는 건 안 되지만. 특별히 말씀드릴게요. 그냥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일하시는 모습을 찍을 거예요.”

“여기서 일하는 모습을요?”

내 말에 엠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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