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카니발리즘
"그 전에 죽여야 한다!"
할아버지가 지척에 다다랐다.
마석을 삼킨 이완해는 실타래가 꼬인 인형처럼 기괴하게 몸을 비틀며 변태(變態)를 시작했다.
바지가 찢어지고 몸집이 부풀어 올랐다. 검은 눈동자가 사라지고 사갈(蛇蝎)의 세모꼴의 붉은 눈알로 바뀌었다.
찐빵 같은 말랑한 체형은 근육의 힘줄이 솟아나고 백색 털이 듬성듬성 돋아났다.
이내 손톱과 발톱이 뾰족하게 길어지며 흉기를 만들었다.
"으아아아악!"
변화하는 과정에 우리 모두 침을 꿀꺽 삼키고 바라봤다.
얼마나 지났을까?
"하악··· 하악···."
거친 숨을 토해낸 이완해가 붉은 눈을 번뜩이며 변화한 몸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만족스러운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체형을 줄인 폭셀리아로 변했다.
같은 야수계를 먹은 동훈이 형은 이제 갓 피아식별을 했는데 이완해는 자아마저 갖춘 듯 보였다.
최악의 상황이 연이어 닥쳤다.
할아버지를 따라가려 했지만 이미 권능을 써버려 힘에 부쳤다.
"성웅 친구. 갈 수 있겠어요?"
냉철이가 벌어진 어깨 상처에 피를 닦으며 날 걱정했다.
"허억. 비. 빌어먹을. 할아버지 저렇게 혼자 가시면 어떡해."
그때였다. 변태를 끝낸 이완해가 악랄한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하하!"
동훈이 형과는 다르게 말도 했다.
"옐로우 게이트의 아수라 마석이라 그런지 힘이 넘쳐나는군. 크크크."
"······!"
그 순간, 할아버지가 주먹을 뻗어 이완해에게 날렸다.
그러나 폭셀리아로 변한 이완해는 가소롭다는 듯 발길질로 할아버지를 걷어찼다.
"크억!"
할아버지의 가슴팍은 다시 피범벅이 되었다. 폭셀리아에게 당한 상처가 더욱 벌어졌다.
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야! 멈춰!"
"크윽··· 그때 역시 이완해 네 녀석도 성전의식에 있었구나. 그때 어떻게든 추적해서 다 죽여 버렸어야 했거늘···."
"허억··· 허억···."
나 역시 힘이 없고 냉철이도 심각한 부상이다. 모두 더 이상의 전투는 힘들다. 최악의 상황이 닥쳐버린 것이었다.
이완해가 할아버지를 노려보며,
"고태을. 법현. 성전의식 때 너희들만 아니었으면 지금 세계는 알라의 것이 됐거늘···. 그 단죄로!"
한 차례 눈썹을 씰룩인 이완해가,
"고태을! 노망난 네 육체를 갈기갈기 찢어서 먹어주마!"
포효하며 녹전을 쩌렁쩌렁 울렸다. 붉은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이 독사를 연상케 했다.
탓~
흰색의 털을 휘날리며 이완해가 할아버지를 향해 손톱을 매섭게 날렸다.
그때 한 인영(人影)이 솟구치더니,
퍽~
그대로 이완해의 턱을 올려 찼다.
"으윽!"
"동훈이 형!"
- 크륵, 크륵.
맹수의 짙은 울음소리가 녹전을 휘감았다. 이완해는 의외의 일격을 당했음에도 가려운 듯 턱을 긁으며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청와대에서 나간 새끼가 지금 대통령인 내게 화풀이라도 하려는 게냐?"
- 크앙!
동훈이 형이 냅다 달려들었다.
"귀엽네. 귀여워. 어디 한번 놀아볼까?"
두 야수가 정면충돌했다.
나의 창세삼정의 내공을 고스란히 담은 동훈이 형의 무공은 그야말로 막강했다.
파파팍!
그러나 각성한 이완해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속도에서 차이는 확연히 드러났다. 필사적으로 내뻗은 동훈이 형의 어깻죽지를 붙잡더니 잘라버렸다.
콰직!
그의 팔이 잘려 나갔다.
- 크어어엉!
"동훈이 형!"
"동훈 시주!"
사라진 어깨에서 피가 낭자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동훈이 형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연이어 달려들었다.
뎅겅.
- 크어어엉!
남은 팔도 잘려버렸다. 잘린 양팔 어깻죽지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촤아아아아아.
그럼에도 용맹하게 달려드는 동훈이 형의 얼굴을 발로 차버렸다.
콰앙!
허망하게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 순간,
"으아아악!"
이완해의 눈에 하나의 손이 움푹 들어갔다.
저항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은 할아버지가 최후의 힘을 짜내 이완해의 눈을 찔러 버린 것이었다.
"끌끌, 이완해 이 새끼야. 적을 코앞에 두고 방심하면 쓰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할아버지는 이미 일어설 힘조차 없으셨다.
"크아악! 내 눈! 고태을 이 새끼!"
이완해가 눈에 박힌 할아버지의 손가락을 빼내 그대로 꺾었다.
"으억!"
할아버지는 숨 쉬는 것마저 힘들어 하셨지만 여유를 잃지 않았다.
"어리석은 완해야. 조필광이 네게 무슨 약속을 했듯 그건 널 이용하기 위함이란 걸 모르느냐?"
"크하하하! 내가 그걸 모른다고 생각하냐? 이젠 상관없어. 조필광이든 뭐든 내 앞에 거슬리는 건 뭐든지 죽여버린다."
이완해가 할아버지의 목덜미를 잡고 들어 올렸다.
"컥. 컥. 애송이 새끼."
둘 사이 침묵이 감돌았다.
할아버지를 들어 올린 이완해의 손에서 하얀빛이 감돌았다.
"고태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유언은?"
할아버지는 오히려 빙긋 웃었다.
"죽음을 앞두고 웃어?"
할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더니 환하게 웃으셨다.
"하, 할아버지!"
최후의 공력을 쥐어 짜낸 할아버지가 날 향해 신명나게 외쳤다.
"성웅아! 밥 굶지 말고 꼬박꼬박 챙겨 먹어래이!"
"미친 새끼!"
할아버지가 말을 마치자,
이완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손톱에 마기를 실었다.
"안 돼!"
그 손톱은 할아버지의 가슴으로 향했다.
콰직!
"커··· 커억."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이완해가 할아버지의 심장을 꿰뚫었다.
아니야. 악몽이야.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할아버지!"
"형님!"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하··· 할아버지···."
쏜살같이 달려가 할아버지를 껴안았다. 정신병자처럼 중얼거렸다.
"할아버지. 장난치지 말고 일어나요. 네? 저랑 같이 장난도 치고 송현사 식솔들이랑 오래오래 살기로 했잖아요. 이러면 안 돼요. 응?"
할아버지는 아무리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체온이 차가워지는 게 느껴졌다.
끔찍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으아아악!"
옆에 팔짱을 끼며 여유 부리던 이완해가 비아냥거렸다.
"뭘 그리 울어대냐? 네놈도 곧 할애비를 만나게 될 것을. 크크크"
"으아아아악! 아아악!"
이완해가 역겹고도 추한 붉은 혀를 날름거렸다.
나의 분노에 창세삼정이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나의 낯빛은 흑백으로 물들었다.
두근. 두근.
내 마음이 내 것 같지가 않았다.
[어서 오너라. 인간이여.]
천마신교의 천유희도 싸늘한 음성을 토했다.
선과 악의 구별이 모호해진다.
이성과 본능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이 뚝 하고 끊겼다. 잔인한 나의 이중성이 개안(開眼)했다.
창세삼정의 어두운 권능(權能).
카니발리즘(cannibalism).
[끼악! 안 돼!]
무의식이 창세삼정의 내공을 강제로 끌어왔다. 마기(魔氣)가 존재하는 모든 쓰레기들의 씨를 말려 버릴 것이다.
뼛속까지! 지옥까지!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그러기 위해선 기꺼이 악마가 될 것이다.
"눈 깔아! 이 새끼야!"
폭풍처럼 쏟아지는 마기에 위협을 느낀 이완해가 내게 손톱을 찔러왔다.
공격을 살짝 피한 뒤 뾰족하게 돋아난 치아로 이완해의 손톱을 물어뜯었다.
우지끈!
"크어억!"
그는 뒤로 급히 물러섰다.
난 물어뜯은 이완해의 손톱을 질겅질겅 씹어 먹었다.
오드득. 오드득.
성큼 이완해의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가··· 감히 네 따위가 어찌!"
난 초점이 없는 눈으로 뇌까렸다.
"오래전부터 할아버지는 게이트의 마물과 싸우셨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면서 말이지."
이완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한쪽 손으로 전기 구체를 쏘았다.
지지지직!
내 몸에서 은은하게 감돌던 빛이 날아온 구체를 이완해 쪽으로 그대로 튕겨버렸다.
팅~
"바보같이 말이야."
콰지지직!
"크어어억!"
이완해는 본인의 구체를 맞자 온몸이 찢겨진 것마냥 고통스러워 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비명 지르지 마. 맛이 안 나잖아."
전기충격에 경기를 일으키는 이완해의 어깻죽지를 붙잡고 팔을 마른오징어 찢어 먹듯 쭉 뜯어 버렸다.
촤악~
산속에 피가 가득 흘러내렸다.
"크아아아아! 아··· 알라시여! 도와주소서!"
난 혼자 중얼거렸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오셨는데 돌아온 보상이 죽음이라니. 정부도 세상도 어찌 이리 야박할까? 어찌 하나같이 할아버지의 노고를 몰라줄까?"
이완해의 골반을 발바닥으로 짓눌렀다.
"으윽! 뭐하는 짓이냐!"
허벅지를 붙잡고 양다리를 그대로 뽑아 버렸다.
"크어어억! 어억! 아악!"
이완해의 피가 주변을 붉게 물들였다.
"아아악!"
"그래서 내가 대신 복수하는 거야. 근데 너 비명을 왜 이렇게 시끄럽게 지르니?"
이완해가 꼴 보기 싫었다.
역겨웠다. 세상도 추할 정도로 역겨웠다.
할아버지의 유언이 떠올랐다.
밥이나 챙겨 먹으라니···.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챙겨 먹을 거야. 오늘 식사는 너로 하자."
징징거리는 이완해의 조동아리를 나의 입으로 뜯어버렸다.
이빨과 혓바닥까지 씹어먹었다.
콰직. 우드득!
"질그덩. 질그덩. 쩝쩝."
"꼬오! 꼬오!"
혀까지 먹혀 버린 이완해는 목청으로 어떻게든 생존의 소리를 내려 했다.
"으윽."
잔인한 나의 행동에 승려들 모두 고개를 돌렸다.
사지가 절단되어 이미 움직일 수 없는 이완해의 눈빛은 공포로 물들었다.
"내 목소리를 듣는 너의 귀 짝도 역겹구나."
귀도 물어뜯었다.
우직.
"냠냠. 쩝쩝."
"으읍! 으읍!"
급기야 이완해는 제발 살려달라며 구걸하는 눈빛을 보냈다.
한쪽만 남은 이완해의 눈빛을 바라본 나는,
"저 썩어빠진 눈알도 더럽고 추잡하구나."
눈알을 이빨로 뜯어 먹었다. 눈알의 유리체와 연결된 시각 신경 줄기가 치즈처럼 죽 늘어났다.
"잔대가리 굴리는 너의 머리도 싫어."
이빨로 머리를 파내어 뇌수까지 뜯어 먹었다. 알탕 곤이같은 것이 죽죽 밖으로 흘러내렸다.
뼈까지 먹어 치웠다.
마침내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이완해는 죽었다.
그러나 나의 인육(人肉)은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마기가 흔적이 사라질 때까지 먹고! 모조리 먹어 줄 것이다!
나의 영혼이 사라지고 있었다.
데굴데굴.
파먹은 시체에서 아수라 마석이 보였다.
난 포효했다.
- 크아아아!
반혼검을 집어 들었다.
반혼검. 세 번째 권능.
마석흡공(魔石吸功).
콰직!
반혼검으로 아수라 마석을 찍었다. 반혼검이 검게 변하더니 아수라 마석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폭셀리아의 능력과 힘이 고스란히 나의 것이 되었다.
- 크아아아아!
내가 낸 소리는 인간의 소리가 아니라 끔찍한 괴물의 소리였다.
'고성웅 네 이놈!'
별안간 환청이 들렸다.
할아버지다. 이제 그만하라는 말 같았다.
카니발리즘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리니 모든 힘이 쏙 빠지기 시작했다.
눈이 점차 감겼다. 흐릿해져 가는 눈동자 사이사이 법현 스님, 냉철, 엘리 등 모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게 달려왔다.
눈을 감았다.
* * *
철컹! 철컹! 철컹!
기계식 철문이 일제히 열렸다.
"8사동 일조 점호!"
철문 방을 나와 복도에 섰다. 주위엔 나랑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일렬로 늘어섰다.
하품을 하거나 욕지거리를 토해내거나 바지에 손을 넣어 벅벅 긁는 가지각색의 사람들이었다.
"31번 방 특이사항?"
"갱생! 이상 없습니다."
허리춤에 진압봉을 찬 군청색의 7급 교도관이 우리를 예의주시하며 하나하나 노트에 끄적였다.
"32번 방?"
"보시다시피?"
한 죄수가 너스레를 떨며 답했다.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난 폭주를 하고 반년이나 잠들어 있었다. 남은 1년 반은 갇혀 살게 되었다.
22살이 되었다.
좌측 어깨 견장에 무궁화 1개를 단 교도관이 말했다.
"어이. 1013번."
내 죄수 번호이다.
교도관이 아침부터 시비를 건다.
"요즘 차세대 직업 1순위가 헌터라는데 한때 최고의 헌터께서 감방에서 지내다니 참 안 됐어? 그지?"
"푸하하~"
내 옆의 죄수들이 비웃으며 맞장구쳤다.
"그것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형수인데 말이죠. 대통령을 먹어 치우다니 대단하죠? 캬하하하!"
대통령 시해범이란 죄명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안양교도소에 수감 됐다. 양쪽 가슴팍엔 빨간 번호가 새겨져 있다.
흰색은 일반 과실범, 노란색은 중범죄 및 악질범. 그리고 빨간색은 사형수.
옆의 죄수가 정색을 했다.
"뭔 말씀을 그리 서운하게 합니까? 우리 성웅이야 말로 대한민국의 참된 영웅입니다. 그 썩어 빠진 이완해를 물어뜯어 죽였잖습니까!"
난 대통령 살해범으로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어허! 세계 망신도 아니고 대통령을 그냥 죽인 것도 아니고 물어뜯어 먹었잖아! 아무리 역적이라도 최소한의 국가 위상이 있지! 네가 그러니까 빵쟁이 생활을 못 면하는 거야."
세계의 명암이 엇갈렸다.
"이완해 그 병신 새끼는 그렇게 죽어 마땅해! 성웅이가 아니었으면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겠어?"
나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 부류로 극명하게 갈랐다.
대통령을 먹은 사이코패스 살인범.
또는 세상을 구한 영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