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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인데 내공이 좀 많네요-44화 (44/200)

44화. 사형 집행식

"뭐? 대통령을 죽인 새끼를 감싸고 돌아? 아주 미친 새끼구만."

"뭐? 씨부럴. X밥 찌끄래기 새끼가 아가리가 찢겨야 정신을 차리나."

교도소답게 이른 아침 조회 시간부터 훈훈하다.

보다 못한 교도관이 진압봉으로 철문을 쾅쾅 두들겼다.

"그만해! 추잡한 빵쟁이 새끼들아! 아침부터 지랄 염병들 하지 말고 아가리 닥쳐!"

사실 난 살인범도 영웅도 그 어느 것도 아니다. 그저 힘이 없어 할아버지를 눈앞에서 돌아가시게 만든 쳐 죽일 놈이다.

"당장 징벌방에 들어가고 싶은 새끼 거수해! 벽에 똥칠하도록 눌러살게 해줄 테니까!"

"……."

징벌방이란 한 마디에 시끄러운 죄수들이 단박에 침묵을 선포했다.

천하의 악질범도 꼼짝 못 하게 만드는 징벌방. 출역도 못 가고 햇빛도 없는 1평 남짓한 방에 갇혀 지내야 한다. 분위기가 잠잠해지자 교도관이 자신의 권력에 자부심을 느끼며,

"별것도 아닌 새끼들이 아침부터 지랄들 떨고 있어. 아침 식사하고 출역 준비해."

오늘 아침도 시끌벅적하게 점호를 마쳤다. 플라스틱 식판을 꺼냈다. 쌀밥에 콩나물국과 제육볶음, 김치, 마른 멸치 1식 3찬이 나왔다. 맛은 형편없었다.

"니미럴. 죄수는 사람 새끼도 아냐? 허구한 날 이런 썩어빠진 고기만 주고 있어."

나름 먹음직한 반찬임에도 꼭 한 마디씩 불평불만을 늘어놨다.

다 같이 모여 먹으니 송현사 식솔들이랑 수다를 떨던 때가 떠올랐다.

이제 그 순간은 오지 않는다. 난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형수이기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겠다던 다짐을 지키지 못했다.

밥이 목젖 안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감방에서 음식을 남기면 찍히기 때문에 밥에 물을 탔다.

옆에서 식사를 하던 같은 방 죄수가 내게 기운을 북돋아 줬다.

"성웅아. 입맛이 없어?"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고~ 며칠 잘 먹더니 힘내서 많이 좀 먹어. 아침 점호 때문에 그래? 그 새끼들 신경 쓰지 마. 그래도 네 덕분에 악질 사형수들이 벌벌 떨잖아?"

대한민국은 1998년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통령 시해 사건이 있고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에 앉자마자 사형문을 개방했다.

국내를 비롯해 국외에서도 사상 초유의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이미 30명의 악랄한 범죄자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이게 다 네 덕분이야."

변호사 및 인권 단체를 비롯한 모든 사형반대 집행자들을 무시하며 사형을 강행했다.

몇 달 후, 욕을 퍼붓던 국내외 언론들은 찬사를 보냈다.

바로 대한민국 범죄율이 절반으로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전임 국무총리에 대한 신임은 높아져 갔다.

웃기게도 이 모든 사형집행을 펼친 이유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지지율을 올리고자 한 것이 아니었으며 악질범을 죽여 세금을 조금이라도 깎으려는 의도도 아니다.

바로 나를 죽이기 위해서이다.

나라를 구한 영웅이라 떠들어봤자 정부 입장에선 어디까지나 나란 존재는 대통령 시해범이다.

사형을 실질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국가가 다른 죄수들도 아닌 현직 대통령 시해범을 살려둔다?

말도 안 된다.

즉각 죽여야 한다.

나를 죽여야 국가의 위상이 산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최대한 군말 없이 날 제거하려면 악질범들의 사형 집행부터 실시하는 게 나름의 복안(腹案)이었다.

세계를 구한 타이틀을 가진 나를 곧장 사형을 시킬 순 없었다.

"1013번 접견."

구멍 뚫린 유리창 너머 아빠, 엄마는 날 보자마자 한참이나 펑펑 울기만 했다. 나윤이는 오지 않았다. 난 그저 멍하게 있다가 딱 한 마디만 했다.

"할아버지는 잘 묻어줬어?"

아빠는 오열하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다행이다. 됐다.

그리고 난 모든 내공을 잃어버렸다. 강제로 창세삼정의 힘을 얻어 쓴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단전이 가루가 되었다. 그저 평범한 사형수다.

송현사를 비롯한 산은 출입 금지 구역이 되었다. 바로 반혼검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잔디 바닥에 꽂힌 반혼검 일대가 남극의 얼음처럼 꽁꽁 얼어붙어 버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송현사는 무사했다.

"아~ 나도 좋은 마석 구해서 헌터 길드나 들어갔으면 좋겠다."

"에끼! 공부해서 헌터 협회에 들어가는 게 최고지!"

"아서라. 아서. 요즘 같은 시대는 게이트 때문에 감방이 더 안전하다고 느껴진다니까?"

"아하하! 네 말이 맞네."

세상은 헌터와 게이트 위주로 급격하게 변했다. 조필광이 백마침으로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게이트가 연이어 개방됐다.

길드가 생겨나고 마석은 천정부지의 금값으로 팔렸다. 몬스터들의 뼈는 미스릴 및 무기로, 가죽은 의류 및 방어구로, 살덩이는 고기로 고가에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게이트에서 나오는 자원은 뭐 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들도 나와는 일절 관계없는 일이다.

왜냐면.

교도소장이 불렀다. 그는 차마 말하기 버거운 듯 한참을 소장실 안에서 서성였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이제 시작하는 겁니까?"

교도소장이 침묵을 지키다가,

"1013번. 고성웅. 9월 29일부로 사형 집행이 결정되었다."

죽을 날이 정해졌기 때문이다.

일주일 남았나?

정부는 내 몸에 곰팡이 피기만을 기다리지 않았다.

드디어 칼을 뽑았다.

사형의 발단은 엊그제 뉴스를 통해서였다. 각성한 사람이 서울 도심을 활보하고 다니며 민간인 세 명을 죽였다. 정부에선 기다렸다는 듯 힘을 불법 남용한 대가의 본보기로 헌터를 사형시키자는 여론을 조성했다.

그래야 헌터들이 민간인을 함부로 해코지 못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속전속결로 나의 사형 날짜가 정해졌다.

난 교도소장의 말에 담담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뭐··· 네가 이제 곧 죽는다고!"

엉뚱한 대답에 교도소장이 놀랐다. 기뻐할 필요도 슬퍼할 필요도 없다. 올 게 왔을 뿐이다.

영웅이든 역적이든 국가의 수장을 죽인 놈을 씻어내야 국가의 위상이 바로 잡힌다.

그간 나를 죽이기 위해 해묵은 먼지처럼 놔두었던 사형수들을 차례대로 집행했다. 그러다 이제 내 차례가 온 것이다.

"돌아가 보겠습니다."

발걸음을 돌리자 교도관 두 명이 나의 좌우로 달라붙었다.

정부는 여론의 동조를 얻기 위해 2년이라는 세월을 뜸 들였다. 나를 죽이기 위해 칼을 갈았다. 이제 그 날카로운 칼을 꺼내 벨 때가 온 것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사형 집행일이 확정되자마자 나의 모든 면회를 금지시켰다.

독방에 감금되었다.

사형 집행 방식은 교수형.

목을 매달아 죽인다. 질식사보다는 몸무게 충격에 목뼈가 부러져 죽는 경우가 태반이다.

가부좌를 틀어 독방에서 운기조식을 했다. 힘을 모아 탈옥하려는 게 아니다. 모든 걸 내려놓은 마음의 평안을 찾고자 했다. 사형을 앞둔 내게 남은 건 없다.

호흡에 몰입했다.

[끼이···.]

창세삼정이 2년 만에 옹알이를 했다. 구결을 읊으며 따라 시켰다. 구결을 읊자 파괴된 단전의 파편들이 꿈틀거렸다.

하단전부터 중·상단전까지 다시금 하나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

전신이 찢어질 듯 고통이 들이닥쳤지만, 그대로 받아들였다.

공(空)의 영역에 순수한 기(氣)가 퍼졌다. 모든 자연에 깃든 힘들이 단전에 모여 대주천을 돌았다.

[창세진경(創世眞經).]

동방 구대문파의 무인(武人)들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하나로 힘을 합쳤다. 각 문파의 내공심법을 집대성해서 만든 구결을 읊어 창세삼정에게 전달했다.

선한 자만 먹을 수 있도록, 훗날 언젠가 다시 열릴 게이트를 막기 위한 위대한 유산이었다.

그러나 이제 곧 죽을 내게는 부질없었다.

* * *

오늘은 9월 29일.

나의 사형이 집행되는 날이다.

눈을 뜨자 교도관이 처음으로 건넨 말은,

"1013번.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멧돼지 고기요."

산에 와서 할아버지랑 처음 먹은 음식이었다. 그때 내가 서울로 돌아갈까 싶어 얼마나 노심초사하셨을까? 다시금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눈앞에 멧돼지 고기가 놓이자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기리며 한 입 한 입 꼭꼭 씹어먹었다.

한동안 우물거리다 마지막 숟가락을 놓았다.

"이제 가자."

죽으러.

밧줄 앞에 섰다.

"성웅아! 아이고… 성웅아! 흑흑!"

멀찍이 유리창 너머 부모님이 오열을 했다. 아빠는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금슬이 보기 좋다.

내가 없더라도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 동생 나윤이랑 새로 태어난 나은이 모두….

[네. 여기는 세기의 악마 또는 영웅으로 추앙받는 대통령 시해범. 고성웅 사형 집행 현장입니다.]

교도소 밖에 취재원과 인권운동가들의 열띤 소리가 들렸다. 대개는 빗발쳐 항의했다.

사형식장에는 법현 스님도 오셨다. 교회 신부님이 성호를 그으며 기도를 했고, 법무부 장관과 교정본부장은 팔짱을 끼고 침묵을 지켰다.

하얀 가운의 의사도 보였다. 내가 죽으면 사망 선고를 내려줄 사람이 필요하겠지.

오래된 목재 의자에 앉자 삐걱 소리가 났다.

법무부 장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옆의 남자가 일어나 선고했다.

"이름 고성웅. 생년월일 2005년 8월 15일. 죄명 고(故) 이완해 전 대통령 살인으로 2025년 9월 29일부로 사형을 집행한다."

침묵을 지키던 법무부 장관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 있습니까?"

부모님을 향해 희미하게 웃었다.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안 돼! 성웅아! 성웅아!"

교도관들이 하얀 면포를 내 얼굴에 뒤집어씌웠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교도관들이 밧줄로 몸과 다리를 옴짝달싹 못 하게 묶었다.

목덜미에 밧줄이 느껴진 순간, 눈을 감고 창세진경을 읊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교도소장이 외쳤다.

"사형! 집행!"

교도관들이 일제히 복창했다.

"사형!"

"집행!"

교도관 세 명이 동시에 버튼을 누르자 내 발밑이 쑥 꺼졌다.

힘없이 밑으로 떨어졌다.

안녕. 이 세상이여.

콰직!

목뼈가 부러졌나 보다. 의식이 흐려졌다.

삶을 포기하고 모든 걸 내려놨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그간 살아온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때였다.

웨에에에엥~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비상 방송이 송출됐다.

[교도관 및 재소자 여러분들께 긴급 상황 알려드립니다. 그린 게이트 발생. 그린 게이트 발생.]

"뭐 게이트?!"

장내는 혼란스러워졌다. 법무부 장관이 붉게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비… 빌어먹을 하필 이때 게이트라니? 그린 게이트는 또 뭐야!"

교정본부장도 어처구니없다는 듯 대꾸했다.

"그린 게이트는 또 처음 들어보는데요. 일단 끌어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법무부 장관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뭘 끌어올려! 절대 안 돼! 우리가 저 새끼를 죽이기 위해서 몇 명이나 죽였는데!"

"장관님. 왜 고성웅을 죽이는지 잊으셨습니까? 국민의 여론이 얼마나 중요한 데요. 그린 게이트가 교도소를 때려 부수는 데도 사형을 집행하면 법무부는 사람 못 죽여 안달 난 미친 집단이라며 돌아설 겁니다."

교정본부장의 설득에 법무부 장관 얼굴이 빨갛게 부풀어 오르며,

"말단 간수 새끼가 어디다 대고 훈수질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정본부장은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장관님. 무엇보다 게이트 발생과 맞물리는 와중이라면 설령 고성웅을 죽인다 한들 이슈는 초유의 그린 게이트 쪽으로 집중될 것입니다. 어차피 고성웅은 게이트의 마물을 처치하고 난 뒤에 죽여도 늦지 않습니다."

"으음."

그때 법현 스님이 끼어들었다.

"시주분들. 죄수를 죽이든 살리든 일단 저 마물을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린 게이트는 대형 길드라 해도 막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뭐?"

"기멜(Gimel)입니다. 망자의 서에는 구울이 동료 십만 마리를 잡아먹으면 진화한다는 끔찍한 종이지요."

구울. 내가 산속에서 할아버지랑 처음 싸운 괴물이다. 세계는 2년 동안 레드, 오렌지, 옐로우 게이트만 반복해서 출연하였다. 그러다가 나의 사형 집행 날인 오늘 한 차원 높은 그린 게이트가 출몰했다.

타이밍도 참 공교롭다.

"으아악!"

"크억!"

오드득!

"사… 살려줘!"

교도소 밖에서 헌터들 살점 뜯기는 소리가 생생히 울려 퍼졌다.

"법무부 장관님!"

고뇌하던 법무부 장관이 결심한 듯 외쳤다.

"당장 밧줄 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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