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냥 평소 미스터 우가 일하는 모습을 촬영할 거랍니다. 마침 실제로 맥북과 아이폰을 쓰고 계시니 너무 좋네요. 스마트폰만 저희가 지급해드리는 아이폰5S를 써 주시면 됩니다.”
“공짜로 주시는 건가요?”
“하하. 광고 모델에게 당연한 혜택이죠. 광고료도 섭섭지 않게 드릴 거예요.”
나는 엠마에게 궁금증을 물었다.
“그게 어떤 의미가 있죠? 제가 애플 제품을 가지고 일하는 모습을 찍는 것 말이에요.”
“정말 중요한 의미가 있죠! 미스터 우처럼 똑똑하고 멋진 남자가 사무실에서 애플 제품들을 통해 일하고 있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바이럴 효과가 있어요! 미스터 우처럼 멋진 남자가 평소에 쓰는 제품은 바로 애플이라고요.”
“별다른 설명 없이?”
“네, 제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광고는 따로 찍을 예정이거든요. 저희 내부 직원들이 등장해서요.”
“알겠습니다. 저희에게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군요.”
“손해요? 이득이겠죠. 오프라인의 이미지 역시 무척 좋아질 겁니다.”
“미국 시장에만 내보내는 광고인가요?”
“아뇨. 미스터 우의 인지도가 전 세계적으로 높으니 모든 나라에 동일한 광고가 나갈 거예요.”
“휴. 너무 얼굴을 클로즈업하진 않았으면 좋겠네요.”
엠마가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평소 일하시는 모습을 찍는 것뿐이니까요. 그럼 승낙으로 알고 차주 금요일에 촬영을 진행하면 될까요?”
* * *
다음 주 금요일 아침.
촬영을 위해 스무 명이 넘는 인원이 오프라인의 뉴욕 사무실에 방문하자 사무실이 꽉 찼다.
눈에 보이는 카메라만 8대.
거기에 영화 촬영 현장에서나 볼 수 있는 거대한 지미집까지 설치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카메라가 모두 아이폰5S였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카메라를 가리키며 엠마에게 물었다.
“보통 광고라고 하면 엄청 큰 전문 카메라로 찍지 않나요?”
“보통은 그렇죠.”
“보통은? 그럼 이번에는 특수한 경우인가요?”
“아이폰5S의 카메라 성능이 놀랍도록 뛰어나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카메라 성능을 강조하기 위해서 모든 촬영을 아이폰5S로 하려고 해요.”
“놀랍네요.”
“멋지지 않나요? 앞으로는 스마트폰을 활용한 광고나 영화가 만들어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스마트폰으로 광고 영상을 찍다니.
무척이나 신선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그만큼 카메라 성능에 자신이 있다는 건가. 놀라운 일이로군.’
카메라는 작았지만, 다른 장비는 일반적인 촬영장과 동일했다.
갖가지 조명으로 사무실 안은 대낮보다 훨씬 더 밝았다.
사무실이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가운데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얼굴에서 땀이 송송 났다.
홍지혜가 리모컨으로 온도를 더 낮추며 말했다.
“가장 낮은 온도로 설정했는데도 조명 때문에 너무 덥네요.”
“어쩔 수 없죠. 홍 지사장님도 나오셔야죠?”
“저는 괜찮아요. 대신 촬영에 응하겠다는 직원 몇 명이 대기 중이에요.”
“휴. 연예인도 아닌데 어쩌다가 광고를 두 번이나 찍게 되네요.”
“후후. 다 대표님이 잘나서 그러신 거예요. 게다가 애플 광고라니. 조금 부럽기도 하네요.”
곧 촬영이 시작되었다.
나는 정말로 평소 모습처럼 사무실을 오가며 일을 하는 게 다였다.
별다른 각본도 없었고, 대사도 없었다.
그저 맥북으로 사무를 보고, 신형 아이폰으로 전화를 하고 메시지를 확인하는 게 끝이었다.
그 때문인지 촬영은 고작 3시간 만에 끝났다.
스태프들이 촬영 현장을 정리하는 사이.
엠마가 감독이라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는 내게 소개했다.
“미스터 우. 고생 많으셨어요. 이분은 오늘 촬영을 지휘해 주신 감독님이세요.”
“반갑습니다. 감독님. 오늘 빠르게 촬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미스터 우가 너무 자연스럽게 연기를 해 주셔서 저희가 찍기 편했죠. 그런데 혹시 오프라인에서는 영화를 찍을 계획은 없습니까?”
“영화요?”
“네, 제가 오프라인에 올라온 웹소설과 웹툰의 광팬입니다. 너무 재미있더군요. 마블이나 DC와는 전혀 다른 서사 구조도 돋보이고요.”
“웹소설과 웹툰의 영화화라. 한국에서는 그렇게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몇 건 있긴 합니다.”
“오! 그런가요? 만약 미스터 우만 괜찮으시다면 저도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군요.”
나는 상대가 누군지 몰라 엠마를 바라보며 물었다.
“감독님 성함이 뭐죠?”
“팀 밀러입니다.”
“팀 밀러요?!”
나는 깜짝 놀라 감독을 돌아보았다.
사람 좋은 아저씨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그는.
몇 년 후 <데드풀>이라는 희대의 엽기 영화를 찍은 자였다.
익살스러운 캐릭터에 병맛 같은 전개.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영화 팬들의 극찬이 이어지지 않았던가.
‘데뷔 전에는 주로 영화나 게임의 예고편 등을 만드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애플과도 인연이 있었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네, 감독님이 저희 오프라인 웹소설이나 웹툰을 영화로 만들어 주시면 무척 좋을 것 같군요.”
“오! 정말인가요! 벌써 너무 설레는군요. 여기 제 연락처입니다. 꼭 연락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오늘 찍은 광고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한 달 뒤.
그가 찍은 광고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TV에 동시에 상영되었다.
이른 아침 따스한 햇볕이 비치는 오프라인 뉴욕 사무실을 배경으로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약 30초간 나를 중심으로 카메라가 움직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아이폰5S를 바라보고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는 순간.
화면이 애플 로고로 전환되더니 광고가 끝났다.
직원들이 너무 멋지다며 환호성을 지르는 사이.
엠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흥분돼 있었다.
엠마의 목소리는 어찌나 컸던지 스마트폰을 넘어 홍지혜의 자리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홍지혜가 본능적으로 내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미스터 우! 대박이에요. 광고가 나가자마자 아이폰5S의 사전 주문 예약이 폭주했어요!!
“다행이네요. 이전에도 이런 사례가 있었나요?”
-예약 폭주 사례는 많았지만, 역사상 가장 많은 사전 주문량이에요! 시스템이 제 기능을 못 할 정도로요!
“축하드립니다. 이번 제품이 좋은 덕분이네요.”
-뭘요. 다 미스터 우의 멋진 광고 영상 덕분이죠! 광고를 만든 팀 밀러 감독에게도 보너스를 두둑하게 줘야겠네요. 하하.
엠마의 말처럼 이번 애플 광고는 전 세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혹자는 애플의 전설적인 광고인 <1984>나 에 버금가는 광고라며 극찬했다.
‘내가 실제로 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지.’
그러나 그 자연스러움이 아이폰5S의 특징을 무엇보다 잘 드러낸다는 평이 많았다.
<명불허전 애플 광고…… 아이폰5S 사전예약 폭주>
<혁신의 대명사 애플……. 이번에도 매력적인 광고로 예약 폭주해>
<아이폰5S 특징 제대로 살린 애플 광고…… 광고인들 ‘엄지 척’>
<아이폰 광고 찍은 우세진은 누구? 그에게 쏠리는 전 세계 광고업계의 눈>
전화를 끊기 전 엠마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혹시 미스터 우만 괜찮다면 저희와 전속 계약을 맺으시겠어요?
“전속 계약이요?”
-네, 앞으로 나올 애플의 신상품들은 모두 미스터 우가 출연해서 광고를 찍는 거죠.
“그건 회사의 의견입니까, 아니면 엠마 개인의 의견입니까?”
-둘 다요? 그게 중요한가요?
“아뇨. 광고는 이제 좀 그만 찍고 싶어서요.”
-왜요?! 이번 광고 정말 너무 좋았는데요!!
“저는 언론사 대표지 광고 모델은 아니니까요.”
-그 말씀 전에도 하셨지만 이렇게 잘 찍지 않으셨나요? 게다가 반응도 엄청나고요! 미스터 우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니까요. 광고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아이폰 광고가 나간 뒤로 오프라인에는 나를 찾는 전화가 불이 났다.
나이키, 스타벅스, 디즈니 등 일류 브랜드는 물론이고 롤렉스, 롤스로이스, 몽블랑 등 명품 브랜드까지.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업체들로부터 제발 부르는 대로 값을 쳐 줄 테니 광고 모델로 나와 달라는 연락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곤혹스러워하는 나와 달리 홍지혜는 이 상황이 즐거운 것 같았다.
“부럽네요, 대표님. 이제 언론사 사주는 부업으로 하시고, 본격 광고 모델로 전업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저를 놀리는 것은 그쯤 해 두세요. 광고는 다시는 찍지 않을 겁니다.”
“후후. 예전에 TP 텔레콤 광고 찍을 때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 거 같은데요?”
“휴. 잘생긴 배우들이 저리 많은데 보는 눈도 없지 참.”
“보는 눈이 정확하니까 계속 찾는 거겠죠. 제 눈에도 대표님이 가장 멋지세요. 자신감을 가지세요!”
그녀는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TP 텔레콤 광고와 다르게 그나마 아무런 연기나 대사를 하지 않았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착각이었음을 안 것을 그리 멀지 않은 뒤였다.
* * *
뉴욕은 거대한 도시였다.
인구수만 830만 명에 달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사는 것은 물론, 사용되는 언어만 170개가 넘을 정도로 여러 인종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이쪽을 바라보며 한결같은 표정을 지었다.
다시 미국을 찾은 강세연은 이 사람은 자기 남자라는 것을 어필하려는 듯 팔짱을 꽉 끼고는 크게 미소 지었다.
“지금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는 표정. 세진 씨가 아이폰 광고 마지막에 지은 미소 아닌가요? 당당하면서도 부드러운?”
“그 이야기는 가급적 안 꺼내줬으면 좋겠네요. 상대가 세연 씨라면 더더욱요.”
“왜요. 저는 기분 좋은데요? 이 넓은 미국 땅에서 내 약혼자를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잖아요? 그런 표정 짓지 말고 사람들한테 부드럽게 웃어 주세요. 광고에서 했던 것처럼요.”
“휴. 알겠습니다. 누구 명이라고 거절하겠습니까.”
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강세연에게 잠시 보이고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살며시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러자 모두 환하게 웃으며 즐거워했다.
“거봐요. 세진 씨가 웃어 주니까 더 좋아하잖아요. 세진 씨는 웃는 게 정말 예뻐요. 항상 웃고 다니세요.”
“그건 그렇고 이렇게 또 갤러리를 비워도 되는 거예요?”
“갤러리는 저 없어도 잘 돌아가니까 걱정 마요. 밑에 친구들은 저 없다고 더 좋아할걸요?”
“대표가 함부로 그런 이야기 하는 거 아닙니다. 모름지기 조직이란…….”
“쉿! 방금 우리 아빠랑 너무 똑같아서 소름 돋은 거 알아요? 어쩜 이리 똑같을까!”
“부모님은 잘 계시죠?”
“흥. 말 돌리기 선수라니깐. 물론 부모님들이야 잘 계시죠. 세진 씨 언제 한국에 돌아오냐가 입버릇처럼 되었지만요.”
“하하. 내년에는 돌아갈 거예요.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해 주세요.”
내 말에 강세연이 고개를 저었다.
“특히 아빠가 더 난리예요. 우 서방 언제 오냐, 너희들 대체 언제 결혼하는 거냐, 식장은 미리 잡아 둬야 하는 건 아니냐 하고요.”
“세연 씨가 잘 좀 이야기해 주세요.”
“내가 보기에 아빠는 세진 씨한테 TP 그룹을 물려주고 싶은가 봐요.”
“저한테요?”
“네, 자식은 저 하나뿐이고 따로 후계자로 점찍은 인물은 없으니까요.”
“지금 CEO도 따로 계시고, TP 그룹 내부에 능력자들이 많잖아요.”
“세진 씨 같으면 공들여서 키운 기업을 다른 사람 손에 넘기고 싶겠어요? 아빠는 어릴 때부터 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어요.”
“뭐라고요?”
“남편 잘 찾으라고 말이죠. 그 사람한테 그룹을 넘기고 자기는 유유자적 산만 타고 싶다면서요.”
이보다 더한 행운이 있을까.
대한민국 최고 재벌 그룹을 손 하나 대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다는데 말이다.
그러나 나는 오프라인을 잘 키우고 싶다는 일념뿐.
TP 그룹까지 맡아서 키울 생각도.
자신도 없었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저는 TP 그룹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요. 저보다 더 TP 그룹을 사랑하고 잘 키울 수 있는 분들이 내부에 계실 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