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이십사도 이완해
내가 단박에 거절했다.
육중한 몸매의 이완해가 식은땀을 흘리며 특유의 저자세를 취했다.
"저… 너무 야박하게 그러지 말고… 그저 보기만 할 뿐인데…."
보기만 할 눈빛이 아니다. 군침을 질질 흘린다. 이를 한심하게 보던 할아버지가 혀를 찼다.
"끌끌, 완해야. 현직 대통령이란 새끼가 구걸이나 하고 쯧쯧. 나라 꼴 잘 돌아간다."
대놓고 멸시를 당하자 찐빵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이이! 노망한 영감이!"
철컥.
찐빵 이완해가 권총을 들고 할아버지의 머리를 겨눴다.
"이 늙은 영감탱이야. 썩어 문드러졌으면 관작 사이즈나 알아볼 것이지. 감히 이 나라의 군 통수권자한테 뭐? 구걸? X발! 대가리에 구멍 몇 개 뚫어줘?!"
이완해의 으름장에도 할아버지는 태평하게 콧방귀를 꼈다.
"완해야. 네가 하는 짓거리가 대통령다웠나? 조필광 씨받이 노릇이나 하는 주제 어디 통수권자 운운거리노? 아가리를 찢어버릴라 보다."
이완해의 집게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리며 방아쇠로 향했다.
"씨… 씨받이? 으아악! 쏜다! 쏠 수 있어!"
저 손 떨림이라면 수전증으로 당겨버릴지 모른다.
"찐빵 아저씨! 총 내려요!"
난 할아버지 앞을 가로막았다.
반혼검에 힘을 불어넣었다. 찐빵 이완해가 방아쇠를 당기는 즉시 총알을 두 동강 내고 이완해의 목을 벨 것이다.
타앙!
흥분을 참지 못한 이완해가 결국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그와 동시에 발검(拔劍)을 하여 날아오는 탄을 잘랐다.
'죽인다. 감히 할아버지를….'
내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발축을 딛고 좌측으로 체중을 실은 후 반혼검으로 이완해의 목을 자르려던 순간,
"으아악!"
[VIP 발견. VIP 발견. 확보한다.]
확성기 소리와 함께 군인들의 발소리가 우리 쪽으로 빗발쳤다.
"대통령님! 괜찮으십니까!"
산악지형을 넘은 특수부대가 올라왔고, 하늘에선 다수의 헬기가 로프를 내리더니 군인들이 레펠 강하를 했다.
"성웅아. 검 내려라."
"칫."
간발의 차이로 생명을 건진 이완해도 권총을 내렸다.
군인들을 의식한 그는 냉랭한 미소로 우릴 종용했다.
"여러분이 아수라 마석을 갖고 있는 건 국가안보에 크나큰 위험인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잘 보관할 테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내놓으세요."
법현 스님이 가만 생각하더니,
"형님. 아수라 마석 길가에 버리죠."
"뭐?"
"응?!"
할아버지와 이완해가 동시에 당황했다. 법현 스님이 싸늘한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었다.
"지금 형님의 상처도 그렇고 부상 당한 헌터들 치료하는 게 우선 아닙니까?"
할아버지가 뭔가 눈치를 챈 듯 이완해를 욕보이는 상황극을 펼쳤다.
"아유~ 그래도 이 아까운걸?"
법현 스님이 방긋 웃었다.
"형님. 아깝긴요? 이 아수라 마석은 혼계나 소환계, 물질계, 평·초자연계도 아니고 허접하다 못해 쓰레기 같은 야수계인걸요? 설마 어떤 거지새끼가 구걸까지 하면서 가지려고 할까요?"
이완해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할아버지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맞장구쳤다.
"에이~ 법현아. 그래도 혹시 아나? 살다 보면 궁핍한 거지새끼들이 즐비한데? 아니면 다른 집안 씨받이 짓거리나 하는 놈팡이가 주우려 들지 않겠나?"
"이 새끼들이···!"
"아. 그렇군요! 썩어 문드러진 마석에 환장한 거지 중생들도 있는 걸 깜빡했네요. 그럼 시주하는 척이라도 하면서 버리는 게 어떨까요?"
"껄걸~ 법현이 네 뜻이 정 그러하다면 적선하는 셈 치고 버리자."
상황극에 조롱당한 이완해가 터질 듯한 찐빵마냥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비록 옐로우 게이트 마석이긴 해도 정부를 척지면서까지 지킬 필요는 없었다.
"에휴~ 누가 이 거지 같은 마석을 가지고 가려나?"
툭.
주긴 주되 곱게는 못 준다. 법현 스님이 마석을 이완해 앞에 던지며 딴청을 피웠다.
"이익…."
입술이 떨리다 못해 안면에 경련까지 일어난 이완해는 보는 눈이 많아 총으로 쏘지도 못하는 억하심정을 억누르기 바빴다. 이완해가 땅바닥에 떨어진 아수라 마석을 한참 쏘아봤다. 그때 법현 스님이 미간을 모으며 말을 이었다.
"형님. 이상한데요?"
"뭐가?"
"이완해 눈빛 좀 보십시오."
"눈빛이 왜? 어 저 새끼…."
이완해의 눈빛이 이상했다. 우리가 이런 수모까지 줬는데 마석을 바라보는 눈빛이 야릇했기 때문이다. 비굴함이 안에 깃든 눈동자는 치욕과 모욕의 것이 아니라 환희와 탐욕의 눈빛이었다.
"형님. 제가 간과했습니다. 조필광을 대하는 자세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이완해는 태생부터 자존심이란 개념 자체가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목적만 달성할 수 있다면 어떤 푸대접이든 달게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족속입니다."
이완해는 남모를 비릿한 미소를 몰래 지었다.
"제가 대신 주워드리겠습니다."
한 군인이 대신 마석을 주워주려고 했다. 별안간 이완해가 버럭 욕지거리를 토했다.
"만지지 마! 이 X새끼야!
탕!
그와 동시에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커억…."
이완해 근처에 있던 다른 사복 차림 남자의 총구에서 연기가 희멀겋게 올라왔다.
주워주려던 군인은 가슴에 피를 흘러내리며 쓰러졌다.
"누구야! 손 들어!"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완해 주변에 한국 군인들만 있는 게 아니라 사복 차림의 흑인, 중동인도 섞여 있었다.
나는 사태 파악이 되질 않았다.
"뭐야?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확실한 건 외국 용병 소속이 정상적인 조직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재래식 카빈 소총을 들고 한국군과 대척점을 쌓았다.
이완해는 외국 용병들의 합류가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가슴에 피를 철철 흘리는 군인에게 발길질하며 화를 냈다.
퍽! 퍽!
"군바리 새끼가 어딜 감히 나의 아수라 마석을 건드려!"
"커…컥!"
군인은 이완해를 원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생명이 사라져갔다.
"그 썩은 표정은 뭐야! 네까짓 게 어쩔 건데!"
"어. 억."
내가 반혼검을 꺼내며 저지하려 들 때였다.
재빠른 신형이 느닷없이 나타나더니 이완해의 뒤통수를 한 손에 움켜쥐고선 바위에 대고 사정없이 찍었다.
쿵! 쿵! 쿵!
"크아악~ 악! 악! 악!"
다름 아닌 동훈이 형이었다. 야수로 변한 그의 눈빛은 마치 내가 이따위 사람을 그토록 극진히 모셨다니! 하는 자괴감이 담긴 듯했다. 짙은 야수음이 그 어느 때 보다 분노한 듯 들렸다.
- 크르르르르.
몇 초 전까지 기고만장하던 이완해는 피투성이가 되었다.
"억… 사… 살려… 줘…."
한국군은 쌤통이라는 듯 지켜만 봤다. 그러나 중동 용병들이 소총을 갈겼다.
탕! 탕! 두두두두두!
동훈이 형이 등을 돌렸다.
팅~ 팅~ 팅~
무적의 거북이 등껍질 소유주인 동훈이 형은 총알을 모조리 튕겨냈다.
"대한민국 땅에 어디 총질이야! 모두 용병을 사살하라!"
두다다다다!
한국군이 용병들에게 총을 난사했다. 두 조직의 총성이 송현사를 감쌌다.
그 사이 동훈이 형의 폭력은 계속되었다.
퍽! 퍽! 퍽!
"컥! 컥!"
나라를 지키는 육군 전사들에게 몹쓸 짓을 해도 정도가 있지. 죽어도 싼 인간이었다.
이완해는 의식을 잃었고 안면은 함몰되어 원형을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동훈이 형이 이완해의 얼굴을 확인하고선 인상을 찌푸리더니 그의 양다리를 잡고 투포환 선수처럼 몸을 360도 회전을 빙글빙글 돌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휘리리리리릭~ 탓~
창세삼정의 내공마저 곁들여 있는 동훈이 형의 힘은 가공할 정도로 놀라웠다. 저 멀리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던져버렸던 것이었다.
"……!"
외국 용병들이 화들짝 놀라며 이완해를 찾으러 갔다. 한국군은 어딜 마음대로 가냐는 듯 총알을 난사하며 추격전을 벌였다.
탕~ 탕~ 두두두두두두!
두 집단의 치열한 전장이 벌어졌다.
"엇? 마석이!"
총격전을 벌이는 사이 누군가 마석을 가지고 갔다.
* * *
송현사에 잠시의 평화가 찾아왔다. 대한민국 이완해를 죽어라 팼으니 사후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드디어 휴식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법현 스님이 달건 스님 등을 오가며 응급처치가 필요한 사람부터 진료를 했다.
난 마석을 주우려다가 이완해의 발길질에 사망한 군인에게 다가갔다.
죽는 순간까지 비통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던지 눈을 감지 않았다.
조심히 그의 눈을 감겨주었다.
"X발."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군 복무 중, 전사는 할 수 있으나 자국의 대통령에게 이리 허망하게 죽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
중사의 목에 걸린 은색의 군번줄을 떼었다.
이름 '윤성환'
군번이 기재됐고 'B'라는 알파벳이 적혀 있었다. 응급상황 시 수혈받을 혈액형이다.
건너편 치료를 하던 법현 스님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태을 형님.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또 뭐가? 넌 왜 이리 궁금한 게 많노? 사람 피곤하게"
"그렇게까지 비굴하게 이완해가 마석을 얻으려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으음. 잘못 먹으면 탈이 난다는 것도 모를 리도 없을 텐데."
"이완해는 그걸 가지고 조필광한테 가서 자기의 충성심을 증명하려 했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설마!"
"중동의 군인들이?"
법현 스님의 뇌리에 불길한 예감이 스친 듯 인상이 찌푸려졌다. 할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냉철아. 지금 뭐라고들 얘기하는 거야?"
냉철이도 얼굴빛이 샛노래졌다.
대답을 하지 않는 냉철이를 흔들었다.
"임마. 냉철아."
"성웅 친구… 만약에 말이죠. 꼭 죽었어야 할 최악의 인간이 힘을 갖고 회귀를 했다면 믿으시겠어요?"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회귀라니?"
"그렇게 되살아난 악마가 다른 사람에게 힘을 줬다면요?"
법현 스님이 감을 잡은 듯했다.
"설마… 성전의식의 힘이?"
"이완해가 이십사도였어!"
냉철이도 이어 혼자 중얼거렸다.
"라스콜의 세례를 받은 자. 무한한 힘을 얻게 되리라."
그들은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다.
할아버지가 옷가지를 여미며 말했다.
"내 먼저 가보마!"
"형님! 안 됩니다!"
할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이완해가 사라진 방향으로 뛰어갔다.
법현 스님이 좌중을 둘러보며 급히 말했다.
"혹시 지금 싸울 수 있는 분 계신가요?"
"……!"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는 듯 모두 비틀거리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정말 고맙습니다."
법현 스님이 합장을 했다. 뒤따르는 승려들 역시 아무 말 없이 합장으로 답했다.
"지금 바로 이완해한테 가시죠."
무슨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아주 중대한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엘리. 괜찮아? 갈 수 있겠어?"
"why not?"
어깨를 으쓱하며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냉철이도 법현 스님의 치료를 받고 나서 나아졌는지 검을 들었다.
나 역시 창세삼정의 원기(元氣)가 조금 돌아서 움직일 수는 있었다.
* * *
모두 죽어 있었다.
한국군과 용병들 모두 싸늘한 주검이 되어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생존자가 있었다. 피를 철철 흘린 채 의식이 꺼져갔지만, 눈빛만은 악의로 가득 찬 한 사람.
대한민국 대통령 이완해.
그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정장 윗도리를 벗고 넥타이를 풀었다.
그 모습을 본 할아버지가 이완해를 향해 달려 나갔다.
"이완해! 이 새끼야! 당장 멈춰!"
"형님! 기다리십시오!"
"할아버지! 안 돼!"
웃통을 탈의한 이완해의 등짝에는 지렁이 기어가는 글자가 박혀있었다.
그는 아수라 마석을 앞에 두고 코를 바닥에 대며 절을 했다.
저 예법은 우리나라의 것이 아니다.
법현 스님이 외쳤다.
"성전의식의 힘을 받은 자입니다! 막아야 합니다!"
우리의 외침에도 일말의 미동도 없던 이완해는 아수라 마석을 손으로 들더니 높이 치켜들었다.
"아아. 회귀의 라스콜이시여! 주신 알라의 축복으로 위대한 지하드에 기꺼이 동참하리라!"
라스콜? 지하드? 뭐라는 거야?
할아버지는 다친 가슴팍을 부여잡으면서도 끝까지 이완해에게 달려갔다.
"형님! 위험합니다!"
"할아버지!"
이완해는 광활한 웃음을 표하며 세상을 가진 듯 기뻐하다가 입을 쩍 벌렸다.
"서···설마."
콰직!
이완해가 폭셀리아의 아수라 마석을 먹어버렸다. 그러자 등짝의 문신에서는 빛이 번쩍거렸다.
'عشرة تسعة' 라고 적혀 있었다.
"20사도 중 19번째!"
법현 스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완해의 관절이 모두 꺾이며 징그럽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
이완해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