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이프로 슈니첼을 먹기 좋게 잘라서 입안으로 가져갔다.
튀김옷의 바삭한 느낌은 없고 튀김옷과 고기가 한 몸이 된 듯 쫄깃한 맛이 무척이나 신기했다.
“돈가스와는 맛이 많이 다른데요?”
“그렇죠? 이건 기름에 튀겼다기보다는 우리네 파전처럼 기름에 구웠다고 해야 할까요? 조리 방법이 조금 달라요.”
“맛있네요. 식당에서 먹어도 괜찮은데 직접 요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대표님 오셨는데 당연히 제가 대접해야죠. 혹시 와인 괜찮으세요?”
“저야 좋죠.”
내 말에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던 박창후가 그제야 얼굴을 풀고는 외쳤다.
“어떤 와인을 원하십니까? 레드? 화이트? 로제? 귀부 와인? 말만 하십쇼!”
“독일에 왔으니 귀부 와인이 좋겠네요.”
“역시 센스쟁이라니깐. 자 TBA 등급의 귀부 와인입니다. 드시죠!”
그는 와인 보관함에서 와인 한 병을 꺼내오더니 내게 따라주었다.
짙은 황색의 와인이 마시기도 전부터 단내를 사방에 풍겼다.
“최루리 지사장님이나 이채선 지사장님과는 가끔 연락합니까?”
“최 지사장님은 가끔 집으로 놀러 옵니다. 함께 여행도 가고요.”
“그랬군요. 프랑스나 영국 사정은 어떻습니까?”
“거기도 별수 있나요. 독일과 비슷비슷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후발 주자가 치고 올라가기에는 기성 미디어들의 벽이 너무 셉니다.”
“후후.”
“왜 웃으시는 거죠?”
박창후가 따지듯 물었다.
나는 그의 빈 잔에 와인을 따라주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박 지사장님.”
“네.”
“오프라인이 언제부터 거대 미디어였습니까.”
“네?”
박창후는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와인 잔을 식탁 위로 내려놓았다.
김지인 역시 마찬가지.
“오프라인은 바닥에서부터 출발한 언론사입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그렇죠. 우리는 한 번도 선두권에서 출발한 적이 없습니다.”
“무, 물론이죠.”
“우리는 늘 후발 주자였습니다. 그것도 가장 끝에 위치한. 그 점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제가 경솔했습니다.”
순식간에 자리는 냉랭하게 얼어붙었다.
빠르게 저녁을 마친 나는 손님 접대용 방으로 들어갔다.
하루빨리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을까.
부인도 옆에 있는데 오늘은 내가 좀 심했단 생각이 들었다.
* * *
어제의 일 때문이었을까.
사무실로 함께 출근한 박창후는 평소보다 더 열심히 근무하는 모습이었다.
메일로 보내도 될 보고서를 굳이 내 자리에까지 직접 와서 보고하거나 나 들으라고 그러는지 직원들에게도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야야! 그 기사는 아직도 도착 안 했어?”
통역사를 통해 푸른 눈의 독일 직원들에게 건네진 말은 다시 박창후에게 돌아왔다.
“프리랜서 기자가 맹장염에 걸렸답니다. 기사는 다음 주에나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러네요.”
“젠장. 망할 놈의 프리랜서 기자들. 그따위로 마감도 못 지키면서 어떻게 일을 하겠다는 거야!”
프리랜서 기자라는 말에 흥미를 느낀 나는 박창후에게 물었다.
“현지인 기자가 5명이나 있는데 프리랜서 기자도 쓰고 있나요?”
“아? 그게 독일은 특이하게 기자 세 명 중 하나가 프리랜서입니다. 신기하죠?”
“그래요? 소속이 없는데 어떻게 기사를 쓰죠?”
내 말에 박창후 옆에 붙어 있던 통역사가 박창후보다 한발 먼저 입을 열었다.
자신을 엘라라고 소개한 그녀는 독일에선 프리랜서 기자가 흔한 일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기사를 잘 쓰면 언론사에서 취재 의뢰를 주기도 하고요. 아니면 프리랜서 기자 스스로가 언론사에 제안서를 보내기도 합니다. 이런 기사를 쓰면 어떻겠냐고요.”
“오호라. 무척이나 흥미로운 시스템이네요. 그러면 아무나 기사를 쓸 수 있는 건가요?”
“아뇨. 1년에서 2년 정도의 기자 교육을 거쳐야만 프리랜서 등록이 가능해요.”
“보통 원고료는 어느 정도나 하나요?”
“경력에 따라 다르지만, 글을 잘 쓰는 프리랜서 기자라면 정규직보다 많은 돈을 벌기도 하죠.”
“고맙습니다, 엘라.”
“별말씀을요.”
엘라가 빙그레 웃고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금발의 엘라는 키가 크고 날씬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전형적인 서양 미녀.
나는 박창후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일부러 미모의 젊은 여성으로 통역을 구하신 건 아니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한테는 첫째도 지인이! 둘째도 지인입니다!!”
“후후. 농담이에요. 그런데 독일 기자 사회가 프리랜서 기자들이 많다면 저한테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 떠오르네요.”
“좋은 아이디어요? 그게 뭔데요?”
* * *
나는 독일 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구성원 모두를 한자리에 모았다.
그리고 엘라에게 양해를 구한 뒤 영어로 말했다.
“혹시 다들 영어 할 줄 아십니까?”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럽에서 영어는 제2 언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독일어는 물론 영어도 할 줄 모르는 박창후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엘라에게 영어 통역을 부탁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엘라에게 들은 이야긴데 독일 사회는 프리랜서 기자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오프라인에서도 프리랜서 기자들에게 취재 의뢰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요.”
모두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기들로서도 자신들의 보스이자, 나름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내가 직접 눈앞에서 이야기를 하니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저는 한국의 웹툰이나 웹소설처럼 프리랜서 기자들이 취재 의뢰를 받는 동시에 자신들의 기획한 취재 제안서를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플랫폼이요?”
“네, 플랫폼에 자신을 등록해서 취재 의뢰를 받거나 취재 요청을 하는 거죠.”
“그러면 그들은 오프라인 소속의 기자와 다를 바가 없는 것 아닌가요?”
누군가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단순히 플랫폼만 제공하는 것이지, 이곳은 모든 언론사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모든 언론사에 열려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플랫폼은 단순히 중계 역할만 해 주는 겁니다. 기자와 언론사를 이어 주는.”
“그렇게 해서 저희가 얻을 이득은 뭔가요?”
“일단은 중계 수수료가 있죠. 두 번째는 프리랜서 기자의 데이터 확보입니다. 그들이 회원 가입을 하면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면 우리는 이를 기반으로 쉽게 취재 요청을 할 수도 있겠죠.”
“좋은 방법인데요?”
“세 번째는 두 번째와 연결된 건데, 인지도 구축입니다. 독일에서 오프라인의 인지도를 높이려면 다양한 시도가 필요할 테니까요.”
엘라의 통역을 거쳐 내 말을 이해한 박창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방법이네요.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그런 플랫폼이 현재는 없으니까 우리가 구축한다고 하면 제법 이슈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웹툰이나 웹소설 플랫폼 등을 운영하면서 쌓아 왔던 노하우도 있으니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런데 콧대 높은 독일 기자들이 과연 우리 플랫폼을 이용할까요?”
“그건 우리 하기에 달려 있죠. 최대한 프리랜서 기자들 입장에서 필요한 사항들이 무엇인지 조사하고 그들의 니즈를 제대로 반영해야 하겠죠.”
“여기 모두 기자들밖에 없는데 가능할까요? 그런 건 마케팅 부서가 잘할 것 같은데.”
박창후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기자를 제일 잘 아는 게 기자 아니겠습니까.”
* * *
나는 곧장 한국에 있는 직원들을 시켜 플랫폼에 대한 기획서와 시안을 작성하라고 한 다음 독일 지사의 직원들과 함께 시장 조사에 나섰다.
기존에 알고 있던 프리랜서 기자들은 물론 그들에게 소개받은 프리랜서 기자들까지 모두 베를린 사무실로 부른 것이었다.
총 23명의 기자들이 사무실을 방문해 주었고, 우리는 한 명 한 명을 상대로 준비한 질의서를 바탕으로 오랜 인터뷰를 거쳤다.
그들의 의견은 명확했다.
“첫째. 만약 그런 플랫폼이 있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 같다.”
“둘째. 취재 제안서를 입찰 방식으로 한다면 경쟁이 붙어서 원고료가 올라갈 것 같다.”
“셋째.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역으로 범위를 넓히더라도 경쟁력은 충분할 것 같다.”
나는 그들의 인터뷰를 마치고 어떤 확신이 섰다.
‘이건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있겠군. 문제는 언론사에게도 이게 필요한 아이템인가 하는 사실인데.’
아무리 프리랜서 기자가 많이 가입한 사이트라고 하더라도 정작 그들에게 취재를 의뢰할 언론사가 플랫폼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의 연락처를 검색했다.
그러다 독일 최대 신문기업인 ‘악셀 슈피링거’ 편집국장의 이름을 찾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루카스 뮐러.”
그와는 4년 전 국제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처음 명함을 주고받았던 사이었다.
나는 조용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오래지 않아 둔탁한 독일어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나는 곧바로 영어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몇 년 전 국제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만났던…….”
-우세진 대표 아닙니까?
“저를 기억하시나요?”
-기억하다마다요. 요즘 언론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인사 아닙니까. 처음 만났을 때도 보통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제 눈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하하.
상대가 이렇게 나오니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그에게 구상 중인 프리랜서 기자 중계 플랫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흠. 프리랜서 기자 중계 플랫폼이라. 괜찮습니다. 아니, 언론사 입장에서도 무척 필요한 플랫폼이었습니다.
“그런가요?”
-네, 그동안은 알음알음 인맥을 통해서 기자를 구했는데 그런 플랫폼이 있다면 기자들도. 그리고 언론사도 무척 편하게 서로가 원하는 바를 찾을 수 있겠군요. 그런데 우 대표님.
“네?”
-혹시 지금 독일입니까?
“아 네, 베를린에 있습니다.”
-그래요? 얼마 전까지 미국에 있지 않았습니까?
“며칠 전에 독일에 들어왔습니다.”
-그랬군요. 오프라인이 독일에도 지사가 있죠?
“네, 현재는 여섯 명 정원의 소규모지만 계속 확장할 예정입니다.”
-잘하실 겁니다.
“저기, 국장님.”
나는 전화를 끊으려던 뮐러를 붙잡았다.
-네? 더 하실 말씀이라도?
“저희가 독일 시장에 잘 안착하리라 보십니까?”
내 물음에 뮐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국장님?”
-아. 잠시 생각을 하느라. 쉽진 않을 겁니다. 유럽은 미국과는 다르거든요.
“그럴까요? 독일 언론도 해가 갈수록 구독자 수는 물론이고 매출이 떨어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젊은 구독자들은 더 이상 신문을 보지 않고요.”
-어디든 마찬가지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오피니언 리더들은 신문을 사서 봅니다. 언론의 영향은 여전히 막강하죠.
“알겠습니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좋죠. 언제 한번 식사라도 같이하시죠. 연락 주세요.
그와의 전화를 끊은 나는 즉시 회의를 소집했다.
그리고 외쳤다.
“오늘부터 오프라인 저먼의 주 타깃은 10대에서 30대까지 젊은 층입니다. 고루한 내용이 아니라 신선하고 젊은 감각으로 기사를 써 주세요. SNS 소통에 더 집중해 주시고요.”
“저기 대표님. 저희는 지금까지 식자층을 대상으로 한 품위 있고 깊이 있는 기사를 써 왔는데요?”
“그거로는 절대 5대 언론 재벌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들이 쓰는 기사가 바로 그런 기사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갑자기 기사의 방향을 바꾸라 하셔도…….”
“프리랜서 기자 둬서 뭐 할 겁니까. 젊고 감각적인 기자들에게 의뢰하세요. 그리고 우리 기자들도 그들의 기사를 보고 배우면 됩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다들 분주히 자리로 돌아갔다.
그다지 만족스러운 표정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