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인데 내공이 좀 많네요-9화 (9/200)

9화. 청와대 비공식 답변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끌어안고 애타게 불렀으나 대답도 없이 바늘처럼 가늘게 숨만 겨우 할딱이셨다.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의 몸에선 피 냄새가 철철 풍겼다.

"으으…."

그때 할아버지가 가까스로 눈을 힘겹게 뜨셨다.

"할아버지! 괜찮아요?"

"으… 서…성웅이가? 늑대는 잡았나?"

할아버지의 힘없는 목소리가 이토록 슬플 줄이야. 눈망울에 고인 눈물이 사정없이 흘러내렸다.

"흑흑, 당연하죠. 누구 손자인데요!"

"자…슥이… 제법이데이…."

내게 흐릿한 웃음을 보였다.

"할아버지! 죽으면 안 돼요!"

목울대가 찰랑찰랑거렸다.

눈물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

"와? 닌 내가 죽어야 서울로 돌아갈 끼 아이라."

"엉엉~ 아니에요! 아니란 말이에요! 여기서 평생 마물 잡아도 좋아요! 그러니까 할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하게만 살아 줘요!"

"진짜제?"

"네네! 엉엉~"

"자슥이… 사내새끼는 우는 기 아이다…."

라는 말을 끝으로 할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내려놓으셨다.

- 툭.

평온한 표정을 지은 채 눈을 감으셨다.

"할아버지이이~~~!"

내 생에 그토록 많은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없다. 목청이 떠나갈 정도로 울었다.

* * *

"괜찮습니다. 과다출혈로 의식을 잠깐 잃었네요."

법현 스님의 첫 마디였다.

뒤늦게 송현사 승려들이 합류하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송현사 승려 모두 총출동하였으나 마을 인근까지 내려갔던지라 여기까지 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 우웅.

법현 스님의 손에서 성스러운 빛이 나더니 할아버지의 안색이 금세 회복되었다. 이내 법현 스님은 노련한 손놀림으로 흉터의 크기를 확인하고, 맥박을 재고, 여분의 출혈을 막았다.

"위기는 넘겼으니 괜찮아요. 어엇~ 성웅 시주!"

법현 스님의 말을 듣자마자 난 바로 쓰러졌다.

* * *

며칠이 지났을까?

목탁 두들기는 소리와 불경 외는 소리에 잠이 깼다. 눈을 뜨니 내 눈에 비친 것은 냉철이었다.

그는 걱정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성웅 친구! 괜찮아요?"

"으으… 여기는 어디야?"

"어디긴요. 송현사죠. 사흘 밤낮을 내리 자던데요."

"흐에에~ 정말? 할아버지는?"

그때 벌컥 문을 여는 한 노인이 보였다.

"성웅이 인났나!"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언제 다쳤냐는 듯 후다닥 달려와 처음으로 날 거칠게 안았다.

"아이고. 내 새끼. 괜찮나! 어디 아픈 데 없나!"

"으으으! 아파요! 할아버지. 놔요, 이거."

날 얼마나 세게 껴안았던지 상처가 다시금 도질 것 같다. 뒤따라 온 법현 스님은 장난 가득한 웃음으로 농을 건넸다.

"이거야 원, 형님. 손자 없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습니까?"

"꼬우면 결혼해서 아를 키워라."

"어이쿠. 부처께서 벼락 내립니다요."

웃고 떠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마물이랑 싸울 때는 이런 날이 다시 오리라곤 생각 못 했기 때문이다. 이제야 마물과의 전투가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으아아아앙~"

난 다시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안도의 눈물을 펑펑 쏟았다.

할아버지는 사흘 밤낮 동안 주무시지도 않고 내 곁을 지켰단다.

"껄껄껄!"

옆에서 지켜보던 법현 스님이 해맑게 말했다.

"형님. 창세삼정을 성웅 시주가 먹길 천만다행입니다. 이 또한 부처의 뜻이겠지요."

"으음. 근데 법현 스님. 창세삼정 얘가 좀 이상하던데요?"

"뭐가요?"

"갑자기 이상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제게 크림슨 차크라인가? 뭔가 힘을 빌려준다길래 썼거든요."

"네?"

"뭐라고!"

할아버지와 법현 스님의 입이 쩍 벌어졌다.

"으음. 성웅 시주. 그 힘은 가급적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왜요?"

법현 스님이 미간을 좁혔다.

"중원 구파일방의 정수를 모은 내공심법을 소림사에 보관했는데 천마신교의 교주가 창세삼정을 얻기 위해 혈겁(血劫)을 벌였죠. 당시 수만 명의 무림인들이 죽고 다쳤습니다. 결국 소림사를 부수고 창세삼정을 손에 취한 교주는 강제로 창세삼정을 먹으려 했죠. 그러나 그 대가는 잔혹했답니다."

"뭐죠?"

"교주의 모든 무공을 빼앗고 그의 영혼마저 창세삼정이 빨아들여 버렸지요."

"헉! 그럼 제가 얘기한 그 노인이!"

"천마신교의 교주 천유희입니다."

"으아악!"

"마교의 권능과 무공을 펼칠수록 성웅 시주의 몸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 가급적 쓰지 말길 바랍니다."

"이놈아! 그런 게 있으면 진즉에 할애비한테 말해야 될 기 아이라!"

"몰랐죠. 나야!"

그때였다.

비릿한 조소를 머금은 목소리가 나타났다.

"후후. 학생. 다 약발이었군."

구동훈이었다.

"으악! 청와대 아저씨! 서울이나 얼른 가버려요! 왜 아직도 여기에 있어요?"

"후후. 네가 걱정되는데 어떻게, 발걸음이 떨어지겠어?"

주변에 불경 외는 소리가 뚝 그쳤다. 이윽고 하나둘 승려들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송현사에 있는 모든 승려들이 내 앞에 집결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단체로 내게 뭔가 말할 게 있는 모양이다.

난 냉철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웅 시주."

"성웅 시주."

"엥? 다들 왜 이러세요?"

송현사의 주지인 법현 스님이 대표로 앞으로 나와 말했다.

"지난밤, 성웅 시주가 행했던 의로운 행동은 어린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타의 모범이 되는 용기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인명피해와 사회적으로 커다란 혼돈을 초래할 수 있었던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지켜주신 점. 정말 감사합니다. 녹전과 송현사는 성웅 시주가 한 무인(武人)으로서 당당히 세상에 빛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

- 척. 척. 척.

송현사에 있는 모든 승려들이 내게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엄숙하고 근엄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어떤 말보다 '수고했다.'라는 말을 들으니 몸 안에 그 어떤 기쁨보다 바꿀 수 없는 희열이 들끓었다.

정식으로 무인 대우를 받게 되어서일까? 내 손으로 생명을 구했다는 명예로움 때문일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코끝이 찡해졌다. 다들 나보다 이 같은 전투를 수없이 해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나의 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도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더욱 내 마음에 와닿았다. 그러나 상큼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바로 할아버지가 산통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자, 닭살 돋는 짓들 고만하고 마당으로 가자."

"형님. 아직 성웅 시주는 부상이 심하고 나이가 어려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어허! 내 손자는 내가 잘 안다. 창세삼정까지 먹었으면 사태가 어떤지 알아야 될 거 아이라. 성우이 옷 입고 퍼뜩 나온나!"

할아버지의 호통에도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고 신이 났다.

"네! 할아버지!"

"하하, 정말 못 말리는 두 분이네요."

"아하하하. 성웅 친구 같이 가요."

"그야말로 환상의 콤비 아닙니까?"

승려들은 각자의 농담을 건네며 자리를 옮겼다.

절 마당에는 커다란 포가 무언가를 덮고 있었다.

난 냄새로 저 안의 내용물이 뭔지 알 수 있었다. 법현 스님이 고개를 끄덕이자 젊은 승려들이 포를 치웠다.

- 촤악~

"으으… 다시 봐도 징그럽군. 냄새는 얼마나 고약하고?"

"흉측하군요. 정말."

각자 우려가 섞인 말을 뱉었다.

포를 걷자 보인 것은 우리가 죽인 세 마리의 야수 늑대였다. 늑대의 사체만 봐도 당시 얼마나 처절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내장이 파괴되고 눈알과 가슴팍이 헤졌고, 마지막은 형체조차 알 수 없이 갈기갈기 찢어진 강화 늑대였다.

법현 스님이 돌로 된 연단에 올라서서 말했다.

"구동훈 시주. 이 늑대 괴물 이름은 알레프(Aleph)입니다."

"알레프요?"

"네. 망자의 서는 고대어로 기록되어 정확한 발음은 다르지만 알레프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 찰칵. 찰칵.

구동훈은 사진을 찍고 법현 스님이 말한 것을 노트에 기록하고 있었다.

정부에 대한 괘씸죄를 적용해서인가? 내가 깨어날 때까지 그 누구도 구동훈에게 괴물에 대한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나 보다.

연단에 선 법현 스님이 아래를 내려 보며 말했다.

"다들 알다시피 오렌지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레드에서 오렌지로 바뀌는 시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그간 저희는 목숨을 걸며 야수들을 물리쳐 왔습니다. 그 어떤 대가도 없이 오직 나라를 위해서 말입니다."

잠시 스님이 숨을 골랐다.

여기까진 나도 아는 내용이었다.

"청와대 시주가 봤던 지붕 위 백마침… 불행하게도 백마침의 길이가 조금씩 짧아지고 있습니다."

구동훈 행정관이 손을 들고 말했다. 마물에 대해 까막눈은 아닌 듯했다.

"백마침은 강력한 마물을 저지하는 보패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백마침 길이가 짧아질수록 더욱더 강력한 몬스터들이 나온다는 겁니까?"

"단언할 수 없습니다만 며칠 전부터 백마침 길이가 미세하지만 짧아지고 있는 거로 보아, 그렇게밖에 추측할 수 없습니다."

지금으로선 인과관계의 도출밖에 할 수 없다. 아무도 미지의 세계를 다녀온 적이 없으니 말이다.

"저희 송현사는 그간의 전투로 많은 승려들이 목숨을 잃고 다쳐 이제는 남아있는 승려는 몇 되지도 않습니다. 구동훈 행정관님."

구동훈의 안경알이 반짝이며 근엄하게 대답했다.

"네. 법현 스님."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사진이고 뭐고 청와대 소속 김석진 보좌관이 괴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이 점은 정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청와대 안보실장, 비서실장을 비롯해 대통령도 이번 일로 인해 거짓말이라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 자! 이제는 군대가 출동합니까?"

구동훈은 무언가를 각오라도 하듯 담담하게 말했다.

"아뇨. 그럴 일은 없습니다."

"뭐!"

"저! 저! 먹물 먹은 후레자식을!"

"이런 썩을 놈의 나라를 봤나!"

"어이 이봐! 댁들 청와대 직원도 죽었다고!"

도 닦는 승려들의 입에서 거친 말이 나왔다.

구동훈 아저씨는 사람을 열 받게 하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청와대 직원인 본인이 마물을 두 눈으로 봐놓고도 정부에선 그 어떤 개입도 없을 거란다. 김석진 아저씨의 시체를 손수 묻어줬으면서 말이다.

이리 욕을 바가지로 먹을 줄 알면서도 어찌 저리 뻔뻔할 수 있을까? '기필코 군대를 파견하겠다!'까진 아니더라도 '힘닿는 데까지 애써보겠다.'가 기본 예의 아닌가?

법현 스님은 담담하게 물었다.

"왜죠?"

"슈뢰딩거의 고양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사람 열 받게 하고 갑자기 요상한 품종의 고양이를 꺼낸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그게 뭐야? 먼치킨, 샴, 러시안 블루 고양이까지는 알고 있다.

"1930년대. 양자역학을 비판하기 위하여 슈뢰딩거 박사가 고안한 사고실험이라는 것 정도는… 아, 그것이로군요."

법현 스님은 개념을 말하던 중 단박에 질문의 뜻을 이해했다. 할아버지가 다쳤을 때 응급처치도 척척하고 심지어 아는 것도 많다.

대체 밖에서 무슨 일을 하다 이 시골 절에 틀어박혀 사는 거야?

다른 승려가 물었다.

"청와대 시주. 알기 쉽게 설명 좀 해주십시오."

"짤막하게 요약 드리겠습니다. 어떤 독극물이 봉인된 상자에 고양이가 갇혀 있습니다. 만약, 독극물이 퍼지면 고양이는 죽겠죠. 그렇지 않으면 고양이는 살겠죠."

"당연한 말을 하시네요. 절반의 확률로 고양이는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다는 얘기잖습니까?"

"네. 물리학계에선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라 일컫습니다."

삶과 죽음의 공존이라… 망자의 서가 작성된 결정적인 공간 아닌가?

"그 얘기가 지금 무슨 상관입니까? 쉽게 말해, 동전 던지기나 하자는 겁니까?"

구동훈은 대꾸했다.

"동전 던지기는 동전을 위로 튕겨야 결과를 알 수 있는 것이지요. 문제는 현 정부는 동전 튕기기조차 하지 않을 겁니다."

"뭐?"

"뭔 개소리야! 알기 쉽게 좀 말해!"

"여러분. 제 후배 석진이가 죽었습니다. 저는 그날 안보실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안보실장 반응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어떻게든 당장 군대를 풀겠다고 했겠죠!"

구동훈은 눈빛이 가늘게 늘어지며 분노를 가까스로 참듯 말했다. 처음 봤을 때의 어리바리한 모습이 아니었다.

"아가리 닥치고 가만있으라고 하더군요."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