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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인데 내공이 좀 많네요-2화 (2/200)

2화. 게이트여 열려라 참깨!

잔혹하게 두들겨 맞고 있는 와중에도 아빠는 말대꾸를 잊지 않았다.

"대신 넷째 놓을 땐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뭔가 매를 버는 말만 족족 했다.

"고맙다! 이 새끼야! 보건복지부 장관하지 그랬노!"

- 퍽퍽!

말을 할수록 아빠의 비명은 커져만 갔다. 사서 매를 번다는 말을 목숨 걸고 실천하고 계신다.

"끼오오오~"

할아버지는 허연 수염을 휘날리며 삽으로 아빠를 사정없이 후려치셨다. 대충 봐주고 뭐고 없다. 삽으로 땅을 파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아빠는 묻혀갔다. 그의 손에 박힌 굳은살이 폭력의 관록을 말해줬다.

"주식으로 돈 빌려서 홀라당 말아먹고 그것도 모자라 무슨 코인인가 황금의 제국으로 가네 또 빌려 가 생지랄 발광하더니 한 푼도 남김없이 홀라당 말아 먹었나 안 말아 먹었나!"

"아…아부지! 아직 손절 안 했으니 끝난 게 아닙니더!"

아냐. 아빠 말을 하지 마.

말을 할수록 수명이 줄어들잖아.

"육갑한다. 줄줄이 고구마같이 말아먹기 바쁜 문디 새끼랑 연을 안 끊는 게 신기하지 않나?!"

- 퍽퍽!

우리 아빠 가지가지 하셨구나.

"그렇게 자식만 싸지르다가 이제 와 돈 없으니까 죽을 날 코앞인 노친네한테 아들을 버리고 가는 네놈이 금수 새끼랑 뭐가 다르노!"

- 퍽퍽퍽!

"으어어억! 사라살려어어어억!"

저러다 진짜 죽는 것 아냐?

아빠는 돌고래와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고주파수 비명을 질렀다. 걱정은 됐지만 이미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기에 멀찍이 떨어져서 집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실은 옆에 있다간 같이 맞을 것 같았다.

마룻바닥엔 옛날 전화기가 하나 있었는데 통화가 될지 의심 들 정도로 후져 보였다. 산 게 아니라 어디서 주워온 것 같다.

마룻바닥을 거쳐 할아버지 방에 몰래 들어갔다. 할머니 초상화가 제일 먼저 보였다. 주위엔 널브러진 낡은 책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개중 하나는 조금 전에 봤는지 펼쳐져 있었다. 한자로 된 만화책이었다.

"타구봉법(打狗棒法) 당두봉갈(當頭棒喝)?"

사람이 몽둥이를 들고서 네발로 걸어 다니는 인간을 때려잡는 방법을 묘사했다.

'이게 뭐지?'

- 꼬꼬댁~ 꼬꼬꼬꼬~

갑자기 들려온 울음소리에 호기심이 생겨 방을 나와 뒷간으로 향했다.

닭장이랑 채소 텃밭이 보였다. 그리고 끄트머리에 비밀스럽게 숨겨진 조그만 창고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오호?'

창고 입구는 굵직한 자물쇠로 잠겨있었다. 사람이란 게 그렇다. 들어가지 말라고 뭔가 채워져 있으면 억지로 들어가고 싶은 심리가 작동한다.

그때 할아버지가 날 찾았다.

"네 아들 어디 갔노?"

"쿨럭, 그…근방에 있겠지요. 아, 아니! 지가… 찾아보겠심더!"

"어디 가노? 닌 더 처맞아야 돼!"

"끼오오오!"

"……."

- 퍽퍽!

음, 아직 할아버지의 분이 덜 풀린 모양이다.

그때였다.

[장농 안에 열쇠가 있어.]

"우왓!"

순간 깜짝 놀라 가슴을 부여잡았다. 분명 저 창고 안에서 들린 소리였다. 갓난아기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런 목소리일까?

미약한 음성이지만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히 내 귓가에 꽂혔다.

뭐…뭐야? 이 나이에 환청이 들리나? 아직 꽃다운 낭랑 십 팔 세인데. 아…아니면 할아버지가 유아 납치를? 난 지금 뜨거운 범죄의 현장에 와 있는 것인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다면 넋 놓고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방으로 돌아와 갓난아기 말대로 슬금슬금 장롱 안을 뒤졌다.

녹이 슨 은색 열쇠가 보였다.

이거야!

열쇠를 집고 다시 창고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별안간 호통 소리가 퍼졌다.

"고성우이! 닌 아바이가 개 패듯 맞는데 닌 어디 몰래 가노? 퍼뜩 이리로 안 오나! 니도 맞아야 정신 차리나!"

"우악! 싫어요!"

아빠는 하도 맞다 보니 오징어처럼 축 늘어져 버렸다. 덕분에 타깃이 나로 바뀌었다.

"이 X만 한 게! 지 아바이 닮아가 말을 더럽게 안 들어 먹네. 오냐, 내 오늘 고씨 가문 셔터를 손수 내려 주마!"

할아버지가 족보를 찢을 기세로 나를 향해 성큼 다가왔다.

그때였다.

덥석!

의식을 되찾은 아빠가 할아버지의 발목을 붙잡고 말했다.

"서…성웅아 도…도망쳐!"

"고태랑이! 니 아직 살아있었나!"

나는 액션 영화의 비극을 장식하는 대사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신파 부자를 외면한 채 텃밭 비밀창고 자물쇠에 열쇠를 꽂았다.

- 철컥, 끼익~

"오오. 여…열렸어."

경첩의 미약한 비명과 함께 문이 열렸다.

- 사아아~

"흡!"

헛바람을 들이켰다. 늦은 봄이었지만 마치 눈보라가 덮친 듯 차가운 한기가 코끝에 진하게 묻어왔다. 덩달아 악취가 내 코를 마비시켰다.

둘러보니 무당이 칼부림할 때 사용하는 섬뜩한 도구들이 즐비해 있었다.

북, 꽹과리, 장구 같은 타악기랑 피리를 비롯해 장검, 작두, 언월도, 마늘, 십자가, 목주 같은 것도 사방에 정렬되어 있었다.

그리고 꼭대기에는 염소 머리통이 자리 잡고 있었다.

"헉…."

염소는 살아 숨쉬기라도 하듯 번뜩거리며 성난 눈빛을 토해냈다.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날 물어뜯을 수 있을 것 생동감이라니….

하지만 더욱 놀란 점은 염소가 입에 물고 있는 인삼이었다.

"호, 혹시… 이 녀석이 내게 말을 걸었나?"

인간 모습의 인삼이었다.

머리, 팔, 다리, 피부색! 이 모든 게 정말이지 소름 끼치고 기분 나쁘게 생겼다. 공포 영화에 출연해도 천만 관객을 휩쓸 것이다.

그런데 이 기분,

지붕 위의 피뢰침을 볼 때와 똑같은 기분이었다.

[이 줄을 풀어줄래?]

"꺄악!"

또다시 소름 끼치는 갓난아이의 말이 들려왔다.

[쉿! 저 영감이 듣잖아.]

난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정말 저 아기 인삼이 말을 하는 것이었다. 기분이 싸해졌다.

근데 줄이라니…?

아기 인삼 주위로 줄과 방울이 대롱대롱 사방으로 걸려 있었다. 자세히 보니 마치 결계 같았다.

[봉무령(封巫鈴)이 흔들리지 않게 조심해서 매듭을 풀어야 해.]

"봉무령? 저 흉측한 방울?"

방울을 가리키며 아기 인삼을 보자 맞다는 듯 히죽 웃었다.

웃었어… 웃었다고?!

"으아아!"

실로 징그러워 온몸에 소름이 돋아 양팔을 잡고 부르르 떨었다.

- 툭~

그렇게 방울을 건드리고야 말았다.

- 딸랑~ 딸랑~

[끼오오오오!]

아기 인삼은 나의 덜렁거림에 절규를 했으며 난 아기 인삼의 비명에 더욱 세차게 놀랐다.

"우와와왁! 괴물이야! 괴물이야!"

- 성웅이! 이 새끼야아아아!!

내 위치가 발각됐다. 저 멀리서 할아버지의 외침이 들려오더니 전속력으로 돌진하는 소리가 들렸다.

- 두두두두두두!

에라, 모르겠다.

급한 마음에 인삼을 손으로 잡아 결계 밖으로 끄집어냈다.

[키햐아아아아!]

"으이익!"

인삼은 오랜 봉인이 해방되자 소리를 질러댔다.

난 고막이 터지는 줄 알았다.

"성우이! 이 망할 놈아! 니 거기 어에 드갔노! 그거 안 내려놓나!"

"이 괴물이 알려줬어요."

할아버지는 여태 강인한 모습에 반비례한, 무척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얼빠진 표정이 이런 것인가?

"알겠으니까 살고 싶으면 그거 당장 내려놔. 얼른!"

"네…."

그때부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가위눌린 것마냥 손가락 하나 꼼짝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뭐 하노! 고성우이! 할애비 말 쌩까나!"

"그…그게 아니라 몸이 안 움직여요."

두려워졌다. 뭔가 일이 수틀려도 단단히 뒤틀렸다.

"문디 시키야! 가만있어봐라!"

- 촤압~

보고도 믿지 못할 할아버지의 도약이었다. 삽시간에 할아버지가 손으로 아기 인삼을 낚아채려는 찰나! 내 손에 있던 아기 인삼이 할아버지를 노려보며 비명을 질렀다.

[키햐아아아아아!]

"으윽!"

영화를 보다 다운이라도 된 것처럼 할아버지는 손을 뻗은 채 우스꽝스레 그대로 멈추어 버렸다.

"창세삼정(創世蔘精)이 X만 한 새끼가 먼 수작을 부렸노! 퍼뜩 안 푸나!"

이 징그러운 아기 인삼 이름이 창세삼정인가?

이름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할아버지도 나랑 같이 굳어버렸다는 최악의 상황에 치달아 버렸다!

"하…할아버지 장난하지 마세요. 저 심신미약 환자란 말이에요!"

"난 성우이 네가 더 무섭다! 도대체 오자마자 저걸 우에 열었노!"

비극의 대서사가 본격적인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인삼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끼약!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 괴물이 움직여요!"

조그만 괴물 인삼이 손목 위로 흉측하게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이윽고 팔뚝 관절을 지나 어깨까지 올라왔다. 전신에 닭살이란 닭살은 다 삐죽삐죽 돋아서 결국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우에에에엥! 할아버지! 이것 좀 떼어줘요! 으아앙!"

기절하고 싶다! 기절하고 싶다! 누가 수면제를 내 입에 넣어줘 제발!

"마! 있어봐라. 안 죽는다!"

"남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으아아앙!"

난 울며불며 생난리를 피웠다. 할아버지의 얼굴이 시뻘게 지면서 어떻게든 기를 쓰며 움직이려고 했지만 우스꽝스럽게 경직된 모션은 0.1mm 변화도 없었다. 그 사이 괴물 인삼은 어느새 나의 어깨 위까지 올라왔다.

"우에에에엥!"

혼절이라도 할 듯 난 대차게 울어댔을 뿐이고 할아버지는 연신 노발 대기만 했다.

"저리 가! 이 괴물아!"

괴물 인삼이 코딱지 같은 손을 내 입술에 갖다 댔다.

"아직 첫 키스도 못 한 내 입술에 무슨 짓거리를 하려는 거야!"

난 입을 악! 다물었다.

"안 멈추나! 이 새끼야!"

할아버지의 일갈에 창세삼정은 비웃기라도 하듯 조그마한 손으로 내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필사적으로 꽉 다문 내 입을 너무나 쉽게 벌렸다.

- 쩍~

창세삼정은 서서히 내 입안을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우오오옹사오로오옹!(할아버지 살려줘요!)"

난 눈빛으로 할아버지에게 강력하게 어필했지만 할아버지 또한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내 입을 쩍 벌린 흉측한 괴물 인삼은 혓바닥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갔다.

"웩웩!"

"먹지 마! 뱉어!"

난 최대한 삼키지 않으려고 혓바닥을 쓸어내렸지만 소용없었다. 인삼이 내 목젖을 턱턱 쳤다.

"우웩! 웩!"

- 꿀꺽.

"꿀꺽?!"

괴물 인삼이 내 목젖을 뚫고 식도 안으로 다이빙하고야 말았다.

"켁켁! 켁!"

망할 인삼은 목에 걸리는 것도 없이 곧장 내 체내에 도착해 스르륵 하고 액체같이 녹아버렸고, 난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아…."

악마에게 내 육체가 정복된 것인가? 꽃다운 열여덟 살에 엑소시스트를 찍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비통하고 서러웠다. 단 한 번의 호기심으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다니…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어찌 인생은 이리 야멸차단 말인가?

"아. 이제 움직일 수 있다."

경직된 나와 할아버지의 몸은 자유가 되었다.

"할아버지…."

그래도 손자가 위기에 처했을 때 애타게 걱정해 주던 할아버지였다.

내가 친손자이긴 한가보다.

핏줄에 대해 자긍심을 가질 때였다. 할아버지는 다짜고짜 나에게 발길질을 날려버렸다.

- 퍽!

"우아아악!"

얼굴이 시뻘게진 할아버지는 아빠를 때릴 때 보다 더욱 분노한 상태였다.

"니 그게 어떤 건지 알고 먹었나! 마 임마! 다 토해라! 퍼뜩!"

내 걱정은 0.0001도 안 하고 괴물 인삼만을 걱정할 뿐이었다. 할아버지는 날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아 놓고 하염없이 목젖과 복부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 퍽퍽!

"으악! 웩웩~"

"토해라! 지금이라도 안 늦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멍들어 버린 아빠가 할아버지의 바지 끄트머리를 잡았다.

"아부지예! 뭐 하십니까! 아 잡습니더!"

"놔라! 마! 너거 집안은 아바이부터 시작해가 와 그 모양이고?!"

그 최고봉에는 할아버지입니다만….

얼굴이 잔뜩 부은 아빠가 할아버지를 만류하고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아니 택도 없었다.

"그게 어떤 영약(靈藥)인데! 잘 숙성해가 냉철이 줄라꼬 했던 건데 니가 처먹음 어야노 임마! 뱉어라! 뱉으면 살려는 줄게."

- 퍽퍽!

"나도 뱉고 싶어요! 우아악!"

근데 냉철이가 누구야?

하나뿐인 손자보다 더 아끼는 놈인가? 아니 그전에 난 혈육을 떠나 철천지원수 대우를 받고 있다. 그렇게 의식이 흐려져 갈 즈음이었다.

- 우우우웅~

뒤편에 불타는 타원형의 빛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 할아버지 뒤에 이상한 게…."

"이게 어디서 말 돌리노! 빨리 토해내라!"

이글이글 타오르는 타원형이 생기더니 거기서 뭔가가 꾸물꾸물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조금 전 만화책에서 봤던 네 발 괴물이랑 똑같이 생겼다!

"할아버지! 농담 아니고! 뒤 좀 봐요! 손자 좀 그만 때리고요!"

"아무것도 없기만 해봐라. 너거 아바이랑 뒷산에 사이좋게 파묻어 버릴 기다!"

고씨 가문의 씨를 말리려던 할아버지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꾸물거리는 괴물을 본 할아버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씨X. 올해 삼재(三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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