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위대한 실패작들 (3)
퍼퍼퍼퍽!
"깨개개갱!"
"끄허허어어엉!"
크리터 두 마리의 우렁찬 비명이 숲속을 가득 메웠다.
퍽! 쿠직! 퍼퍼퍽!
죽지 않을 만큼, 최대한 고통스럽게 고기 다지듯 쥐어팼다. 하운드와 자이언트는 간헐적으로 경련을 부르르 일으켰다.
"으어어어."
"꾸에에에."
다진고기를 만드는 건 깨나 폭력적인 작업이 수반된다.
퍼퍼퍽!
사람을 죽이는 데 죄책감은커녕 오히려 쾌락과 안위만을 느끼는 새끼들에게 자비는 필요 없다. 최미연은 보다 못해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슌스케가 급하게 날 보며,
"사부! 하늘을 보십시오!"
푸드득, 하고 소리가 들렸다.
미풍이 불었다. 흩날린 잡초가 머리칼에 달라붙었다. 돌처럼 굳어버린 대장 윙거가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다.
결국, 스킨의 선택이 옳았다.
어떤 이유에선지 처음부터 날 경계했으며 비장의 수가 막히자 곧장 도주했다.
거만을 부리던 윙거도 결국엔 마찬가지였다. 비장의 수고 뭐고 애초부터 내게 갖고 놀렸다는 사실에 꽤 충격을 받았다. 급기야 처참하게 몽둥이로 찜질을 당하는 동료를 대놓고 버리는 선택을 했다.
아아, 정말이지.
크리터는 동료애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이기적인 놈들이다. 아니. 애초부터 동료라고 생각도 안 했을 거다. 실험용 쥐들끼리 일시적으로 뭉친 다.
난 녀석들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레이드를 뛰러 온 헌터와 약자 그리고 공무원를 죽이고 피를 뽑으며, 야수와 인간을 도축했다. 능지처참도 아까울 정도다. 그렇다고 도망치는 윙거를 무시하고 저 치들을 한가하게 두들겨 팰 수는 없다.
폭력이 주목적이 아니다.
포트리스란 곳 안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이 자식들의 꼴이 이렇게 된 걸까?
놓칠 수 없다.
빈사 상태가 된 하운드와 자이언트를 가리키며,
"슌스케, 최미연."
"하잇. 사부."
"네? 넵! 선배님!"
최미연은 광기로 얼룩진 내 몰골을 보더니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너희 얘들 잘 감시하고 있어. 여차하면 죽여버리고! 알겠지?!"
만약의 경우에 스킨과 저 윙거를 놓치면 이 녀석들을 심문해야 한다.
하운드와 자이언트는 죽지는 않았지만 응급 처치를 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혹여나 기적적으로 일어나더라도 슌스케가 있으니 별일은 없을 것이다.
"하잇! 맡겨만 두십시오!"
"선배님! 어디 가세요?"
달빛을 받으며 검은 날개를 펼친 놈을 노려봤다.
"저 새끼 잡아야지."
"서, 선배님. 상대는 공중을 나는 녀석이라고요. 아무리 SSS급일지라도 공중을 나는 녀석은 무리예요."
말마따나 놈의 날갯짓은 생각 이상으로 높았고 빨랐다. 즉, 어서 쫓아가야 했다. 내겐 개 같은 후각이 있기에 놓칠 리는 없다.
그러나 먼저 도망친 도축사 스킨은 화공약품을 온몸에 덕지덕지 발랐는지 냄새를 지워버렸다.
뭐, 일단은 윙거를 먼저 조질 거다.
"그럼 간다. 뒤 좀 부탁해."
무릎을 굽히고 똥 누는 자세를 취했다.
"선배님?"
"사부?"
미연과 슌스케는 내가 지금 달려가는 것도 아니고 운판교도 쓰지 않고, 뭘 하는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지면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하며 형언할 수 없는 막대한 공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우르릉.
"너희 물러서."
"……!"
"……!"
[창세삼정! 한번 날자!]
[끼아아아!]
그오오오.
천화난추의 경지다. 창세진경에서 마르고 닳도록 외웠던 구결이 있다. 운판교를 쓰지 않아도 하늘을 걸을 수 있는 무공.
허공답보(虛空踏步).
콰앙!
공기가 찢어지는 파공음이 맹렬하게 울리고 하늘로 솟구쳤다.
쿠우우우웅.
내가 도약한 땅거죽은 침하 되었다. 하늘을 초고속 제트기처럼 날아갔다.
도약의 후폭풍은 거셌다.
"꺄아악!"
최미연과 슌스케가 튕겨 나갔다.
그러게 물러서라니까.
한편,
퍼드득. 퍼드득.
달빛을 받아 홀로 유유히 하늘을 유영하는 윙거는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났노라 확신을 했나 보다.
"X발. 뭐 저딴 괴물 같은 새끼가 다 있어."
윙거는 구름이 손에 잡힐 정도의 고도까지 솟아올라 날갯짓을 했다. 윙거는 전투기라도 오지 않는 이상 아무도 자신을 잡을 수 없으리라 확신했다. 물론 게이트 안에 전투기가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때였다.
"이 새끼야아아아! 거기서어어!"
저 아래서 낯선 물체가 하나 날아왔다. 처음엔 작게 보이던 물체는 점차 커져만 갔다.
좌측 허리춤엔 몽둥이, 우측 허리춤엔 붉은 검이 보였다.
아니다. 결코 그자일 리가 없다.
여긴 높고 높은 푸른 상공이다.
SSS급의 할아버지가 와도 윙거 자신을 절대 못 잡노라 확신했다.
윙거는 스스로가 너무 쫀 나머지 헛것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헛것이 아니었으며 어마무시한 속도로 하늘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기괴한 자를 보고선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고, 고성웅! 무머무머뭐야!"
윙거는 헛숨을 들이켰다. 도무지 작금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환하게 비추는 달빛 아래,
하늘로 힘차게 도약한 난 윙거의 앞을 막아섰다.
파다닥. 파다닥.
검은 날개는 허우적거리며 지친 기색을 토해냈다. 비행이 아니라 제 자리에서 날갯짓을 하는 건 보통의 체력이 수반되는 게 아니다.
윙거 면전에서 내가 인사했다.
"안녕. X새끼야."
"뜨헉!"
이 새끼는 금강봉도 아까운 새끼다. 손을 들어 올렸다. 번쩍, 하고 손바닥을 활짝 펴서 따귀를 올려붙였다.
쫘악~
"끄아아악!"
하늘에서 따귀를 맞은 놈이 아마 장대한 지구의 역사 이래로 몇 명이나 될까?
"끄어어."
"공중에서 먼지 나도록 두들겨 맞자고."
퍼퍼퍼퍽!
뇌가 울리는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을 거다. 윙거의 목젖, 명치를 비롯해 몸 곳곳을 흠칫 두들겨 팼다. 놈은 얼굴을 양팔로 에워싼 채 꼼짝없이 걷어 패고, 걷어차는 대로 맞고 있었다.
퍽퍽!
최대한 아프도록 말이다. 죽어서도 잊지 못하게 때려줬다.
"크아아악! 아악! 켁!"
호흡에 이상이 생긴 윙거는 눈알에 충혈될 정도로 고통에 신음했다. 허리를 구부려 헛구역질을 하는 머리채를 잡아들었다.
철썩~ 철썩~
따귀를 연신 후려쳤다. 따귀가 째지고 치아가 옥수수 먹듯 떨어졌다. 새끼가 미친 듯 발광한다.
"아아악! 크악!"
악랄하고 잔혹한 손속이었다.
처어어얼써어억~
따귀를 세게 후려치자 윙거는 혼절하기 직전이 되었다.
"자, 이제 질문을 하지."
"꺼어어.꺽.꺽."
윙거의 입에서 부러진 치아가 옥수수 털 듯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원래도 흉측했지만 지금은 지점토로 던져 나온 면상이다.
당연히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내가 손을 들어 올리자, 놈은 트라우마가 도졌다.
"뭐든 말할 테니 사사사살려주십시오!"
존댓말을 한다. 비굴함이 기특할 지경이다.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퉁~ 퉁~
난 발바닥으로 허공을 박차며 놈의 머리채를 끌고 천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높아도 너무 높다.
"이름."
"윙거입니다."
철썩.
"실명."
"까울~ 위, 위성수입니다!"
"위성수? 좋네. 부모님이 지어주신 좋은 이름 놔두고 왜 촌스럽게 닉네임을 부르는 거야? 엉?"
"으으, 황 박사 그 씹어먹을 새끼가 우리 이름을 일일이 외우기 귀찮다며, 저희에게 코드네임을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닉네임도 아니고, 코드네임이라.
썩을 크리터 주제 무슨 특수요원처럼 코드네임이야.
"황 박사는 누구야? 아까부터 신나게 떠들던데."
"그, 그 새끼는…."
'황 박사'란 말에 놈은 덜덜 떨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죽이고는 싶지만 두려운 존재.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차마 쉬 말할 수 없는 존재를 뜻한다.
그러나 내 알 바가 아니다.
남들 괴롭힐 때는 신나게 쾌락을 느끼더니 정작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다다르니 저렇게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다.
내 마음이 약해지기라도 할까 봐?
크리터를 잡으려면 크리터 보다 악랄해야 한다. 이 새끼들은 좋은 말로 해선 안 된다.
내가 녀석의 검은 날개를 잡았다.
"이 새끼가 누구 앞에서 간 봐?"
"아, 안 돼!"
우지지직.
"끄아아악!"
날개를 뜯어 버리자 등에 달린 날개뼈도 덩달아 돌출되었다. 피가 한 웅큼 터져 나왔다.
반대편 날개도 동일하게 뜯어 버리자 놈은 따라 하지도 못할 비명을 마구 질러댔다.
"아악. 제발 멈춰주십시오. 황 박사 그 새끼는 저희에게 ESC를 심은 새끼입니다."
ESC.
에테르 반도체 칩.
실마리를 드디어 잡았다.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으으으. 우린 황 박사의 지시에 따라 ESC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야수와 인간의 피와 시체를?"
"네네네. 그렇습니다."
"부패한 시체들도 많던데?"
"부부부패한 시신들도 나름의 용도가 있습니다."
대체 어디에 쓰는 거지?
부패한 시신을?
아니, 지금 그딴 거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아까 도망친 스킨이란 새끼."
"네? 네네네."
"그 새끼 이름 아냐?"
"예전에 들었는데 까먹었습니다. 경찰청 헌터국 소속이라고만 들었습니다."
"……!"
서, 설마.
"빨리 이름을 기억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손을 들어 올리자 윙거는 맞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며, 명길?…. 아아, 아닌데. 잠시만요. 때리지 마십시오. 아아! 기억났습니다!"
"뭐야?"
"김명일!"
"김명일이라고 했나? 확실해?"
"네네, 분명 확실합니다! 경찰청 헌터국 경위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고위 공무원에 여기에 왜 여기에 끌려 온 건지 저희도 다들 의아해했었기에 기억합니다."
찾았다.
김명일은 나의 무력과 위용을 눈앞에서 똑똑히 지켜봤다. 그래서 놈이 그렇게 조심했던 거군. 스킨, 아니 김명일은 포트리스로 간다고 했다.
"포트리스는 뭔가?"
"게이트 안의 요새입니다."
이계에 건축물을 지었다.
"포트리스의 위치는?"
"북서쪽으로 30km 떨어져 있습니다."
삐빅.
놈의 뇌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으허헉. 아, 안 돼."
윙거가 곧장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보였다. 포트리스의 정보에 대해 말하는 순간 놈의 뇌파에 저장된 ESC가 상호작용을 했나 보다. 미친 듯 몸을 파르르 떤다. 체내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모이기 시작했다.
'뭐지? 불길한데?'
내가 골똘히 머리를 굴리는 틈을 타, 윙거가 소매에 숨겨둔 주황색 알약을 하나 꺼내 먹어 버렸다. 날개도 뜯겨져 나간 마당에 놈이 해봤자 뭘 하겠냐.
"야. 뭐 하냐? 죽을래?"
"트랄라(Tralla)."
울랄라랑 룰루랄라는 들어봤어도 트랄라는 처음이다.
"뭔데 그게? 너무 아파서 진통제라도 먹어 버린 거야?"
놈은 공손하고 비굴한 표정에서 다시 거만해졌다.
"크크크. 야수계로 강제로 각성시켜주는 거지. 주황색은 오렌지 게이트의 힘을 발하는 거지."
"뭐, 뭣? 아수라 마석을 없이 그 약만 먹어도 야수가 될 수 있다고?"
인간의 기술은 탐욕과 욕망을 자양분 삼아 발전한다.
추르르륵.
놈의 형체 일부가 끈적끈적한 연체동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십여 개의 촉수가 솟아오르더니,
"어이, 고성웅이. 혼자 가니까 쓸쓸하니까 같이 가자고."
놈이 날 와락 끌어 앉아 버렸다. 난데없는 포옹에 적잖이 당황했다.
띠. 띠. 띠띠띠….
뇌에 심어진 ESC의 소리 간격이 짧아지고 커지고 있다.
"그리고 사관생도 꼬맹이 두 명 말이야. 아마 지금쯤 싸늘한 시체가 되었을 거다. 트랄라 급은 아니지만 온몸의 뼈가 부서져도 순간적으로 날뛸 수 있는 각성제를 가지고 있거든. 크크크."
"이, 이 새끼가!"
최미연과 슌스케가 위험하다.
아니. 그보다 날 묶고 있는 이것부터 빠져나가야 한다.
"크하하! 어림도 없다!"
"으아아아!"
완력으로 풀려고 했으나, 놈의 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괜히 김명일마저 제치고 두목이 된 게 아니었다. 공력을 불어넣어 서둘러 탈출해야 한다.
"크하하하! 소문에 네놈이 X신 새끼라고 소문이 났던데 사실이군!
놈은 광활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낯짝은 삶을 포기한 얼굴이다. 절망과 좌절이 공존한 윙거는 체내에 작동하는 ESC가 자신을 죽일 거라는 걸 알았다.
윙거 ESC를 감시하는 컴퓨터가 긴급 신호를 보냈을 것이고, 포트리스에서 기폭장치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을 거다.
"우리가 왜 크리터냐고? 최악의 상황에도 대비를 하기 때문이다."
놈은 이왕 죽게 된 마당이라 확신했던지,
"가는 길에 몇 개 좀 알려주지. 황 박사 이름은 황의소. 그 윗선엔 누가 있느냐? 바로! 조필…!"
금지된 단어를 말하려는 순간, 타이머고 도화선이고 뭐고 없었다.
쿠와아아앙!
즉각 터져버렸다.
끈끈한 몸에 묶인 나 역시 그 폭파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