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이 다르고 종교가 달랐으며 자원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결국 남부가 분리하여 남수단으로 독립하여 나왔지만, 여전히 치안이 좋지 않았다.
유엔에서는 평화와 안보 그리고 재건을 위해 각 국가에 재건지원단을 요청하였고, 대한민국에서는 한빛부대가 파병을 나갔다.
“갑자기 남수단에는 무슨 일로요?”
“장병들의 격려차 제가 직접 방문해야 하는데, 저는 알다시피 국정운영으로 정신이 없습니다. 해서 우 대표에게 특별히 부탁하는 겁니다.”
“저는 정부 소속이 아닌데 제가 방문한다고 격려가 되겠습니까.”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대통령님이시지 않습니까.”
“농담은요. 바로 우 대표입니다. 그거 압니까? 얼마 전 한 여론 조사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하였습니다.”
“어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누구냐고 말이죠.”
나는 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백철웅이 얼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3위가 싸이, 2위가 저. 그리고 1위가 바로 우 대표였습니다.”
“저요? 제가 1위를 했다고요?”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우 대표만큼 엄청난 성과를 눈앞에서 보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게다가 아직도 20대이지 않습니까. 모두가 우 대표를 좋아합니다.”
“그냥 재미로 해 본 조사였겠죠.”
“그러기엔 조금 본격적이었죠. 대한민국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입니다.”
내가 그 정도로 인기가 많을 줄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려오지 않았던가.
나도 모르게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러다간 대통령이라도 될 기세군요.”
“오호라. 우 대표만 괜찮다면 저는 대환영입니다. 제가 늘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우 대표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농담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제가 대통령님 대신 남수단을 방문해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오히려 저보단 또래인 우 대표가 현장에 가 준다면 장병들도 힘을 얻겠죠.”
“휴. 북한에, TP 그룹에. 이제는 남수단까지 가야 하는군요.”
“약한 소리 하지 마세요. 그게 다 우 대표가 잘나서 그러는 거니.”
그는 내게 비행기 티켓을 한 장 내밀었다.
남수단행 티켓이었다.
“제가 안 받으면 어쩌려고 이러시는 겁니까.”
“내가 아는 우 대표라면 반드시 갈 거라는 확신이 있기에 이 꼭두새벽부터 인천 공항에 나온 겁니다.”
“알겠습니다. 남수단에 가겠습니다. 대신 오래는 못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3일만 있다가 바로 뉴욕으로 떠나세요. 항공편은 저희 쪽에서 끊어 드리겠습니다.”
나는 백철웅과 강세연에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는 곧바로 백철웅이 끊어 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직항이 없었던 관계로 두바이를 경유했다가 남수단의 수도인 주바에 위치한 주바 국제공항에 도착하는 루트.
대기 시간을 포함해 도착까지 20시간 가까이 걸리는 긴 여정이었다.
* * *
초겨울이 찾아온 서울과 다르게 주바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이조차 아직 우기라 건기의 더위에는 비할 바가 아니라고 그랬다.
나는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생각했다.
‘<울지 마 톤즈>에 나오는 남수단을 직접 방문할 줄이야. 미래는 정말 예측할 수가 없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UN 마크가 커다랗게 쓰여 있는 지프차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안에서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내리더니 내게 인사를 건넸다.
그의 옷깃에는 소위 말똥이라 불리는 대나무꽃이 세 개 보였다.
“필승! 한빛부대 단장 고정완입니다.”
“반갑습니다. 단장님. 오프라인 대표 우세진입니다.”
“연락받았습니다. 대통령님을 대신해서 우 대표님이 현장을 전격 방문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장병들이 머나먼 타국에서 고생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격려차 잠시 들렸습니다.”
그는 나를 지프차에 태우고 한빛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보르시로 이동했다.
“기지가 이곳에서 많이 먼가요?”
“차로 4시간 거리입니다. 백나일강을 따라 이동하게 되죠.”
“장병들 상태는 어떻습니까?”
“건강합니다. 아시겠지만 장병 대부분이 비전투병인 공병대와 의무 부대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보호할 특공여단 병사들이 소수 있죠.”
“네, 재건 사업이 주목적인 부대로 알고 있습니다.”
오랜 여정에 지친 나는 고정완에게 양해를 구하고 눈을 감았다.
덜컹거리는 비포장 길도 나의 숙면을 방해할 순 없었다.
얼마나 잤을까.
내가 눈을 뜬 것은 고정완이 나의 어깨를 잡고 세차게 흔든 뒤였다.
“우 대표님. 일어나십시오. 기지에 도착했습니다.”
“어우. 제가 계속 잤나 보군요. 벌써 도착했나요?”
“네. 피곤하신지 한참을 깨워도 일어나지 않으시더군요. 4시간을 내리 주무셨습니다.”
“지금이 몇 시입니까?”
“현지 시각으로 오후 8시입니다. 저녁 드셔야죠.”
“그래야죠. 장병들은요?”
“물론 그들은 식사를 마쳤습니다. 하지만 우세진 대표께서 오신다고 해서 따로 만찬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만찬이요?”
내 말에 고정완이 뿌듯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대표님 오신다는 소식에 부대원들이 아주 난리입니다. 근처 도축장에서 소를 3마리나 잡아 왔습니다.”
“저런. 저따위가 뭐라고.”
“그런 말씀 마십시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대통령 각하께서 오신다고 하면 현장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서 무척 부담되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우세진 대표께서 오신다고 하셨을 때는 저 역시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제가 온다고 더 좋을 게 있습니까?”
“물론이죠. 대한민국이 배출한 세계의 영웅 아니십니까. 장병들 사기에도 좋고 저 역시 부담감을 덜 수 있어 좋습니다.”
고정완은 솔직한 사내였다.
나는 웃으며 물었다.
“알겠습니다. 저를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데 피곤한 표정으로 찾을 순 없겠네요. 저도 정신 차리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고정완의 안내에 따라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막사 안으로 들어가자 장병들이 나를 보고는 신기하다는 듯 눈을 떼지 못했다.
그들은 자기네들끼리 이렇게 속삭였다.
“오! 진짜다. 우세진 실물은 처음 보네.”
“실물이 훨씬 낫네.”
“저 사람이 우리랑 같은 20대 맞지? 금수저도 아니라면서 대단하네, 정말.”
나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정완이 알려 준 자리로 이동했다.
내 앞에는 마이크가 하나 놓여 있었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 장병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패기가 넘치는 젊은이들이었다.
“아아. 반갑습니다. 여러분. 오프라인 대표 우세진입니다.”
“와아아아!!”
“사실 인천 공항에서 올 곳은 이곳이 아니라 뉴욕이었습니다.”
내 말에 모두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백철웅 대통령께서 공항에 직접 나오시더니 간곡히 청하시는 게 아니겠어요? 자기 대신 제가 남수단을 방문해 주었으면 한다고요.”
“멋있다!”
“고맙습니다, 대표님!”
“해야 할 일이 많았기에 고민을 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여기 계셨기 때문입니다.”
“와!!”
장병들은 나의 한마디 한마디에 열광했다.
마치 슈퍼스타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군대 있을 당시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여러 격려의 말을 전했다.
“남수단은 사실 잘 모르는 국가입니다. <울지 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님이 선행을 펼쳤던 곳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죠. 하지만 오늘 이렇게 여러분들의 얼굴을 보니 이곳이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힘내시고요. 오늘 저를 위해 소를 3마리나 잡았다고 들었습니다. 모두 이 순간을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앞에 놓인 오렌지 주스를 높이 들자.
280여 명의 한빛부대원 모두가 음료를 머리 위로 들며 건배를 외쳤다.
이어서 장병들의 장기 자랑이 이어지고.
한빛부대의 주둔지인 보르 기지는 모처럼 활기로 가득했다.
만찬은 그날 자정까지 이어졌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그들이 나를 위해 준비한 소고기가 무척 질겼다는 점이다.
‘역시 방목한 고기는 근육량이 많아서 그런지 질기고 맛이 떨어지는군.’
그럼에도 소고기는 만찬이 끝나기 진작에 동이 나 사라지고 없었다.
* * *
다음 날 아침 장병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마친 나는 부대원들이 머물고 있는 생활관에 들렀다.
나무로 지어진 간이 생활관은 생각보다 퀄리티가 높았다.
관물대는 물론 침구류도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에어컨이 비치되어 있는 게 신기했다.
“좋군요. 제가 군에서 생활할 때만 하더라도 에어컨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여름에는 선풍기 몇 대로 더위를 식혀야만 했죠.”
“대표님. 여기서는 선풍기로는 도저히 열기를 식힐 수가 없습니다.”
“압니다. 여러분들이 고생 많은 거. 그런데 저건 PMP인가요?”
나는 눈앞에 보이는 전자기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장병 하나가 대답했다.
“넵! 한빛부대는 부대 특성상 PMP와 MP3 등 핸드폰을 제외한 소형 기기를 반입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과는 어떤가요?”
“별다른 건 없습니다. 일과 이후에는 개인 시간이 보장됩니다.”
“다행입니다. 환경이 환경인지라 많이 열악할 것으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는 양호하군요.”
내 말에 고정완이 옆에서 한마디를 보탰다.
“한빛은 순우리말로 세상을 이끄는 환한 빛이라는 뜻입니다. 남수단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등대와 같은 의미죠. 저희는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네, 단장님. 제가 대통령을 대신해서 방문하기는 했지만 제 신분은 언론사 대표입니다. 오늘 방문기를 기사화해서 여러분들의 일상과 노고를 외부에 잘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영광입니다. 괜찮으니 사진 촬영도 편한 대로 하십시오.”
나는 그의 도움을 받아 보르 기지 곳곳의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비전투 부대였기 때문에 특별히 보안에 위배될 만한 요소가 적은 것도 사진을 편하게 찍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였다.
하루 종일 장병들의 일상을 취재하던 나는 밤늦은 시각까지 기사를 쓰는 데 집중했다.
‘오랜만에 현장을 취재하고 기사 쓰는 데에만 집중하니 초심으로 돌아온 기분이로군.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은데.’
매출이나 트래픽, 보고 자료 등 각종 데이터와 씨름하지 않고 순수하게 기사를 쓴다는 건 이렇게나 즐거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백철웅의 부탁으로 억지로 왔다는 생각도 없진 않았지만, 막상 현장에 오니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까지 기사를 정리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사이.
타다다닥!
밖에서 요란하게 군홧발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20여 명의 사병이 완전무장을 한 채 기지 앞 연병장에 대기하고 있었다.
오전에 생활관을 둘러보았을 때 보았던 천진난만한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그들은 온몸으로 꽉 잡힌 군기를 내뿜고 있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 두 눈만이 번쩍이는데, 눈빛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것처럼 매서웠다.
나는 고동완 단장에게 상황에 관해 물었다.
“이 새벽에 무슨 일입니까?”
“인근에 위치한 한국 회사의 사무실에 무장 강도가 들었다고 합니다.”
“무장 강도요?”
“네. AK소총으로 무장한 괴한들이 교민들의 숙소를 무단 침입, 인질을 잡고 있다는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큰일이군요! 이곳에서 많이 먼가요?”
“아뇨. 차를 타면 금방 도착할 거리입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내 말에 고동완이 사색이 되어서는 만류했다.
“아뇨! 위험합니다. 대표님은 여기서 대기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