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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인데 내공이 좀 많네요-74화 (74/200)

74화. 통일 물밑 협상 (2)

삽시간에 싸해졌다.

저 시건방진 태도가 아까부터 여간 거슬린 게 아니다. 북이고 뭐고 나발이고 한 대 치고 싶다.

태락겸이 예상치 못한 일격을 맞은 녀석처럼 가만있었다. 내가 말을 이었다.

"사람 말 못 알아들었어요? 발부터 내리라고요. 백두혈통이고 나발이고 지랄 좀 떨지 말고. 말 나온 김에 이쑤시개도 뱉어요. 그 정도면 예의가 없는 게 아니라 싸가지없는 거야."

"이 가, 갓나 새끼가!"

태락겸이 허리춤에 권총 콜트 1911를 꺼내 들려고 권총집 단추를 풀려던 차였다.

"어쭈? 손이 근질근질 하나 봐? 허리춤에 장난감 어디 한번 빼봐. 나이도 어린 게 왜 SSS급 헌터인지 몸소 보여드리지."

대놓고 반혼검을 덜렁거렸다.

"성웅아!"

"성웅 씨!"

"성웅 쿤! 진정하라능!"

눈에 살기를 가득 담아 내공을 끌어올렸다.

크오오오오.

가서 딱 한 대만 때리고 싶다는 열망을 담으니 회담장 창문이 부드득거렸다.

애초부터 협상 따윈 관심도 없는 저 새끼랑 무슨 대화를 한단 말인가?

국가의 위상을 맨날 굽히고 들어가니 저쪽이 미쳐 날뛰는 거다.

'진짜 확 사고 쳐?'

나도 모르게 눈에 살기를 담아 죽일 듯 노려보았다. 태락겸의 눈에 공포가 서리기 시작했다.

저 양반은 저 정도밖에 안 되는 피라미다.

그때,

내 앞에 한 녀석이 나타나 시야를 가렸다. 호위 군인이다. 짧은 머리에 째진 눈과 빻다 말은 떡처럼 흉측한 귀,

"검에서 손 떼라우."

그의 손에는 철퇴가 박힌 메이스가 들려있었다.

내가 웃음으로 답했다.

"장난이야."

"……!"

구동훈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장난 한 번만 더 치면 내 목을 졸라 죽일 기세였다.

내가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쳤다.

"자~ 공평하게 서로 인상 한 번씩 썼으니까 협상 진행하시죠?"

태락겸이 언제 식겁했냐는 듯 태연하게 웃어 보였다.

"으하하하~ 여간 보통내기가 아니구만 기래! 시방 인민공화국 헌터의 기개보다 훨씬 낫다우! 고저 우리가 수태 핵 맨드는 것보다 헌터 양성에 돈을 투자했는데 남조선의 SSS급 헌터보이 공염불임다."

"하하하."

구동훈과 이용태 장관이 어색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나의 따끔한 도발이 먹혔던지 협상 이야기를 꺼냈다. 태락겸이 맨손으로 서명을 하는 시늉을 보이며,

"기래. 기래. 협상 조치 기래. 장난은 여기까지 하고… 이용태 장관. 기 종이 쪼가리 갖고 왔슴미까?"

통일 협의서 초안을 갖고 왔냐고 묻는다.

"네. 여기 있습니다. 읽어보시죠."

누런 크라프트 봉투에 밀봉된 통일 협의서에는 통일부와 청와대 인장이 박혀 있었다.

쫘악.

보란 듯 신경질적으로 봉투를 뜯은 태락겸이 읽는 듯 마는 듯 시늉을 보였다.

도중에 힐끔힐끔 날 노려보았다. 조금 전 겁먹은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열 받나 보다.

그가 협의문을 줄줄 읊었다.

"북한은 핵무기를 단계적으로 미군과 폐기시킬 것을…."

쫘악! 쫘악!

여기까지 읽던 태락겸이 미친놈처럼 협의문을 찢어버렸다.

찢긴 종이가 테이블 위에 어지러이 날렸다. 이용태가 자리를 박차며 큰소리쳤다.

"장군! 뭐하는 짓입니까!"

태락겸이 허리춤에 콜트 권총을 꺼내고 말했다.

"고놈의 핵! 핵! 핵! 남들 다 가지는 거 우리도 한번 가지자는 게 수태 열 받는 짓입네까!"

"분단된 국가를 얼마나 방치할 셈입니까! 북조선에 굶어 죽는 이들은 생각 안 합니까! 언제까지 중국 씨받이나 할 생각이오!"

태락겸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미 무언가를 단단히 각오한 눈빛이다.

"씨받이? 여기에 서명하면 우린 중국한테 무사할 것 같소? 길티 말이오. 수태 우리가 이 자리에 이 짓을 몇 번이나 해왔갔소? 남조선이랑 이 짓을 몇 번이나 해 왔냐고 물었소!"

언론 공개되지 않은 비공식 채널로 만난 자리만 수십 번 아니 백 번은 족히 될 것이다.

"내래 이실직고하자면 오늘 출발하기 전 리충민 대가리에 총알 한 방 박고 왔소."

이용태 통일부 장관의 동공이 마구 흔들린다.

"뭐라고? 총정치국장 리충민을 말하는 거요?"

내가 은지 누나한테 속삭였다.

"그 양반이 누군데?"

"원수급 차수 직위이자 북한 내에서도 서열이 3위권에 가까운 책임자."

사고도 거하게 쳤다.

그러고 보니 태락겸에게 지독한 피 냄새가 풍겼다. 그는 답답한 듯 군복을 벗자 셔츠엔 핏자국이 자욱했다.

이미 작정하고 피를 본 양반이다. 두려울 게 없다.

포커페이스 정태수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태락겸이 말했다.

"금마가 오늘 아침, 우리는 잘 모르니께네 남조선이 알아서 잘 갖다 바치는 거 기냥 암말 말고 서명한다지요. 어찌 가만있을 수 있갓소? 핵무기 빼면 남는 것도 없는디 그걸 포기?! 지랄 맞은 소리 말라우. 그래서 이마에 인민의 의지를 박아주고 왔지라우."

원래 협상하려던 놈을 쏴 죽이고 왔단 소리다. 태락겸이 권총 공이치기를 뒤로 밀었다.

함상경은 주변을 흘기며 숨을 곳을 찾고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으시라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위대한 수령 동지인 김정학 국방위원장의 말씀을 전하갔소."

남북 물밑 통일 협상이 지옥의 장으로 변하고 있다.

김정학 국방위원장.

악의 세습은 끊이지 않았다. 김일성부터 시작된 독재는 김정학까지 대를 이어 내려왔다.

인민헌터부장 태락겸은 김정학의 오른팔이다. 세상 무서운 것이 없는 그는 서슬 퍼런 총구를 이용태 통일부 장관에게 겨누었다.

권총 십자선 가늠쇠가 이용태의 이마를 정조준했다.

"지… 지금 뭐하는 짓입니까!"

이용태 장관이 깜짝 놀랐다. 태락겸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장관 동무. 앞으로 한 달 이내, 광화문에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학 동지의 동상을 세우라우. 기리하면 다시 통일 협상을 진행하갔소. 그게 협상의 시작이라우. 알간?"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의 동상이 세워진 광화문에 김정학 동상을 세우란다.

이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닥치시오! 대한민국 정부는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이용태가 눈썹을 파르르 떨며 분노했다. 태락겸이 집게손가락을 방아쇠에 살포시 갖다 대었다.

"수태 안 됐슴미다. 이실직고하자면 우리 위대한 인민공화국은 통일 따윈 관심 없슴미다."

"뭐!"

"그저 내래 오늘 모인 장관과 헌터 나마이들 목을 갖고 오라는 명령이 있았어. 곱게 죽으라우."

뭐라 변명할 새도 없었다.

탕!

방아쇠를 당기자 커다란 총성 음과 함께 총구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권총에서 뿜어져 나온 탄환은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이용태 장관의 미간에 날아갔다.

퍽!

총알은 이용태 장관의 이마에 정확히 맞았다. 그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이윽고 육체의 움직임이 멎어 들었다. 온몸이 오그라들고 몇십 년은 수척해진 몰골을 일그러뜨렸다.

"……!"

"이용태 장관님!"

동훈이 형이 장관을 바라봤다.

"으음?"

그러나 흘러나와야 할 피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뒤로 젖힌 이용태 장관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이마를 매만졌다.

나풀~

탄환 모양의 솜뭉치가 있었다.

"허… 헌터 무력상! 장난이 심하십니다!"

"이… 이럴 리가!"

태락겸은 장난이 아니었다. 저 권총과 탄환은 분명 쇠뭉치로 만든 것이다.

태락겸이 얼굴을 찌푸리더니,

탕! 탕! 탕!

권총을 연발로 갈겼다.

반탄력에 몸을 이기지 못한 태락겸의 마지막 총알은 천장을 꿰뚫었다.

그러나 역시 모두 솜털로 변하여 무기력하게 바닥에 나풀나풀 떨어졌다.

태락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어느 갓난 새끼가 장난질이야!"

그러자 장발에 안경을 낀 사내가 손을 들었다.

"접니다만?"

비네리움 서브 마스터 이태곤이었다.

"비네리움 이태곤이! 종갓나 새끼들! 당장 싸그리 죽이라우!"

북한 헌터 두 명의 눈이 반짝였다. 마치 이날을 기다린 듯했다. 날 가로막은 얇고 째진 눈이 살인귀(殺人鬼)를 연상케 했다. 북한 호위 헌터가 선제공격을 날렸다.

"으아아~"

함상경이 뒤로 빠져 숨었다.

챙!

정태수와 북괴의 병장기가 부딪쳤다. 창의 사내는 일합(一合)부터 전력을 다하려는 듯 강하게 찔러왔다. 그는 창의 리치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급소를 맹렬하게 파고들었으나 정태수는 여유 있게 피했다.

솨솨솨솩!

반면, 날 향해 달려드는 북괴군을 향해 은지 누나가 투명실을 날렸다. 그는 투명실에 맞은 줄도 몰랐다.

"해부학 6교실 목뼈의 외침!"

뿌드득!

"으억!"

달려들다 말고 고개가 홱 돌아가더니 바닥에 고꾸라졌다.

"됐어! 성공했어!"

목덜미를 부여잡은 그는 잠시 신음을 토하더니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살집이 점점 부풀어지더니 몸 색깔이 녹색으로 변해갔다.

돼지 이빨에 흉흉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뿜어나오는 체구의 기개는 위풍당당했다.

레드 게이트 아수라 마석중에서도 상위 계열에 속하는,

"오크(Orc)!"

오크였다. 뼈마디가 워낙 튼튼하고 재생 능력도 우수했다.

뿌드드득.

부러진 목뼈가 제자리를 찾았다. 오크 사내는 몽둥이에 가시가 촘촘하게 박힌 메이스를 들고 날 향해 날아올랐다.

초초촉!

이번엔 오크를 향해 화살 세 발이 날아갔다. 화살의 궤적은 워낙 오묘하고 변화적이었다.

챙~ 퍽! 퍽!

화살 하나는 쳐냈으나 나머지 두 발의 화살이 오크의 몸에 박혔다.

"으악!"

활시위가 바이킹처럼 출렁거렸다. 이태곤이었다.

금빛의 활을 든 그는 날 보며 활짝 웃더니,

"고성웅 마스터. 이 활도 고대의 보패(寶貝)랍니다. 이름은 롱기누스!"

"우와! 완전 멋있는데요!"

"이런 육실헐!"

태락겸이 일이 풀리지 않자 다시 권총을 발사하려 들었다.

콰직! 으드득!

동훈이 형이 태락겸의 권총을 뺏어 들더니 종잇장같이 구겨버렸다.

동훈이 형이 늑대 알레프(Aleph)로 변했다.

"장군. 아까부터 마음에 안 들었는데 오늘 한번 맞아봅시다."

퍼억~

동훈이 형이 주먹으로 태락겸의 얼굴을 내려쳤다.

"크억!"

몰골이 함락된 태락겸이 뒤로 나자빠져 뒹굴었다. 엉덩방아를 찧은 그는 손으로 얼굴을 잡으며,

"으어어! 네. 네 이놈! 감히 위대한 인민헌터부 장관을 치다니!"

"난 대한민국의 헌터부 장관이다! 이 새끼야!"

동훈이 형이 손톱을 길게 세우며 태락겸을 찌르려고 할 때였다.

구오오오오~

"으음?"

지축이 흔들리며 지진이 일어났다.

건물 밖에 거대한 기운이 몰아치면서 주변의 바람이 그쪽으로 모조리 빨려가듯 거센 바람이 몰아닥쳤다.

"뭐. 뭐야?"

남측, 북측 할 것 없이 일제히 전투를 멈추고 밖을 바라봤다.

이내 바깥엔 동그란 얼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다들 안색이 파래졌다.

"이. 이 기운은 설마?"

- 파주 헌터협회에서 알려드립니다. 서든 게이트 출몰. 망령계 게이트로 추정. 망령계 게이트로 추정. 서든 게이트 출몰. 인근의 시민들은 모두 대피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망령계 서든 게이트?!"

예고도 없이 나타나는 이 게이트는 사람을 항상 놀라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밖에는 잿빛의 동그란 원이 회담장 앞에 만들어지고 있었다. 빨리 가서 막지 않으면 망령계의 야수들이 뛰쳐나올 것이다.

통일부 이용태 장관은 괴로운 심정을 표하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필 이때 게이트라니.

태락겸이 웃었다.

"내래 게이트마저 위대한 인민공화국을 돕는구만 기래!"

내가 외쳤다.

"다들 북한 놈 좀 부탁드릴게요! 전 게이트 막으러 갈게요! 누나 나 좀 도와줘!"

"응!"

시민들이 위험하다!

내가 창문을 깨부수고 5층에서 뛰어내렸다. 은지 누나가 따라왔다. 서든 게이트의 기운이 보통이 아니다.

구우우우우우-

게이트가 완전한 얼개를 형성했다.

- 꾸에엑!

- 촤야약!

가득 찬 쓰레기통을 비우듯 와르르 흉측한 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은지 누나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여… 여태 이런 일은 없었는데"

좀비, 스켈레톤 병사가 출몰했다. 그들의 기운은 평소에 알던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병원 혼수상태일 적 가볍게 해치웠던 좀비의 마기(魔氣)와는 현저히 달랐다.

눈에 광기가 어려있었다.

- 꾸웨웨엑!

삽시간에 날 포위한 좀비들이 사방으로 내 살점을 물어뜯으려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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