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애하는 벗, 세진. 당신이 우리에게 해 준 삼계탕이 늘 그립습니다. 결혼식에 가지 못해 미안해요. 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축하합니다. 세진. 다코타에 오면 꼭 연락 주세요!”
그밖에 래리 페이지 구글 CEO, 승진하여 CNN의 사장이 된 크리스티안 케이서스 등.
축전 영상은 30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여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하객석 앞자리에 앉은 백철웅과 원화성은 끝나지 않는 축전 영상에 혀를 내둘렀다.
“새삼 우 대표의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체감합니다.”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오랜 인연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결혼식이 이렇게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다면. 제일 뒷자리에 서서 구경해야 했을지 모르겠네요.”
“그러게요. 무슨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진행이 되는군요.”
“강세연 양의 아버지이신 강규현 회장의 건강이 많이 안 좋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다더군요.”
“상황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대통령으로서는 아쉬운 것도 사실입니다.”
“뭐가요?”
“제대로 준비했다면 자연스럽게 여러 지도자를 한자리에 모아서 세계 지도자 정상 회담 같은 것도 마련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하하. 욕심이 과하십니다.”
그들의 농담을 뒤로하고 오늘 결혼식의 사회를 맡은 안재영이 하얀색 장갑을 낀 손으로 마이크의 전원을 올렸다.
“아아.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 세기의 결혼식이라 불리는. 우세진 군과 강세연 양의 결혼식을 지금부터 시작하겠으니 모두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양가 어머님들의 화촉점화로 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두 여인이 나와 초에 불을 밝혔다.
“양가 어머님들. 오늘 너무 고우시네요. 이어서 오늘의 주인공! 우세진 군의 입장입니다. 모두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나의 차례였다.
나는 버진로드 끝에서 노래에 맞춰 당당히 입장했다.
결혼식장에 온 모든 이들이 환한 미소와 함께 따뜻한 박수를 보내주었다.
수많은 자리에서 여러 대중을 상대해 보았지만.
오늘만큼은 나 역시도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자리에 서자 안재영이 짓궂게 말했다.
“신랑. 지금 심정이 어떻습니까? 무척 긴장한 표정인데요?”
나는 그를 한 번 노려보았다가 이내 포기했다.
그가 울상을 지으며 하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여러분. 지금 표정 보셨죠? 대표님이 저에게 해코지를 하지 못하도록 오늘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 막아 주세요. 저는 일개 직원이거든요.”
그의 넉살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다시 내게 물었다.
“자. 그래서 신랑. 지금 기분이 어떻습니까? 솔직하게 표현해 주세요.”
나는 버진로드로 들어오는 강세연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순백의 드레스와 곱게 땋은 머리.
오직 강세연이 있는 자리에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것 같았다.
“떨립니다.”
“그게 다입니까? 좀 길게 해 줬으면 좋겠는데.”
“무척 떨립니다!”
“에이. 이거 더 물어봐도 나올 게 없겠네요. 그럼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앞에 신부가 서 있습니다. 신부가 어떻습니까?”
“너무나도 사랑스럽습니다!!”
“오케이. 드디어 만족스러운 답을 들었네요. 그렇죠?”
모두가 웃음을 보이며 자기네들끼리 떠들어 댔다.
“자! 드디어 오늘 결혼식의 진짜 주인공! 신부 입장입니다! 뜨거운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세연이 강규현의 손을 잡고 천천히 내 쪽으로 걸어왔다.
한 걸음 한 걸음.
높은 구두를 신어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한 그 걸음은.
그러나 너무나 우아하고 사랑스러웠다.
원래부터 아름다운 여인이었지만.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강세연은 천사가 강림한 것만 같았다.
나는 강규현이 건네는 강세연의 손을 꼭 잡고 그녀를 내 쪽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둘 다 옅은 미소를 보이며 인사했다.
안재영이 배가 아프다는 듯 말했다.
“거기 신랑신부. 둘 다 체통 없이 그만 좀 실실거리고요. 아무리 둘이 죽고 못 살아도 식이 끝나기 전까지는 좀 진지하게 임해 주십시오.”
오늘의 자리는 주례 없이 진행되었다.
누구를 주례로 세울지 고민하다가 그냥 주례 없이 진행하기로 한 것이었다.
‘백철웅 대통령이 주례에는 가장 어울렸겠지만, 그럼 자기를 주례에 세워 주지 않았다고 서운해 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서 말이지.’
그래서 우리는 고민 끝에 강규현이 성혼 선언문을 읽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는 다소 야윈 얼굴로 천천히 단상으로 나와 성혼 선언문을 읽었다.
“안녕하십니까, 하객 여러분. 신부의 아버지 강규현입니다. 황금 같은 주말에도 저희 아이들의 결혼을 축복해 주시기 위해서 귀한 발걸음해 주신 많은 내빈 여러분과 가족 친지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중략) 이에 양가 가족을 대표하여 우세진 군과 강세연 양의 혼인이 성사되었음을 여러 증인 앞에서 엄숙히 선포하는 바입니다!”
* * *
제주도.
수많은 신혼 여행지를 두고 하필 제주도를 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1년여 간 한국을 떠나 해외로 나가 있다 보니 또다시 멀리 떠나가기 싫었던 까닭이었다.
다행히 강세연도 내 의견에 동조해 주었다.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 우리는 새벽 일찍 일어나 차를 타고 붉은오름에 올랐다.
“세연 씨, 새벽부터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요. 사람 많아지면 곤란하잖아요. 저도 일찍 일어나서 새벽 공기도 마시고 좋아요.”
우리는 한순간도 두 손을 놓지 않고 붉은오름을 향해 걸었다.
사려니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로 정신이 무척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강세연이 기사에 대해 물어보았다.
“어제 고려 일보에서 나온 기사 보셨어요?”
“어떤 기사요?”
“세진 씨에 관해 쓴 기사요. 전 세계 미디어의 제왕. 4년 만에 오프라인을 세계 최고 언론사로 성장시켰다는 기사요.”
“고려 일보에서 그런 기사를 썼어요?”
“네. 친구들이 알려 줬는데, 그거 쓴 사람이 누군지 알아요?”
“몰라요. 누군데요?”
강세연은 묘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서동탁 사장이요.”
“서동탁이요?”
“네, 저는 그가 쓴 기사는 처음 봤어요. 아니, 언론사 사장이 기사를 쓰는 경우 자체를 처음 보는 거 같아요. 세진 씨를 빼면요.”
“저도 그가 기사를 쓴다는 건 금시초문이군요. 이따 호텔 돌아가서 꼭 봐야겠는걸요?”
“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세진 씨와 오프라인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해요. 일제 강점기 때 천황을 찬양했던 것처럼.”
불과 4년 만에.
업계 최정상을 달리던 고려 일보는 이제 명맥만을 유지하는 언론사로 전락하였다.
이제 아무도 신문을 사서 보지 않고, 온라인에서는 오프라인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기사를 보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오래전 그가 나에게 무례하게 행동했던 것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지금의 업계 1위가 내일의 1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휴. 지금도 전 세계에서 오프라인이라면 모르는 자가 없는데. 뭘 더 성장시킬 게 있으세요?”
“당연하죠. 아직 남미와 아프리카. 그리고 중국에서의 기반은 약해요. 할 게 얼마나 많은데요.”
“세진 씨의 욕심은 끝이 없네요. 그래도 또 저 혼자만 남겨 두고 떠날 건가요?”
“절대요. 앞으로는 언제나 당신과 함께일 겁니다.”
강세연이 아플 정도로 내 손을 꽉 쥐었다.
* * *
결혼 이후 나는 IT 플랫폼으로서의 방향성을 분명히 했다.
채용하는 이들 대부분은 기자가 아닌 프로그래머였다.
그래서였을까.
기자 지망생들은 오프라인에 많은 아쉬움을 표했다.
<오프라인 말고는 들어가도 사람들이 기사를 보지도 않는데. 나도 기자 그만두고 지금이라도 코딩을 배워야 할까>
<야 관둬. 프로그래머들도 여간내기가 아니면 못 들어간다더라. 지금 배워서 언제 들어가려고>
<오프라인 기사 대부분은 사람이 아니라 AI가 쓰니까 진짜 우울하다>
<가장 슬픈 게 뭔지 알아? 내가 기계보다도 더 기사를 못 쓴다는 사실이지. 나는 이번 하반기에 오프라인에서 기자 안 뽑으면 그냥 포기하고 다른 길 가련다>
그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우리가 갈 길은 멀고 험했다.
나는 여러 자회사를 설립하여, 게임, 쇼핑, 은행, 블록체인, 엔터 등 계속해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
다행히 오프라인의 명성 덕분에 이곳에 들어오려는 이들은 많았다.
전 세계의 젊은이가 가장 취업하고 싶은 기업 1위로 오프라인을 뽑을 정도였으니.
그렇게 6년을 정신없이 달렸다.
드디어 내가 회귀하기 전이었던 2020년 4월.
우리는 구글을 인수한다는 성명을 내었다.
<오프라인, 1,500억 달러에 구글 인수>
<오프라인은 왜 구글을 인수했나>
<구글 인수로 IT 플랫폼 천하 평정한 오프라인…… 다음 스텝은 무엇>
제주도 애월에 위치한 한 고급 주택.
5살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한 명이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남자아이와 함께 주택 안에 설치된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아이참. 준후야! 그렇게 막 물에 들어가면 위험하다니깐.”
누나의 경고에도 남자아이는 억지로 물에 들어가려다 그만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풍덩 수영장 속으로 빠져 버렸다.
“아빠!! 준후, 수영장에 빠졌어!!”
그 말을 들은 나는 급히 부엌에서 거실로 나와 준후를 물 밖으로 끄집어냈다.
“구명조끼 입히라니까 왜 안 입혔어?”
“준후가 불편해서 입기 싫대.”
“그래도 입혀야지. 위험하잖아!”
“흥! 아빠는 준후만 예뻐라 하고! 할아버지!!”
여자아이는 볼에 바람을 가득 담고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할아버지에게 뛰어갔다.
노인은 인자한 표정으로 손녀를 꼭 안고는 말했다.
“그래. 우리 공주님. 할아비가 요깄다.”
“할아버지! 아빠는 준후만 예뻐해요!”
“걱정 마렴. 할아비에게는 우리 예담이가 가장 예쁘니까.”
“그 말 진짜죠?”
“물론!”
그는 손녀의 볼살을 가볍게 꼬집고는 내 쪽으로 다가왔다.
“준후는 괜찮고?”
“네, 아버님. 바로 끄집어냈습니다.”
“그래. 집 안에 수영장이 있으니까 이런 건 좀 위험하구먼. 나 좋다고 만들었는데 애들한테는 위험해.”
그는 10m 길이의 실내 수영장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수영장 바로 앞에는 넓은 통유리를 통해 제주 바다가 보였다.
넘실거리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탐스럽기 그지없었다.
“오늘 회사 사람들이 온다고?”
“네. 이따 다섯 시쯤 온다고 했습니다.”
“그래. 그럼 나랑 할망구는 이만 빠져야겠구먼.”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쉬시고 계시는데.”
“뭘. 우 서방이 한 달 전에 이야기해 줬는데 내가 예담이랑 준후 보고 싶어서 지금까지 버텼지 뭐. 그럼 우린 이만 갈 테니 재미있게 놀게나.”
“별장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췌장암을 선고받았던 강규현.
그러나 그는 나와 강세연이 결혼한 뒤 놀랍게도 점차 회복하더니.
얼마 전에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주변에서는 농담으로 그가 나와 강세연을 빨리 결혼시키기 위해 일부러 더 약한 척을 했던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물론 췌장암이라는 게 그렇게 자기 멋대로 조절할 수 있는 병은 아니지만.’
장인 장모가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보는 사이.
강세연이 뒤에서 나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뭘 그렇게 우리 아빠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어요?”
“응, 건강해 보이셔서.”
“그렇죠? 은퇴하고 제주도에서 쉬시니까 많이 좋아지신 것 같아요. 역시 회사 스트레스가 컸던 게 아닐까요?”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파티 준비는 얼마나 되었는지 물었다.
“고기 손질하다가 준후가 물에 빠져서 부리나케 나왔는데. 당신 쪽은 얼마나 됐어요?”
“해산물이랑 채소는 모두 체크해 뒀어요. 남으면 모를까 절대 부족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도 인원이 많으니까. 술은 지하에 있는 와인 창고에서 몇 병 빼먹어도 괜찮겠지?”
“후후. 너무 비싼 것만 아니면 너무 많아서 아빠도 빼갔는지 모를걸요?”
우리는 부지런히 저녁에 있을 홈파티를 준비했다.
오랜만에 오프라인의 주요 멤버가 모두 모이기로 했으니.
* * *
넓은 잔디가 드넓게 깔려 있는 마당에서는 바비큐 파티가 한참이었다.
“예담이랑 준후가 많이 컸구나. 아저씨 알아보겠어?”
“응! 대통령 아저씨!”
“그래. 지금은 전 대통령이지만.”
백철웅이 따뜻한 미소를 보이며 예담이랑 준후를 양손에 안았다.
그 모습을 본 최루리가 이를 말렸다.
“조심하세요! 연세도 있는데 허리 다치세요.”
“뭘. 이쯤이야 가볍지. 그나저나 최 대표는 대표 일, 할 만합니까?”
“저야 뭐 여기 있는 대표 중에서 이름만 대표지 하는 일도 없는걸요.”
“허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오프라인 미디어야말로 오프라인의 출발점 아니오.”
“요즘은 죄다 AI가 기사 쓰니까 제가 하는 일이라고는 앉아서 모니터로 체크하는 게 다예요. 뭐 저야 좋지만.”
오프라인은 사업별로 계열사를 나눴다.
그중 언론 기능을 담당한 게 바로 오프라인 미디어였다.
그러자 안재영이 웃으며 다가왔다.
“그래도 최 대표님은 앞에 오프라인이라는 이름이라도 들어가잖아요.”
“우리 중에 가장 기업 가치가 큰 곳이 어딘데요. 저도 명함에 구글 대표라는 직함 좀 찍어 봤으면 좋겠네요. 뽀대 좀 나게.”
그러자 조갑환도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띠며 말했다.
“허허. 저도 회사 이름에 오프라인은 없습니다만.”
“조 대표님은 이제 저희랑 관계없잖아요. 계열사도 아니고.”
“관계가 없긴 왜 없겠습니까. 저야 일개 월급쟁이고 로열패밀리는 이쪽에 계시는데.”
그가 나와 강세연을 바라보며 눈웃음을 보냈다.
강규현은 나와 강세연이 TP 그룹을 끝끝내 받지 않자 결국 CEO 자리를 조갑환에게 맡겼다.
‘물론 본인은 명예 회장으로 직함을 바꿔서, 실질적인 소유는 그대로지만.’
그럼에도 내가 아니라 조갑환에게 CEO 자리를 물려주자 당시 TP 그룹 내부에서는 꽤나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우세진과 강세연은 지분이 하나도 없다는데, 이러다 정말로 내부 직원이 그룹을 승계하려나>
<에이. 아직 강규현 회장이 정정하다고. 우세진 부부가 아니더라도 손자 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을까?>
<나는 우세진보다 조갑환이 CEO가 돼서 더 좋아. 그는 말단 직원부터 대표 자리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인 인물이잖아? 그룹을 잘 아는 사람이 대표 자리를 이어받아 다행이야>
<그래도 나는 아쉽. 오프라인 그룹에 소속되면 TP 그룹이 한 단계 더 성장할 원동력이 됐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나는 조갑환에게 고마운 마음이 컸다.
조갑환 역시 TP 그룹의 CEO 자리는 자기에게 맞지 않은 옷이라며 고사하던 걸.
삼고초려.
아니, 팔고초려 끝에 간신히 설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 대표님 덕분에 제가 부담을 많이 덜었습니다.”
“대표 해 보니까 그동안 우 회장님이 얼마나 힘드셨을지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결재 서류는 왜 이리 많은지.”
모두들 그 말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룹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담당하는 오프라인 엔터의 대표 박창후도 큰 목소리로 동감을 표했다.
“정말로요. 예전에는 대표라는 건 매일 골프나 치러 다니고 해외로 놀러 다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바쁜 자리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니깐요. 그런데 홍 대표는 언제 오는 겁니까? 고기 하나도 안 남겠다.”
그는 접시에 담긴 스테이크를 한입에 삼키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의 옆에 선 최루리와 이덕오도 시계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올 때가 됐는데, 안 오네. 이 기집애. 자기 혼자 가장 바쁜 척한다니깐.”
“원래 저랑 같은 비행기 타고 오시기로 했는데 갑자기 일정을 바꾸셨어요.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초인종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리더니 홍지혜가 나타났다.
그녀는 양손 가득 술병을 들고는 미안하단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쪼오큼 늦었죠? 처리해야 될 일들이 있어서.”
“홍 대표님. 블록체인 쪽 사업 맡더니 진짜 바쁘신가 봅니다?”
“기술 쪽은 젬병인데 단어 하나하나 새로 배운다고 정신없네요. 늦어서 죄송해요. 미안한 마음에 오는 길에 좋은 술 좀 사 가지고 왔어요.”
그녀는 박창후에게 술을 건넸다.
봉투 안에 담긴 술을 확인한 박창후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브라보! 로마네 콩티 1934년 산 두 병이오!”
홍지혜까지 오늘 모이기로 한 모든 멤버가 도착하자 파티 분위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모두가 즐겁게 술과 음식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들었다.
그러다 홍지혜가 문득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런데 여러분! 우 회장님이 암호 화폐 초고수란 걸 아세요?”
“응? 회장님이 암호 화폐 초고수라고요?”
“왜왜? 요즘 비트코인 상승세 무섭던데. 회장님! 뭐 좋은 정보 알고 있으면 저희한테도 공유해 주세요!”
모두들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홍지혜를 바라보았다.
“저는 암호 화폐를 하지 않습니다만?”
“저희한테까지 숨기실 필요는 없잖아요. 다 알고 왔다고요.”
“그게 무슨.”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무섭게 오르고 있었지만, 사업한다고 바빠서 관심 밖의 영역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아! 혹시 초반에 피자랑 바꾼?”
“네! 맞아요! 암호 화폐 업계에서는 전설로 꼽히는, 피자데이의 주인공이 바로 우 회장님 맞으시죠?!”
그녀가 피자데이라는 말을 꺼내자 이제야 명확하게 떠올랐다.
‘분명 피자를 주문해 주고 비트코인을 받았던 거 같은데. 얼마였더라.’
하도 오래전 일이라 자세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블록체인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홍지혜는 당사자인 나보다 그날의 사건을 더 자세히 알고 있었다.
“회장님이 10년 전, 비트코인이 아직 아무런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을 때! 무려 2만 코인을 사 두셨더라고요! 그것도 겨우 피자 4판으로 말이죠!!”
“2, 2만 코인이라고! 그럼 대체 얼마인 거예요?”
“지금 1비트코인이 1만 천 달러니까. 1달러에 1,100원으로 잡으면. 대략 한화로 2천 4백억 정도?”
“2천 4백억이요?! 와우!”
2천 4백억이라는 말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를 걸 알고 있었기에 미리 선점해 둔 것이었지만.
회사를 키운다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부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우 대표님. 이미 돈 많으시겠지만 그래도 부럽네요. 그 돈이면 은행에 저금해 두고 이자만 해도 얼마야.”
“만약 저한테 그 돈이 있다면 초호화 요트를 한 척 사겠네요. 남자라면 역시 요트죠.”
“요트는 무슨. 저라면 이탈리아에 가서 명품 쇼핑을 할 것 같네요. 잡히는 대로 골라잡아도 돈 걱정할 필요 없이.”
그들의 말에 구석에서 동생과 함께 조용히 고기를 먹고 있던 예담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저기 아빠!”
“응, 딸. 무슨 일이야?”
“아빠, 돈 많죠?”
“음. 그래 적진 않지?”
“그럼 우리 그 돈, 북극곰들을 위해 기부하면 안 될까?”
“북극곰들을 위해 기부하자고?”
예담이의 말에 모두들 호기심을 보였다.
홍지혜가 부드러운 미소로 예담이에게 물었다.
“예담아. 이모 알지? 그런데 왜 북극곰들을 위해 기부해야 하는데?”
“응!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그랬어. 지금 지구가 아파서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있다고. 그래서 북극곰들이 살 집이 없대. 그러니까 우리는 북극곰들을 도와야 해!”
예담이의 말에 절로 미소가 나왔다.
‘언제 저렇게 컸는지. 다 컸네.’
예담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사이.
강세연이 내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여보. 우리 예담이 소원이라는 데 어때요?”
“기부라. 좋죠. 사실 비트코인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홍 대표님 덕분에 알게 되었기도 하고요.”
“그럼 비트코인 판매금액 전부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단체에 기부하는 걸로?”
“음. 어떻게 쓸지도 모를 단체에 기부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환경 단체를 하나 만드는 게 어떨까?”
내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 진짜. 우리 회장님은 보통 분이 아니라니깐. 이젠 환경 단체도 만드시려고요?”
“그러니깐. 누가 아니래. 저 철두철미함. 다른 환경 단체에서 돈을 허투루 쓸까 봐 직접 환경 단체를 만들겠다니. 저런 발상 아무나 못 한다.”
“허허. 그러니 지금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부자가 된 거 아니겠소. 우 회장. 환경 단체 만들면 거기 이사장은 나한테 주는 게 어떻소? 나 퇴임하고 한가한데 말이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모두들 김칫국부터 마셨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제가 거기 이사장을 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군요. 이참에 기후 변화에도 제대로 대비를 할 필요가 있고요.”
떠들썩한 제주의 밤이 깊어갔다.
完<그동안 ‘회귀한 기레기가 겁나 잘한다’를 봐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