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화 (197/200)

최루리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실로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계산서를 슬쩍 보았더니 점심값으로만 100만 원 가까운 돈이 나왔다.

역시 맛의 본고장 프랑스랄까.

맛도. 값도.

차원이 달랐다.

* * *

프랑스에 도착한 지 보름이 되었을 무렵.

최루리가 갔던 고급 레스토랑의 환상적인 맛이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다.

나는 슬쩍 그녀에게 말했다.

“최 지사장님. 점심 선약 있으신가요?”

“아뇨. 왜요? 점심 사 주시려고요?”

“네, 며칠 전에 최 지사장님이 사주신 3스타 레스토랑 있잖아요? 그 집 요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네요.”

“흐흐. 그 집 맛있죠. 비싸서 자주 못 갈 뿐. 사 주시려고요?!”

최루리가 목소리 톤을 높이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루리는 자랑하듯 직원들에게 무언가를 떠들었다.

그러자 직원들이 모두 부럽다는 얼굴로 내 쪽을 바라보았다.

“무슨 이야길 한 건가요?”

“대표님이 ‘랑부아지’에서 점심 산다고 하니까 다들 부러워하네요.”

“그걸 왜 직원들에게 이야기하고 그래요. 사람 무안하게.”

“자랑할 만하니까 하는 거죠, 뭘. 마음에 걸리면 다음 회식 장소는 거기서 해요. 천문학적인 비용이 나오겠지만요.”

“직원들이 원하면 해야죠.”

“역시 시원시원하시다니깐. 그럼 갈까요?”

그녀는 순식간에 나의 오른손을 잡아 팔짱을 끼더니 사무실을 나섰다.

원래 그런 성격이었지만 여전히 잘 적응이 되지 않은 그녀였다.

랑부아지에 도착한 우리는 몇 가지 단품 요리와 와인을 주문하고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 지사장님은 빨리 한국에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네, 한국인은 한국에 살아야 한다는 걸 매번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요즘이랍니다.”

“왜요?”

“문화도 그렇고, 알게 모르게 인종 차별을 당할 때가 많아요. 취재할 때도 그렇고요.”

“선진국인 프랑스도 인종 차별에선 자유롭지 못하군요.”

“물론이죠. 아시안은 물론이고 특히 무슬림과의 갈등은 심각한 사회 문제이기도 해요.”

그녀와 무슬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이.

식탁 위에 올려 둔 최루리의 스마트폰이 부르르 떨었다.

즐거운 얼굴로 스마트폰을 확인한 최루리의 표정이 순간 얼어붙었다.

“왜요? 무슨 일 있나요?”

“대, 대표님.”

“네, 무슨 일이에요?”

“사무실에…….”

그녀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최루리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 지사장님! 무슨 일이에요? 말 좀 해 봐요!”

“그게 저희가 여기 온 사이에…….”

“여기 온 사이에 뭐요?!”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식당 안에 있는 모두가 이쪽을 쳐다보았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고 다시 최루리를 다그쳤다.

“좀 시원하게 이야기를 해 보세요. 무슨 일인데요?”

“사, 사무실에…… 사무실 직원들이…….”

“좀!!”

“테러가 발생했대요.”

아니, 이건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란 말인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식사 잘하고 오라며 인사를 건네지 않았던가.

우리는 절반도 나오지 않은 식사를 내팽개치고는 즉시 사무실로 향했다.

그러나 도로는 꽉 막힌 채 택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안 되겠습니다. 여기서 내려서 걸어가죠!”

나는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확인하며 사무실을 향해 달렸다.

사무실이 가까워질수록 거리 곳곳에 총을 든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많아졌고.

사이렌 소리가 어지러운 가운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가하던 사무실 주변이.

수많은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관계자들만이 분주하게 앰뷸런스와 사무실 사이를 오갔다.

* * *

오프라인의 파리 사무실 인근에 위치한 경찰서.

나와 최루리는 참고인 신분으로 프랑스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통역을 맡아야 할 최루리는.

반쯤 정신이 나가 그저 멍하니.

동공이 풀린 눈으로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이들과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해 보려 노력했으나 아쉽게도 경찰서 내에 영어를 쓸 줄 아는 이가 없었다.

답답하던 찰나에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오프라인의 우세진 대표님 맞으십니까?”

“네. 제가 우세진입니다. 누구시죠?”

“주프랑스 한국 대사 유지석입니다.”

“대사님이셨군요. 대체 무슨 일입니까?”

“오프라인의 파리 사무실에 테러범이 닥쳤다고 합니다. 혹시 모르고 계셨던 겁니까?”

“자세한 내용은 들은 바가 없습니다. 저는 불어를 할 줄 몰라서요. 혹시 대사께서 아시는 정보가 있다면 알려 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먼저 자리를 옮기실까요?”

그는 프랑스 경찰들을 향해 무어라 이야기를 하더니 나와 최루리를 데리고 주프랑스 한국 대사관으로 이동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저희도 계속 정보를 얻는 중입니다. 프랑스 언론에 의하면 갑자기 사무실에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추정되는 테러범들이 들이닥쳤다고 합니다.”

“그래서요?”

“그들은 ‘알라후 아크바르’. 그러니까 우리말로 하면 알라는 위대하다는 말을 외치며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했다고 합니다.”

“알라는 위대하다고요?”

“네, 프랑스 언론에서는 우 대표님이 프랑스 정보당국에 IS의 테러 위험에 대해 조언을 해 준 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얼마 전 르 몽드에서 인터뷰한 올랑드의 코멘트가 떠올랐다.

“저희가 테러범들을 찾을 수 있었던 건 모두 오프라인의 우세진 대표 덕분입니다. 그는 저에게 IS의 테러 위험에 대해 경고를 하더군요. 그들이 유럽에 거대한 규모의 테러를 계획하고 있다면서요. (중략) 사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죠. 하지만 정말로 그의 조언에 따라 블랙리스트의 거주지를 수색하자 놀랄 정도의 폭탄이 발견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는 좌우로 고개를 젓고는 물었다.

“피해 상황은요?”

유지석의 표정은 어두웠다.

“생존자는 없습니다. 6명이 전원 그 자리에서 사망했습니다.”

6명.

최루리를 제외한 프랑스 직원 숫자였다.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렸다.

“괜찮으신가요?”

“저는 괜찮습니다. 테러범들은요?”

“현재 수배 중인 상태입니다. 파리 전역에 최고 수준의 테러 경계경보가 발령됐고요.”

TV에선 올랑드 대통령이 나와 무언가를 발표하고 있었다.

“올랑드 대통령이 뭐라고 하는 겁니까?”

“이번 사건은 명백한 테러 공격이라면서 아무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그는 잠시 올랑드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이를 통역해 주었다.

“자유가 잔혹함보다 힘이 세다며 절대로 자신들은 테러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오늘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하겠답니다.”

“국가 애도의 날…….”

그게 도대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그의 경솔한 발언에 의해 오프라인의 소중한 직원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유지석은 내가 멍하니 있자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까는 제가 우 대표님을 대사관으로 모셔왔지만 아마 프랑스 수사기관의 조사를 다시 받으셔야 할 겁니다.”

“그래야겠죠.”

“원하신다면 두 분의 신변을 저희 대사관 측에서 경호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 주신다면 감사하고요.”

“오늘은 대사관 내에 있는 귀빈실에서 푹 쉬십시오. 두 분 모두 충격이 크실 것 같습니다.”

나와 최루리는 유지석의 배려로 각자 귀빈실로 이동하여 휴식을 취했다.

TV를 켜니 뉴스에서 세계 각 국가의 정상들이 이번 사건에 애도를 표하며 테러범들을 비난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무거웠다.

‘여섯 명 모두와 함께 식사를 하러 갔더라면. 그랬다면 모두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견딜 수 없는 자책감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눈앞이 노래지면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시곗바늘이 9시를 가리키기도 전에 침대에 뻗어 버렸다.

* * *

사건이 일어난 그 주 일요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캐머런 영국 총리 등을 비롯한 유럽 대다수 국가의 지도자들은 물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과 한국의 백철웅 대통령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이번 테러 사건을 추모하기 위한 추도 집회가 파리에서 열렸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인파가 파리의 레퓌블리크 광장에 모여 테러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그들은 모두 같은 팻말을 들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내가 오프라인이다’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올랑드부터 오바마까지.

이번 추도 집회에 모인 각 정상들의 추모사가 이어지고.

그 마지막 순서로.

오프라인의 대표인 내가 연단에 올랐다.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나는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며칠 전 저는 오프라인의 프랑스 지사를 책임지고 있는 최루리 지사장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사무실을 떠났습니다. 직원들은 함께하지 못해 아쉬운 표정을 보이며 저희에게 식사를 잘하고 오라며 인사를 건넸죠.”

내가 영어로 한 말은 즉각 프랑스어로 통역되었다.

“제가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직원들을 데리고 모두 함께 식당으로 향했더라면. 그랬다면 그들은 아무런 피해도 보지 않았을 텐데. 지금도 그 생각이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레퓌블리크 광장은 숙연했다.

애써 슬픔을 참으며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저는 오프라인의 대표로서 이번 총격 사건에 대해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들이 저희 사무실에 온 이유가 다름 아니라 제가 프랑스 당국에 IS의 테러 위험을 경고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말을 끝내고 올랑드를 바라보자 그는 시선을 회피했다.

“그렇지만 그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제가 위험을 경고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내 말의 뜻을 이해하고는 슬픈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적으로는 저는 IS가 무척이나 밉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증오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저는 한 개인이 아니라 언론사의 수장으로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들의 테러는 그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입니다. 또한 민주주의의 기본인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제안합니다.”

제안이라는 말에 모두가 궁금한 듯 내 입을 바라보았다.

“우리 모두 연대합시다. 그리고 이런 식의 테러리즘으로는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고 이야기합시다! 테러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말입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광장은 ‘내가 오프라인이다’를 외치는 함성으로 가득했다.

* * *

추도 집회를 마친 각 국가의 지도자들은 프랑스 대통령의 공식 관저인 엘리제궁전에 모여 이번 사건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

테러 발생국의 지도자인 올랑드가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프랑스는 이번 테러리스트들을 체포하는 데 모든 인력과 비용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러자 오바마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프랑스는 미국의 오랜 동맹입니다. 저희 역시 프랑스 정부와 긴밀히 협조하여 테러리스트들을 정의에 심판대에 세우는 데 필요한 모든 자원을 제공하겠습니다.”

이에 다른 지도자들 역시 줄줄이 테러리스트를 잡는 데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하겠다는 발언이 이어졌다.

테러리스트의 체포에 모두 공감대를 형성한 가운데 피해 당사자로서 이번 회의에 함께 참석한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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