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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인데 내공이 좀 많네요-32화 (32/200)

32화. 오 마이 프레지던트 (1)

문어 마석의 힘은 대단했다.

신체 일부가 절단되어도 자동 합체하는 놀라운 패시브 스킬이 함유됐기 때문이다.

- 우우우우웅!

모든 고블린을 업장소멸 시키자 게이트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오옷~ 스님. 게이트가 곧 닫히겠는데요?"

"얼른 마석 줍고 여길 뜨자."

"네. 술법 좀 부탁드립니다."

"엘리. 룩 앳 미."

덜 떨어진 영어 발음을 구사한 아지 스님이 부적을 한 장 꺼내더니 경(經)을 외웠다.

"변태. 성웅 what the hell is that?"

반 노출의 아지 스님을 외면한 채 엘리가 내게 물었다.

"술법(術法)이야. 볼수록 진기명기야."

주문을 다 외운 아지 스님이 기합 소리를 외쳤다.

"합!"

그러자 펑~ 하며, 돼지가 웃고 있는 복주머니가 나왔다.

엘리가 실망한 표정으로 물었다.

"hey. what's that?"

"이 주머니에 마석을 넣으면 돼."

엘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이 작은 주머니에 뭘 담느냐는 표정이었다.

"성웅. are you kidding?"

"안 키딩. 얼른 담기나 해."

약한 녀석들이라 마석은 삼십여 개밖에 나오지 않았다.

"one… three… five… ten… oh!"

그녀는 마석을 복주머니에 담으면서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놀랍게도 마석이 끊임없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oh. shit. shit. holy shit."

"엘리. 욕 좀 안 하면 안 돼? 나이도 어린 게."

"변태. what the unbelievable skill."

칭찬 한마디에 아지 스님이 허파에 바람을 잔뜩 불어넣었다.

"으하하하! 엘리 시주! 과인이 이 정도라고!"

젤리 스님은 끊임없이 흥얼거리고 넘어지면서도 마석을 열심히 쓸어 담았다.

"휴~ 다 담았네. 이제 갈까?"

"No! Hey guys. stop!"

엘리가 우리를 저지했다.

"엘리. 왜? 이제 곧 게이트 닫힌단 말이야."

"Goblin 시체들도 복주머니 담아."

나랑 아지 스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으잉? 엘리 시주. 저걸 왜?"

"고기는 부패하고 뼈는 타지도 않는데?"

엘리가 기겁을 했다.

"Oh~ my~ gooooood~ 가죽으로 레더(leather)를 만들고 살덩이는 meat로 먹고 um… 무엇보다 뼈(bone)는 무기로 제련해야지."

"……!"

어쩜 이리 총명할까?

역시 영국이 낳은 천재!

역시 서양 문물!

"엘리! 너 완전 천재잖아!"

"멍·청·이. 너희들만 모르는 거야. 이미 과학계에선 난리라고."

"으음. 그래? 시간도 촉박하니까 비교적 멀쩡한 놈들만 후딱 담자."

내가 난도질을 많이 해서 담을 수 있는 사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고블린 사체마저 복주머니에 담고, 송현사로 복귀했다.

머지않은 훗날,

마물의 가죽으로 의류 혁명이 일어났다. 특히 헌터들의 방어구, 부츠를 비롯해 산업 전반적으로 레이드 필수로 요긴하게 사용됐다. 마물 고기는 부르주아 계층 특산품으로 성황리에 수요가 폭증하였으며 가지각색의 레시피가 개발되었다. 무엇보다 마물의 뼈를 해부한 과학계가 난리 났다.

마물의 뼈가 강철보다 가볍고 내구성이 압도적으로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훗날, 사람들은 미스릴(Mithril)이라 불렀다.

무기 및 장신구에 미스릴 재질이 박히는 순간 가격표에 0이 하나 더 화끈하게 따라붙었다.

어쨌거나 훗날의 일이다.

* * *

MTC 간판 모델급인 앵커,

연주 누나가 나왔다.

[며칠 전, 송현사에 테러를 감행한 경악스런 피습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아직 범인은 잡지 못했으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수법을 밝혀냈습니다. 바로 독극물 물질인 보툴리누스 중독인데요. 0.0000001mg만 먹어도 사망에 이르는 높은 치사율을 가졌다고 합니다. 잘만 정제하면 한 방울로도 수천 명을 죽일 수 있는 위험한 물질입니다. 다행히 헌터들이 유독 물질을 삼키는 즉시 운기조식으로 독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현재 몇몇 헌터들이 복통을 호소하곤 있지만, 생명엔 크게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현장에 계셨던 법현 스님을 저희 MTC에서 단독 인터뷰 했습니다.]

[아미타불. 두부전골 재료에 누군가 독을 탄 것이었습니다. 복통 증세가 심해지자 저희 송현사 헌터는 당황하지 않고 내공을 꺼내어 몰아냈습니다. 그러나 장에 스며든 독극물을 최대한 배출하기 위해 저희는 화장실에서 며칠을 살아야 했죠. 하지만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와 사랑덕분에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극락왕생하십시오.]

스님이 공중파에 거짓말을 시전했다.

[네. 정말 위험천만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송현사 테러 여파로 이달 15일 개최 예정이었던 판문점 남북정상회담도 헌터들 피습사건으로 국가 재난 위기라 판단하여 보류 연장하였습니다. 북측에서도 세계를 구한 헌터들의 위중한 소식을 이해한다며 흔쾌히 다음날을 잡자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MTC 뉴스 박연주였습니다.]

TV를 껐다.

물론 다 뻥이다. 그저 단순 식중독에 걸렸을 뿐이다.

날조된 뉴스가 세계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다.

동훈이 형의 요리가 테러범의 피습으로 둔갑해 버렸다.

MTC 방송국의 공정성과 투명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네, 뭐네 다 거짓말이다. 세상 믿을 것 하나 없다.

다들 동훈이 형을 바라보며 한마디씩 했다.

"동훈 시주. 대통령 해볼 생각 없습니까? 판문점 정상회담도 미루다니 파괴력이 장난 아니신데요?"

동훈이 형이 대꾸했다.

"하하. 사실 퍼주기식 졸속 합의안이라 통일은 안 하는 게 낫습니다."

"동훈 시주 덕분에 며칠 동안 해우소만 들락거리고 수련도 안 하고 참~ 좋았습니다. 눈물 나게 고맙네요."

동훈이 형이 쑥스럽게 대꾸했다.

"하핫, 장(腸) 청소했다고 생각하고 이젠 맘껏 드시지요."

"동훈 시주. 저희 상불교가 단체로 사기 집단으로 변했네요."

동훈이 형이 대꾸했다.

"하핫! 선의의 거짓말은 부처님께서도 헤아리실 겁니다."

기어이 달건 스님이 폭발했다.

"뭐 잘났다고 하나부터 열까지 말대답을 꼬박꼬박 하십니까아! 무릎 꿇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옐로우 게이트가 나왔으면 우린 다 죽었습니다!"

동훈이 형이 응수했다.

"옐로우 게이트가 안 나왔잖습니까아! 그리고 제가 일부러 그랬습니까? 제가 요 며칠 사이 화장실 청소도 도맡아 했잖습니까? 청와대 출신에게 이런 모욕을 안겨줬으면 멈출 줄도 알아야지. 승려란 사람이 그렇게 뒤끝이 강해서야 윤회를 멈출 수 있겠습니까아!"

"그놈의 청와대는 무슨 사골입니까? 언제까지 우려 드시려구요오! 그리고 지금 어디 한번 막 나가보자는 거요?"

"아까부터 막 가셨잖습니까! 봉무령 풀고 어디 한번 붙어봅시다!"

"연무장으로 따라오십시오!"

사태가 거침없이 악화되고 있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콕콕 찔렀다.

돌아보니 엘리다.

"성웅. 다들 좋은 사람들 뿐이라며?"

"……."

싸움을 말린 건 법현 스님이었다.

"두 분, 화 좀 가라앉히시지요. 지금 싸울 때가 아닙니다."

팝콘이라도 있으면 뜯어 먹을 정도로 눈요기를 하시던 할아버지가 말했다.

"왜? 내버려 둬라. 흥미진진하구먼. 날씨도 좋은데 서로 대련도 하고 피 터지게 그간 쌓인 스트레스도 풀고 안 좋나?"

"하하~ 형님. 좋은 아이디어네요. 그런데 오늘 이렇게 다들 모이라고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접대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일순 눈이 동그래졌다.

"우리가 무슨 접대? 대통령이라도 온다나?"

"딩동댕~ 정답입니다."

장내 모든 이가 귀를 의심했다.

"네?"

"뭐라고요?"

"각하께서요?"

마지막 말은 동훈이 형이다.

사연인즉슨,

한 자릿수를 머물던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율이 남북정상회담 연기로 더 떨어졌고, 다시 탄핵의 불길이 치솟았단다. 최후의 보루가 사라진 셈이다.

국민들은 연일 광화문 앞에서 촛불을 들고 '하야하라! 하야하라!' 소리를 높였고, 대통령은 벌벌 떨며 청와대에서 나오질 않았다. 비서실은 이 난국을 타개할 방법은 하나라 입을 모았다.

송현사 헌터 격려 방문.

송현사가 안으로 봤을 땐 개판이지만 외부에서의 위엄은 상상을 초월했다. 전 세계적으로 하나밖에 없는 지구 방위대이자 헌터 조직이었다. 치외법권에 가까운 대우도 받고 있었다.

우리가 없으면 지구가 망한다는 보도기사가 세계 각지에서 연일 쏟아졌다.

위기의 대통령은 이걸 노렸다.

우리를 방문해 지지율 무임승차를 하려고 했다. 어떻게든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며칠 전부터 방문 의사를 표했고 법현 스님은 매번 거절했단다.

거절 이유는 심플하고 명료했다.

게이트가 언제 열릴지 모르니 위험하다. 그러나 대통령은 막무가내였다.

할아버지가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물었다.

"그래서 이완해는 언제 온다노?"

시계를 보던 법현 스님이 말했다.

"지금쯤 도착할 시간이 됐겠네요."

"끌끌. 오랜만에 그놈 상판대기 한번 보겠네."

"그날 이후 처음인가요?"

대통령이랑 할아버지랑 안면이 있는 사이였나?

"법현 스님! 청와대 출신인 제게는 미리 언질이라도 주셨어야죠."

"하하~ 죄송합니다. 저도 조금 전에 청와대 연락받자마자 말씀드린 겁니다."

- 두두두두두두!

하늘에서 굉음이 울려왔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코르스키 사(社)의 남청색 VH-92 헬리콥터 3대가 송현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헬기의 옆면에는 대·한·민·국이라 적혀있었다.

"새끼가 어지간히 급했나 보네."

"아미타불."

널찍한 공터에 헬기 3대가 착륙했다.

- 솨아아아아~~

"으어어어어~ 날아간다."

프로펠러의 거친 회전에 주변 나뭇가지들이 휘청휘청 춤을 추었다. 바닥 모래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엘리의 금빛 머리카락이 하늘을 날았다.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얼굴을 가렸다.

문이 열리고, 정장 차림의 경호관과 청와대 직원들이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처럼 내렸다.

이윽고 약속이라도 한 듯 이 열로 줄을 맞춰 섰다.

마지막 헬기의 문이 열렸다.

한 사람이 내렸다.

0.1톤을 육박하는 체중에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두 눈은 불안한 듯 주변을 흘기기 바빴다. 뱃살이 앞으로 얼마나 튀어나왔던지 셔츠의 단추가 압박에 신음했다.

그야말로 찐빵이었다.

찐빵을 본 경호관이 손목에 대고 말했다.

"VIP. 송현사 도착 완료."

"……!"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이완해(李完亥).

작고 길게 찢어진 눈은 언제든 불만을 표출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짝짝이 귀에 귓불도 없다. 덕(德)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는 뜻이다. 콧잔등이 내려앉은 재백궁(財帛宮)은 능력은 없는데 야망이 또렷해, 주변 사람들이 커버하느라 애를 먹는 상(相)이다. 입술 좌우 심술보가 아래로 처진 것은 만사에 자신감이 없음을 나타낸다.

정치는커녕 사회생활을 금지시켜야 하는 전형적인 흉상(凶相)의 표본이다.

그 사람이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오지 말라고 극구 말렸는데도 자기 고집을 관철시켰다는 것부터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지지율이고 뭐고 우리가 거절하니 자존심에 스크레치가 나서 악으로 왔을 것이다.

그래도 기본은 갖춰야 하기에, 우린 대통령이 지나가면서 악수할 수 있도록 일렬로 늘어섰다.

송현사의 주지(住持)인 법현 스님이 맨 앞에 섰다.

법현 스님에게 대통령이 악수하자며 손을 건넸으나 법현 스님은 두 손을 모아 합장으로 대신했다.

대통령은 뻘쭘해져서 안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하지만 그는 정치인이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독도 대첩에 대해 칭찬을 했다.

"다케시마 대첩은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였습니다."

"……!"

"……!"

다케시마? 경기?

현직 대통령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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