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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인데 내공이 좀 많네요-83화 (83/200)

83화. 송현사의 비밀

단전을 파괴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무공을 펼쳤다.

타깃은 마물의 마석!

손바닥을 앞으로 뻗어 녀석의 몸통을 가격했다.

파파파파팟!

- 머드악! 무악! 무으아악!

골렘의 고통스러운 굉음이 쩌렁쩌렁 울렸다.

어디에 마석이 숨어있든 비룡내파는 내부에 충격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관 없었던 것이다.

창세삼정이 말한 '움직인다.'의 뜻은 골렘 안에 들어간 마석이 움직인다는 뜻이었다.

내가 검을 벨 때마다 녀석은 마석의 위치를 교묘하게 바꾸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석의 힘으로 무한한 재생을 하였다.

이미 기절할 충격을 받은 녀석에게 다시 한번 비룡내파를 펼쳤다. 녀석의 마석에 균열이 생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퍼 퍼 퍼 퍼 퍽!

머드. 무아 므으으아….

골렘의 황톳빛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더니,

쿠웅~

바닥에 쓰러졌다.

골렘의 눈동자엔 아무런 색도 없었다. 이내 그의 몸이 모래로 변하더니 바람과 함께 쓸려갔다.

그리고 그 자리엔 깨진 황톳빛 마석이 덩그러니 보였다.

세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존나 무식한 새끼."

"허억. 허억. 자. 잡았드아…."

주변의 모든 것들이 다시금 여러 개로 보이더니 흐려진다.

"으. 으…."

"야! 고성웅!"

꺼져가는 의식 사이로 세리가 튀어나오더니 날 잡아주었다.

"으윽!"

세리와 몸이 닿자 강한 전기충격과 함께 흐름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예전 식물인간 때, 조세리의 히스토리아가 다시 작동했다.

먼 과거가 보인다.

중동의 국경 지역.

의식은 아프가니스탄 동쪽 잘랄라바드 외곽 산(山)을 가리켰다.

풀잎 하나 벌거숭이산들뿐이다.

아래론 붉은 꽃줄기를 재배하는 사내들이 보였다. 양귀비다. 벌거숭이산을 따라 올라가니, 미군의 공중 폭격에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산의 등줄기 곳곳 동굴을 파놓은 요새들이 보였다.

개중 가장 좁고 어두컴컴한 동굴을 따라갔다. 끝자락엔 넓은 터가 있었다.

"앗쌀라아무 알레이쿰."

"코부루 투 아디오꾸란."

그들은 인사를 나누고 코란의 경전을 읊고 있었다. 다름 아닌 탈레반, 알카에다, 무자헤딘, 알샤바브 등 아랍계 국제 테러리스트들의 수장들이 보였다.

한 조직만 있어도 미국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데, 최악 국제 테러리스트들의 총집합이라니? 세계가 또 어떤 풍파를 겪게 될지 실로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동굴의 천장엔 커다랗고 동그란 원판이 보였다.

원판은 짙은 녹색 바탕으로 칠해져 있었고 정중앙에 금색의 아랍 글자가 빛나게 새겨져 있었다.

'الله(알라).'

예지의 아이가 말했다.

"알라께서 입장하십니다."

그들의 언어가 자동으로 번역되어 들렸다. 테러리스트의 수장들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제단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들은 한결 숨을 죽였다.

이윽고 꼭대기 연단에 한 인영(人影)이 나타났다.

190cm가 넘는 장신에 심연마저 꿰뚫어 보는 회광반조의 안광이 번뜩였다. 목둘레가 깊게 파인 이슬람 전통 갈랴베야를 입었으며, 머리엔 터번을 둘러썼다.

의상은 숭고한 고결을 상징하는 백색 차림이었다. 그는 약관의 나이도 되지 않아 보였다.

알라라 불린 젊은 사내가 두 손을 경건하게 아래로 내렸다.

앉으라는 신호다.

다들 무릎을 꿇었다.

청년이 내려다보는 아래에는 아랍계뿐 아니라 동양인, 흑인, 황인종 등 다양한 유색 인종들이 고개를 숙였다. 숨소리도 나지 않을 침묵이 감돌았다.

좌중을 천천히 둘러보던 그가 사뭇 감격스럽다는 듯,

"십 년만이구나. 지하드(성전(聖戰))의 이십사도들이여."

탈레반의 수장 파슈투인(人)의 중년이 백색의 청년을 향해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알라의 재림(再臨)이시여. 회귀(回歸)를 경하드립니다."

"회귀를 경하드립니다!"

"회귀를 경하드립니다!"

그들은 사뭇 감격스럽다 못해 눈물이라도 흘릴 지경이었다.

주신(主神) 알라(Allāh)가 회귀했다!

연이은 미국의 폭격과 공습으로 가루가 되기 직전이었음에도 그들의 결집력은 더욱 공고해져만 갔다.

알라가 답했다.

"혼계(魂界) 아수라(阿修羅) 마석(魔石) 덕분이니라. 육체도 바뀌고 했으니 옛 이름을 버리고 라스콜(Raskol)로 부르거라."

파슈투인이 맞장구치자 전원 복창했다.

"알라. 라스콜 님. 명을 받겠습니다."

"알라. 라스콜 님. 명을 받겠습니다."

라스콜은 흐뭇하다는 듯,

"그래. 십 년 전, 9‧11 혁명의 횃불로 2개의 초(超)자연계 아수라 마석을 찾았더구나."

"알라시여! 엠파이어 스테이트 쌍둥이 빌딩 꼭대기에 하나씩 숨겨놓았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역시 미국 코쟁이 새끼들은 영악하기 그지없습니다. 저희가 확 가서 부숴 버리지 않았습니까? 으하하!"

라스콜은 부하들이 기특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인 뒤, 바로 앞 꼬마 아이에게 말했다.

"예지의 아이여. 반혼검은 계속 한국에 있느냐?"

예지의 아이가 안절부절못하며 답했다.

"그… 그렇습니다만 여전히 뽑히질 않습니다."

라스콜의 미간이 좁아졌다.

"아직도?"

"용서하여주시옵소서."

고대의 보패(寶貝) 반혼검(班魂劍)을 누군가 느닷없이 뽑으면 곤란한 일이다.

아랍국도 아닌 코딱지 크기의 한반도다. 탈레반이나 알카에다가 함부로 움직이면 단박에 미군의 먹잇감이 된다.

수장(戍將) 라스콜이 한 사내에게 묘안을 물었다.

"조필광. 너는 한국인이 아니더냐? 거길 아무도 못 만지게 할 방안이 없겠느냐?"

"알라여. 방도가 있습니다."

그의 눈썹이 실룩였다.

"무엇이냐?"

조필광이라 불린 사내가 대답했다.

"반혼검 일대는 산으로 둘러싸여 인적이 거의 없는 곳입니다. 그곳에 송현사라는 법당이 하나 있습니다. 땅 부지를 사들이고 법당을 넓혀 외부인 출입 금지라 못 박으면 됩니다."

"허허! 묘안이지만 그 법당엔 주인이 있지 않느냐?"

"그 주인을 저로 만들면 됩니다."

"호오~ 그게 가능한가?"

"맡겨만 주십시오."

"즉각 실행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조아린 머리 사이로 조필광의 눈동자가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걸 간신히 참았다.

* * *

눈을 떴다.

세상은 여전히 붉은 달빛 아래였다. 참 우울하고도 고독한 세상이다.

"야. 아예 영원히 잠들지 그랬냐?"

세리가 초췌한 몰골로 옆에서 빈정거렸다.

"으으. 너랑 말장난할 기분이 아냐. 당최 머리 통증이 안 가신다. 나 얼마나 잤냐?"

"3일은 내리 잤어."

"아아. 그렇군."

"아아. 그렇군? 혼자 태평하네?"

세리가 빈정거렸다.

그놈의 성깔은….

그나저나 은지 누나, 냉철이, 엘리, 상경이 등 모두 잘 지내고 있을까?

그나마 뒤탈이 덜 한 권능을 써서 살았다. 세리를 바라보니 안 그래도 마른 체형이 더욱 앙상해져 보기 안쓰러웠다.

뭐.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너 나한테 또 히스토리아 썼냐?"

"미쳤냐? 그거 쓸 힘이 어딨어?"

"또 옛날 과거가 보였어. 네 할아버지를 봤어."

"뭐? 뭐라는데!"

세리가 다급하게 보챘다.

그녀의 힘을 얻어서 본 건지라 대충 간략하게 알려주었다.

"얼씨구 그냥 아주 개꿈을 꾸셨네. 우리 할아버지가 알카에다와 탈레반이랑 손잡고 국제 테러를 벌였다고?"

"야. 난들 어떻게 아냐? 네 권능으로 보여준 걸 그대로 말해줬을 뿐이라고.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마. 야. 근데. 너?"

가만 보니 세리의 상태가 이상하다.

"조세리. 왜 이리 다크서클이 심해? 설마 잠을 안 잔 거야?"

세리의 퀴퀴한 눈동자와 핼쑥한 몰골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내가 뚫어지게 바라보자 그녀는 민망한 듯 고개를 돌렸다.

"시. 신경 꺼."

"좀 자. 버티지 말고."

수면 부족은 신경과민의 원인이다.

"신경 끄라니까!"

어우. 저놈의 성질. 조필광을 빼다 닮았다. 바락바락 대드는 그녀를 보니 힘이 더욱 빠진다.

그래. 뭐 좋다고 신경 쓰냐?

우린 어색한 침묵의 숲을 거닐었다. 역시나 아직 조금 더 자야 할 것 같다. 울퉁불퉁한 바닥에 몸을 눕혔다.

호텔의 침대가 그립다.

"야. 나 잔다."

세리가 아득바득 이를 갈았다.

"야! 또 자? 자지 마! 나 배고프다고!"

"너도 좀 자! 왜 잠을 안 자! 자면 죽냐?"

그녀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이익.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뭐? 무슨 말이야?"

"됐어! 자기나 해!"

잠시 후,

내가 깨어난 것은 다름 아닌 한 여자의 끊어질 듯한 비명 때문이었다.

"으아아악!"

처음엔 마물이 덮친 줄 알고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조세리였다. 그녀는 잠꼬대치고는 목청이 떠나갈 듯 비명을 질렀다.

철썩~

"야. 잠꼬대 그만하고 일어나."

사심을 담아 따귀를 때렸다.

강도를 높였다.

철썩~ 철썩~

"으아아악! 살려줘! 제발! 흑흑. 살려주세요."

뭔가 이상했다.

창세삼정의 원기(元氣)를 조심스레 세리에게 불어넣었다. 세리의 몸과 창세삼정이 공명했다.

난 다시 꿈을 꾸었다.

아니 꿈이 아니었다.

하늘엔 역시나 붉은 달이다.

하나의 마을이 불타고 있었다. 우리가 살던 세계가 아니었다. 가지각색의 인간 군상들이 비명을 지르고 살려달라며 도주극을 펼쳤다.

"고성웅! 고성웅!"

고개를 돌려 확인하자,

세리는 거대한 뿔을 가진 괴물에게 잡혔다.

"저. 저건 뭐야?"

거대하다 못해 압도적인 크기였다. 고층 오피스텔 크기의 괴물이다. 그리고 괴물은 세리의 팔과 다리를 하나씩 뜯어 먹었다.

"아아악!"

"조세리!"

그녀가 초췌한 몰골로 날 봤다.

"살려줘!"

반혼검을 들고 구하려 했지만 다른 마물들이 길을 가로막았다. 하수인들 역시 강력한 공격을 자랑했다.

그러는 사이 마물은 세리의 몸통과 머리를 먹었다.

"끼아아아아악!"

"안 돼!"

우린 동시에 눈을 떴다.

"조세리. 이. 이거 뭐야?"

"허억… 허억…."

그녀는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방금의 충격에 벗어나지 못했던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몸을 숙였다. 그리곤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아악!"

"조세리! 괜찮아?!"

그녀는 혼절이라도 할 듯 미쳐서 계속 비명을 질렀다. 난 그녀를 끌어안았다.

내 품 안에서 몸을 바들바들 떨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흑. 흑. 왜! 왜 나한테만 이런 저주가 걸린 건데! 대체 왜!"

"언제부터 그랬어?"

"어렸을 적 할아버지가 부모님이랑 날 데리고 중동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어. 그 이후론 기억이 안 나. 그렇지만 저주에 걸렸다는 건 확실해."

난 그녀의 말을 되물었다.

"기억은 나지 않는데 저주에 걸렸다는 건 확실하다고?"

"그래. 애매모호 하지만 확실해. 그 후, 밤에 눈감지 않으려 안 해본 게 없었어. 그 결과 바이올린을 켜면 그나마 악몽을 덜 꾸더라고. 음악 따윈 좋아하지도 않았어. 그냥 내가 살려고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거야. 웃기게도 몇 년이 지나니 사람들이 최연소 콩쿠르 3대 우승자라며 치켜세워줬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어. 내가 정말 원하는 건 악몽을 깨는 것이었거든."

조세리의 끔찍한 악몽이 밝혀졌다. 난 그녀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십간령이랑 대화하는 걸 몰래 엿들은 적이 있었어. 모니석이란 게 있으면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대. 그 어떤 병이라도 말이야."

"모니석(牟尼石)."

난 그녀의 말을 따라 했다.

그 만병통치약을 십간령인 대나무 검선 독선의 손에 들어갔다. 십간령 우두머리인 조필광에게 바쳤겠지.

잠깐?! 그러면 당연히 세리의 병을 고쳤어야 하는 거 아냐?

내 속도 모르고 세리가 말했다.

"그 돌은 고대 신들의 힘이 깃들었대. 신의 원석에 가까운 돌이라고 까지라고 하는 것밖에 못 들었어."

난 그녀의 말을 곱씹으며 대꾸했다.

"원석에 가깝다? 그럼 원석은 아니란 소리네. 원석은 어디에 있는데?"

"캐묻지 마. 더는 나도 몰라."

꽤 흥미진진한 정보를 전해 들을 즈음이었다.

"조세리 쉿. 누가 온다."

"뭐? 이런!"

세리를 잡고 큼직한 바위 뒤로 냉큼 숨었다.

저벅. 저벅.

우리를 향한 짧은 보폭의 걸음에선 악취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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