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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인데 내공이 좀 많네요-29화 (29/200)

29화. 아수라 마석의 맛

송현사에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찾아왔다.

우린 다 같이 밥상에 둥글게 모여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오! 동훈이 형이 만든 밥을 먹게 될 줄이야!"

"동훈 시주. 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데요?"

"하하~ 확실히 연애하더니 사람이 바뀝니다."

칭찬에 동훈이 형이 기고만장하며,

"모름지기 청와대 출신이라면 요리도 일류급이어야죠. 와하하!"

- 지글지글.

야채가 잔뜩 들어간 두부전골을 다들 한 숟가락씩 펐다.

두부전골은 절 특유의 별식이다.

사실 상불교는 고기가 금식은 아니지만, 이따금 섭취할 뿐 여분의 단백질 보충은 호두, 은행, 잣으로 대체했다.

한 입 떠서 먹자, 짜고 싱겁지도 않은 적당한 맛이 느껴졌다. 두부, 야채와 묘하게 잘 버무려졌다. 모두의 취향을 저격한 탁월한 솜씨였다.

"말도 안 돼. 맛있잖아!"

"아미타불. 서당 개 삼 년의 결실이 맺어지는군요."

"허구한 날 사고만 치는 시주인 줄 알았는데 이런 것도 할 줄 알고 제법입니다."

"하하! 제가 더이상 뭐 사고를 칠 일이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법현 스님. 냠냠쩝쩝. 저희도 이제 유명인사가 되었는데 식단 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고기라든가? 호로록!"

"아미타불. 최고의 음식은 마음입니다. 정갈한 마음으로 한 숟갈씩 꼭꼭 씹어 드시는 자체가 별미이고 보약입니다."

"……."

할아버지가 화제를 돌렸다.

"그래가 지금 백마침은 어디에 있노? 아직 녹전이라?"

한 차례 눈을 감고 위치 추적을 하던 냉철이가 대답했다.

"네. 어르신. 아직 녹전에 있습니다."

"망할 절도범 새끼. 잡히기만 해봐라. 다리 몽둥이를 그냥 콱! 이따가 밥 먹고 몇 명은 나랑 백마침이나 찾자."

"넵!"

절도범이 바다에 대왕 문어가 나오리라고는 미처 계산을 못 했나 보다. 식겁이라도 했던지 독도 대첩이 끝나기 무섭게 녹전 산속에 고이 숨겨 두었다.

"시간 보아하니 오늘내일 게이트가 오늘내일 열리겠네. 다들 준비 잘하거라."

"네. 어르신."

그때 달건 스님이 눈짓으로 엘리를 보며 말했다.

"근데 엘리 시주는 언제까지 저기서 밥을 먹을까요?"

다들 엘리를 쳐다봤다.

그녀는 멀찍이 사랑채에 하인들이랑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

우유에 샐러드다.

사랑채 통으로 엘리의 공간으로 떼어줬고, 그녀를 보필하는 하녀랑 집사가 네다섯 명 투입됐다.

그녀는 샐러드에 드레싱을 왕창 뿌려 먹고 있었다.

"냠냠. 근데 생각보다 엘리 시주가 의외로 적응을 잘하네요. 여흥 거리도 없고 불편한 점도 많을 텐데."

"오물오물. 저 어린 나이에 독한 연예계를 버티며 탑을 찍은 천재인데, 이 정도야 누워서 떡 먹기겠죠. 그나저나 아지 스님은 별채에서 아직 칩거 수련 중이시죠?"

"아미타불. 문어 다리에 묶인 여파에 상심이 큰가 봅니다. 독도 대첩 끝나고부터니까 일주일 됐겠네요."

법현 스님이 내게 눈짓을 했다.

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지 스님. 끼니는 제대로 챙겨 먹고 있나 모르겠다.

* * *

'접근금지'

별채에 메모가 한 장 붙어있었다.

여기에 아지 스님이 있다.

완벽한 독도 대첩에 단 하나의 흠집. 냉철이를 구하려다가 문어 다리에 낚인 단 한 명의 승려.

아지 스님은 동훈이 형을 별채에서 몰아내고 칩거(蟄居)에 들어가 수행 중이었다.

- 쿵쿵.

"아지 스님. 안에 계십니까?"

문을 두들겼다.

감옥 같은 별채 안에서 혼잣말이 들려왔다.

"내면의 텅 비고 고요하되 신령스럽게 알아차리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걸 어찌하여 밖에 찾아 헤매다 문어 다리에 솎아 매이는가?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인간(人間), 천상계(天上界)의 윤회가 멈추지 않겠구나. 아아. 마하반야~♪"

"……."

법공(法空)을 빙자한 자격지심이다.

아지(我知) 스님.

올해 나이 38세로 곧 불혹(不惑)을 앞두고 있다.

거무튀튀한 피부에 미간에 큼직한 흉터가 하나 있다. 전직 조직 폭력배 출신으로 폼생폼사 하나로 먹고 살아왔는데 독도 대첩에서 치명적인 문어 다리 사건으로 충격을 받아 식음을 전폐했다.

여담이지만 본인 말로 세상 모든 여자를 유혹할 수 있다고 하는데 신빙성이 없다.

재차 문을 두드리며 조금 큰 소리로 불렀다.

- 쿵쿵!

"아지 스님! 대답 좀 해주십시오."

철문 너머 울적한 소리가 들렸다.

"성웅 시주. 무슨 일로 왔는지 다 알아. 헛걸음하지 말고 돌아가. 호흡 수련에 방해돼."

"다들 걱정하고 계십니다. 와서 식사라도 한 끼 하십시오."

"성웅 시주. 난 밥 먹을 자격도 없는 놈이야. 대한민국 해군도 냉철이도, 너도, 코뿔소 달건 스님 등등! 각자 자기 맡은 역할을 멋지게 했는데, 나만 팔불출이야. 인터넷에서 뭐라는 줄 알아? 윤회의 몸부림, 땡중이 바지에 오줌 지린 날 등등 날 모욕하는 악성 댓글에 미칠 지경이라고. 난 추한 놈이야!"

"아뇨. 추하지 않았어요. 보법(步法)도 화려했고 검술도 세련됐다고 사람들 칭찬이 자자한걸요?"

"거짓말 마. 난 여기서 극의를 깨우칠 때까지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을 거야. 단 한 발자국도!"

그의 굳건한 의지에 포기를 하고 몸을 돌리던 참이었다. 영롱한 소녀의 음성이 별채 문을 뚫고 들어갔다.

"Hey. 성웅. What's up?"

뒤를 돌아보니, 보랏빛 눈동자에 기다란 금발을 찰랑이는 여자가 보였다.

"뭐야. 엘리? 너 샐러드 먹고 있지 않았어?"

그녀는 분홍빛 혀를 내밀고 얼굴 와락 구겼다.

"더럽게 맛 엄써."

그때였다.

- 벌컥!

내가 애걸복걸해도 꼼짝도 안 하는 양반이 엘리 목소리를 듣자마자 별채 문을 단박에 열었다.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엘리? 엘리 시주?"

인간의 몸에 노새의 목을 붙인 것이 튀어나왔다.

아지 스님은 요 며칠 새 처참한 몰골의 승려가 되어버렸다. 부처가 6년의 고행(苦行)을 마치고 우유죽을 먹기 직전의 상황이라면 이럴까? 며칠간 씻지도 않은 몸에 악취가 퍼졌다.

"으아아아아~~"

"Oh~ my gosh~"

나랑 엘리가 기겁한 채 뒤로 물러서자, 그가 덥석 엘리의 손을 잡았다. 거지의 만행에 엘리가 손을 뿌리치며 비명을 질렀다.

"끼아아아아~ monsterrrrrrr!"

"엘리 시주! 내가 걱정 돼서 온 거야? 정녕 날 걱정한 거냐고! 하루 종일 내 걱정만 했던 거지? 응? 제발 그렇다고 말해줘!"

전직 조폭이 아니라 스토커다.

"아지 스님. 다시 별채로 들어가서 하던 수련이나 마저 하세요."

"우리 엘리가 날 무간지옥에서 꺼내러 왔잖아. 사람이 성의를 무시하면 못 써. 엘리. 나가자 어서!"

"……."

나랑 2년 넘게 알고 지냈으면서 내 말엔 꿈쩍도 안 하더니… 문득 서글퍼졌다.

* * *

아지 스님이 눈썹을 실룩이며 말했다.

"왜 하필 저입니까?"

법현 스님이 답했다.

"첫째, 너보다 위의 스님들이 먹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둘째, 너는 욱하는 성정에 정도 많아 쉽게 마물의 궤계(詭計)에 걸려들기 쉽다. 허나 이 아수라 마석을 먹으면 능히 그 위기에서 벗어날 육체를 가질 것이다. 고로 먹도록."

"싫습니다."

"먹으라고."

"싫다고요. 스님도 이걸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시잖습니까?"

법현 스님의 미간이 좁아진다.

자존심 강한 두 남자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

아지와 법현 스님 사이, 물컹거리는 연분홍 돌멩이를 두고 설전을 펼쳤다.

내가 독도 대첩에서 목숨 걸고 건진 아수라 마석이다.

한쪽은 먹으라고 하고 한쪽은 결사 항전 중이다.

문어 라메드는 강력했지만 먹기에는 그다지 매력적인 마석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먹자마자 팔다리가 수십 개로 불어난다든가. 침을 뱉었는데 땅이 녹아버린다거나. 눈을 깜빡였는데 앞 건물이 번쩍거리며 터진다든가.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친다. 난 절대 먹지 않을 것이다.

"음, 건강에 좋을지도 몰라."

"영약 성분이 첨가된 것이라면 주지 스님이나 드시지요. 연세도 있으신데."

"아수라 마석은 중복이 안 돼."

법현 스님은 치유계 아수라 계열을 이미 먹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요. 성웅 시주가 먹는 수밖에."

내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싫어요! 왜 날 넣는 거예요!"

"아지. 넌 나이 마흔을 앞두고 왜 자꾸 떼를 쓰는 것이냐?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인 것인들. 추후 마물을 업장소멸 시키다 보면 음(陰)의 기운이 필요할 때가 필히 올 게다. 냉철이도 이번 독도 대첩 때 묵(墨)의 힘으로 엄청난 업적을 이뤘잖느냐."

법현 스님의 정중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아지 스님은 고집을 끝까지 관철시켰다.

"냉철이 같이 저도 초자연계 아수라 마석을 주시면 먹겠습니다. 하~ 야수계 마석이라니요? 동훈 시주같이 잘못 먹어 주화입마라도 걸리면 어떡합니까? 심지어 문어의 능력을 누가 갖고 싶어 합니까? 죽어도 못 먹습니다."

아수라 마석 중 유일하게 탈이 나는 게 야수계다. 기본적으로 신체 변형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기(氣), 공(功)의 혈류(血流)를 새로 뚫어야 한다. 내공이 없는 사람은 절대 먹으면 안 되는 마석이다.

"초자연계 마석이 있었으면 너보다 고참 승려가 먹었겠지."

"……."

"그리고 동훈 시주는 내공이 제로에 수렴해서 주화입마에 걸린 것뿐이고 넌 괜찮아. 달건 스님도 자유자재로 잘 쓰잖니? 또 이게 보통 마석이냐? 하물며 옐로우 게이트에서 나온 것인데 어디가 어때서? 경매에 내놔도 몇천억에 팔린다고 이건."

아지 스님이 보란 듯 응수했다.

"잘됐네요. 돈도 벌고 아수라 마석도 해치우고 일거양득이네요. 당장 파십시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서로 마이웨이를 간다.

결국 상명하복을 시전 했다.

"이건 주지 스님으로서의 명이다. 먹어라."

"싫습니다."

위아래 없이 막 나가는 아지 스님이었다. 실로 둘 다 똥고집이다.

법현 스님이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했던지 초강수를 두었다.

"조만간 송현사 승려들 몇몇이 대륙 곳곳에 파견될 것이다."

"뜬금없이 그 얘길 왜 꺼내십니까?"

"전 세계적으로 게이트가 출몰하면 헌터로 대응하기 위함이지. 우린 무공을 전수해 주는 교관으로 가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위상도 드높아지겠지. 머지않은 미래에 세계 각지를 대표하는 헌터협회가 생겨날 것이다."

"그래서요?"

법현 스님은 고민하는 척하더니,

"널 북극에 보내버릴까 한다."

"네?! 아니 주지 스님!"

"암. 그렇고말고. 이렇게 끈기 있고 고집 있으면 응당 추운 곳에서도 잘 버텨낼 수 있을 듯하구나. 콜라 먹는 곰이 있다던데 사이좋게 지내렴."

"당장 아수라 마석을 먹겠습니다."

"싫다더니?"

"유치하게 왜 이러십니까?"

"지금 누가 유치한데?"

"주지 스님!"

"왜?"

"잘못했습니다. 부디 먹게 해주십시오."

"아미타불. 그렇게 정 먹고 싶다면 말리진 않으마."

"……."

극적 타결 완료.

- 우르르르르르~

주변에서 지켜보던 스님들이 단박에 아지 스님 주위로 모여들었다.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인지 아지 스님이 퉁명스레 말했다.

"거참, 사람 민망하게 왜 이러십니까. 각자 편히 일 보십시오."

"주화입마 걸릴 줄도 모르니까 걱정되잖아."

"동훈이 형은 하나로 충분하니까 너는 제발 잘 각성하길 바랄게."

다들 떠날 생각이라곤 일도 없었다. 호기심 가득하게 지켜보자 아지 스님은 어쩔 수 없이 아수라 마석을 입안에 갖다 대었다.

아수라 마석은 기다렸다는 듯 스멀스멀 입으로 들어갔다. 일순간 충격이 가해져 오듯 아지 스님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신음을 뱉었다.

"윽!"

"아지야. 괜찮아?"

"아지 스님 너 왜 그래!"

"으어어어억."

아지 스님이 바닥에 넙죽 엎드리더니 고통에 신음했다.

승려들 몸에 내공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동훈이 형 같이 수틀리면 주화입마고 뭐고 그냥 죽여버릴 기세다.

폭탄은 하나로 족하다는 결연한 의지.

나 역시 반혼검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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