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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인데 내공이 좀 많네요-58화 (58/200)

58화. 병원 전투(1)

"크아아아!"

곰 베스(Beth)로 변한 김명일이 막강한 화력 펀치를 연달아 날렸다.

콰앙! 콰앙! 콰앙!

쨍그랑~ 콰지직!

병실 내 의료 집기들이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꺄아악! 괴. 괴물이다!"

"경찰! 경찰에 신고해 어서!"

"대체 무슨 일이! 당장 환자들 대피시켜!"

병원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백곰으로 변한 매서운 공세에 이리야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서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새.끼.가."

쾅! 콰앙!

온갖 집기를 매서운 손톱으로 작살 내며 뛰쳐오는, 집채만 한 김명일의 공격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이리야 그녀 본인도 알고 있다.

김명일의 손톱을 어설프게 막으려 들었다간 본인의 몸은 종이 쪼가리처럼 찢겨 나갈 거라는 걸 말이다.

전투에 이골이 난 김명일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크아아아!"

발바닥에만 기를 실어 앞으로 스프링마냥 튕겨 나갔다.

이리야의 흰자위가 희번덕 떠졌다. 느닷없이 곰의 체구가 벌처럼 앞으로 쏘아져 오니 미처 대응을 못 했다.

덥석!

"으윽!"

"크르르."

짙은 야수의 음성을 토한 김명일이 이리야의 안면을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크르르. 재밌는 걸 보여주지."

김명일이 이리야의 머리통을 붙잡고 그대로 창문으로 달려가더니 유리를 깨부수고 뛰어내렸다.

쨍그라앙~

의료진들이 경악했다.

"위험해! 여긴 7층이라고요!"

"꺄아악!"

허공에 잠시 비행한 두 사람은 이내 바닥으로 수직 추락했다.

이대로면 십간령인 이리야는 바닥에 착지하는 즉시 두개골이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날 것이다.

피슈웅~

삽시간에 이리야의 머리통이 주차장 아스팔트에 박제되기 직전이었다.

"크르르. 네년을 떡으로 만들어 버리고 조필광마저 죽여주마."

위기의 와중에 이리야가 웃고 있었다.

"웃어?"

"애.송.이."

이리야의 붉은 머리카락이 하염없이 길어지더니,

"무. 무슨 짓이지?"

이내 머리카락이 주뼛주뼛 곤두서서 날카로운 흉기처럼 변했다.

"……!"

푸슉! 푸슉! 푸슉!

"크아아아!"

수백 올의 붉은 머리카락이 김명일의 몸을 찔렀다.

그리고 김명일의 몸에 박힌 머리카락의 힘을 이용해 바닥에 추락 직전 몸을 뒤집어 버렸다.

콰아앙!

"커어억!"

주차장 아스팔트에 커다란 웅덩이가 생겼다. 처박힌 사람은 다름 아닌 김명일이었다.

그녀는 몸에 묻은 먼지를 털며,

"까.불.기.는."

기절한 김명일을 노려보더니 어눌한 한국 발음을 구사했다.

이윽고 이리야가 의식이 없는 김명일을 향해 입을 벌렸다.

"캬하아!"

머리카락에 찔린 자상 흉터 사이사이로 김명일의 피가 이리야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려던 때,

무언가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

"커, 컥. 이 개 같은 마녀 새끼야. 어디서 이상한 요술을 부려? 이까짓 공격에 내가 끄떡이라도 할 줄 알았냐? 엉?"

김명일은 죽지 않았다.

죽은 연기를 통해 이리야에게 허점을 이끌어 냈던 것이다.

"이. 익."

이리야는 힘을 줘 빠져나가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크크. 지금부터 지옥을 보여주지."

야수계 베스의 힘은 굉장했다.

김명일은 이리야의 한쪽 발목을 붙잡고 좌우로 수십 번을 패대기쳤다.

쾅! 쾅! 쾅!

"끼야악! 악! 악! 악!"

이리야의 괴랄한 비명이 주차장과 병동에 울렸다.

쾅! 쾅!

얼마나 후려쳤는지는 모르지만 이리야는 더이상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다만, 주차장 바닥이 움푹 파인 정도였다. 질퍽한 밥처럼 곤죽이 된 이리야의 의식은 없었다.

"X밥년이 감히 누구한테 개겨?"

라며, 김명일이 손톱에 강기를 머금었다.

그오오오.

이내 손톱에 빛이 나며 곧장 이리야의 가슴을 향해 찔렀다.

썩뚝~

"크오오오!"

별안간 김명일이 고통을 호소했다. 그는 잘려 나간 손톱을 보며 울부짖었다.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자 서리검을 번뜩인 자가 김명일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보았다.

"크오오. 가. 감히 대한민국 경찰을 죽이려 들다니…."

곽목휘는 국가 공무원 살인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며,

"이리야. 일어나라."

그러자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이리야의 입에서,

"끄. 아. 아. 김.명.일 데이터. 입.수.완.료. 으어억. 주. 죽인다. 커억."

이리야가 다량의 각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아! 이년이 아직도 안 죽고! 이번엔 확실히 죽여주마!"

김명일이 지면을 박차며 이리야에게 달려들었다.

휙~ 휙~

이리야는 피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만은 살기로 가득했다.

아니, 이젠 상황을 즐기는 듯 보였다. 기다린 먹잇감이 활어처럼 팔딱이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랄까?

충분히 피를 잔뜩 흘린 김명일의 속도는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으며, 이리야의 입꼬리는 올라가기 시작했다.

* * *

치잉.

병실에 문이 열리고 휠체어를 탄 남자가 들어왔다.

은지 누나의 애인. 조영대다.

그는 며칠 동안 휴가를 내고 병원에 나오지 못했었다.

야수병이 막지 못할 만큼 퍼져버렸기 때문이다. 몸에서 마물의 향이 스멀스멀 날 정도다.

휠체어를 끌고 오더니 바닥에 떨어진 마석을 주웠다.

"서든 게이트의 아수라 마석···."

그에게는 없어서 안 될 물건이 넝쿨째 굴러들어왔다.

그러나 그의 목청엔 집착이나 설렘이 없었다.

죽음의 번뇌를 떨쳐낸 음성이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가 반혼검을 봤나보다.

기침을 토하더니, 힘없이 쏟아지는 영대의 목소리가 구슬피 울렸다.

"쿠··· 쿨럭. 검을 자유자재로 익히다니 이제 움직일 때가 된 것 같군. 근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뭐야? 아저씨 왜 이래?

그리고 왜 은지 누나에게 가지 않고 내게 왔지? 지금 누나는 초 위기 상황이라고!

그와 나 사이엔 침묵이 감돌았다.

"고성웅. 널 죽이고 싶어. 미치도록 말이야."

······!

매서운 살기가 흘러나왔다.

"질투. 사람 참 비참하게 만드는 단어지. 우린 사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어. 목숨 걸고 싸우는 레이드에 우연히 만난 것도 모자라 같은 직장이라니?"

그의 기침이 더욱 심해졌다.

"쿠··· 쿨럭. 난 필연이라 생각했는데 은지는 그저 우연이었나 봐. 따라다니고 졸라대서야 마음을 연 거야. 은지가 정에 약해. 어쩌면 난 그 점을 이용한 걸지도 모르겠어. 난 미치도록 그녀를 사랑했지. 야수병을 대신 걸려줄 만큼 말이야. 그 후, 그녀는 미안한 마음으로만 날 대했어."

우우웅.

그가 아수라 마석에 기(氣)를 실었다.

"사랑보다는 일종의 책임감이 따랐을 때 끝냈어야 했어."

그는 후회하듯 중얼거렸다.

"게다가 네가 입원하면서부터 그녀의 감정이 더욱 요동쳤지. 처음엔 친오빠의 원수를 갚아준 것에 대한 호의적인 감정인 줄 알았어. 커.컥!"

그가 한차례 각혈을 했다. 주사기를 집어 들었다.

"허억, 헉. 그러나 그건 순전히 내 생각이었어. 이불 속에서 한참이나 널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몰래 봤어. 그때 내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는지 아··· 알아? 이 새끼야."

마석에 주사기를 꽂더니 손에 응축한 기와 함께 주사기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흐흐. 무엇보다 아무도 보지 않는 지금 널 죽일 수도 있고 살려줄 수도 있지."

미친 새끼야! 지금 치정살인 할 때가 아냐! 밖에 은지 누나가 위기에 처했다고!

아니나 다를까?

촤촤촥!

현란한 곽목휘의 서리검에 그녀가 연신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끼약!"

어서 아수라 마석을 수액화시켜 은지 누나를 도와주러 가란 말이야!

아랑곳 않고 그는 한풀이하듯 내게 구구절절 읊어댔다.

"어느 날부턴가 그녀는 나만 보면 네 이야기만 했어. 분명 우리 둘이 있는데 그사이에 네가 낀 기분이었지. 역겹고 짜증 났어. 이사장 손녀를 만나고 응급상태인 널 수술할 때 배를 갈라서 죽일까 했어. 관두었지. 이런 생각을 한 내가 화가 나서 메스를 집어 던졌지 뭐야. 우웩!"

그는 피를 토해냈다.

주사기에 아수라 마석의 액체가 늘어나고 있었다.

"질투 나고 시샘 났어. 일부러 너 보는 앞에서 키스도 했지. 유치하지? 의사라는 게 혼수상태 환자 앞에서···."

주사기 통에 마석의 수액이 절반쯤 찼다.

"눈물 날 정도로 네가 미워. 근데 이런 말 하는 나도 열받아 죽겠는데 부탁 하나만 하자."

뭐··· 갑자기 무슨 부탁?

"우리 은지 좀 살려줘."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소리야?

"쿨럭··· 쿨럭··· 내 뒷바라지만 하며 고생만 하다가 죽기엔 너무 아까운 여자야. 씨X!"

* * *

한편, 김명일과 이리야의 승부는 명확히 갈렸다.

머리카락에 찔린 다량의 피 때문에 김명일은 점점 핼쑥해져만 갔다.

기력을 다한 김명일이 곰의 베스에서 원래 인간의 몸으로 돌아왔다.

"헉, 허억. 이. X빨."

그 모습을 본 이리야가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빠.하.하.하."

이리야가 유유자적하게 앞으로 걸어가며 팔을 한 번 휘젓자 붉은 피의 발톱이 수십 가닥 뻗어나갔다.

촤아아악~

"크아악!"

김명일의 가슴팍의 옷깃이 찢어지며 걷잡을 수 없는 다량의 피가 뿜어 나왔다.

촤악~ 촤악~

이리야는 아까 패대기 당한 한풀이라도 하듯 사정없이 붉은 피의 발톱을 뿜어댔다.

"크아아악!"

이미 의식조차 흐릿한 상태인지라 이리야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다.

비틀거리며 마지막 남은 의식의 끈을 부여잡은 김명일이 바락바락 외쳤다.

"커. 컥! 네··· 네 이년! 양심도 없이 조필광의 개 노릇이나 하는 새끼가 감히 어딜 대한민국의 공무원을!"

한국말은 거의 몰라도 뉘앙스로는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었다.

"뭐. 뭐? 이. 년?"

미간이 찌푸려진 이리야는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망가져 버린 김명일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꺄하하!"

자상을 입은 흉터 사이로 피가 빨려 나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거! 으아아아아!"

쪼로로롭!

역시나 진공청소기처럼 김명일 체내에 담긴 모든 피가 이리야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김명일은 핏기 하나 없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갔다.

"아아··· 아. 이. 인순아…."

김명일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아내의 이름을 애절하게 불렀다.

더는 그의 호흡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수라 마석을 쟁취해 아내를 살리려던 김명일은 허망하게 죽고야 말았다.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김명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은지 누나를 보더니 군침을 흘렸다.

* * *

조영대는 기침 한 번 할 때마다 핏덩어리가 바닥에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그럼에도 그는 죽을 각오로 모든 힘을 끌어내어 주사기에 마석을 수액화 시켰다.

"지금 너만 우리 은지를 살릴 수 있어. 지금 내 병이 고쳐진다고 해봤자 같이 죽을 게 뻔해. 그거 알아? 서든 게이트의 아수라 마석도 완전한 치료제가 아니야. 커. 컥!"

그는 철천지원수 같은 날 목숨을 걸고 일으켜 세워 은지 누나를 살려달라고 한다. 본인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말이다.

은지 누나의 상태는 지금 말이 아니었다. 옷이 뜯겨 헤지고 몸에 멀쩡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헉, 허억···."

그녀는 거친 숨소리를 토해낸 데 반해 곽목휘는 예상했던 대로 끄떡도 없었다. 검강(劍罡) 마저 연달아 펼치는 괴물이다. 애초부터 당해낼 리가 없다. 주사기에 마석을 완전 수액화시켰다.

"돼··· 됐다. 쿨럭. 우웨웩!"

와르르르.

바닥엔 조영대의 피 냄새가 진동을 했다. 마물의 피 냄새도 섞였다.

철퍼덕.

몸을 휘청거린 조영대는 주사기도 떨어뜨린 채 몸을 파르르 떨며 한동안 일어나질 못했다.

애절하고 처절했다.

"꾸···에에··· 아·· 안 돼에엑."

안 돼! 일어나! 야수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는 괴물이 되는 상황에서도 오로지 은지 누나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정신을 차리고 주사기를 들었다.

그가 나의 배 위에 올라탔다.

"꾸엑··· 크악!"

쿵! 쿵!

영대는 스스로의 머리를 벽에 박으며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 했다.

뚝. 뚝.

머리가 찢겨 새어 나오는 핏방울이 내 몸에 하염없이 떨어졌다. 영대가 다시 주사기를 집었다.

"캬아, 캬아···."

그는 두 손을 높이 들어 내 심장을 향해 있는 힘껏 주사기를 찔렀다.

콰직!

"꾸웨웨에엑!"

그는 내게 주사를 놓고 주차장을 향해 몸을 던졌다. 은지 누나를 구하러 가는 것이다.

내 몸에 서든 게이트의 아수라 마석의 수액이 흘러들어왔다.

수액은 내가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찾으려는 듯, 세포 하나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 구석구석을 핥았다.

이윽고 창세삼정의 어두운 권능에 스며들었다. 카니발리즘 영역에 파고든 수액이 희석되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모. 몸이 움직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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