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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인데 내공이 좀 많네요-66화 (66/200)

66화. 서울헌터협회 (3)

시커먼 연기가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따라라랑!

연기 감지기가 작동되어 화재 경종이 울렸다.

서울 헌터협회 본부 20층에 불이났다. 열에 의해 폐쇄형 스프링클러 퓨즈가 깨지며 물이 분사되었다.

직원들은 소화기를 들고 분말 가루를 사방에 뿌려댔다.

이 정도면 민폐를 넘어 국가 참사 수준이다. 사고를 치지 않겠다던 굳은 나의 다짐은 출사표 던진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공중분해 되었다.

서글프다.

아아. 나의 인생이여.

눈에 눈물이 고였다.

"콜록! 엘리! 왜 그래 너!"

"닥쳐!"

명치가 따끔거린다.

조만간 내과에 가서 내시경이나 해봐야겠다. 스트레스로 인해 십이지장과 위에 난리가 났을 것이다.

모든 창문을 열고 연기를 뺐다.

"대체 뭐하는 짓들이에요!"

김 주임의 눈매는 화경을 깨우친 고수의 살기마저 엿보였다.

"죄, 죄송합니다."

"이거 어떻게 할 거예요? 네? 입이 있으면 뭐라고 말해보란 말이에요!"

김 주임이 3옥타브 소프라노 뺨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그때였다.

"이거 내가 고칠 수 있다능."

음? 이 목소리는?

김 주임은 다소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참나~ 함상경 F급 헌터께서 박살 난 컴퓨터와 부속 기기들을 고칠 수 있다고요?"

함상경이란 뚱보는 팔짱을 끼며,

"후후. 어리석은 닝겐들이여. 물질계(物質界) 아수라 마석 헌터인 내게 이 정돈 누워서 떡 먹기라능."

"누나. 쟤는 왜 말투가 저런데?"

은지 누나는 귓속말로,

"몰라. 어디 아픈가 봐."

기고만장한 상경이를 본 김 주임은 실낱같은 희망을 얻었다.

"그… 그럼 어서 고쳐줘요! 지금 대기자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후후. 이 몸의 고급 노동을 쓰는 데 맨입으로?"

"좋아요. E급으로 올려드릴게요!"

대놓고 비리를 저지른다.

부정부패는 게이트 시대에 와서도 변한 것이 없었다.

잘못된 폐단을 바로 잡으라는 눈으로 아지 스님을 바라봤다.

"김 주임. 지금 무슨 짓인가? 내가 잘못 들었나? F급에서 E급으로?"

아지 스님이 근엄하게 질책하자 김 주임은 아차 싶었다.

"협회장님. 그… 그렇지만… 업무가 며칠 동안 마비될 지경인지라…."

"D급으로 올려드리게."

"이 양반아!"

김 주임이 탄복했다.

"역시 협회장님이십니다."

아지 스님이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후후. 어떻습니까? 위대한 상경 헌터님?"

함상경은 좋아할 줄 알았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그딴 거 다 필요 없다능."

깐깐한 김 주임이 날카로운 눈매를 번뜩이며,

"어째서요? 이만하면 역대 최고 파격 대우라고요. 그것도 아니면 설마 고칠 줄 모르는데 괜히 허세 떠는 거 아닌가요?"

"노우~ 노우~"

애간장 태우는 함상경의 시추에이션에 김 주임은 애가 타들어 갔다.

"그럼 대체 원하는 게 뭔데요? 말씀만 해주세요! 어이! 거기 송현사 출신들! 당신들이 사고 친 건데 왜 나만 애걸복걸하는 거예요! 멀찍이 떨어져 있지 말고 이리 와서 뭐라 말 좀 해봐요!"

속사포 같은 질책에 우린 쭈뼛거리며 함상경 옆으로 다가갔다.

"당장 고쳐야 일이 진행되는데, 헌터들 등급 측정을 당신들 때문에 못 하잖아요."

우린 모두 은지 누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중에 사회성이 가장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음, 함상경 헌터님. 저기 죄송한데 저희가 어떤 사례를 해드리면 기계를 고쳐주실 수 있나요?"

그러자 함상경의 입가가 천천히 위로 승천했다. 그는 도톰한 손가락으로 엘리를 가리키며,

"엘리를 우리 길드에 넣어 달라능."

"뭐?"

"네에에?"

얼토당토않은 요구에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 엘리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홱 돌렸다.

"Never."

내가 물었다.

"아니. 갑자기 왜?"

"길드에 나밖에 없으니 외롭다능. 엘리쨩이 함께 한다면 외롭지 않을 거라능."

엘리의 눈매가 점점 광기로 물들어졌다.

"셧 업! 거기서 한 마디만 더 씨부리면 바스타드 소드가 널 오백 조각내어 버릴 거야."

김 주임이 엘리에게 쌀쌀맞게 말했다.

"엘리 씨. 인과응보예요. 어차피 현재 소속된 길드도 없잖아요. 잘됐네요."

"엘리쨩. 자기가 들어오면 마스터 자리를 넘겨줄게."

엘리가 가운뎃손가락을 폈다.

"Fuck you."

김 주임은 노이로제에 걸린 듯 길길이 날뛰었다.

"으아아아!"

"두 분 진정 좀 하시고!"

뚱보 함상경이 끼어들어 일이 더욱 꼬여버렸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타협점을 찾은 듯, 엘리가 말했다.

"OK. 내가 뚱보 길드에 들어가는 대신 여기 세 사람도 가입시켜. 길드 마스터는 성웅이로 해. 뚱보 넌 나약하고 불안해."

함상경은 은지 누나를 가리키며,

"노우. 예쁜 누나까지만 받을 거라능. 고성웅이랑 스님은 제외."

엘리가 팔짱을 끼고 배수진을 쳤다.

"그럼 안 들어가. 나 그냥 여기서 처벌받을래."

상경이가 팔짝 뛰며 손사래 쳤다.

"으음. 직책 따위야 아무런 상관도 없다능. 잘 부탁하지. 고성웅 마스터. 땡중도 일 열심히 해."

"……."

가만히 지켜만 보던 냉철이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성웅 친구. 소승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살인멸구를…"

"안 돼. 가만있어. 그리고 엘리. 우리까지 엮이게 하면 어떡해? 우린 송현 길드 마스터를 찾아가서 길드를 사들여야 한다고."

그러자 엘리가 서운한 듯 말했다.

"성웅! 나 혼자 저 냄새 나는 곳에 들어갈 순 없잖아. 지금 나 혼자 저 돼지랑 같이 사냥이나 하라고?"

함상경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말했다.

"다 들린다능! 파오후! 파오후!"

"에휴~ 뚱보 너 길드 이름이 뭐야?"

그는 마치 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송현 길드."

"뭐?!"

"송혀어언~!"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토록 찾아 헤맨 길드 마스터가 여기 있었다. 내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인마! 간판 당장 내놔! 냉철아 놔 이거! 말리지 마! 간만에 성격 나온다!"

"성웅 친구. 서울 첫째 날입니다. 진정하셔요."

"이미 사고 하나 쳤는데 뭐가 두려워!"

김 주임이 뚱보를 보며 재촉했다.

"이보세요. 싸울 시간 없어요. 자! 합의는 다 된 것 같으니 측정기나 고쳐줘요. 빨리."

"후후. 못생긴 여직원. 받아 적으라능. 리부팅 프로그램 USB, HDMI, KKSG 케이블 10m짜리 4개랑 전동드라이버, 해머드릴, 피스, 바닥 고정하는 앙카볼트 3/4 30개, 리드선…."

김 주임은 부르는 자재를 한참 받아 적더니,

"5분 내로 준비됩니다. 기다려주세요."

이어 카트를 가득 메운 자재가 도착했다.

"자~ 어디 해볼까나."

소매를 걷어 올린 상경이의 뚱뚱한 몸이 날렵하게 움직였다.

정확하고 신속했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말끔하게 고쳐버렸다. 시스템마저 손을 보더니 예전보다 더욱 성능이 향상됐다.

아지 스님이 말했다.

"마… 말도 안 돼. 위대한 함상경 헌터님! 저희 서울 헌터협회 본부에서 모시겠습니다!"

"싫다능. 난 엘리와 함께 여생을 보낼 거라능."

내가 소리쳤다.

"본부에서 초대한다잖아! 너 따위는 입사는커녕 꿈조차 못 꿀 직장이라고! 냉큼 가버렷!"

"야레. 야레. 이제 엘리는 내 건데 어딜 간다고?"

"끼야야앗!"

엘리가 내 뒤로 숨어버렸다.

경질 고비를 넘긴 김 주임이 질색하며 말했다.

"자. 겨우 고쳤으니까 이제 마지막으로 등급 측정은 고성웅 헌터만 하면 되겠네요."

그리고 직원들 모두 엄폐물을 찾아 숨었다.

"왜 다들 숨는 거예요?"

김 주임이 머릴 빼꼼 내밀고 말했다.

"그거야 성웅 씨가 제일 강하니까 그렇죠! 엘리도 힘주니까 날아간 마당에 자칫하단 건물이 날아갈지도 몰라요."

하긴 나도 조금 불안했다.

몸에 힘을 뺀 채 동그란 측정기에 손을 올렸다.

위이이이잉.

삐삐빅.

불안하게 바로 결과가 나왔다.

"얼레? 이렇게 일찍?"

어째 함상경 저 뚱보보다 더 짧다. 숨어있던 김 주임이 모니터를 보더니 갸웃거렸다.

"저… 저기 측정할 수 없다는데요. 헌터 자격증 발부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네?"

"뭐라고요?!"

내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뚱보! 너 이 자식 잘못 고친 거 아냐?"

"내 사전에 실수란 없다능."

라며 뚱보가 손을 올리니 그대로 F급이 나왔다.

나 최강의 헌터 고성웅이 헌터 자격 미달이라니.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프레지던트 슬레이어가 나보다 약한 녀석이었다능 후후후!"

"이 뚱보! 죽여버릴 거야!"

길길이 날뛰었다. 은지 누나랑 냉철이가 날 얼싸 잡았다.

그때였다.

[인간이여. 나의 힘을 보태줄까?]

창세삼정 안에 감금된 천마신교 교주 천유희다.

"싫어! 네 힘 썼다가 내가 식물인간 된 거 몰라서 물어!"

[끌끌. 그건 네놈이 내 힘을 과하게 끌어다 쓴 것이고. 나의 마기(魔氣)가 필요할 텐데? 너의 순수한 기로는 저 마력 측정기가 반응을 하지 않는다.]

은지 누나가 걱정되는 듯,

"성웅 씨. 누구랑 얘기 하는 거야?"

"아… 아냐. 하하핫. 김 주임님. 죄송하지만 한 번만 해보면 안 될까요?"

깐깐한 김 주임도 이상했는지 허락했다.

"으음. 성웅 씨니까 특별히 해드리는 거예요."

"자꾸 성웅 씨. 성웅 씨. 성웅 씨."

은지 누나가 김 주임 말을 비꼬며 눈에서 살기를 피웠다.

나이팅게일이 다른 사람한테 적개심을 품다니. 다소 생소한 모습이었다.

난 마음속으로 말했다.

'영감. 힘 적당히 줘.'

[인간. 걱정 말게나. 미세하게 등급만 나오도록 해주지.]

'뭘 자꾸 인간이래. 영감도 인간이었다고.'

[이 몸은 인간을 초월한….]

'됐어. 시끄럽고 힘이나 줘.'

[네 이노오옴~]

김 주임이 엄폐물에 숨고 말했다.

"손 올리세요."

나비가 사푼사푼 꽃잎에 착지하듯 측정기에 조심스레 손을 올렸다.

삐비빅.

콰아아앙~

대폭발이 일어났다.

순간 측정기가 번쩍임과 동시에 건물 한쪽이 날아갔다.

"꺄아아아앗!"

"으어어어! 사람 살려!"

"마스터! 무슨 짓이냐느으응!"

* * *

- 서울 헌터협회 본부에서 알려드립니다. 불의의 사고로 본부 20층 긴급 유지 보수 공사를 진행합니다. 헌터들은 일주일 동안 등급 측정이 불가능하오니, 이 점 양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

"……."

"성웅 사고쟁이."

"으윽."

'천유희 영감. 어떻게 된 거야! 살살 넣으라 그랬잖아! 왜 건드리자마자 폭발하는 거야!'

[인간이여. 난 분명 최소한의 힘만 넣었다. 기계가 나약한 것인들.]

은지 누나는 새로 갱신한 A급 헌터 자격증을 들고 웃음을 지었다.

"헤헤. 성웅 씨. 나 이것 봐. A급이래! 색깔도 광택이나!"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좋아했다. 은지 누나가 평생 이렇게 웃고 살았으면 좋겠다.

멍하게 바라보자 엘리가 내 머릴 때렸다.

"아얏! 엘리 왜?"

"입에 침이나 좀 닦아."

"뭐… 뭘!"

"지금 한가롭게 수다나 떨 때야? 대관절 우리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야?"

"열어줘! 이 문 열라고!"

쾅쾅!

철창살을 흔들며 애원했다.

우린 헌터협회 본부에 마련된 지하 철창에 수감 중이었다.

아지 스님이 아무리 협회장이라지만 20층을 통째로 날려 먹은 우리를 무사히 보낼 순 없었다.

뒷배도 사고를 정도껏 쳐야 커버가 가능한 법이다.

상경이가 간수에게 사정했다.

"내보내 줘! 나능 이분들이랑 상관이 없다능!"

뚱보 함상경도 갇혔다.

"어이. 함뚱. 바로 이런 게 연대책임이라고. 우린 같은 길드잖아."

상경이는 거친 호흡을 토했다.

"파오후! 파오후!"

사형선고 받고 혼수상태로 지내다가 깨어났더니 협회 철창이다.

고단한 여정의 끝은 언제쯤 끝나려나?

"에휴~ 내 팔자야."

"냉철아 우리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해?"

"글쎄요. 사고의 규모가 워낙 스펙타클하니 헌터부 장관 귀에 들어갔을 테고 이래저래 다 하면 며칠은 갇혀 지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생각보다 우린 일찍 나갈 수 있었다. 우리 옆에서 통화를 하던 아지 스님이 철창 안으로 휴대폰을 건네주며 말했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성웅아. 받아봐."

"여보세요."

[성웅아. 잘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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