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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인데 내공이 좀 많네요-142화 (142/200)

142화. 오! 나의 여신님 (4)

상경은 두 가지 이유로 숨이 멎었다. 첫 번째는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 때문이다.

태곳적부터 먼지라곤 들이쉰 적이 없을 것 같은 우윳빛깔의 피부.

정밀한 역삼각형의 얼굴은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 같았다.

미세하게 돌출된 광대에 뾰족하고 갸름한 턱선. 전체적인 인상은 착하지만, 때론 고집스럽게 생긴 다양한 천의 얼굴. 무엇보다 뾰족한 귀가 남달리 인상적이다.

두 번째는 이 무슨 기구한 인연인가? 아니. 이쯤 되면 필연이라고 볼 수 있다.

상경 자신이 만든 인조인간의 최후의 재료인 모쟈와 판박이었다. 그리고 모쟈가 죽어가면서 내뱉던 단어.

'팻시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상경을 구한 은인은 피의 아수라 마석으로 만든 인조인간 모쟈의 딸이다.

"어어어…."

팔다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팻시아가 상경을 끌고 오며 순경에게,

"제 매니저가 술에 취했나 봐요. 잘 관리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경찰 아저씨. 화이팅!"

순경은 얼떨결에 그녀를 따라 주먹을 불끈 쥐었다.

"파, 파이팅!"

"으? 응? 아저씨. 저는 진짜 자수…."

"빠하하~ 매니저 오빠. 술 좀 깨세요. 자~ 경찰 아저씨! 수고하세요~ 빠잉!"

"빠, 빠잉."

라며, 팻시아가 상경을 강제로 끌고 가버렸다. 용병마저 제압해 버리는 완력이다. 상경은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태원 술집 골목까지 끌고 온 팻시아를 향해 상경이 버럭 화를 내었다.

"팻쨩! 무슨 짓이냐능?"

'팻쨩'이라는 말을 곰곰이 씹어본 그녀는 감탄했다.

"팻쨩? 우와~ 귀엽다 표현. 히히. 나 스타가 되면 저의 애칭으로 할래요!"

"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능!"

팻시아는 인생의 전환섬에 선 상경의 결심을 허무하게 망가뜨렸다. 상경은 철저히 법의 심판을 받고 그에 대한 벌을 달게 받고자 했는데 방해받은 것이다.

그러나, 한 줌의 달빛에 비친 그녀의 표정 또한 영락없이 진지해져 있었다.

"오빠. 난 알아요."

"응?"

"오빠가 왜 쫓기는 건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오빠는 나쁜 사람이 아니란 걸 난 안다고요."

"팻쨩이 몰라서 그런다능. 난 천하의 쓰레기에 죽일 놈이라능."

"거짓말."

"……!"

상경은 위장에 납덩어리를 쑤셔 넣은 듯 탁한 표정을 지었다.

"히히! 저 사람 속마음 굉장히 잘 맞추죠?"

그녀는 언제 진지했냐는 듯, 환하게 웃었다. 영롱하게 비춘 달빛을 받은 그녀는 세상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상경 또한 밝은 표정의 그녀를 보니 더없이 행복했다. 감히 저 미소를 보고 당신의 어미를 재물로 바쳐 인조인간을 만들었노라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을까?

"오빠. 저 술 한 잔만 사줄래요? 배고파요."

꼬르륵.

상경의 배에도 마침 배 시계가 울렸다.

"히힉. 오빠도 배고프네요. 어서 가요!"

"응? 아직 난 자수를…."

"에이~ 금강산도 식후경이에요!"

상경은 거대한 완력을 지닌 미모의 여인에게 질질 끌려갈 뿐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데 자수 전에 술 한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죽다 살아난 가슴을 진정시키기에는 소주가 으뜸이었다.

"건배! 짠~."

"거, 건배!"

이태원 새벽에 끼니를 때울 만한 곳이라곤 주점과 포차뿐이었다. 우린 호프집에 들어가서 소주와 안주를 미친 듯이 먹었다. 맥주도 시켜서 소맥을 말아먹기까지 했다.

평화로웠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21세기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목숨을 위협당했다. 그러나 지금 이 둘은 술집에 나란히 앉아 술을 마셨다. 좀전의 공포를 잊기 위해 마시고 마셨다.

등갈비는 일품이었고,

양꼬치는 황홀했다.

양손으로 살점을 뜯고, 소주를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움와, 쩝쩝. 팻쨩. 연습생이 어디서 엄청난 힘을 가졌냐능?"

그녀의 동글동글한 눈동자는 보기만 해도 취할 것 같았다. 그들의 테이블엔 소주가 벌써 5병이나 깔려있었다. 알바생이 빈 병을 치워주려고 했지만 팻시아는 빈 병을 노획품인 마냥 냅두라고 했다.

상경은 알딸딸했고,

팻시아는 잔뜩 취했다.

"우왐. 오빠. 나 이제 데뷔했으니 연습생은 아니라고요오. 고아원 시절부터 힘이 굉장히 강했거든요. 아무튼 오늘 본 건 비밀이에요! 알겠죠? 꺼억."

"오케이이~ 건배~."

"쨘~."

함상경에게 윙크를 하며 입가에 손가락을 갖다 댄 팻시아는 세상 그 무엇보다 고혹적이었다.

"근데 소속사에선 이러고 있는 거 아냐능?"

요즘 아이돌 계약할 땐 사생활을 철저히 관리한다고 들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노노. 매니저 오빠가 알면 식겁할 걸요오오오. 근데 몇 년 동안이나 갇혀 지내니 너무 갑갑해요. 가끔 일탈 같은 거라도 해주면서 무뢰배도 처치해야 스트레스가 풀려요. 그러다 딱 오늘 오빠를 봤다는 거 아니겠어요오오. 캬아~ 이것도 우리 인연이지 않나요?"

"인연이라…."

주머니의 모쟈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인연이 아니라 악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특히, 해맑은 팻시아의 미소를 볼 때마다 상경 본인이 저지른 원죄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새삼 느꼈다.

속죄하리라.

남은 여생을 바쳐서.

탁, 술잔을 내려놓았다.

이태원의 꽉 찬 술집의 손님들과 직원들은 함상경과 팻시아만을 바라보았다.

현대판 미녀와 야수다.

연신 술을 들이켠 그녀의 혀가 입안으로 말려갔다.

"오오빠. 제가 비밀 하나 알려드릴까요오오. 꺽~"

팻시아는 푹 절은 고주망태가 되었다.

"팻쨩. 많이 취했다능. 이제 그만 마시자능."

주위엔 늑대들이 눈에 불을 켜고 그들의 이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양아치 테이블 몇 놈이 속닥거리기까지 한다. 등에 식은땀이 난다. 그러거나 말거나 팻시아는 말을 이었다.

"있잖아요옹. 저는 엄마에 배 속에 있던 시절부터 기억나거든요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기억이 난다 이 말이에요오오. 후후, 그래서 태어나기 전부터 많은 걸 보고 듣고 자랐지요오오."

"에에?"

태아 시절부터 눈으로 보고 소리를 들었다고? 소설로 써도 욕을 바가지로 먹을 얘기다. 그러나 한편으로 상경 자신이 연구한 믿지 못할 비인륜적인 연구를 떠올리자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고 여겼다.

다시금 불길함이 치솟는다.

"패, 팻쨩. 많이 취했다능.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다능. 어서 가쟈능."

그녀의 손목을 잡고 일어나려고 했으나 팔을 신경질적으로 뿌리쳤다.

"아이~ 쒸이. 사람 말하는데 막 끊고 그러면 안 돼요오오.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다고요? 그렇죠. 그게 사람이니까아 그런 거예요. 저는 사람이 아니거든요오오. 반은 인간이고오 반은 엘프라고요오."

얘 뭐라니?

빨리 집에 보내야겠다.

"데비루란 엘프가 우리 아빠고오오. 엄마는 모쟈인데에 둘의 사랑에서 낳은… 우웁! 입에 손 치워여요오!"

상경이 황급히 팻시아의 입을 막았다. 술집의 사람들이 일제히 상경을 바라봤다. 아니, 노려봤다.

야수가 미녀를 납치하려는 모습이 혐오스럽다는 눈빛이다.

"아저씨!~ 계산요!"

상경은 팻시아를 어깨에 걸고 카운터에 왔다. 팻시아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미 술집 사람들이 그들을 뚫어지게 바라보기 바빴다. 펫시아의 빛나는 외모가 하필 이럴 때 불편하다.

"우읍~ 손 치우라느니까요오~ 아저씨이. 여기 계산요오."

상경은 자신의 카드로 결제했다간 추적을 당할 것 같기에 잠자코 있었다. 카운터 사장은 못 내 상경을 못마땅한 눈초리를 주었다. 미녀와 단둘이 술자리를 가진 것도 모자라 얻어먹기까지?

이런 천하의 썩을 놈을 봤나?

경찰에 신고할 기세다.

사장이 참다못해, 일갈을 쏘았다.

"학생, 여자는 집에 일찍 들여보내세요."

"아오! 그런 거 아니라능."

팻시아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왔다. 나오는 내내 사내들이 함상경을 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다.

뚱뚱한 상경이 골뱅이가 된 여신을 끌고 가는 것에 대한 분노를 가득 담았다. 택시를 기다리며 그녀는 보도블럭에 주저앉아 한참이나 횡설수설했다.

손을 뻗어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팻시아는 그때마다 상경의 팔을 내렸다.

"오빠. 골든 트라이 앵글이라고 들어봤어요? 우리 엄마는 동네에서 최고로 미인이었는데요오오. 나쁜 장치오란 새끼가아…."

그녀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일을 구구절절 늘어놨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담백하게 읊었다.

상경은 팻시아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두 뺨엔 눈물이 진실이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경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어둑한 새벽은 여명을 맞이했다.

말을 마친 그녀는 말이 없었다. 더는 눈물을 흐르지도 않았다.

택시를 잡았다.

그새 술이 깼는지 혀도 말리지 않았다.

"저어, 오늘 잊지 못할 추억이었어요. 저 이제 기숙사로 갈게요. 오빠도 조심히 들어가요."

"으, 응."

팻시아를 보낸 상경은 발걸음을 돌려 이태원 파출소 앞에 섰다.

아까 그 순경이다.

야간근무였던지 순경은 눈을 비비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상당한 골초이다.

순경과 눈을 마주쳤다.

"하하~ 매니저님. 또 뵙네요. 걸그룹 아가씨는 잘 보내셨나요?"

라며 팻시아가 있는지 눈을 힐끔거렸다. 그러자 없는 걸 확인하자 못내 아쉽다는 표정이다.

"네."

상경을 매니저로 철떡 같이 믿고 있다.

"하하~ 제가 폰으로 세븐 리프란 그룹을 검색해봤는데 진짜라더라고요!"

"데뷔하자마자 음악 차트를 휩쓸고 있어요. 캬~ 제가 그런 분을 뵈었다니! 매니저님도 일할 맛 나시겠습니다. 아하핫."

"아, 뭐. 네."

순경은 뭐가 그리 신났는지 하나같이 절세의 미모에 칼군무를 겸비한 사상 초유의 걸그룹이라며 칭찬을 늘어놓기 바빴다. 물론 상경의 귀에는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저, 경찰 아저씨…."

순경이 담배를 스테인리스 재떨이에 비벼 끄며,

"매니저님도 아침 해 뜨기 전에 어서 집에 가서 한숨 자 두세요. 복잡한 일은 나중에 생각하시고요."

그는 상경의 대답을 듣지 않은 채 뒤로 돌아 이태원 골목으로 순찰을 갔다.

'복잡한 일'이라….

아니, 의미심장하다고 곡해해서 듣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상경은 결론지었다.

자수할 때가 아니다.

팻시아를 지켜야 한다.

상경은 본인이 가진 통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해킹에 사용했다. 아무도 뚫지 못한 골든 트라이 앵글의 다크웹 서버를 뚫었다.

비운의 종족 피피족, 데비루, 그리고 행방불명된 모쟈의 아이를 어떻게든 찾아내라는 칙령까지.

손이 파르르 떨렸다.

함상경은 골든 트라이 앵글 다크웹 서버를 폭파시켜 버렸다. 두려움과 분노가 공존하는 이 기분은 대체 뭘까?

사건 다음 날,

그녀의 소속사로 모쟈의 목걸이를 보냈다. 물론 발신인은 불명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틈틈이 상경은 골든 트라이 앵글을 추적하며 팻시아와 관련된 자료를 주기적으로 해킹하고 폐기했다.

그가 속죄하고 보답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리라. 세월은 아픈 기억을 마모시켰다. 어느새 상경은 팻시아에 이어 세븐 리프의 열광적인 팬이 되었다.

"세븐 리프~ 세븐 리프~."

"사랑해요~ 팻! 시! 아!"

수만 명의 관중이 세븐 리프를 부르짖었다. 콘서트장의 뜨거운 열기가 전해져왔다. 세븐 리프의 인기는 삽시간에 상승했다.

특히 팻시아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상경의 불안감은 높아져 갔다. 장치오의 레이더에 걸릴 위험이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 노래하는 그녀는 정말 멋졌고 즐거워 보였다. 마치 노래와 춤을 즐기기 위해 태어난 여신 같았다. 팻시아가 오래도록 이 일을 했으면 좋겠다.

좁은 레일 위에 성웅이랑 부대끼며 티격태격했다. 그는 상경을 끌어올려 레일 위에 잘 보이도록 해주었다.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했다.

"우리 팻쨩 정말 예쁘지 않냐능? 그녀와 난 둘만의 추억이 있다능."

성웅은 함상경을 한심하게 보며,

"너만의 추억이겠지."

라고 핀잔을 주었다.

상경 인생의 목표는 습기 찬 유리창을 닦는 것처럼 명료해졌다. 그녀가 인조인간의 재료가 되는 걸 막으며 출생의 비밀을 밝히려는 자들을 막기로 말이다.

속죄를 위해서라면….

지금 생각해보니 상경을 구해준 팻시아는 의협심보다는 약자가 당한 설움을 알기에 동병상련의 마음이 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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