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오! 나의 여신님 (2)
"으이? 이게 인조인간이라고?"
스스로를 나타라고 밝힌 녀석은 얼핏 보나 자세히 보나 완벽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평범한 중학생 나이로 보인다. 이런 미성숙한 육신으로 싸운다고?
미심쩍은 상경의 눈빛을 감지한 나타가 불쾌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에에? 뚱보. 내가 못마땅한가 봐?"
윙, 철컥.
나타의 체내에 몇 차례 금속음이 조립하는 소리가 들렸다. 발바닥을 인라인스케이트 바퀴로 변형시킨 그는,
부와아앙!
눈 깜짝할 새 상경에게 다가왔다.
스윽.
"으아악!"
상경은 간담이 서늘했다. 팔을 낫으로 변형시켜 상경의 목덜미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경은 너무 놀라 실금을 할 뻔했다.
"어이, 뚱보. 내가 우스워 보여?"
나타는 순진무구한 개구쟁이에서 연쇄살인마로 순식간에 변모했다.
정적이 감돌았다.
"껄걸, 나타야 장난이 심하구나."
황의소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나타를 말렸다.
"살육은 이따가 실컷 할 터인데 뭘 그리 서두르느냐?"
"으, 응? 무슨 말이냐능?"
황의소는 잠시 후, 송현사의 스님들을 죽여버리고 백마침을 얻으러 갈 것이라고 밝혔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세상을 구한 영웅들을? 왜? 어째서?
머릿속이 뒤죽박죽 얽혔다.
그때였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빛 머리칼의 남자가 들어오더니 무뚝뚝한 어조로,
"이사장님 오십니다."
"이사장님?"
"우리 회사의 대표이니라."
상경이 되묻자, 황의소가 답했다.
드디어 대표의 얼굴을 본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름도 모르는 대표.
상경에게 마석을 준 사람.
치잉.
문이 열리고 중년과 노년의 경계선을 아슬하게 걸친 슈트 차림의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사자를 닮았다.
상경과 연구진들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지만, 압도적인 포스에 인사를 받는 이들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위압감이 상경을 짓눌렀다.
"잘들 지내셨습니까? 대표 조필광이라고 합니다."
다른 연구원들은 그를 알아봤던지 조필광보다 더욱 허리를 조아렸다. 그의 풍채는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오금 저리게 만들었다.
불길한 예감이 감돌았다.
"이 아이인가?"
"그래. 상경아. 이리 오너라."
황 박사는 상경을 불렀다. 그리고는 조필광에게 인사를 시켰다. 조필광이란 대표는 상경을 보더니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그 천재 소년이구나. 언제 꼭 한번 보고 싶었는데 반갑다."
"아, 안녕하냐능."
상경은 몸이 절로 떨렸다. 본능이 위험한 사람이노라 속삭였다. 결코 가까이해서는 안 될 자다. 조필광의 눈동자에는 원한과 살기가 들끓고 있었다.
조필광은 황의소가 준 설계도면을 받아들고는 한번 쓱 훑어보았다. 이내 황 박사와 상경만 들릴 정도로 소리를 낮췄다.
"좋아. 이제 그만 정리하지."
그 말에, 황의소가 눈살을 찌푸렸다.
"정리?"
"음, 발각됐네."
"벌써? 헌터국과 을지회에서 눈치를 챈 건가?"
"최근 노숙자와 매춘부 실종 사태를 수상히 여기곤 눈을 부릅뜨고 찾더군. 발각되는 건 시간문제였어. 괜히 부딪혀봐야 우리만 손해야."
"썩을 새끼들. 어떻게 안 거지?"
조필광이 연구진들을 훑어보았다.
아니, 사납게 노려보았다.
"프락치가 있다는 거지."
상경은 조필광과 황의소가 나누는 대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정리? 헌터국? 을지회? 프락치?
"상경아. 이리 오너라."
황의소가 상경만을 데리고 비상탈출구로 향했다. 남은 수십의 박사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박사도 있었다. 조필광이 은빛의 검사와 나타에게 한마디 했다.
"휘야. 나타야. 한 명도 남기면 안 된다."
"네."
"응! 알겠어!"
휘라 불린 자는 조선 시대 무사같이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었다. 상경은 속으로 비웃었다.
'풋. 무슨 검사 흉내야.'
위잉.
도어가 열리고 조필광이 자리를 뜨자, 검에서 푸른 빛이 번쩍였다.
콰아아아앙!
"으아아악!"
"크억!"
빛살과 같은 속도로 연구원들이 살해되었다. 그의 칼춤 한 번에 박사들의 머리통이 날아가고, 남극의 빙하처럼 꽁꽁 얼어버렸다.
"휘 형! 치사하게 먼저 죽이기 있어?"
"허튼소리 말고, 어서 죽이기나 해라."
우우우윙~.
나타가 발바닥을 인라인스케이트로 바꾸더니, 팔을 소총으로 변형시켰다.
그리곤 검지를 당기자 굉음이 터져 나왔다.
두다다다다다!
"으아아악!"
"아악."
"우하하하하! 너무 좋아!"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이인조는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였다. 그들은 마치 인형을 망가뜨리는 어린아이처럼 덤덤했다. 그러나 지금 피를 흩뿌리며 죽어 나가는 건 분명 사람이다. 상경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게 그것을 증명했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과학자들이 파리 목숨처럼 죽어 나가는 걸 보고, 함상경은 확신했다.
'나도 언젠간 죽는다.'
생존의 본능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자신이 도망칠 구석은 없었다.
덥석, 하고 누군가 상경의 어깨를 낚아채었다.
"으아아아!
황 박사가 상경의 속마음을 꿰뚫기라도 하듯 말했다.
"껄걸~ 뭘 그리 쪼느냐? 너와 난 죽지 않으니 걱정 말거라. 그리고 봐두어라. 정부 프락치들의 최후를 말이다. 감히 나의 연구소에서 간첩질을 하려 들다니."
황 박사는 유쾌한 액션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롭게 살육을 지켜보았다.
억겁의 시간처럼 여겨진 살육은 1분도 채 되지 않았다. 삽시간에 수십의 박사들이 죽어버렸다. 연구소가 핏방울로 점철되었다. 몸에 오한이 드는 것 같았다.
황 박사가 활짝 웃었다.
"간첩 새끼는 죽이고, 마석탄의 제조법을 아는 사람은 이제 우리 둘뿐이로구나. 허허허!"
화르르.
잠시 후, 비밀기지는 모조리 불에 타 없어졌다. 우린 정부와 을지회란 조직을 피해, 서울의 이름 모를 지하실로 이동했다. 엘리베이터가 한참이나 내려가고서야 멈추었다. 지하 내부는 새로 지었는지 페인트 냄새가 진동을 했다.
시설도 최첨단이었다.
지하 연구실에는 항상 총을 든 용병들이 24시간 우릴 관찰했으며 여전히 외출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도 안에서 TV 시청 및 운동을 비롯한 문화생활을 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일본과 프랑스 과학자들이 새로 왔다.
"오늘부터 우리가 할 연구는 인체 연구란다. 이름하여 ESC 프로젝트."
수백여 명의 사람이 냉동된 채로 늘어져 있었다.
마루타같은 짓거리를 하라고?
기존의 과학과 물리학이 아니다. 엄연히 사람을 수술대 위에 놓고 멋대로 자행하는 비인륜적인 짓이다. 상경은 할 수 없었다.
"모, 못한다능!"
황의소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그렇지. 상경아. 난 너의 그런 인간적인 면을 좋아한단다."
"으응?"
"그렇기에 더더욱 해야 할 것이다."
이 무슨 궤변인가?
"만약 이들이 마땅히 죽어야 할 자들이라면? 살아서 사회로 나가서 선량한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하는 인간들이라면?"
"뭐?"
"노숙자, 매춘부, 범죄자. 즉 이 세상에서 사라져 마땅할 것들이다. 인간적인 면만 바라본다면 이들은 비인간적이란다."
"죄책감을 가지지 말거라. 죽어 마땅할 놈들의 피로 너는 더 많은 선량한 시민을 구하게 될 것이야."
황 박사 말은 그럴싸했다.
믿기로 했다.
아니, 믿어야만 했다.
거절은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황 박사의 선의는 딱 거기까지였으리라. 상경은 살기 위해 연구를 했다. 오히려 지금의 개 같은 현실을 잊기 위해서라도 더욱 연구에 몰두하고 매진했다.
메스를 쥐고 죽어 마땅한 이들의 몸에 칼을 댔다.
"으아아아악!"
죽어 마땅한 이들이든 아니든,
살인은 살인이다.
일 년 후,
상경은 열심히 일했다.
또한 열심히 사람을 죽였다.
천재적인 두뇌와 물질계통의 능력은 어느새 황의소의 능력을 압도해 가고 있었다.
인간의 비명은 적응이 되질 않았다. 재갈을 물리는 방법도 써봤으나 별 소용이 없다.
단말마가 귓가에 맴도는 것보다 끔찍한 것은 죽기 직전 그들의 눈빛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상경과 황의소는 인조인간 연구와 ESC 프로젝트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으하하! 만들었다!"
황의소가 쾌재를 불렀다.
그들은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었다. 그것도 초자연계 피의 마석을 융합시킨 인조인간을 말이다.
나타는 단순한 변형이지만 상경과 황의소가 개발한 것은 아수라 마석이 탑재된 신 인조인간이다.
첫 작품이라 그런지 완벽할 순 없었다. 아니, 솔직한 말로 꽤 우스꽝스러웠다. 성별도 불분명하고 눈코입도 없는, 빗다가 만 찰흙 같았다.
촘촘하고 정밀하게 만들어진 인조인간 나타와는 차이가 많이 났다.
"상경아. 이름은 이리야(泥犁耶)가 어떠냐? 산스크리트어로 지옥이란 뜻이지. 멋지지 않느냐?"
"마음대로 하라능."
환호하는 황 박사와 달리 상경의 죄책감이 날로 심해져 갔다. 상경의 눈빛이 퀭했다. 수면제 없이는 잠도 못 들 지경이 되었다. 이젠 실험체들만 보면 헛구역질이 나와 공치는 날도 종종 발생했다. 황의소는 그런 상경의 낯짝 따윈 아무렴 상관도 없다는 듯 입가를 뒤틀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마지막 재료를 넣어야 한단다."
"마지막 재료?"
"그래. 보다시피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몰골이잖느냐. 도착할 때가 됐는데…."
마지막 재료란 걸 보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알제리인 흑인 여자가 왔다. 정장을 입은 한국인이 통역을 했다.
"황 박사님. 마지막 재료가 도착했습니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니 바로 쓰셔야 합니다."
라며,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상태를 본 황의소가 미간을 찌푸렸다.
"으음, 수고했네. 가보게."
알제리인 여성과 정장인이 사라지자,
"이게 마지막 재료라능?"
"그렇단다. 열어보렴."
상경은 검은 가방에 쌓인 지퍼를 열었다. 이내, '마지막 재료'라는 걸 본 상경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으. 으. 바, 박사님."
마지막 재료는 바로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옷은 찢어지고 얼마나 씻지 못했던지 악취가 가득했지만 상당한 미인이었다. 범죄자들 몸에 칼을 수없이 댔지만, 이번만큼은 위화감이 느껴졌다.
본능이 뇌까린다.
죽여서 안 된다.
가녀리고 힘없는 여자다.
그녀는 목걸이에 'Mojya'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모쟈? 이름인가?'
온몸은 상처투성이에 곧장 죽을 것처럼 보였다. 국적도 알 수 없는 20대 초반의 동남아 여성이다. 어쩌다가 이런 모진 일을 당했을까? 상경은 그녀의 목걸이를 떼며 황 박사에게 물었다.
"이 여자는 매춘부라능?"
"아니."
"범죄자, 아니면 노숙자?"
"둘 다 아니다."
그냥 무고한 시민이다.
"상경아. 들거라."
"바, 박사님…."
"어서 들래도!"
마음의 양심을 더는 어길 수 없다. 살기 위해 연구를 해야만 하는 자신을 더는 합리화하지 않기로 했다.
양심의 트리거가 당겨졌다.
"나! 나! 더는 이 짓은 안 한다능!"
"이 썩을 새끼가!"
철썩~
황의소가 상경의 따귀를 때렸다. 상경은 더는 이런 일은 할 수 없었다.
"클클, 이 새끼가 연구소에서 불쌍해서 살려줬더니 이젠 따박따박 반항을 하는구나? 아직 네 주제 파악을 못 한 것이냐?"
그의 표정이 점점 악랄해져 갔다. 그간 상경을 따뜻하게 대한 노인이 아니었다. 탐욕과 욕심으로 일그러진 괴물이었다.
상경은 손과 발을 벌벌 떨면서도 끝끝내 옮기지 않았다. 이 여자는 죽기 직전이다. 병원으로 이송한다고 해도 골든 타임은 이미 훌쩍 지났다.
그때였다.
다 죽어가는 여자가,
"어어…. 패, 팻시아…."
를 연신 불러댔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그럴수록 황의소는 다급했다.
"이런 젠장! 죽었나? 죽으면 안 돼! 체형에 맞는 재료를 찾기가 얼마나 힘든데!"
황의소가 짜증을 가득 담아 모쟈를 질질 끌었다. 밀실 바닥에는 여러 수학 공식을 합친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개중엔 닐스 보어의 비밀 노트에 적힌 인체 연성공식도 적혀 있었다. 황의소는 여자를 마법진 위에 끌고 와 내려놓았다.
그녀는 최후의 힘을 짜내며,
"패… 팻. 시시. 아아아."
라는 최후의 말을 마치고 눈을 감았다.
"죽으면 안 돼!"
동시에 황의소 박사가 다급하게 토글 스위치를 아래로 내렸다.
철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