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후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대표님.”
“네.”
“지금 독일 지사에 있는 친구들은 모두 탐사 보도가 하고 싶어서 오프라인에 들어온 친구들입니다.”
“그래서요?”
“그들에게 갑자기 가볍고 트렌디한 기사를 쓰라고 해도 그게 그렇게 갑자기…….”
“박 지사장님.”
박창후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기사를 단순히 가볍다, 무겁다로 나눌 수 있습니까?”
“아, 아뇨.”
“제가 연예 기사를 기계처럼 찍어 대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젊은 층을 대상으로 신선한 기사를 쓰라고 한 게 그렇게 무리한 요구입니까?”
“아니요. 아닙니다.”
“박 지사장님 독일에 오시더니 많이 변하셨네요?”
“아닙니다. 제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우리 기자들뿐 아니라 프리랜서 기자들에게 취재 신청을 하세요. 그래서 누가 더 젊은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 한번 두고 봅시다. 만약.”
“만약?”
“정규직 기자들이 프리랜서 기자들보다 반응이 좋지 않다면 모두 각오해야 할 겁니다. 괜히 정규직 월급 주고 채용한 게 아니니까요.”
내 말에 박창후는 기겁하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부하 직원들을 채근했다.
그 낯선 분위기에 모두가 어색해했지만, 지금은 당근보다는 채찍이 필요한 시기였다.
* * *
나는 한 달 뒤에 돌아와서 프리랜서 기자들이 쓴 기사의 반응과 정규직 기자들이 쓴 기사의 반응을 비교하겠다는 엄포를 놓고는 프랑스로 이동했다.
오랜만에 본 최루리는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안녕하냐고 묻고 싶은데 안녕하지 못한 것 같군요?”
“타국 생활이 길어져서 그렇죠. 뭐. 그래도 대표님 얼굴 보니까 좋네요.”
“일은 할 만한가요?”
“박 지사장님에게 이야기 들었어요. 저희 쪼려고 미국에서 오셨다면서요?”
“쪼긴 뭘 쪼아요. 성과가 없으니 제가 도와드리려고 온 거죠.”
“그게 그거죠. 휴. 안 그래도 블랙리스트 수사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
“블랙리스트 수사요?”
내 말에 최루리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최근에 프랑스 수사당국에서 무리하게 수사를 하고 있거든요. 별것도 없는데 테러 용의자라면서 무슬림을 대상으로 압수 수색을 하고 있어요. 그거 취재한다고 좀 바쁜 상황이에요.”
“증거는 있나요?”
“고작 책 하나예요.”
“책이요?”
“네, ‘알라의 이름으로 폭탄을 만드는 법’이라는 유치한 이름의 책인데. 그게 무슨 증거겠어요. 그저 무슬림에 대한 차별이죠.”
별것 아니라는 듯 하품을 하는 최루리와 다르게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후일. 극단주의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에서 테러 대원들에게 나눠 준 책자가 아니던가.
“프랑스 수사당국에서는 그들을 어떻게 처리했는데요?”
“처리랄 게 있나요. 증거가 없는데. 블랙리스트로 올리고 주변을 감시하고 있는데 제가 봤을 때는…….”
“최 지사장님!”
“네?”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최루리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 책자는 아주 위험합니다. 단순히 무슬림에 대한 적대가 아니고요.”
“그, 그런가요? 저희는 지금 프랑스 수사당국이 무리하게 수사를 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쓰고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수사당국에 아는 사람은 있습니까?”
“아는 사람이야 많죠. 모두 취재원들이니까요.”
“지금 당장 최 지사장님이 알고 있는 취재원 중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소개해 주세요. 지금 당장요!”
최루리는 모르고 있었다.
아니, 프랑스 수사당국조차 모르고 있을 것이었다.
이슬람국가가 앞으로 유럽 사회에.
그리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어떤 잔혹한 테러를 저지르는지.
* * *
당시만 하더라도 유럽 사회는 IS의 존재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테러가 발생하더라도 그저 정신 나간 이들의 단독 범행이나 우발적인 사건으로 치부할 뿐이었다.
‘그러니 2014년을 기점으로 유럽에서 이슬람 테러가 기승을 부린 것이겠지만.’
나는 최루리가 소개해 준 인물이 고작 총경급이라는 사실에 실망하고 직접 프랑스 대통령인 프랑수아 올랑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와는 과거 에드워드 스노든과의 토론 배틀 이후 전화로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의 영어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기에 나는 최루리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갑작스러운 나의 연락에도 그리 놀라지 않고 프랑스어 특유의 느긋한 어투로 물었다.
-미디어 재벌께서 저한테는 무슨 일로?
“최근 블랙리스트 수사를 강화하고 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네? 그게 무슨?
“‘알라의 이름으로 폭탄 만드는 법’이라는 책자를 소유한 자를 감시하고 있다고요.”
-아. 그거. 네. 맞습니다. 유치하긴 하지만 이름이 영 수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올랑드는 궁금하다는 듯 끝말을 올렸다.
“그가 거주하고 있는 곳을 샅샅이 수색해 보십시오. 분명 대량의 폭탄이 나올 겁니다.”
-폭탄이요?
“네, 그 책자는 IS에서 유럽 테러 공격을 지시할 때 하사하는 책입니다.”
-IS요?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 조직을 말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IS 내에 유럽 테러를 지시하고 지원하는 조직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 봅니다만.
태생적으로 정치인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니, 정치인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차분히 그에게 설명했다.
“아시겠지만 제가 전 세계적으로 정보원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듣기로는 최근 IS에서는 유럽을 타깃으로 한 대테러 작전을 모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테러 작전이라니! 대통령인 나도 모르는 정보를 우 대표는 알고 있다는 말입니까?
“테러 용의자들을 조사해 보십시오. 분명 국적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지만 최근 시리아를 방문하여 테러 훈련을 받은 적이 있을 겁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블랙리스트 중 최근 시리아를 방문한 이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해 보세요. 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다음에 판단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그에게 몇 가지 당부 사항을 전한 뒤 전화를 끊었다.
최루리가 놀란 토끼 눈을 하고는 말했다.
“그게 정말이에요?”
“네, IS는 곧 스스로를 칼리프 국가라고 선포하고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테러를 벌일 작정입니다.”
“설마 지금까지 유럽에서 일어난 테러들도?”
“상당수가 IS에 의한 테러였을 겁니다. 수사 당국이 그들과의 연계를 모를 뿐.”
“그것 참 난감하네요.”
최루리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고민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대표님도 잘 아시겠지만, 유럽에서 이슬람에 대해 그리 좋게 보지 않아요. 십자군 때부터 얽힌 악연이죠.”
“그렇죠. 마치 한국과 일본처럼.”
“네, 그래서 저희는 무슬림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캠페인을 하고 있었거든요. 주로 그들의 입장에서 인터뷰하고 기사를 썼어요.”
“저도 그런 캠페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대표님 말이 사실이라면 저희는 영 다른 방향을 걷고 있는 거잖아요?”
“그건 아닙니다.”
“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무슬림을 차별하는 건 잘못된 게 맞죠. 그건 바로잡아야 하는 게 맞아요. 다만.”
“다만?”
“IS는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입니다.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놈들이니까요. 그들에 대한 경계는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무고한 테러로 수많은 목숨이 희생될지 모를 일이니까요.”
실제로 2015년 11월.
프랑스 파리와 생드니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으로 160명 이상이 죽고 300명 이상이 큰 피해를 보았다.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막을 수 있는 건 아직 IS의 활동이 미약한.
지금뿐이었다.
* * *
다행히 올랑드 대통령은 내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블랙리스트에 대한 감시를 강화한 결과 실제로 그들의 거주지에서 다량의 폭탄이 발견.
내 말이 틀리지 않았음이 입증되었다.
올랑드는 내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우 대표님 덕분에 정말로 테러리스트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집 근처에 폭탄을 숨겨 두고 있었고, 실제로 시리아를 방문한 적이 있더군요.
“대통령께서 제 말을 기억해 주신 덕분이죠.”
-감히 미디어 재벌의 말을 흘려듣겠습니까.
미디어 재벌이라는 말이 영 듣기 거북했지만 나는 별다른 대꾸 없이 물었다.
“앞으로도 꾸준히 시리아를 비롯한 IS 활동 지역을 방문한 이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야 할 겁니다. IS는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했어요. 그들의 유럽에 대한 적개심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알겠습니다. 새겨듣도록 하죠. 그런데 저희 수사당국도 모르는 그런 비밀을 도대체 어떻게? 설마 미국 수사당국의…….
“아뇨. 그들도 아직 이런 상황은 모르고 있을 겁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 정보원들에게 들은 정보입니다.”
-미국 수사당국도 모르는 일을 일개 개인이 알고 있다니. 새삼 오프라인의 정보력에는 감탄하게 되는군요.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나는 그 말을 놓치지 않고 말했다.
“보답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오프라인의 대표로서 부탁드리고 싶은 일은 있습니다.”
부탁한다는 내 말에 올랑드는 호기심을 보였다.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부탁이라면 최대한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프랑스의 취재는 다른 나라에 비해 어렵기로 유명합니다. 사전 약속을 하지 않으면 취재원을 만나는 것조차 불가능하죠.”
-하하. 약속도 없이 불쑥 방문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 해도 그 정도가 심합니다. 저희처럼 기반이 약한 해외 언론의 경우 취재원을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니까요.”
-그래서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프랑스 정부 기관을 취재할 때 인터뷰가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대체로 유럽 국가 대부분이 그러하지만, 특히 프랑스의 경우에는 공무원들이 느릿느릿 거북이가 따로 없었다.
뭘 물어봐도 답변을 받기까지 한세월이었다.
그렇다고 명확한 답이 오는 것도 아니었다.
결과적으로는 사전 약속 없인 답을 할 수 없다는 앵무새 같은 말만 들을 뿐.
게다가 언론의 인터뷰가 있다면 철저하게 대비하는 문화가 있어 개인의 의견을 가감 없이 언론에 공유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느릿하지만 또 철저한.
이는 해외 언론이 프랑스 현지를 취재할 때 느끼는 공통적인 어려움이었다.
‘프랑스 기자들이야 주변의 인맥을 활용해서 정보를 얻고 취재를 할 수 있다지만 우리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올랑드는 큰 부탁을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려운 부탁이 아니었다는 듯 흔쾌히 동의했다.
-그 정도쯤이야. 이번에 알려 주신 정보로 테러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제가 각 부서에 전달해 두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감사를 전하며 전화를 끊었다.
최루리는 나와 스마트폰을 번갈아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프랑스 대통령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신 거예요?”
“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 취재는 한결 편해진 거죠?”
“물론이죠! 잔소리하러 오실 줄 알았는데 정말로 저희 도와주러 오셨네요?”
“아니, 제가 그리 할 일이 없는 줄 아세요? 저 빨리 한국에 돌아갈 수 있게 좀 도와주세요.”
“흐흐. 농담이에요. 답례로 오늘 점심은 제가 좋은 걸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가시죠!”
그녀는 나를 바스티유 광장 근처의 한 레스토랑으로 데려갔다.
오래된 벽돌 위에는 ‘L'Ambroisie’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르 암브로이시?”
“하하. 대표님 덕분에 오랜만에 크게 웃네요.”
내 말에 최루리가 배를 잡고 웃었다.
“왜요? 뭐라고 쓰여 있는 건가요?”
“랑부아지예요. 한국어로 치면 맛있는 음식이라는 뜻이에요. 신들이 먹는다는 고귀한 음식이라는 뜻도 있고요.”
“그렇군요. 유명한 곳인가 봐요?”
“유명하다마다요.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인걸요. 미식가들의 극찬을 받는 곳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