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망령계 서든 게이트(1)
아무에게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이 어디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서울 성소병원이라고 답한다.
개중에서도 세계적인 명성이 자자한 병동을 물으면 십중십구 헌터 병동이라고 한다.
성소병원 헌터 병동은 세계에서 알아주는 흉부, 내‧외과 의사들마저도 군침을 흘리는 곳이다.
함께 근무하는 간호사들 역시 두말할 필요 없다.
일당백의 최고급 인력들이다.
헌터 병동에서도 VIP 근무는 최강 에이스들의 집합체다. 과장 좀 보태면 하늘이 점 찍어줘도 못 온다는 풍문이 있다.
지성인들의 집합체인 VIP 탕비실에 귀를 기울였다.
"윤 주임. 뭐해?"
현재 시각 아침 7시.
윤은지 간호사가 나이트(야간) 근무를 마치고 퇴근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아침 듀티(Duty) 인계를 마치고 탕비실에 커피를 마시러 왔다.
"어머~ 최 선생님. 너무 피곤해서 퇴근하다가 기절할 것 같아 커피 한 잔 마시고 있었어요. 으하암~"
고도의 인력이 집합된 곳에서도 질척대는 남자는 존재했다.
그것도 윤 간호사라면 더더욱 말이다. 질척대는 녀석은 최익현 헌터 외과 의사이자 나의 주치의이다.
지성인이고 뭐고 남녀가 한군데 모이면 똑같다.
"어헛! 이것도 우연인가? 마침 나도 당직 끝나고 퇴근인데 집에 바래다줄게."
닥터 최가 드라이브 신청을 한다.
"저희 집과 반대 방향 아니세요?"
그녀가 멍군을 놨다.
하지만 최고의 헌터 외과는 물러나질 않는다.
"응? 아하하! 마침 나도 거기 볼 일이 있어서 말이야. 가는 길에 해장국 한 그릇 콜?"
지치지도 않고 수작질이다. 그러한 집념 덕분에 VIP 병동에 왔으리라.
그런데 해장국이 뭐냐? 당신은 메뉴 선정부터 글렀어.
구슬픈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죄송해서 어떡하죠? 전 지금 신촌에 친구 만나기로 해서요. 방향이 다르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먼저 퇴근할게요."
"아앗! 윤 주임!"
그녀는 임기응변도 탁월하다. 치근덕거리는 양반이 한둘이 아니다. 의사부터 시작해서 보호자, 방문객, 조무사 등 연일 그녀와 밥 한 끼 먹으려고 갓 잡은 활어처럼 팔딱거린다.
얼굴 하나로 인생 팔자 펴게 생겼다. 비록 식물인간의 처지라 보지는 못했으나 사내들의 미쳐 날뛰는 심장박동수로 상당한 미인임을 추정할 수 있다.
킁킁.
병실 입구로부터 풍겨온 향기로운 냄새가 코끝에 스며들었다. 싱그러운 샤넬 샹스 오 땅드르 향수다. 스툴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들린다. 실크 재질의 블라우스가 내 손등을 간질였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결이 내 손을 매만졌다.
[꺄하~]
창세삼정이 좋아 죽는다. 스킨십 하자마자 창세삼정이 그녀에게 공력을 나눠줬다.
'임마! 나한테나 좀 줘!'
[꺄아아! 싫어!]
창세삼정이 여자 하나 때문에 미쳐간다.
송현사에 주화입마 걸린 동훈이 형한테는 쌀 한 톨의 내공도 아깝다며 생 발악 하던 녀석이 그녀에게는 심장이라도 기꺼이 바칠 기세다.
명백한 성차별이다.
동방의 무인들이 지하무덤에서 땅을 치고 운다.
은지 누나의 긴 생머리가 내 코에 닿았다. 크읏. 취한다. 앗. 나마저 이러면 안 되지. 그녀가 내 귀에 대고 몰래 속삭였다. 내가 듣고 맡고 느낀다는 걸 알까?
"성웅 씨. 오늘은 레드 게이트야. 이번에도 무사히 다녀올 수 있겠지?"
그녀의 또 다른 직업은 헌터.
놀랍게도 상위 10% 안에 드는 B급 헌터다. 은지 누나에게 혼을 팔아버린 창세삼정의 작품이다.
"예전부터 성웅 씨 손만 잡으면 힘이 샘솟는 것 같아."
당연하지. 이게 어디 보통 영약인가? 몇 년 전, 헌터 협회에선 그녀의 등급을 최하위인 F급으로 판정했었다.
가녀린 몸에 힘도 없고 레이드에서 짐짝 취급만 받았다. 막강한 외모도 목숨을 위협하는 괴물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팀원들에게 하릴없이 무임승차나 한다며 구박받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야간 근무 때 내 손을 버럭 잡더니 울면서 신세 한탄을 했다. 창세삼정이 환장하더니 그때부터 조금씩 공력을 나눠줬다.
그 후, 매년 등급을 갱신했다.
F에서 바로 D급으로 다음 해에는 B급 자격증을 거머쥐었다. 창세삼정 이 녀석이 조만간 날 버리고 그녀에게 갈아탈 것 같다.
"누가 보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악당들 혼내주는 배트맨 같아 보이겠다. 그치?"
아냐. 은지 누나가 훨씬 나아.
배트맨은 CEO인데 회사 경영 따윈 관심도 없거든. 허구한 날 싸움하러 다니기 바빠. 근데 누난 둘 다 잘하잖아.
"앗! 레이드 늦겠다. 성웅 씨. 나 다녀 올게. 응원해줘. 파이팅!"
은지 누나 파이팅!
[꺄! 파이팅!]
넌 조용히 해. 임마.
지각이라도 하면 얄짤없기에 뛰쳐나갔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시대가 도래했다. 비록 레드, 오렌지에 한정이지만 게이트가 몇 시 몇 분에 열리는 지까지 알 수 있다. 현재 폭셀리아가 출몰한 옐로우도 곧 예보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비교적 쉬운 레이드는 인터넷으로 사전신청까지 받는다.
산속에서 밥 먹다가도 몽둥이 들고 뛰어다니기 바빴던 송현사를 떠올리면 새삼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 계속 말을 하자면 헌터 병동 VIP 간호사는 업계가 아니라 전문직을 통틀어 탑 티어다.
억대 연봉을 쓸어 담는 직장임에도 그녀는 악착같이 두 탕을 뛴다.
처음엔 학자금 대출과 빚을 갚느라 마지 못해 헌터를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이유로 일을 한다. 이렇게 은지 누나처럼 반듯하고 악착같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 반면,
"제발 식물인간! 식물인간이란 소리 좀 안 하면 안 돼? 우리 성웅이 듣고 있다고!"
나 때문에 매일 다투는 우리 가족도 있다. 식물인간이란 말에 질색팔색하시는 엄마의 대꾸가 VIP 병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은지 누나도 퇴근한 마당에 이 싸움을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듣긴 뭘 들어! 3년째 식물인간인 녀석이.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마저 하자. 태랑이 사라지고 성웅이 마저 이렇게 된 지경에 너라도 네 인생을 살아야 하잖아. 서진아!"
"내 인생? 내 인생은 고성웅! 얘 하나뿐이야."
"나윤이랑 나은이는 뭔 죄인데?"
"……."
내 동생 나윤이와 나은이를 들먹이자 엄마는 꿀 먹은 벙어리마냥 아무 말도 못 했다.
외삼촌이 말을 이었다.
"조금 전에 너희 집 근처 복덕방에 다녀왔는데, 너 지금 살고 있는 방도 내놨단다. 서진아. 세상천지에 보증금 200만 원밖에 안 하는 반지하에서 쫓겨난다는 게 말이 되니?"
금시초문이다. 그렇게 가난하셨나요? 내일이라도 길바닥에 나앉을 처지다.
"집주인이 이번 주까지 밀린 월세 내래. 안 내면 짐 밖으로 뺀대."
"걱정 마. 내, 낼 거야…."
거짓말이다. 지금 엄마는 재정적으로 파산 직전이다.
아니 파산이다.
이쯤 되니 외삼촌이 야박한 게 아니라, 삼 년씩이나 지극정성으로 병수발 든 엄마가 갸륵하신 거다. 처음엔 외삼촌도 내게 수시로 좋은 말을 듬뿍 해주셨다.
그러나 병 앞에 장사 없었다.
씁쓸하다. 가난이라는 거.
할아버지랑 살 때는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 닥쳤다.
그때였다.
썩어 문드러진 악취가 후각을 마비시킬 듯 퍼져왔다. 죽은 시체의 냄새가 콧잔등에 떨려왔다. 그와 동시에 병동 내 사람들의 비명이 연달아 터졌다.
"사람 살려!"
"꺄아아아아!"
"오… 오빠. 게이트 아냐?"
외삼촌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냐. 게이트는 방송으로 미리 알려주잖아. 있어 봐. 지진이겠지."
외삼촌은 휴대폰을 열어 지진 재난 문자가 왔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런 달콤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건 지진이 아니기 때문이다. 떼거지의 괴물들이 지축을 흔들며 무섭게 달려들고 있다.
- 쿵! 쿵쿵! 쿵쿵쿵…!
- 빵빵! 빵!
"차 빼! 이 새끼야!"
"네가 빼!"
창밖 도로 사거리에 자동차 경적 음과 교통사고가 느닷없이 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최소 몇십 대의 연쇄 충돌사고다. 대규모 인원이 갑자기 차량 페달을 밟아야 할 상황이 닥쳤기 때문이다.
그럴 이유는 단 하나.
"헙!"
외삼촌의 걸음 소리가 창문으로 향했다. 구더기 들끓는 악취가 지상을 점령하고 있다.
나는 코를 킁킁거리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 마리… 다섯 마리… 열 마리… 제길. 훨씬 더 넘는다.'
"오빠. 무슨 일이야?"
"서, 서진아… 어서 짐 챙겨. 당장!"
뭔가를 본 외삼촌이 다급히 말했다.
"왜! 왜! 뭔데!"
그때 병원에서 안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긴급 상황! 긴급 상황! 병원 내 시민들께 대피 안내드립니다. 저희 서울 성소병원 후문 주차장에 서든 게이트(Sudden gate)가 발생했습니다. 야수 좀비(zombie)들이 병원에 침략 중이니 지정된 장소로 대피하여 주시길 바라겠… 아아악!]
방송은 그걸로 끝이었다.
- 꾸우에엑….
- 와그작. 와그작.
방송 마이크를 통해 안내원의 살점이 뜯겨나가는 소리가 병원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전파되었다.
"으아아악! 도망쳐!"
"꺄야아아!"
대규모 패닉 상태.
망령(亡靈) 계열의 좀비다.
서든 게이트.
서든 게이트는 예측할 수 없이 느닷없이 출몰하고 어떤 마물이 나올지 알 수 없다.
병원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쨍그랑~ 와장창~
1층 입구 유리창이 박살 나는 소리가 다발적으로 들리며 죽은 인간의 모습을 한 좀비들이 병원 내 의사와 환자들을 잡아먹고 물어뜯기 시작했다.
사냥의 시간이 도래했다.
마흔아홉… 쉰. 총 오십 마리!
병원 내 모든 시스템이 마비됐다. 다급해진 응급 환자는 의사를 붙잡고 살려달라며 애걸복걸했지만 야멸차게 뿌리쳤다.
"의사 선생님! 저 좀 살려주세요. 어딜 가는 거야! 야! 살려달라고. 이 X새끼야!"
필사적으로 살기 위한 행진이 펼쳐졌다. 환자가 탄 휠체어를 넘어뜨리고서 밖으로 나가려는 간호사, 다리에 깁스한 환자의 목발을 밀친 채 살려는 보호자 등 삽시간에 추악한 인간 본성의 군상을 보여줬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의학 수술의 금자탑인 성소병원에 인간으로서의 품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가하게 이럴 시간이 없다.
나도 어떻게든 움직이고 싶어서 발버둥을 쳤으나 요지부동이다. 식물인간의 처지라 개죽음당하기 딱 좋다.
외삼촌이 말했다.
"이서진. 어서 짐 챙기라니까? 뭘 꾸물대고 있어?"
외삼촌. 저는요?
"우리 성웅이는 어떻게 하고?"
순간, 담배와 땀 냄새가 내 코를 기습적으로 덮쳐왔다.
"으쌰! 내가 업고 갈 테니까 걱정 말고! 어서!"
삼촌이 날 업었다. 호오~ 미우나 고우나 가족이라는 건가?
새삼 외삼촌이 멋있게 보였다.
- 꾸웨웩~
- 끼으아아~
우장창창! 콰당!
병원 내 진료 장비들이 대책 없이 부서져 나갔다. 좀비의 시선에 포착된 인간들은 단박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것도 잔인하게 말이다. 살갗이 벗겨지고 갈비뼈가 뜯겨나가며 내장까지 파 먹히는, 인간의 가냘픈 죽음의 소리가 귓가에 소용돌이처럼 몰아쳤다.
"꺄악!"
"여보세요? 헌터는 언제쯤 온답니까? 씨X 당장 쳐 보내라고!"
"저. 저리 가! 이 못생긴 괴물아. 으어엉! 으악!"
와드득!
아비규환(阿鼻叫喚).
와중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이토록 비참하게 느껴질 수 없다. 비명의 메아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악취가 심해진다. 가까이 오고 있다. 느낌이 싸해진다.
외삼촌 서둘러요!
내가 현재 입원한 곳은 7층.
내려갈 것인가 올라갈 것인가?
이걸 고민하는 순간부터 죽은 목숨이다. 비상계단으로 옥상까지 올라가서 문을 잠가야 한다. 그래야 헌터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때였다.
"이 아줌마야! 비켜! 비키라고!"
쿵!
"꺄악!"
엄마가 복도 벽에 부딪혔다.
난장판이 된 병동에 누군가 엄마를 밀쳤다.
많이 듣던 목소린데…?
아! 은지 누나한테 치근덕거리던 최익현 주치의다. 그의 뒤통수에 대고 외삼촌이 욕설을 퍼부었다.
"야이! 새끼야! 거기 멈춰!"
"아흐윽…."
엄마는 넘어지신 후 고통에 신음했다.
"이서진! 이서진! 괜찮아?"
"아으윽! 오, 오빠… 나 다리가 말을 안 들어."
"……!"
좀비의 울음과 인간이 육편으로 되어가는 소리는 조금 더, 그리고 선명하게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