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후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외쳤다.
“뭐죠 뭐죠?! 방금 알바그다디가 자살폭탄 조끼로 자폭한 건가요?!”
“뭔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 같아요. 큰 폭발이 나고 동굴이 무너진 것 같아요!”
“도대체 저게 무슨 상황이죠?”
곧 화면이 끊겼고 우리는 혼란에 빠졌다.
* * *
상황에 대해 여러 해석이 오가는 가운데 오래지 않아 오바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모두가 내 주변으로 몰려들어 우리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우세진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알바그다디는 죽었나요?”
-현장에 있던 델타포스의 입장은 자살폭탄 조끼를 그가 터뜨려 자폭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자폭이요? 자살은 이슬람 최고의 금기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는 자신이 믿는 종교적으로도. 그리고 개인으로서도. 아주 비겁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그가 정말로 죽었단 것을 확인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겠군요.”
-그렇습니다. 다만 미스터 우도 저희가 공유한 화면을 통해 보셨겠지만, 그는 죽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그가 신이 아니라면 말이죠.
나는 오바마와 전화를 끊고는 곧바로 노트북을 열고 소리쳤다.
“자! 모두 알바그다디의 죽음에 대해 곧바로 기사를 써 주세요! 빨리요!!”
몇 시간 전.
나는 오바마에게 작전 상황을 공유해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무척 곤란한 듯하였으나 나는 절대 이를 녹화하거나 외부에 유출하지 않을 테니 그를 체포하는 모습을 우리에게도 공유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시 전화를 끊었다가 오래지 않아 다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알겠습니다. 작전 모습을 볼 수 있는 링크를 공유해 드릴 테니 그쪽에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다만 보안을 위해 화면의 통제권은 저희에게 있습니다. 또한 절대로 해당 장면을 캡처하거나 녹화하시면 안 됩니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네?
“그를 체포하든. 아니면 사살하든. 작전이 실패한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 쪽에서 가장 먼저 관련 기사를 내도 괜찮겠습니까?”
-오프라인에서요?
“네, 우리는 언론사니까요.”
-알겠습니다. 테러의 가장 큰 피해자는 오프라인이었으니. 그 정도는 양보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세계의 그 어떤 언론사보다도.
그리고 이번 작전을 주도한 미 정부보다도.
한발 먼저 알바그다디의 죽음을 기사로 알릴 수 있었다.
<델타포스, 알바그다디 제거 작전 성공해>
우리가 쓴 기사는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갔고.
이를 받아쓴 언론사들까지 가세하면서 종일 알바그다디와 IS가 포털 검색어 상단을 장식했다.
이번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백악관도 빠르게 추가 소식을 알렸다.
<미 국방부장관 “IS는 괴멸되었다고 생각한다”>
<오바마 “미국은 IS뿐 아니라 모든 테러리즘에 반대한다”>
서방세계는 환호했다.
일부 이슬람 지역에서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지만.
어찌 되었건 극단적인 테러리스트 조직이 괴멸되었단 소식에 온 세계가 합심해 박수를 보내주었다.
* * *
사건이 얼추 정리된 2월의 마지막 주말.
나는 오프라인 유럽 지사의 모든 직원들과 함께 테러로 희생된 직원들이 묻힌 파리 근교의 묘지에 들렸다.
나는 그들 묘지에 헌화하고 나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당신들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바스티유 광장 근처의 한 식당으로 이동했다.
랑부아지였다.
5명씩 3개의 테이블을 빌려 앉은 우리는 최고급 요리를 마음껏 주문했다.
최루리가 안쓰러운 얼굴로 말했다.
“여전히 그 사건이 대표님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정말로 그러고 싶군요.”
“아니에요, 대표님!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최 지사장님 말이 맞습니다. 자책하지 마세요. 대표님 덕분에 IS가 괴멸된 게 아닙니까! 인류에 지대한 공을 세우셨다고요!”
“무엇보다도 좋은 요리를 앞두고 그렇게 쓸쓸한 표정을 하는 건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어서 인상 피세요.”
최루리의 말에 나는 빙그레 미소를 보이고는 유럽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모두가 이 순간만큼은.
그동안의 슬픔과 고생을 잊겠다는 것처럼.
먹고 마시고 즐겼다.
* * *
한국에 돌아온 나는 오자마자 한 병원을 찾았다.
강남세브란스병원.
강규현 회장이 입원한 곳이었다.
그는 이전보다 훨씬 더 수척한 모습이었다.
“우 서방. 잘 돌아와 주었네. 고생했어.”
“몸은 좀 어떠십니까?”
“보는 바와 같네. 하하. 자네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지.”
“결혼식장은 잡아 두었습니다. 날짜만 조율하면 됩니다.”
“그래그래. 아주 잘하고 있어. 콜록콜록.”
그가 갑자기 기침을 하자 그의 옆에 있던 간호사들이 더 이상은 면회가 어려울 것 같다면 나를 내쫓으려 했다.
그러나 강규현은 불같이 화를 내며 오히려 그들을 병실 밖으로 내쫓았다.
“예의 없는 것들 같으니라고. 사람이 대화하고 있는데 말이야!”
“진정하십시오. 저도 심히 걱정됩니다.”
“괜찮아, 괜찮아. 내 몸은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지. 그나저나 결혼식은 보더라도 손주들 얼굴을 못 보고 가서 어쩌누.”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다 괜찮아질 겁니다.”
“자네가 그리 말해 주니 위안이 되는군. 요즘 세간에서 그런다며?”
“어떤?”
“우세진을 세계 대통령으로 삼아야 한다고. 그가 있으면 전 세계가 평화로워질 거라고 말이야.”
“과장된 이야기입니다.”
“후후후.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지. 콜록콜록.”
내가 그를 부축하려 하자 그는 괜찮다며 손을 들었다.
“괜찮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갑환이한테 미리 이야기해 놓았으니 그와 이야기해 보게나.”
“네, 아버님. 또 오겠습니다. 쉬십시오.”
병실에서 나오자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강세연과 조갑환이 나를 맞았다.
“아버지랑 이야기 많이 하셨어요?”
“네,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서 먼저 나왔습니다. 세연 씨. 잠깐 자리 좀.”
자리를 비켜 달라는 말에 강세연이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알았다면서 복도를 걸어 나갔다.
또각또각.
그녀가 신은 하이힐 소리가 복도 가득 울렸다.
나와 조갑환은 그녀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옥상정원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옥상정원 끝에 위치한 벤치에 나란히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고 화창한 날이었다.
“회장님께서 조 이사님과 이야기를 해 보라 하시더군요.”
“네, 일전에도 말씀드린 그 문제입니다.”
“TP 그룹을 물려받으라는?”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제가 그룹을 물려받게 된다면 세금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룹 입장에서는 오히려 큰 손해를 볼지도 모르죠.”
“그럼에도 회장님은 대표님이 그룹을 물려받으시길 원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직원들의 반발도 거셀 겁니다. 저는 TP 그룹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사람이니까요.”
“인연이 없긴 왜 없습니까. 그룹이 통신 분야에서 부동의 1위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건 대표님의 광고 덕분인데요.”
“말장난은 그만 하세요. 아무튼 이 문제는 세연 씨와 더 상의해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결정하시려면 빨리하셔야 될 겁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그와 헤어져 강세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예요?”
-주차장에 있는 차 안이에요. 이야기 끝났어요?
“네, 우리 잠깐 바람 좀 쐴까요?”
나는 강세연의 차를 타고 자유로를 따라 임진각을 향했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기울어 강변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강세연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빠가 그룹을 물려받으라고 하나요?”
“그러시는군요.”
“휴. 그렇게 세진 씨는 그룹에 관심이 없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놈의 고집은!”
“힘들게 키운 그룹을 남에게 넘기는 게 아까우니까 그러시겠죠.”
“그래도 세진 씨는 오프라인을 키우는 데에도 정신이 없잖아요.”
“그 문제보다, 세연 씨는 괜찮나요?”
“네? 뭘요?”
강세연이 안 그래도 커다란 눈동자를 더욱 크게 뜨며 되물었다.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인데. 이렇게 준비도 없이 막 진행해도.”
“에이. 난 또 뭐라고. 저야 세진 씨랑 빨리 결혼할 수만 있다면 뭐가 됐든 좋은걸요.”
“후후. 저도 그래요. 빨리 세연 씨랑 같이 살고 싶네요.”
“피. 그런 건 지금부터도 가능하잖아요.”
나는 그녀의 볼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강세연의 두 볼이 차창 밖으로 보이는 일몰처럼 새빨갛게 물들었다.
# 6장 결혼
종로에 위치한 한 유명 호텔.
이곳 2층에 위치한 연회장 ‘크리스털 볼룸’에는 지금 수많은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특히 1층 로비에는 취재하려는 기자들과 이들의 진입을 막으려는 호텔관계자들이 치열하게 몸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아 진짜! 사진만 찍겠다니까?”
“아저씨! 저를 언제 봤다고 반말이세요?!”
“허허. 이 친구 언론 무서운 줄 모르네. 자네 때문에 여기 호텔에 대한 안 좋은 기사 나오면. 감당할 수 있겠어?”
“참 나. 지금 협박하시는 겁니까? 그러니까 한국 언론들이 안 되는 거예요. 오프라인만 빼고요.”
내가 한국에 도착한 뒤 겨우 4일 뒤에 치러지는 결혼식이었다.
가까운 친지들과 지인들에게만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강세연이 결혼한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우세진 대표님 결혼하십니까? 엉엉 저 이렇게 우 대표님 못 보냅니다. 나는 이제 어떡하라고!>
<그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이제는 그를 놓아주어야 할 때입니다. 잘 가세요 품절남…….>
<우세진 대표 결혼식에 누가 올지 궁금함. 백철웅은 당연히 올 거고 오바마도 오려나>
아쉽게도 오바마는 국정 수행으로 정신이 없어 한국을 찾지 못했다.
대신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하여 김설송 북한 위원장, 인준영 성삼 그룹 총수, 명태산 미래 그룹 총수 등 초대한 적이 없었던 유명인사 등이 갑작스럽게 방문하여 자리를 빛내 주었다.
또한 백철웅 대통령, 배우 이슬아 등 기존 참석자들의 면면이 모두 화려했기에.
세간에서는 이를 <세기의 결혼식>이라 부르며 취재 경쟁이 살벌했던 것이었다.
결혼식이 시작되기에 앞서.
세계 각국에서 보낸 축전 영상이 상영되었다.
첫 순서는 오바마였다.
“갑작스럽게 결혼 소식을 접하게 되어 실로 유감입니다. 제가 그 자리에 참석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서운합니다. 미스터 우. 멀리 떨어져 있지만 두 분의 결혼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바마의 유머에 하객들이 웃음을 보였다.
이어서 편안한 옷차림의 오노 요코가 등장했다.
그녀의 옆에는 그녀와 존 레넌의 아들인 숀 레넌도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