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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인데 내공이 좀 많네요-120화 (120/200)

120화. 위대한 실패작들 (5)

덜덜덜,

슌스케는 부들거리는 팔을 부여잡고 허리를 숙였다. 손아귀가 찢어질 것만 같았다.

"으으윽."

하물며 자이언트는 맨손이다.

카타나를 맨손으로 격파시킨 자이언트의 손은 갈라지거나 금이 가기는커녕 달빛을 머금어 더욱 반짝거리는 상황까지 연출해 버렸다.

추우욱.

자이언트가 한쪽 눈이 꿰뚫려 뒤통수까지 뻗어 나온 화살촉을 빼냈다.

촤아아, 하고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으나 자이언트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야말로 엽기적인 놈이다. 아프기는커녕 슌스케를 향해 미소마저 보였다.

"크크, 가가감히, 이 몸과 저, 정면 대결이라니? 가가, 가소롭다 못해 웃기기까지 하구나."

정크 업까지 먹은 녀석이다.

엽기적인 행동에 슌스케는 절로 뒷걸음질 쳤다. 천재적인 포텐을 지닌 슌스케다. 그러나 포텐은 아직 터지지 않았다. 그의 현재 신분은 사관생도다. 헌터가 되기 위한 훈련생일 뿐이다.

또한 미성년자가 지닌 공력과 검기엔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반해, 산전수전 다 겪은 크리터의 완력과 노련미는 압도적이었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슌스케를 가만둘 리 없다.

콰앙! 쾅!

뭉툭한 흉기로 변한 주먹이 슌스케를 짓이기려 마구 휘둘렀다. 몇백 년은 머금은 고목이 부지깽이처럼 터져 나갔다. 슌스케는 피하기에만 급급했다. 사태는 암울해졌다.

"슌스케! 내가 도와줄게."

미연이 부랴부랴 활시위를 얼굴 옆까지 당겨 조준했으나, 하운드가 넋 놓고 구경만 했으랴?

밤은 야수의 시간이다.

사냥의 시간이 도래했으며, 잔뜩 웅크린 하운드가 몸을 펼쳤다.

"추에에엑~"

"꺄악!"

미연은 가까스로 피했으나 그녀의 유일한 무기인 롱보우가 파괴되었다. 그녀는 이제 맨 손이다.

"취췩. 이, 이년아. 네년은 이 오빠랑 놀아야겠다. 취취익."

맨손으로 크리터인 하운드와 대치라니? 미연은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했다.

"으으으으."

그런데 웬걸?

하운드가 뾰족한 발톱을 숨겼다.

"……?"

성큼성큼 미연을 향해 걸어오더니, 미연이의 얼굴을 내려쳤다. 어둑한 시야에 미연은 고스란히 맞아야만 했다.

"아악!"

미연은 두개골 안의 뇌척수액이 들끓듯 아팠다. 한쪽 귀가 앵앵거리며 제대로 들리지 않았으며, 외상성 뇌 질환을 앓는 사람처럼 그대로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입가에 피를 흘렸다. 미연이는 도망쳐 거리를 벌리려 했으나 애당초 무리였다.

어서 일어나야 했다.

그러나 두뇌의 충격에 한 살 난 아기처럼 뒤뚱거리다가 자빠졌다.

"추웩. 발악을 하는구나. 케케."

경험, 속도, 힘, 비겁함 그 무엇 하나 크리터를 능가할 만한 스탯 따위 없다.

미연은 뼈가 사무치도록 후회했다. 억울하고 분통해서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죽여 버릴걸! 물통이고 뭐고 롱보우로 머리통을 다 꿰뚫어야 했어! 슌스케와 성웅 선배님이 맞았어!'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추엑, 사관생도야. 이쁘장하게 생겨서 참 먹음직스럽게 생겼구나. 우헤헤!"

눈빛이 음흉하게 변했다.

하운드가 군침을 흘리며 미연이의 온몸을 변태같이 훑어보았다.

미연의 눈빛에 경멸과 혐오가 담겼다. 하운드는 사족보행이지만 성욕은 왕성했다.

사족보행의 하운드는 발정 난 수캐처럼 침을 질질 흘렸다. 저주 섞인 눈동자에선 신성한 기운이 감돌았다.

"하운드 씨. 저 절, 그런 더러운 눈으로 보지 마요."

"X년이 감히 오빠한테! 나도 한때 사지가 멀쩡한 인간이었다고!"

그 말은 스스로가 인간임을 부정했다. 누워있는 미연에게 발길질을 날렸다.

철썩~

"끼악!"

철썩! 철썩!

발정이 나버린 수캐가 된 하운드가 미연의 따귀를 좌우로 사정없이 후려쳤다.

"악! 악!"

열댓 방을 후려쳤을까?

풀썩, 하고 미연의 얼굴이 잔뜩 멍이 든 채 쓰러졌다. 코와 입에선 피가 잔뜩 흘러내렸다. 한쪽 눈은 제대로 뜨지도 못했다.

"추웨엑. 그러게 곱게 말할 때 쳐들었어야지."

수캐가 미연을 음흉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미연의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기 시작했다.

"으으. 더러운 새끼!"

점점 미연의 눈이 광기과 살육으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살기가 솟구칠수록 미연의 몸에 신성한 기운이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으흐흐흐. 어디 맛 좀 볼까?"

하운드가 한쪽 팔로만 미연의 양 손목을 움켜쥐었다. 미연의 양손은 봉쇄당했다. 슌스케는 저 멀리 자이언트에게 쫓기는 중인지라 미연의 상황을 알지 못했다.

할짝, 하운드의 누런 치아 사이, 더러운 혓바닥으로 미연의 목덜미를 핥았다.

"꺄아아악! 이 괴물 새끼야! 추잡한 혓바닥 잘라버리기 전에 치워!"

그러나 발악하는 미연은 오히려 하운드를 더 자극시켰다. 그가 남은 손으로 미연을 만지려던 순간,

"X발. X같은 실패작 새끼야."

"추웩? 시, 실패작?!"

미연의 입에 욕설이 튀어나왔다. 하운드는 이 어여쁜 소녀의 입에서 상스러운 욕이 튀어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나 보다.

파파팟!

동시에 미연의 몸이 번쩍이더니, 육체에서 영적인 존재가 튀어나왔다.

"……?"

엑토플라즘이 발현되었다.

* * *

'성웅 시주. 소승이 재밌는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오오! 법현 스님. 뭔데요?'

'볼 수 없고 먹지 못하는 마석이 있습니다.'

'에이~ 세상에 그런 마석이 어디 있어요?'

'게이트가 열리고 음양의 조화가 무너지는 세계가 도래하면, 이를 막기 위해 신앙심이 충만한 자들에게 신들의 거룩한 은총이 내려집니다.'

'그럼 신앙심이 가득한 자만 발현할 수 있는 건가요?'

'아뇨.'

'에에?'

'순결하고 고결한 신앙이 분노와 증오로 깃들어야 발현할 수 있지요. 신자의 몸에 각인된 마석이 눈을 떠 개화를 하게 되지요.'

'우오오! 그 마석을 뭐라고 부르나요?'

'신성계입니다. 모태 마석이 탑재되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지요. 놀랍지 않나요?'

'우와~ 완전 사기 캐릭 아닌가요?'

'하하하~ 대신 마구잡이로 쓸 수는 없고 극한의 절망과 분노를 수반해야 각성하게 됩니다. 아멘.'

'…아멘?'

'아미타불.'

* * *

투명한 영체가 미연의 몸에 영혼같이 떨어져 나왔다. 정체 모를 영체를 본 하운드의 안색이 시퍼렇게 붕 떴다.

야광봉처럼 어둠 속에 홀로 유유히 빛났다. 밝다 못해 빛이 날 정도로 눈부신 존재.

하나님의 기사.

전투의 여신. 발키리(Valkyrie)

크기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크기만 4m에 육박했다. 로봇이 있는 것만 같다. 투명한 발키리의 영체에서는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추추엑? 뭐뭐뭐야? 이 새끼는!"

당황한 하운드가 발톱을 세워 할퀴었다.

부웅~

그러나 웬걸?

발키리의 몸을 그대로 뚫고 지나갔다. 구름을 집으려는 듯 그저 허공에 삽질만 해댈 뿐이었다.

"추엑! 왜 안 맞아?!"

하운드의 안색이 구겨졌다. 슬슬 뭔가 수틀리고 있음을 느꼈다.

우우웅.

거구의 발키리가 팔을 위로 들자 삼지창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말없이 창을 하운드의 중요 부위에 갖다 꽂아 넣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고자가 된 하운드의 비명이 쩌렁쩌렁 울렸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놈의 복부에 발을 올렸다. 그리곤 하운드의 다리를 거머쥐더니,

"야야야. 너너, 멈춰! 아악! 추웩!"

쭈욱~, 그대로 찢어 버렸다.

쿠웅, 하고 놈의 다리 하나가 고목에 부딪혔다.

"추엑! 으아아악! 아악!"

이제 시작이다.

발키리는 놈의 남은 다리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그 모습은 가히 전위적이고 기괴했다.

우지직. 뚝뚝.

마른오징어 다리 뜯듯 힘없이 육체가 분해되었다. 곳곳에 피가 분수처럼 새어 나왔다.

"크악! 아아악! 아악!"

사지(四肢) 제거를 끝냈다.

초점이 없는 발키리가 놈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주먹을 꾹 쥐어 어깨 뒤로 젖혔다. 발키리의 주먹에 신성한 힘이 실렸다. 하운드는 죽음을 예감했다.

"추웩. 우린 위대한 실패작…."

신성 발키리에게 자비는 없다.

젖힌 주먹을 앞으로 찔렀다. 콰직, 하고 머리가 수박같이 터져버렸다.

실로 잔인하게 짝이 없다.

발키리는 미연을 응시하더니 달을 바라보았다. 잿빛 하늘의 삭월은 분한지 구름 속으로 스며들었다. 미연은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누워 고이 잠들었을 뿐이다.

한편,

슌스케를 쫓던 자이언트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하운드가 빛이 나는 괴생명체에게 무력하게 능지처참당하는 걸 보더니,

"이, 이런 씻씨시팔! 저저저, 유령 새새새새끼는 뭐야! 쪽바리 새끼. 넌 나중에 상대해 주마!"

하운드가 육중한 발걸음을 돌려 도망쳤다.

"코노! 빠가야로! 도망가지 마라!"

슌스케의 안광이 빛을 발했다. 반 토막 난 카타나를 들고 자이언트에게 돌진했다.

"이, 이 새끼가 내가 개X밥으로 보이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도망치기만 바빴던 꼬맹이가 부랴부랴 쫓아오자 자이언트는 슌스케만 죽이고 포트리스로 도망갈 요량이었다.

거기까지만 몸을 피신시키면 살 수 있다. 몸을 비틀어 슌스케를 향해 주먹을 내뻗으려는 순간,

"죽어! 이 쪼쪼, 쪽바리 새끼야!"

순간, 슌스케가 사라졌다.

"……?"

속도완 상관이 없다. 아무리 빨라도 잔상이 보이는 법인데 이 사관생도 일본인은 그 잔상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빠르게 움직이는 게 아니라,

술법(術法)이었으니까.

그리고 자이언트의 좌측 편에 나타난 슌스케가 토막 난 카타나로 베었다.

멸살수라정(滅殺修羅釘).

슌스케의 한쪽 눈동자가 심해의 암흑처럼 검푸르게 변하며 육체에 빛이 났다.

"어어어딜!"

자이언트의 팔뚝은 아까보다 더욱 강력한 에너지가 분출됐다. 아까처럼 슌스케의 검과 정면충돌했다.

댕겅~

정면충돌 후, 잡초 위에 던져진 것은,

"으아아! 아악, 내 팔!"

자이언트의 팔이었다.

일본 모모야마 시대의 유명한 암살가문, 미시마.

가문 특유의 내공심법은 익히기도 힘들어 현대에 와서는 유야무야해졌다.

하지만 슌스케의 손끝에서 되살아났다.

"크어억!"

슌스케가 카타나 날을 시퍼렇게 세우며 녀석의 허리를 베어버렸다.

"크어어억!"

창자 및 내장기관들이 시뻘건 죽들이 되어 밖으로 나왔다.

"으아아악! 이, 이봐! 사, 살려줘!"

크리터는 데굴데굴 뒹굴며 고통을 호소했다. 슌스케가 토막 난 카타나로 자이언트의 남은 팔의 관절을 내리찍었다.

"아아악!"

자이언트는 양팔이 없는 셈이나 다름없었다. 카타나를 꽂아 넣은 슌스케는 손날에 빛을 발했다.

"시네(죽어)!"

외눈 묵빛의 눈동자에 광기가 서렸다. 손이 드릴처럼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자이언트의 가슴팍으로 돌진했다.

콰지지지직!

"크어어어억! 으학 아악!"

가슴팍으로 스며든 손에서 장기를 하나 꺼냈다.

심장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인간의 심장은 참 작다. 하물며 저 산만 한 덩치의 자이언트의 심장은 그저 성인 주먹의 크기다. 심장에 연결된 동맥이 따라 나왔다.

두근두근, 놈은 여전히 살아있는지 밖으로 배출된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제제제발 부탁이야. 사사살려줘."

제아무리 정크 업을 먹은 자일지라도 심장이 파괴되면 죽는다.

심연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변했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슌스케가 주먹을 쥐었다.

뿌직, 즙 짜는 소리와 함께 심장에 있던 피들이 사방으로 도주했다.

"꺼어억."

자이언트가 단말마의 음을 남기며 눈을 감았다.

"아아아…."

슌스케는 황홀한 눈망울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더니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살수 가문의 비전이다.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놈이 쓰니 몸에 무리가 온 것은 당연했다.

슌스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도 없었다. 처음으로 마물을 격살시키고 생에 첫 살인까지 저질렀다.

첫 살인의 기분은 생각만큼 죄책감이 드는 것도 아니었고 찜찜하지도 않았다. 어디 생사람 잡은 것도 아니었다. 백번 죽어 마땅할 크리터를 처단한 것이었다.

법적으로도 무죄다. 그렇기에 슌스케는 담담했다.

'미연은?'

고개를 돌렸으나 수풀 우거진 곳에 떨어진 미연은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빛이 번쩍이며 몇 차례 비명이 들렸으나, 지금은 침묵 그 자체다.

걱정되는 마음에 어서 가서 생사를 확인하려 했으나 몸은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육체와 심적인 피로는 극한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슌스케는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자고 싶었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하자 시야가 흐려졌다.

피슈웅.

흐릿한 안구를 뚫고 밤하늘에 별똥별 하나가 떨어지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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