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 봬도 아덴만 여명 작전도 현장에서 취재한 사람입니다.”
“거기서 총에 맞지 않으셨습니까. 절대 허락할 수 없습니다.”
고동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총에 맞은 게 훈장이 아니라 마이너스 요소였다.
그러나 이런 특종을 놓치고서야 기자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저는 현장에 진입하지 않고 차에서 대기하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나는 고동완의 팔목을 붙잡고 절대 놓지 않을 것처럼 힘을 주었다.
나의 절실함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절대로 방탄 차량에서 내리시면 안 됩니다.”
“물론입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나는 숙소로 돌아가 카메라를 챙긴 뒤 고동완으로부터 방탄 헬멧과 방탄복을 받아 입고는 트럭에 올랐다.
총 3대의 차량에 8명씩 나눠서 순서대로 탑승한 차량은 빠르게 기지를 빠져나갔다.
고동완과 함께 차량 앞쪽에 탄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차량 전조등이 비추는 지역을 제외한 모든 곳이 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납니까?”
“지난달부터 이 주변에서 무장 강도 사고가 부쩍 늘고 있습니다.”
“군기지가 코앞에 있는데도 그렇군요.”
“그나마 다른 도시에 비하면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그래도 정부군과 반군 측의 대립이 격렬합니다. 그 혼란을 틈타 강도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죠.”
“녀석들이 원하는 건 뭐죠? 돈인가요?”
“대체로 돈이나 고가품입니다. 얼마 전에 발생한 사고에서는 죽은 사람도 나왔습니다.”
사람이 죽었다는 말에 그 말을 한 고동완은 물론이고 운전병 역시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한빛부대는 재건 사업을 위해 파견된 비전투 부대였다.
‘파병 시 전투는 상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공여단 병사들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인도와 네팔 등 근처에 있는 전투 부대가 기계화 장비로 중무장한 상태로 이들을 보호하고 있으니.’
그걸 떠나서 대한민국은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 하는 나라였지만, 실전 경험을 한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둘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농담을 던졌다.
“저는 아덴만에서 한 번, 그리고 평양에서 한 번. 실제로 총알이 오가는 전장에 있었습니다. 제 경험이 도움이 될 겁니다.”
“군인인 저보다 대표님이 낫군요. 그래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격려차 방문하셨다가 무슨 일이라도 나면.”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저는 단장님과 여러분을 믿습니다.”
끼익!
갑자기 차량이 멈춰 섰다.
앞쪽으로 건물 몇 채가 보였지만, 쥐죽은 듯 조용했다.
“현장입니까?”
“현장에서 1㎞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우선 경고부터 해야죠.”
고동완이 고개를 끄덕이자 운전병이 차량 앞쪽에 장착된 특수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시끄러운 사이렌이 울렸다.
에에에엥!!
그와 동시에 차량 3대에서 하이빔을 깜빡거리며 전방을 압박했다.
꼭두새벽의 아프리카 시골 마을에서 무척이나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5분여를 그런 식으로 경고를 한 차량은 천천히 앞으로 전진했다.
나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영상으로 담았다.
긴박감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
갑자기 앞에서 누군가가 뛰쳐나왔다.
* * *
교민들이었다.
그들은 이제 살았다며 환호성을 질렀다.
고동완은 나에게 차량에서 절대 내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는 조심스럽게 차 밖으로 나갔다.
“어떻게 된 겁니까? 무장 강도는요?”
“그들은 조금 전 사이렌 소리에 놀라 모두 도망쳤습니다!”
“전부요?”
“네, 강도는 총 6명이었는데 모두 도망쳤습니다.”
“그래도 주변에 잔당이 있을지 모르니 경계하겠습니다. 다친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 네! 현지인 태권도 사범이 중태입니다! 저깁니다!”
그들은 고동완을 이끌고 다시 사무실 안으로 사라졌다.
오래지 않아 사병들이 부상당한 현지인을 데리고 돌아왔다.
그는 머리에 큰 부상을 당한 것처럼 보였다.
고동완은 차량 2대와 인원을 현장에 남겨둔 채 자신이 타고 온 차량에 부상자를 싣고는 다시 기지로 떠났다.
나는 뒤에 탄 부상자를 걱정스럽게 돌아보고는 물었다.
“부상이 큽니까?”
“개머리판으로 머리 뒤쪽을 강하게 얻어맞았다고 합니다. 쓰러진 뒤로는 전신을 발로 짓밟혔고요.”
“저런. 기지에 의료 시설은 지금 운영 가능한가요?”
“네, 의무 부대가 대기 중입니다. 기지에 도착하면 바로 환자를 치료할 겁니다.”
기지에 도착한 우리는 서둘러 환자를 의무실로 옮겼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무병들은 빠른 속도로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고는 적절한 치료를 하였다.
그들의 능숙하고도 빠른 대응도 놀라웠지만, 부대원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그 모습은 모두 나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찍혔다.
* * *
<용감한 한빛부대 대원들…… 무장 강도 물리쳐>
<한빛부대 출동 풀영상 공개>
<고동완 한빛부대 단장 “오늘의 승리는 부대원 모두의 것”>
한빛부대의 영리하고도 용감한 작전은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았다.
<실제로 전투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아쉽긴 하네. 그래도 아무런 피해 없이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게 진짜 명장 아니냐?>
<지휘관이 능력이 좋은 듯. 헤드라이트와 사이렌으로 무장 강도를 무찌르다니>
<좋은 작전이야. 무작정 총 쏘고 적진에 잠입하는 게 능사는 아니지>
머리를 다쳤던 현지인 태권도 사범도 큰 부상 없이 다음 날 자택으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
고동완은 상부의 허락을 받았다며 대원들에게 술상을 내왔다.
“장관님의 재가가 떨어졌습니다. 오늘 하루만큼은 모두 마시고 즐기도록 합시다!”
“와!!”
장교나 부사관이라면 모를까.
사병들에게 술은 귀했다.
게다가 이곳은 한국이 아니라 머나먼 아프리카가 아니던가.
그들은 신이 나서 술과 고기를 입안으로 들이부었다.
옆자리에 앉은 고동완이 내게도 술을 권했다.
아프리카에서 먹는 소주라니.
나 역시 감회가 새로웠다.
내가 단숨에 소주를 들이켜자 고동완이 웃으며 말했다.
“모두 우 대표님이 이번 작전을 잘 보도해 준 덕분입니다.”
“뭘요. 단장님과 한빛부대원들이 모두 용감하게 나서 준 덕분이죠.”
“사실 언론에 대해서는 불신이 컸습니다. 괜히 조직의 안 좋은 부분만 들여다보는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대표님 기사를 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더군요.”
“좋은 것은 칭찬하고 나쁜 것은 개선할 수 있도록 보도하는 게 언론의 사명이죠. 언제나 잘못된 것만 들여다보는 건 아닙니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사병 중 한 명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내게 숟가락이 꽂혀 있는 맥주병을 건네며 말했다.
“우 대표님! 노래 한 곡 뽑아 주시면 안 됩니까?”
“노래요?”
“네, 대표님 덕분에 저희가 펼친 작전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 곡조 부탁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이에 동조하며 큰소리로 외쳐 댔다.
“노래해! 노래해!”
나는 난감한 표정을 보이며 고동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역시 주변 사병들과 똑같이 박수를 치며 내게 노래를 권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흠. 저는 여러분과 같은 20대지만 최신 노래는 잘 듣지 않아 모릅니다만 괜찮습니까?”
“괜찮아! 괜찮아!”
“알겠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도저히 거절은 못 하겠군요.”
나는 잠시 헛기침을 한 다음 회귀 전 수도 없이 불렀던 18번을 꺼냈다.
오래된 노래였지만 명곡은 시간에 구애되지 않았다.
곧 막사 안은 떼창이 시작되었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 * *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꽝!!
떠나기로 했던 삼 일째 오전.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다.
나는 서둘러 고동완을 찾았다.
“이건 또 뭡니까?!”
“인근 부대에 박격포가 떨어졌습니다. 대표님도 당장 대피호로 피신하십시오!”
나는 장병들과 함께 대피호로 피신했다.
무전을 들어 보니 남수단의 정부군과 이에 맞서는 반군 간에 교전이 벌어져 박격포탄이 인근에 위치한 네팔 기지 안에 떨어졌다고 한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고 부상자만 몇 명 발생하였다고는 하지만, 오늘 남수단을 떠나 뉴욕으로 가려던 일정은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정부군과 반군의 대립이 심해졌나 보군요?”
“맞습니다. 유전 개발 이권을 놓고 내전인 상황입니다.”
“독립해서도 내전이라니. 상황이 좋지 않군요.”
“네. 아무래도 대표님께서는 당분간 이곳에 더 머무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만 한빛부대는 괜찮겠습니까? 비전투 부대 아닙니까?”
“정부군과 반군의 대립이지 그들이 미쳤다고 UN군을 공격하지는 않을 겁니다. 방금 터진 박격포탄도 정부군이 반군에게 장악된 보르 공항을 탈취하는 도중에 벌어진 실수라고 합니다.”
“실수라곤 하지만 잘못하면 사람이 죽었을 수도 있는데요.”
“어쩌겠습니까. 여긴 그런 곳입니다.”
1시간이 지나도록 별다른 피해가 없자 고동완은 부대원 모두를 대피호에서 나오도록 지시했다.
‘위험한 곳인지는 알았지만, 전투가 벌어질 줄은 몰랐군. 뉴욕행에 지장을 받겠는걸.’
나는 정부군과 반군이 대립하는 이유에 대해 고동완에게 물었다.
그는 팔짱을 끼고는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결국 이권 다툼입니다. 유전 지역을 장악해서 권력을 얻고자 하는 것이죠. 게다가 현재 남수단의 대통령인 키르 대통령은 남수단 최대 부족인 딩카족 출신이고, 이에 맞서는 반군의 마차르 전 부통령은 두 번째로 큰 부족인 누에르족 출신입니다. 종족 간의 갈등이기도 합니다.”
“문제가 복잡하군요.”
“내전 이전에는 수단과도 분쟁이 있었습니다. 수단은 아프리카 석유 매장량의 5위를 차지할 정도로 석유가 풍부한데, 이중 대다수가 남수단에 몰려 있거든요. 결국 유전이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된 겁니다.”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겁니까?”
“UN에서는 평화 협상을 중재하는 게 다겠죠. 결국은 자기네들끼리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이 맞았다.
그 이상은 내정 간섭에 해당할 터이고, 중재자가 떠나면 재발할 문제였다.
그러나 나는 하루빨리 이곳을 떠나서 뉴욕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런 곳에서 더 지체할 순 없다. 한국에 빨리 돌아가려면 해외에서 할 일이 많아.’
눈앞에 항암 치료를 받고 초췌해진 강규현 회장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나는 결심을 굳히고 고동완에게 말했다.
“그 중재라는 거. 제가 한번 나서 보겠습니다.”
“네? 대표님이요?”
* * *
남수단 대통령인 키르와 반군의 우두머리인 마차르를 한자리에 모으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한빛부대는 보르 기지 내에 빠르게 임시 강연장을 마련하고는 두 사람을 이곳으로 불렀다.
고동완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 대표님의 영향력이 실로 놀랍군요. 오바마를 비롯한 각 국가의 원수들이 그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압박을 넣는 경우는 처음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인맥을 안 좋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많이 알아 둬서 나쁠 건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