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2화 (192/200)

“허허. 대표님의 경우에는 그 인맥의 범주가 일반인들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게 문제지만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독일의 메르켈 총리,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 일본의 아베 총리 등.

전 세계의 주요 지도자들은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남수단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대립을 즉각 중지하라는 내용의 발표였다.

‘핵심은 내가 중재하는 회담에 참석하라는 것이었지만.’

남수단은 신생 국가였다.

미국을 위시하여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압박하자 이들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공동 성명이 발표된 지 일주일 만에 두 정상이 한자리에 모였다.

먼저 도착한 쪽은 키르였다.

검은색 중절모를 쓴 그는 나를 보더니 와락 포옹하였다.

“남수단 대통령 키르요. 반갑소.”

“오프라인 대표 우세진입니다. 반갑습니다.”

남수단의 공용어는 영어였다.

나는 별다른 통역 없이 그와 대화를 나눴다.

오래지 않아 반군의 우두머리인 마차르 전 부통령이 도착하였다.

덩치가 곰만 한 그의 양손에는 큼지막한 금반지가 각각 약지에 끼워져 있었는데, 반지에는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다.

“리에크 마차르입니다. 전 부통령이오.”

“반갑습니다. 반지의 십자가가 무척 인상적이군요.”

“아. 이것 말입니까? 나는 장로교도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죠.”

우리는 곧 임시로 마련된 강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임시 시설이지만 내부는 무척이나 넓고 깨끗했다.

공병 위주인 한빛부대의 활약이 컸다.

나는 두 사람에게 내부를 소개하며 말했다.

“한빛부대는 남수단의 재건을 위해 파견된 비전투 부대입니다. 두 분이 화해하고 협력해 나가신다면 최고의 지원을 해 주실 겁니다.”

“후후. 미스터 우. 남수단은 풍요로운 국가입니다. 석유 자원이 풍부한 나라죠. 지원이 없어도 우리는 일어설 수 있습니다.”

마차르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부통령님. 자원이 문제인 게 아니지 않습니까. 두 세력의 무력 충돌로 많은 남수단 국민들이 고통에 떨고 있습니다.”

“흥. 그건 모두 저기 있는 남자가 권력을 독점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마차르는 키르에게 삿대질을 하며 노려보았다.

키르도 이에 지지 않았다.

“마차르. 난 당신에게 부통령 자리를 주었소. 더 이상 뭘 바란단 말이오!”

“우리 누에르족을 무차별 학살한 건 다 알고 있습니다! 단지 누에르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부군 탱크가 개인의 사택을 그대로 밀어 버리지 않았습니까?!”

“허허.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았으면 좋겠군. 미스터 우. 저자가 하는 소리는 믿지 마시오.”

두 사람을 이곳으로 모으기는 쉬웠지만 화해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직 중재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기 싸움이로군.’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어루만지며 둘에게 준비된 의자에 앉아달라고 부탁했다.

의자는 좌측에 하나, 우측에 하나.

그리고 가운데에 내가 앉을 의자.

이렇게 3개로 구성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끝까지 투덕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앞에는 한빛부대에게 빌린 카메라가 하나 서 있었다.

나는 둘에게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미 공지 드렸지만 지금 이 중재 회담은 전 세계로 생방송이 됩니다. 그러니 아까처럼 다투는 모습은 가급적 자제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두 사람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카메라맨에게 신호를 보내고 준비된 대본을 읽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오프라인의 우세진입니다. 오늘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 남수단에서 여러분들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일주일 전 전 세계 주요 지도자들의 공동 성명이 있었던 만큼 많은 이들의 오프라인의 유튜브를 방문하여 생중계를 지켜보았다.

<우세진은 언제 남수단에 간 거야? 거기 위험 지역 아님?>

<그는 이미 월드클래스야. 북한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정상들이 그와 만나고 싶어 하지>

<근데 남수단은 어디에 있는 국가지? 얼마 전에 독립했다더니 왜 또 서로 싸우고 난리래>

사람들이 남수단의 현황에 대해 궁금해하자 나는 즉시 준비된 멘트를 날렸다.

“남수단은 신생 독립 국가이지만 여러 갈등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인종, 종교, 자원 갈등이 심각하죠. 그래서 독립 후 내전에 빠졌지만, 오늘 이 중재 회담을 통해 좋은 결과가 있기를 희망합니다. 키르 대통령님.”

“네, 미스터 우.”

“정부 측에서는 이번 내전에 대해 어떤 입장입니까?”

“마차르 전 부통령은 쿠데타를 모의하고 있었소! 이것은 명백한 반역이자 국가 전복 시도입니다!”

그의 말에 마차르가 항변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나는 그의 독재를 옆에서 감시하고 견제하였을 뿐입니다. 그는 자신의 출신인 딩카족 출신만을 중용하고, 누에르족을 핍박하고 학살한 살인범입니다!”

“뭐라고! 이보게 마차르. 이건 지금 전 세계로 생방송되고 있소! 그딴 망언에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오!”

“나는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독재는 문제투성이오! 키르!!”

두 사람은 나의 조언을 잊을 듯 바로 현장에서 싸울 것처럼 서로에게 으르렁거렸다.

나는 두 사람을 말리며 말했다.

“키르, 마차르. 저는 외부 사람입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딩카족에도 관심이 없고, 누에르족도 관심이 없습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요, 미스터 우.”

두 사람의 시선이 내게 고정되자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두 분에게 묻겠습니다. 딩카족은 남수단 국민이 아닙니까? 누에르족은 남수단 국민이 아닙니까?”

“그건…….”

두 사람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자 나는 기세를 이어나갔다.

“세계의 그 어떤 국가도 단일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가 태어난 나라인 대한민국도 단일 민족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수만 년 동안 복잡한 혼혈로 구성된 다인, 다민족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죠.”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민족이나 인종,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의 국가 아닙니까. 남수단 국민들 모두에게 고통을 주고 싶으신 겁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입니까?”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수단 국민들의 고통은 반군의 존재 의의가 아닙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나는 빙그레 미소를 보이고는 말했다.

“남수단은 세계에서 가장 젊은 국가입니다. 게다가 석유를 비롯한 천연자원도 풍부하죠. 두 분이 힘을 합친다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미스터 우. 말은 감사하지만, 현실과 이상은 다른 법입니다.”

“그렇소. 우리는 함께하기에는 이미 너무 먼 길을 걸었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해결책이 있습니다.”

“해결책이 있다고?”

“네, 연립 정부를 구성하시는 겁니다.”

“연립 정부요?”

“독일에서도 두 정당이 연합하여 연립 정부를 구성, 강력한 경제 대국을 이뤘습니다. 불안할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와는 달리 독일은 그 어떤 나라보다 안정적이죠.”

“연정이라니. 생각도 못 한 제안이로군요.”

키르가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흥미로운 반응을 보였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고도성장 역시 연정에서, 독일의 통일 역시 연정에서 이뤄졌습니다. 두 세력 간에 긴밀한 협력이 큰 영향을 주었죠.”

이후 우리는 연정의 장점과 연정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의견을 제시하면 키르와 마차르가 자신들의 궁금증을 물어보는 식이었다.

결국 중재 4시간 만에.

두 사람은, 전쟁 종료를 선언하며 이번 중재 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 * *

<남수단 내전 종료 선언…… 오프라인 우세진 대활약 펼쳐>

<전 세계 지도자들 칭찬 줄이어……. 남수단의 평화가 곧 세계의 평화>

<우세진이 제시한 연정은 무엇? 경제 대국 독일의 원동력>

중재 회담이 끝나자마자 전 세계 언론에서 이번 중재에 대한 소식을 주요 의제로 다루며 기사를 쏟아냈다.

사람들은 대체로 오프라인이 또 한 건을 해냈다며 놀라워했다.

<우세진은 마치 슈퍼맨 같아. 마블에서 우세진을 주인공으로 새로 작품을 쓰면 좋겠군>

<나는 앞으로 오프라인에서만 기사를 볼 거야. 오프라인은 보는 게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거지>

<오프라인은 상장하지 않는 건가? 주식을 사고 싶은데 방법이 있다면 좀 알려 줘!>

중재 회담을 마치고 짐을 싸고 있는 내 방에 고동완이 들어왔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같은 한국인임을 떠나서 인간적으로 대표님을 정말 존경합니다.”

“과찬이십니다. 단장님 덕분에 큰일을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UN에서도 이번 회담을 잘 처리했다면서 저희 부대를 칭찬하였습니다. 모두 대표님 덕입니다.”

나는 그의 안내를 받으며 4시간을 내리 달려 주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내가 출국한다는 소식을 접한 키르와 마차르도 나와 있었다.

“고맙소, 미스터 우. 덕분에 남수단 사람들은 평화를 얻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남수단 국민들이 고통에 처하지 않도록 두 분이 서로 협력해서 잘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

“걱정 마십시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를 선언한 만큼.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나는 두 사람과 굳은 악수를 나누고는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예정보다 많이 지연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2013년이 끝나기 전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 * *

12월의 뉴욕은 추웠다.

온도는 서울보다 높았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 체감하는 온도는 훨씬 낮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더운 나라에 있다가 와서 그런지 훨씬 더 춥게 느껴졌다.

사무실 안에서도 외투를 벗지 않는 나를 보고는 홍지혜가 웃으며 말했다.

“남수단의 영웅께서도 추위는 어쩔 도리가 없나 보군요.”

“놀리지 마세요. 홍 지사장님. 그런데 책상 위에 이 편지들은 도대체 뭡니까?”

나는 내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편지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홍지혜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사람들은 대표님이 슈퍼맨 같나 봐요.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청원 편지를 보내왔어요.”

“청원 편지요?”

“네, 이번에 남수단 중재 회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다음 날부터 사무실로 편지가 쏟아지더라고요.”

나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편지들을 살펴보았다.

대부분은 개인적인 고민과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 주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들.

그러나 개중에 몇몇은 정말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나는 우선 간단한 조언이면 해결될 문제들을 정리하고, 오프라인 홈페이지에 <우세진의 답변>이라는 카테고리를 신설하고는 여기에 글을 남겼다.

연애 이야기, 진로 상담, 힘들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 등이 이에 해당하였다.

그리고 단순히 조언에서 끝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뉴욕시립대학교 버룩 칼리지를 방문하였다.

뉴욕시립대학교 소속의 버룩 칼리지는 전국적인 인지도는 낮았지만, 명문대라 불릴 만한 학교였다.

특히 회계학과의 경우 전국 최고 수준의 인재들을 길러내고 있었다.

학생들의 표정은 쾌활했고, 교정은 밝았다.

부패와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이곳에서도 그러나 오랜 악습이 있었다.

나는 눈앞에 있는 중국인, 요셉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곧 있을 신입생 신고식이 두렵다는 건가요?”

요셉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답했다.

“네, 오랜 전통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집단 괴롭힘에 불과하거든요.”

“진리의 상아탑인 대학에서 왜 그런 짓이 벌어지는 거죠?”

“자신들의 권력을 남용하고 과시하는 거예요. 나는 너의 선배고, 선배는 하늘이다. 내 말을 따라라. 이런 식으로 겁을 주는 거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생각했다.

일종의 신입생 군기 잡기였다.

한국 같았으면 신입생 환영회에서 선배가 후배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해서 취하게 한 다음 기 싸움의 우위를 점하는 것처럼.

다만 이곳의 신고식은 수위가 훨씬 높았다.

요셉이 온몸을 덜덜 떨며 중얼거렸다.

“신입생 신고식의 백미는 ‘유리 천장’이라고 불리는 통과 의례에 있어요.”

“유리 천장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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