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헌터사관학교 (6)
생도들은 복창과 함께 우르르 날 향해 모여들었다. 암탉을 따르는 병아리마냥 눈동자가 초롱초롱하다.
말 잘 듣네. 아인 몇 마리가 호시탐탐 내 뒤를 얼쩡거렸다. 모기가 엥엥거리는 것 같이 거슬린다.
"각 조장은 실시간 인원 파악에 차질이 없도록. 불미스런 사고라도 생기면 조장이 전부 책임진다. 알겠나?"
"네? 네넷! 알겠습니다."
"예썰!"
"하잇! 알겠스무리다!"
"지금부터 아인 공략법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도록 하마."
꿀꺽, 하고 침을 삼키며 내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강남 일타 강사 따윈 비교할 수도 없는 현장의 생생한 공략법이다. 그것도 목숨을 건 실전을 앞두고 말이다. 자칫 중요한 부분을 놓쳤다간 황천길이 될 수도 있었기에 생도들의 귀가 실룩이는 게 눈에 선했다. 레드 게이트의 아인 공략법에 말하려던 찰나,
- 우끼기!
"성웅 님! 뒤에!"
"성웅 센세! 위험하무리다!"
일장 연설을 시작하기 전, 기회를 보던 아인 무리가 내 후면을 향해 달려들었다. 수풀 속에 몸을 잔뜩 웅크렸다가 동시다발적으로 습격했다. 날 무리의 우두머리라 점찍었다. 즉, 나만 죽이면 남은 생도들은 맛있는 식사가 된다는 걸 알았다. 두고두고 아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피식자 레드 게이트 야수의 본능.
시도는 좋았다.
근데 어쩌나?
상대가 나다.
어렸을 때 그만큼 패줘도 학습 능력이 발전하질 않는다. 아무리 야수지만 오답 노트라도 만들어 주고 싶다.
"선배님! 위험해요!"
일촉즉발의 상황에도 난 한숨을 푹 쉬었다. 일촉즉발이란 어디까지나 생도나 마물에게만 해당되는 거지. 난 굳이 보지 않아도 놈이 뒤에서 무얼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 끼아아아아!
오랑우탄 같은 아인의 입가가 늘어졌다. 이쯤 되면 날 죽일 수 있으리라 확신했을 거다.
'어디 한번 써볼까?'
법현 대사께 금강봉을 하사받고 일주일 동안 새로운 봉법을 창안했다. 그리고 완성시켰다.
이실직고하자면 창안은 아니고 응용이다. 검법을 몽둥이에 접목시킨 오묘하고도 파괴력 넘치는 무공!
이름하여,
"유운봉법 승룡와운."
주변에 구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 우끼?
시야를 방해받은 아인들이 허공에 삽질을 했다. 놈들은 구름 속에 갇혔으며,
- 우끼. 끼. 끼! 끼아악!
핏빛의 신수(神獸)한 마리가 나타났다. 아인들이 혼비백산하며 달아나려 했지만 승룡와운에 갇힌 이들은 결코 달아날 수 없다.
- 크르르르.
적룡(赤龍)이 고개를 내밀어 나선형으로 나아가며 이빨을 들이밀었다.
드르륵, 콰직직.
- 꺅! 꺅!
스파이럴로 마구 회전한 붉은 용이 미친 듯 구름을 활보하며 아인의 몸뚱어리를 짓이겼다.
아인들은 용을 보자마자 싸울 의지를 잃어버렸다. 피식자들은 사냥 본능보다 생존 본능이 앞선다.
- 끼끼끼!
아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냅다 도망쳤다. 그러나 도망칠 수 없다. 한낱 레드 게이트의 마물 따위가 피할 수 있는 무공이 아니다.
- 크와아앙!
적룡이 입을 벌리고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몽둥이는 베는 것이 아니다. 죽도록 패는 것이다.
콰직. 우드득. 뿌드득!
- 꺅! 끼야야약!
구름 속에 가두고 사정없이 격살시켰다. 아인의 머리통이 행사장 폭죽처럼 터졌다. 선혈이 사방에 튀었다. 그야말로 피바다가 형성되었다. 보다 못한 생도들은 눈을 감고 돌렸다.
"우웩!"
"등 좀 두들겨 줘. 어제 먹은 것까지 올라와."
"우웨에엑! 나 돌아갈래~"
엎드려 구토하는 놈도 수두룩했다. 교육 자료용으로만 봐왔던 살육은 막상 닥치니 남달랐다. 혈향이 들끓어 올랐고 역겨웠으며 유사 인종의 하얀 뼈와 내장들이 배 밖으로 튀어나와 꿈틀대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이게 바로 현장이다.
탁상에 앉아 생도끼리 깔깔거리며 한가로이 야수 해부 실습은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어. 어. 어…."
바지에 오줌을 싼 생도도 있었다. 이 녀석들은 뭐만 하면 야뇨증이냐.
- 꺅. 끼야아아아악!
비명이 퇴장하자 초록의 들판은 붉은 바다가 되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수십 마리의 원숭이들의 사체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대략 오십 마리쯤 된다.
개활지에 침범한 아인 전원 몰살시켰다. 물론 곱게 죽은 놈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창세삼정의 공력을 금강봉에 집어넣으니 내가 써도 좀 잔인하긴 하다. 이렇게까지 파괴력이 좋을 줄 몰랐다. 늘 느끼는 거지만 보패의 성능은 확실하다.
그리고,
"X발. 개쩐다."
"오늘부로 성웅이 형 팬클럽 할래."
"서, 성웅. 오, 오라버니. 어떡하죠? 나 오라버니한테 시집가고 싶어졌어요."
"엉엉. 너무 멋져! 압도적이야!"
"스테끼! 사스가 SSS 헌터…."
팬클럽이 늘어났다.
무력이 압도적인 수준이 아니라 길 걷다가 바퀴벌레를 잡은 수준으로 보였다.
사람은 못된 습성이 하나 있다.
남의 떡이 커 보이고, 남이 하는 건 쉽게 보인다.
- 우끼기!
"쪼, 쫓자! 지금 아인이 잔뜩 쫄았잖아!"
"별것 없네! 밀림으로 들어가자고!"
"맞아! 싸움은 기세라고!"
싸움은 기세라니.
반은 맞는 말이고,
반은 미친 말이다.
죽고 싶어 환장하면 달려들어도 된다.
왜냐하면,
아인은 도망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겁대가리를 집에 두고 온 놈들에게 내가 소리쳤다.
"죽고 싶으면 쫓아가라."
"네?"
"으힉!"
소리에 일부러 공력을 담았다. 혈기 넘치는 생도들은 좋은 말로 해서 듣지 않는다.
- 우끼긱!
"개활지에서의 전투는 아인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아인은 주특기는 단 하나."
생도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높다란 나뭇가지를 공략해라. 아인은 나무를 타고 적을 깊은 밀림에 유인한 뒤, 혼란에 빠뜨려 기습적으로 낚아채는 것."
그리고 일 타의 못질.
"수업 시간에 배웠을 텐데?"
"……!"
"아, 맞아."
생도들은 그제야 사관학교 이론 수업 때 귀에 고름이 생길 정도로 숙지한 몬스터 도감을 머릿속에 상기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 우끼기! 키킥!
아인들은 보란 듯이 혀를 내밀고 조롱하고 있다. 어린아이 뒷바라지는 여기까지.
난 금강봉을 넣었다.
"자, 지금부터는 생도들이 직접 격살하도록. 한 조마다 최소 아인 세 마리씩은 필시 잡는다! 몇 마리?"
"세, 세… 마리나?"
"안 들린다! 몇 마리?!"
"세, 세, 세 마릿!"
"투입!"
나의 외침에도 대개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일어나지 못했다.
"이 새끼들이…."
이들은 헌터가 될 자격이 없다. 본인 목숨뿐만 아니라 나중에 레이드에 뛰어들게 되면 동료들 목숨까지 앗아갈 팔자다.
비정하고 냉혹하지만 여기서 싹을 잘라야 사망률을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다.
"1분 준다. 숲속으로 가지 못한 자는 유급이 아니라 즉각 퇴교 조치다. 이상."
최후통첩에 생도들 절반이 자리를 일으켜 울며 겨자 먹기로 병장기를 쥐었다. 억지로 등 떠미는 격이지만 표정 관리가 하나도 안 된다.
생도들은 뼈저리게 깨달았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걸 말이다. 책상에 앉아 붓을 잡고 적당한 인생에 타협하는 게 대다수의 선택이다. 세상만사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여기서 병장기를 못 쥐고 벌벌 떠는 놈들은 최소한 헌터 현장직은 되지 못한다. 아니. 그럴 자격이 없다. 헌터란 애초에 목숨을 내놓고 하는 직업이다. 기존의 도덕과 윤리는 필요 없다. 실력과 본능을 믿어야 하는 직업이 헌터다.
무기를 손에 쥐었지만 다들 겁에 질려있다. 이대로 생도들을 숲에 넣었다간 몇 명은 반드시 죽는다.
결국에 나 혼자 잡아야 하나?
금강봉이 아니라, 반혼검에 손을 갖다 대려는 순간,
우렁찬 외침이 생도들을 휘감았다.
"코노 빠가야로!(바보 자식들!)"
이 한마디에 좌중은 전부 한 소년에게 향했다. 나와 잠깐 대련했던 7조의 슌스케란 일본 꼬맹이다.
카타나를 직각으로 세우고 가슴 벅찬 표정을 지었다.
"7조의 조장인 와타시! 쿄우까라 환상적인 레이드를 할 것이무니다!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악의 세력들로부터 내 나라와 내 백성들을 지킬 것이무니다! 7조는 와타시! 슌스케를 따르무리라!"
가슴 벅찬 열정에 7조의 녀석들은 깊게 감명받았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라저. 보스!"
"오오! 아루겠다!"
"응. 슌스케! 듬직하다!"
"가서 원숭이 나부랭이들을 해치우자고!"
"우오오오! 돌격!"
"가즈아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넘어서는 것. 그게 바로 헌터의 시작인 것이다.
다른 조들도 슌스케의 연설에 감동을 받았는지 병장기를 움켜쥐는 소리가 남달랐다. 눈빛이 번들거렸다.
약하면 잡아먹힌다. 약육강식의 생태계를 받아들인 어린 생도들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특히나 슌스케는 의협심인지 용기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눈빛에 안광이 들끓었다. 마치 레드 게이트에 들어가길 애타게 기다린 사람처럼 말이다.
선두에 선 나는 제일 높은 나무 꼭대기로 올라갔다. 위험한 조들이 보이면 살포시 도와만 줄 요량이다. 7조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 없었다.
"아인 포위 브하이트!(완료!)"
거구의 독일 소년 베르너가 덩치와 다르게 나무 위로 날렵하게 올라갔다. 쌍검을 내지르며 아인의 퇴로를 봉쇄했다.
"미연!"
"오케이!"
손발이 척척 맞았다.
촤라락~
최미연이 활시위를 놓자, 공기를 찢는 파공음이 나뭇잎을 베며 날아왔다. 뾰족한 화살촉을 본 아인이 다급하게 피했으나,
와직~
목적은 아인이 아니라 녀석이 매달리던 나뭇가지였다.
- 끼아아아!
"제법인데?"
나뭇가지가 부서지며 아인도 덩달아 나무에서 떨어졌다.
쿵~
- 끼아아.
원숭이가 추락의 고통에 몸부림쳤다. 싸늘한 눈매로 지켜본 슌스케가 침착하게 눈을 한번 감았다가 떴다.
"사무라이노 혼(魂)!"
슌스케의 칼집에서 쇠붙이가 반짝임과 동시에 급발진을 했다. 나도 깜짝 놀랐다.
'저, 저 무공은?'
- 끼아아악!
눈 깜짝할 새, 아인의 가슴팍에서 피가 튀겼다.
"호오~ 슌스케라고 했나? 저 나이에 발도술을 익혔어?"
발도술은 도법 중에서 중급 이상의 내공을 쌓은 자만 그 진가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무릎을 오므리며 응축시킨 공력을 폭발적으로 터뜨리는 신법도 요구되었기에 난 더욱 감탄했다.
꽤 재능이 있는 녀석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최미연이란 애는 뭔가 수상하다. 생도들은 졸업하고 협회든 헌터국이든 주특기를 받기 전까지 아수라 마석을 금지시킨다. 근데 자꾸 저 미연이란 애한테서 알 수 없는 기운이 샘솟고 있다.
마석은 아닌데 내재된 원천적인 신성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법현 대사에게서 말로만 듣던 그건가?
'에이, 설마. 아니겠지. 개나 소나 주는 것도 아니고….'
혼자 애써 고개를 돌리는 사이 7조들은 일사불란하게 아인 한 마리를 구석으로 몰았다.
슌스케가 명령했다.
"철수! 마무리!"
"맡겨두라고! 대장!"
묵직한 해머를 든 철수가 갈비뼈가 훤히 드러나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인의 머리통을 으깨버렸다.
콰직~
철수의 얼굴에 피가 낭자하게 사방에 튀었다. 아인의 몸이 파르르 떨더니 멈추었다.
'자식들이 팀플레이가 초급 헌터는 되겠는데?'
내심 놀라웠다.
"으아아아~ 피가 튀었어!"
철수가 피 묻은 손으로 얼굴을 닦아버리자 귀신같이 변해버렸다. 미연이가 철수를 보고 호들갑을 떨었다.
"꺄아악! 귀신이야!"
"……."
아직 애는 애다.
그러나 첫 레이드치고 부상 없이 무난하게 마물을 격살시킨 건 꽤 좋은 팀플레이라는 걸 증명했다.
최미연이 팔짝 뛰며 좋아했다.
"꺄악! 슌스케! 우리가 잡았어!"
데굴데굴.
죽은 아인의 가슴팍에 구슬 같은 돌멩이가 튀어나왔다.
"슈, 슌스케. 이게 혹시?"
"코. 코레와 마석!"
슌스케 역시 주체못할 격정에 눈망울이 글썽였다. 아수라 마석도 아닌데 해맑게 좋아한다.
"꺄아아~ 짱이야! 짱!"
"야호~ 우리가 해냈다고!"
7조원들이 서로를 얼싸안고 기쁨에 취했다. 그런 7조의 환상적인 콤비 플레이를 본 다른 조들 또한 서둘러 아인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별것 없네! 그냥 원숭이잖아!"
"할 수 있어어어~"
라며, 따라 했지만.
- 우끼기!
"제. 젠장!"
나뭇가지도 맞추지 못하고, 높은 위치를 점한 아인들이 던지는 돌멩이에 부상을 입기도 했다.
퍽~ 퍽~
"으악!"
"……."
심지어 아인의 긴 팔에 잡혀서 죽을 뻔한 생도도 있었지만,
"우아앙~ 살려줘! 살려줘!"
"……."
서겅.
- 끼아악.
일촉즉발마다 내가 구해줘서 모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생도들은 손이 참 많이 간다. 의욕과 실력이 비례하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